진료실에는 말이 많을 것 같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순간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한 분이 이야기를 하다 말고 멈춥니다. 시선이 무릎께로 떨어지고, 입술을 한 번 다물었다 뗍니다. 무슨 말을 꺼낼지 고르는 중이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그 몇 초 동안 방 안에는 벽시계 초침 소리랑, 복도에서 누가 지나가는 발소리랑, 그리고 아직 나오지 않은 말 한마디가 같이 앉아 있습니다.
이 글은 그 몇 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부끄러운 고백부터 해야겠어요.
초년 시절의 저는, 이 침묵을 정말 못 견뎠습니다.
앞사람이 말을 멈추면 제 안에서 먼저 경보가 울렸어요. 아, 뭔가 잘못됐나. 내가 질문을 이상하게 했나. 이 정적이 어색해서 이분이 불편한 건 아닐까. 그러면 저는 서둘러 그 틈을 말로 메웠습니다. "아, 그러니까 그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혹시 물 한잔 드릴까요?" "괜찮아요, 천천히 하셔도 돼요"라고 말하면서 정작 하나도 천천히를 못 기다리는, 그런 의사였습니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어요. 어느 분이 한참을 말없이 앉아 계시길래, 제가 그 침묵을 못 견디고 "혹시 날씨가 요즘 좀 우중충해서 더 그러신 걸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진땀이 나요. 그분은 방금 아주 개인적인 무언가를 꺼내려던 참이었는데, 제가 대뜸 일기예보로 화제를 돌려버린 겁니다. 그분은 "아… 네, 뭐" 하고는 그날 그 이야기를 끝내 안 하셨어요. 제가 애써 채운 그 한마디가, 정작 나오려던 진짜 말 한마디를 밀어낸 거죠.
지금 돌아보면 그건 그분을 위한 게 아니었어요. 그 침묵이 불편했던 건 사실 저였습니다.
왜 그렇게 못 견뎠을까,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저는 그 몇 초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무서웠던 거예요. 의사라면 뭔가를 해야 하는데, 질문을 하고 조언을 하고 방향을 잡아줘야 하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제가 무능한 것 같았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말로 채운 건 그분의 침묵이 아니라 제 불안이었습니다.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제 조급함이요.
앞사람은 지금 막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길어 올리는 중이었는데, 두레박이 우물 바닥에 채 닿기도 전에 제가 "됐어요, 그냥 올라오세요" 하고 줄을 당겨버린 셈이죠. 물 한잔 드릴까요, 라는 다정해 보이는 그 한마디가, 실은 "제발 그 무거운 침묵 좀 끝내주세요"라는 제 부탁이었던 겁니다.
의사가 되기 전엔 몰랐어요. 말을 잘하는 게 어려운 줄만 알았지, 입을 다무는 게 이렇게까지 어려운 기술일 줄은.
침묵을 견디는 법을 저는 아주 천천히 배웠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견디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법을요. 이 둘은 다릅니다. 견딘다는 건 얼른 지나가기를 바라며 이를 악무는 거고, 기다린다는 건 그 시간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가만히 두는 겁니다.
어떤 선배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어요. "환자가 침묵할 때, 그 침묵을 네가 먼저 깨면 네가 궁금한 걸 묻게 되고, 환자가 깨면 환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된다." 그 뒤로 저는 제 입이 근질거릴 때마다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셉니다. 대개는 다섯쯤 세기 전에 그분이 먼저 입을 엽니다. 제가 물었다면 절대 안 나왔을, 훨씬 안쪽의 이야기가요.
재촉하지 않는 것.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저에겐 환자에게 배운 것들 중에서도 제일 오래 걸린 수업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됐어요.
어떤 침묵은, 그 안에 말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걸요.
눈물을 삼키는 침묵이 있습니다. 목울대가 한 번 크게 움직이고, 천장을 잠깐 올려다보고, 손끝으로 눈가를 꾹 누르는. 그 몇 초 동안 그분은 지금 울지 않으려고 온몸으로 애쓰는 중입니다. 여기서 제가 "괜찮아요, 우셔도 돼요"라고 말을 얹으면, 그건 도움이 아니라 방해가 될 때가 많아요. 그냥 티슈 한 장을 소리 안 나게 앞으로 밀어두고, 저도 같이 가만히 있는 편이 낫습니다.
차마 못 꺼내는 말 앞의 침묵도 있습니다. "사실은요…" 하고 운을 뗀 다음 한참을 못 잇는. 그 말줄임표 안에는 몇 년을 혼자 짊어진 이야기가, 처음으로 소리가 되어 나오기 직전의 무게가 들어 있어요. 그럴 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무게를 재촉하지 않고 같이 들고 있어 주는 것뿐입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여기 나오는 장면들은 특정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진료실의 순간들을 신상이 드러나지 않게 뭉뚱그려 각색한 것입니다.)
이런 순간들을 몇 번 지나고 나서 저는 조금 이상한 걸 깨달았어요.
우리가 함께 아무 말 없이 있는 그 시간이, 어떤 날은 오간 대화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낸다는 것.
왜 그럴까 한참 생각했는데, 아마 이런 것 같아요.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장이거든요. "지금 이 무거운 걸, 당신 혼자 들고 있는 게 아니에요." 이 말은 소리 내어 하면 오히려 가벼워집니다. 그런데 그냥 같이 조용히 앉아 있으면, 그 문장이 소리 없이 방 안에 번져요. 말로 하는 위로가 닿지 못하는 자리에, 함께 있는 침묵이 대신 가닿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같이 조용히 있다 보면 호흡이 얼추 비슷해집니다. 잔뜩 가빠져 있던 그분의 숨이 조금씩 느려지고, 어깨가 한 뼘쯤 내려오고, 꽉 쥐고 있던 손이 슬며시 펴지는. 저는 그 변화를 말없이 지켜봅니다. 그 몇 분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방 안의 온도는 분명히 달라져 있어요. 어떤 위로는 문장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소리 없이 건네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압니다. 침묵이 늘 비어 있는 게 아니라는 걸요. 어떤 침묵은 방 안에서 제일 꽉 찬 것이기도 하다는 걸.
그리고 그 침묵이 더 이상 어색함이 아니라 안전함이 되는 순간이 옵니다.
처음 오신 분과의 침묵은 대개 불편합니다. 서로 낯설고, 그분은 지금 자기가 뭘 잘못 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피느라 긴장해 있으니까요. 그런데 몇 번의 만남이 쌓이면, 어느 날의 침묵은 결이 달라져요. 말을 안 해도 불안하지 않은, 오히려 잠깐 숨을 고르는 쉼표 같은 침묵. 그게 찾아오면 저는 속으로 조용히 반가워합니다. 이 방이 그분에게 조금은 안심하고 와도 되는 자리가 됐다는 뜻이니까요.
여기까지 읽으시면 침묵이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들릴까 봐, 반대편 이야기도 정직하게 해야겠습니다. 안 그러면 이 글이 침묵을 미화하는 거짓말이 되니까요.
모든 침묵이 좋은 건 아닙니다.
회피의 침묵이 있어요. 정말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려는 길목에서, 그걸 피하려고 입을 닫아버리는 침묵. 이건 함께 머무는 고요가 아니라 문을 걸어 잠그는 고요입니다. 단절의 침묵도 있고요. 너무 지쳐서, 혹은 더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서 말을 놓아버린 침묵. 이런 침묵 앞에서 제가 가만히만 있으면 그건 기다림이 아니라 방치가 됩니다. 그럴 땐 제가 먼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려야 해요.
그러니까 어떤 침묵이 무르익어 가는 침묵이고 어떤 침묵이 잠겨버린 침묵인지, 그걸 구분하는 게 사실 제 일의 은근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진료실에서 함께 터지는 웃음이 딱지 위의 웃음인지 붕대 아래의 웃음인지 늘 조심스럽게 들여다봐야 하는 것처럼요. 침묵도 똑같아요. 겉모습은 비슷하게 생겼는데 속은 정반대일 때가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솔직하게 덧붙이자면.
침묵에 관한 연구들을 들춰보면, 생각보다 겸손해집니다. 흔히 "침묵이 환자의 깊은 감정을 끌어낸다"고들 하는데, 상담 장면을 초 단위로 분석한 어느 연구는 정작 침묵이 길어진다고 해서 환자의 감정 표현이 뚜렷이 늘지는 않더라고 보고했어요1. 그러니까 침묵은 그 자체로 마법이 아닙니다. 언제, 누구와, 어떤 침묵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는 거죠. 저는 이 겸손한 결론이 오히려 마음에 들어요. 침묵을 무슨 만능 기법처럼 휘두르지 말라는, 조용한 경고 같아서요.
그리고 가장 정직한 고백은 이겁니다.
저도 여전히 침묵이 버거운 날이 있습니다.
지치고 마음이 분주한 날엔, 앞사람이 말을 고르는 그 몇 초가 여전히 길게 느껴지고, 저도 모르게 입이 먼저 움직이려 합니다. 초년 시절의 그 버릇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에요. 다만 이제는 제 입이 근질거리는 걸 알아챌 수 있게 됐고, 그럴 때 한 번 더 참아보려 합니다. 그게 늘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요. 확신에 찬 얼굴로 앉아 있어도 사실 자주 흔들리는 사람이라, 침묵 앞에서도 저는 아직 흔들립니다.
그래도 하나는 분명히 배웠어요.
가끔은, 제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더라고요. 좋은 말, 옳은 말, 위로가 되는 말을 찾아 헤매는 대신, 그냥 그 자리에 조용히 같이 있어 주는 것. 곁에 있어 준다는 것의 절반은 어쩌면 이 침묵으로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어느 진료실에서는, 누군가 말을 고르느라 한참을 가만히 있을 겁니다. 그 맞은편에 앉은 의사가 부디 그 몇 초를 서둘러 깨지 않기를. 그 고요가 실은 방 안에서 가장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니까요.
이 글은 정신과 의사가 진료실 밖에서 쓰는 개인적인 에세이이며, 특정한 진단·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장면과 대화는 특정 환자의 사례가 아니라 여러 순간에서 받은 인상을 신상이 드러나지 않게 각색·일반화한 것입니다. 혹시 지금 말조차 꺼낼 힘이 없는 캄캄한 자리에 계시다면, 그 침묵을 혼자 견디지 마시고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 ☎ 1577-0199(24시간)나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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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곁에 있어 준다는 것
- 진료실에서, 저는 매일 환자에게 배웁니다
이 글에 은근히 기댄 자료
- 상담 장면의 치료자 침묵을 초 단위로 분석해, 침묵이 길어져도 환자의 정서 표현이 뚜렷이 증가하지는 않았다고 보고한 실증 연구(임상적 통념에 대한 신중한 반례): Soma et al., "The Silent Treatment?: Changes in patient emotional expression after silence," Counselling & Psychotherapy Research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