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마다 진료실에서 같은 질문이 돌아옵니다. "이렇게 더울 때 이 약 계속 먹어도 되나요?" 올여름은 특히 잦았습니다. 폭염이 길었고, 정신질환자가 더위에 더 취약하다는 보도가 여러 번 나왔거든요.

걱정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정신과 약 중에는 땀을 덜 나게 하거나 체온을 조절하는 뇌 부위에 영향을 주는 것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에서 "그러니 여름엔 약을 줄이자"로 곧장 건너뛰면, 결론이 뒤집힙니다. 이 글은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를 따라가 봅니다.

먼저, 보도된 숫자부터

2026년 8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4~2023년 건강보험 자료를 분석한 결과가 보도됐습니다. 정신질환자 한 사람당 의료이용이 폭염기간 3.67건, 한파기간 2.3건으로 1.6배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조현병은 폭염기간 병원에 온 날이 평균 19.3일, 우울증은 7.3일이었고요.

숫자 자체는 그대로입니다. 다만 하나를 같이 봐야 합니다. 이 보고서에서 폭염기간은 5월부터 9월까지 다섯 달이고, 한파기간은 12월부터 2월까지 세 달입니다. 기간이 1.67배 길면, 그 기간에 쌓인 진료 건수도 그만큼 늘어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1.6배라는 수치와 기간 길이의 비율이 거의 같다는 점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같은 보고서에는 기간 길이를 보정한 수치도 함께 있습니다. 월평균으로 보면 폭염기간 10만 9,149건, 한파기간 10만 5,498건입니다. 차이는 3,651건, 비율로는 약 3.5%입니다. 1.6배와 3.5%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죠.

그러니 정확한 문장은 이렇게 됩니다. 폭염기에 정신질환 진료가 더 많은 것은 맞습니다. 다만 그 차이는 1.6배가 아니라 몇 퍼센트 수준입니다.

그렇다고 더위가 무해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반대쪽으로 미끄러지기 쉬워서, 더 좋은 설계의 연구를 하나 놓고 보겠습니다.

미국에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응급실 방문 349만 6,762건(224만 3,395명) 을 분석한 연구가 있습니다. 같은 사람의 더운 날과 덜 더운 날을 맞비교하는 방식이라, 사람마다 다른 조건이 결과에 섞이지 않습니다.

결과는 가장 더운 축에 드는 날 정신건강 문제로 응급실에 오는 일이 8% 늘었습니다(발생률비 1.08, 95% 신뢰구간 1.07~1.09). 물질사용 8%, 불안·스트레스 7%, 기분장애 7%, 조현병 5%, 자해 6%로 진단을 가리지 않고 같은 방향이었습니다.

8%는 극적인 숫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350만 건에서 진단을 가리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나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더위가 정신건강을 흔드는 것은 맞고, 흔드는 폭은 생각보다 작습니다. 두 문장이 같이 참입니다.

그럼 약이 범인일까요

이제 원래 질문입니다. 기전만 보면 그럴듯합니다.

  • 항콜린 작용이 강한 약은 땀을 덜 나게 합니다. 사람이 더위를 견디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땀인데, 그게 줄어듭니다. 파록세틴이나 아미트립틸린, 하이드록시진처럼 이 작용이 뚜렷한 약들이 여기 해당합니다.
  • 항정신병약은 체온을 조절하는 뇌 부위(시상하부)가 쓰는 신호에 개입합니다. 그래서 바깥 온도에 몸이 더 끌려다니게 됩니다.
  • 리튬은 좀 다른 이유로 위험합니다. 땀을 많이 흘려 탈수가 오면 핏속 리튬 농도 자체가 올라가 중독 쪽으로 갑니다.

기전은 이렇게 분명한데, 그렇다면 검증은 간단해집니다. 약이 위험을 만든다면, 같은 병을 가졌지만 약을 안 먹는 사람은 폭염에 덜 위험해야 합니다.

16만 명에게 그걸 실제로 물어봤습니다

일본 이바라키현의 청구자료로 그 비교를 한 연구가 2024년 Psychological Medicine에 실렸습니다. 중증 정신질환자 6만 2,186명과 우울증 환자 9만 6,875명이 대상이었고, 이 중 열 관련 질환을 겪은 사람이 각각 1만 6,534명과 2만 3,645명이었습니다. 여기서도 같은 사람의 폭염일과 평소를 맞비교했습니다.

폭염일에 열 관련 질환이 늘어난 배수 — 항정신병약을 먹는 쪽 1.48배, 안 먹는 쪽 1.45배로 거의 같았고, 우울증에서는 항우울제를 안 먹는 쪽이 오히려 조금 높았다
폭염일에 열 관련 질환이 늘어난 배수 — 항정신병약을 먹는 쪽 1.48배, 안 먹는 쪽 1.45배로 거의 같았고, 우울증에서는 항우울제를 안 먹는 쪽이 오히려 조금 높았다
  • 중증 정신질환에서 항정신병약을 먹는 사람은 1.48배(1.40~1.56), 안 먹는 사람은 1.45배(1.35~1.56)였습니다.
  • 우울증에서 항우울제를 먹는 사람은 1.54배(1.46~1.64), 안 먹는 사람은 1.64배로 오히려 안 먹는 쪽이 조금 높았습니다. 다만 신뢰구간이 겹쳐 차이가 뚜렷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약을 먹든 안 먹든, 폭염일에 위험이 오르는 폭이 거의 같았습니다.

이 결과를 정확히 읽는 법

여기서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첫째, "약이 안전하다"는 결론이 아닙니다. 이 연구가 잰 것은 절대적인 위험의 크기가 아니라 '평소에 견줘 폭염일에 얼마나 오르는가'입니다. 약을 먹는 분들은 대개 증상이 더 무겁고, 그래서 평소 위험 자체가 더 높을 수 있습니다. 이 설계로는 그 부분을 알 수 없습니다.

둘째, 그럼에도 실용적인 함의는 분명합니다. 폭염에 오르는 위험이 약 때문이라면 약을 끊었을 때 그 상승분이 줄어야 하는데, 줄지 않았습니다. 여름이라고 약을 임의로 줄이거나 거르는 선택은, 얻는 것 없이 재발 위험만 떠안는 거래가 되기 쉽습니다.

한계도 적어 둡니다. 일본 한 지역의 청구자료이고, 처방이 나갔다는 기록이 실제로 복용했다는 뜻은 아니며, 에어컨이 있는지 낮에 밖에 있었는지 같은 정보는 자료에 없습니다. 저자들이 논문에 그대로 밝혀 둔 한계입니다.

그럼 무엇이 위험을 만드나

약이 아니라면 남는 후보는 병 자체와, 병에 딸려 오는 생활 조건입니다.

더위가 길어지면 밖에 덜 나가게 되고, 사람을 덜 만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챙겨 주는 사람도 줄어듭니다. 정신질환을 앓는 분들은 이 고립이 원래 더 쉽게 깊어집니다. 냉방이 되는 곳에 머물 수 있는지, 물을 챙겨 마실 사람이 곁에 있는지 같은 조건도 사람마다 크게 다르고요. 폭염에 실제로 사람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대개 이런 쪽입니다.

올여름에 실제로 챙길 것

여름에 정신과 약을 먹을 때

  • 약을 임의로 줄이거나 거르지 마세요. 더위 때문에 걱정된다면 끊는 게 아니라 말씀하시는 게 맞습니다.
  • 물을 평소보다 의식적으로 챙기세요. 특히 리튬을 드시는 분은 이게 안전의 핵심입니다. 땀을 많이 흘린 날, 설사나 구토를 한 날, 열이 난 날은 특히요.
  • 가장 더운 시간대의 바깥 활동을 옮기세요. 땀이 덜 나는 약을 드시고 있다면 더위를 견디는 능력 자체가 줄어 있습니다.
  • 평소보다 어지럽거나, 멍하거나, 땀이 안 나면 알려주세요. 이건 참고 넘길 신호가 아닙니다.
  • 혼자 지내는 분이라면 여름엔 연락 간격을 좁혀 두세요. 위험을 키우는 건 대개 고립 쪽입니다.

💬 전문의 한마디

이 글에서 제일 하고 싶은 말은 사실 단순합니다. 여름에 정신과 약을 스스로 줄이지 마세요.

기전만 놓고 보면 걱정이 이해가 됩니다. 땀을 덜 나게 하는 약을 먹고 폭염에 나가는 게 좋을 리 없죠. 그래서 저도 여름에는 항콜린 작용이 센 약을 쓸 때 한 번 더 생각합니다. 다만 그건 처방하는 사람이 저울질할 문제이지, 드시는 분이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임의로 끊었다가 가을에 재발해서 오시는 경우를, 여름이 끝날 무렵마다 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런 뉴스를 볼 때 숫자가 어느 기간을 놓고 잰 것인지 한 번만 보시면 좋겠습니다. 다섯 달과 세 달을 견줘 놓은 1.6배와, 같은 길이로 맞춰 본 3.5%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다르게 만듭니다. 어느 쪽도 거짓말이 아닌데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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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폭염과 정신건강 응급실 방문(미국 349만 건, JAMA Psychiatry 2022): PubMed
  2. 향정신성 약물 복용 여부에 따른 폭염 관련 결과 비교(일본, Psychological Medicine 2024): PubMed
  3. 폭염기 정신질환 의료이용 분석(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4~2023년 자료): 이데일리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