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이런 말을 종종 듣습니다.

"선생님, 저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나요."

한참 힘든 시기를 지나는 분이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입니다. 슬픈 영화를 봐도, 힘든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만 뜨겁고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다고요. 어떤 분은 여기에 죄책감까지 얹습니다. 이렇게 힘들면 울어야 정상인데 그러지도 못하니 내가 어딘가 고장 난 것 같다고요.

그래서 이 글은 두 가지를 함께 다루려 합니다. 먼저 울면 정말 후련해지는가. 여기엔 서로 정반대되는 연구들이 있고, 그 모순이 꽤 흥미롭게 풀립니다. 그다음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나오는 상태는 무엇인가. 이쪽은 원인이 다섯 가지쯤 되고, 그중 몇 개는 손을 쓸 수 있습니다.

핵심 정보 한눈에

  • 실험실에서 사람을 울린 뒤 곧바로 기분을 재면 오히려 나빠집니다. 그런데 20분 뒤엔 원래대로 돌아오고, 90분 뒤엔 울기 전보다 좋아졌습니다.
  • 설문에서 "울면 후련하다"는 답이 많은 이유는 조건이 갈리기 때문입니다. 곁에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었는지, 울면서 상황이 정리되었는지가 결정적이었습니다.
  • 일기 연구에서 울음 직후 기분은 변화 없음이 60.8%, 좋아짐이 약 30% 였습니다. 무조건 후련해지는 게 아닙니다.
  • 눈물로 스트레스 호르몬이 빠져나간다는 설명은 근거가 약합니다. 눈물 양 자체가 너무 적습니다.
  •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나는 건 게으름이나 냉정함이 아닙니다. 우울의 정서적 둔감, 약에 의한 감정 둔화, 오래 배운 억제, 감정을 알아채기 어려운 성향, 눈물샘 쪽 신체 원인이 각각 다른 이야기입니다.

실험실에서는 울고 나서 더 나빠졌습니다

먼저 가장 냉정한 자료부터 봅시다. 슬픈 영화를 보여주고 실제로 우는지 관찰한 뒤, 기분을 여러 번 반복해서 재는 연구가 있습니다. 우는 것으로 확인된 28명과 울지 않은 32명의 기분을 영화 전, 직후, 20분 뒤, 90분 뒤로 나눠 비교했습니다1.

결과는 이렇게 움직였습니다.

시점울었던 사람들의 기분
영화 직후울기 전보다 더 나빠짐
20분 뒤울기 전 수준으로 회복
90분 뒤울기 전보다 오히려 좋아짐

이 표가 이 글의 절반입니다. 울음이 기분을 낫게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와 "아니다"가 모두 나왔던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언제 재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실험실 연구들이 대체로 "울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낸 건, 대부분 우는 직후에 한 번 재고 끝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이건 우리 경험과도 맞습니다. 한참 울고 난 직후는 후련하기보다 머리가 아프고 눈이 부어 있고 창피합니다. 후련함은 그날 저녁이나 다음 날 아침에, 조금 가벼워진 몸으로 찾아옵니다.

그런데 설문에서는 다들 후련하다고 합니다

반대쪽 자료도 봅시다. 35개국의 남성 2,181명과 여성 2,915명에게 가장 최근에 울었던 일과 그 뒤의 기분을 물은 국제 연구가 있습니다2. 여기서는 울고 나서 기분이 나아졌다는 답이 흔했습니다.

중요한 건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느냐입니다. 연구진이 찾아낸 조건은 이랬습니다.

  • 기분이 나아진 쪽: 울 때 누군가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 울면서 그 일이 해결되거나 새로운 이해가 생겼다 / 기쁜 일에 울었다
  • 기분이 나빠진 쪽: 울었을 때 부정적인 반응을 받았다 / 창피함이나 수치심을 느꼈다 / 남의 고통을 보며 울었다

즉 울음 자체가 아니라 울음이 놓인 상황이 결과를 갈랐습니다. 실험실이 유독 결과가 나빴던 것도 이 틀로 설명됩니다. 낯선 방에서 혼자 화면을 보며 우는 상황에는 위로해줄 사람도, 울어서 달라질 상황도 없으니까요.

같은 연구 계열의 리뷰에서 한 가지가 더 나왔습니다. 곁에 한 사람이 있을 때, 그것도 엄마나 친구나 연인처럼 가까운 한 사람이 있을 때 기분 개선이 가장 잘 나타났고, 여러 사람이 함께 있을 때는 오히려 부정적인 방향이었습니다. 울음의 강도가 셀수록 이후의 개선이 컸고, 얼마나 오래 울었는지는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3.

핵심 — 울음은 혼자 배출하는 밸브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내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그 신호가 받아들여지면 기분이 나아지고, 무시당하거나 창피해지면 더 나빠집니다. "울고 나면 후련하다"는 말에서 실제로 일한 건 눈물이 아니라, 그 눈물을 본 사람이었던 셈입니다.

일기로 매일 적어보면 더 냉정합니다

여기서 균형을 한 번 더 맞춰야 합니다. 설문은 기억에 의존하고, 기억은 극적인 장면을 남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적게 한 연구가 더 정직할 수 있습니다.

여성 97명이 40일에서 73일 동안 울음 일기를 써서 모은 1,004건의 기록이 있습니다4. 울음 직후의 기분 변화는 이렇게 갈렸습니다.

  • 변화 없음: 60.8%
  • 좋아짐: 약 30%
  • 나빠짐: 나머지

절반이 넘는 경우에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단위의 기분을 보면 그림이 조금 더 무겁습니다. 울음이 있던 날은 물론이고 그 앞의 이틀, 그 뒤의 이틀까지 기분이 낮은 상태였습니다.

이 대목은 해석을 조심해야 합니다. 울음이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읽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울음은 힘든 시기의 원인이 아니라 표지입니다. 며칠에 걸쳐 힘이 빠지고 있을 때 그 한가운데서 눈물이 나는 것이지, 눈물이 그 며칠을 만든 게 아닙니다.

그러니 "실컷 울면 리셋된다"는 기대는 조금 접어두는 편이 좋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게 정확합니다. 울음은 지금 내가 한계에 가까워졌다는 알림이고, 그 알림을 누가 받아주면 회복이 조금 빨라집니다.

"눈물로 독소가 빠져나간다"는 말은요

이 이야기는 꽤 널리 퍼져 있습니다. 1980년대에 한 생화학자가 제안한 가설로, 눈물을 통해 스트레스 호르몬과 몸에 해로운 물질이 배출된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감정적인 눈물에는 반사적인 눈물(양파를 썰 때 같은)보다 프로락틴이나 부신피질자극호르몬 같은 물질이 더 들어 있는 게 맞습니다.

문제는 양입니다. 한 번 울 때 나오는 눈물은 많아도 1밀리리터가 안 됩니다. 그 안에 호르몬이 들어 있다 해도, 몸을 돌고 있는 전체 양에 비하면 사실상 영향이 없습니다. 게다가 울음이라는 행동 자체가 없는 동물에서도 스트레스 상황이 지나면 코르티솔이 떨어집니다. 울어서 빠져나간 게 아니라, 상황이 지나가서 내려간 것이죠3.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울고 나서 편해지는 일은 실제로 있습니다. 다만 그 이유가 배수구는 아닙니다. 격한 각성이 지나간 뒤 몸이 가라앉는 과정, 누군가 곁에 있어준 경험, 울면서 생각이 정리된 것 — 이런 쪽이 훨씬 유력합니다.

그럼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나는 건 뭘까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진료실에서 훨씬 자주 듣는 쪽이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하나의 증상이 아니라 적어도 다섯 갈래로 갈라봐야 하는 상태입니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날 때 갈라봐야 하는 다섯 가지 — 우울의 정서적 둔감, 약에 의한 감정 둔화, 오래 배운 억제, 감정을 알아채기 어려움, 눈물샘 쪽 신체 원인. 그래픽: 마음뉴스 제작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날 때 갈라봐야 하는 다섯 가지 — 우울의 정서적 둔감, 약에 의한 감정 둔화, 오래 배운 억제, 감정을 알아채기 어려움, 눈물샘 쪽 신체 원인. 그래픽: 마음뉴스 제작

① 우울의 정서적 둔감. 흔히 우울하면 눈물이 많아진다고 생각하지만, 연구가 보여주는 그림은 좀 다릅니다. 우울한 사람들은 슬픈 자극에 대한 슬픔 반응도, 기쁜 자극에 대한 기쁨 반응도 함께 옅어지는 경향이 관찰됩니다. 이걸 감정 반응의 둔감이라고 부릅니다5. 흥미롭게도 같은 연구에서 실험실에서 실제로 우는 비율은 대조군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울하면 눈물이 마른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자기가 느끼는 감정의 진폭이 줄어든 상태로 이해하는 게 정확합니다. 아무 느낌이 없다는 호소가 여기서 나옵니다.

② 약에 의한 감정 둔화. 항우울제를 드시는 분들에게서 드물지 않게 나옵니다. 우울증으로 치료 중인 669명을 조사한 연구에서 감정이 둔해진 느낌을 보고한 비율이 46%였습니다6. 여기서 꼭 구분해야 할 게 있습니다. 이 둔화가 병 때문인지 약 때문인지입니다. 우울 자체도 감정을 옅게 만들기 때문에 둘이 겹쳐 보이거든요. 그래서 시점을 따져봅니다. 약을 시작하거나 용량을 올린 뒤에 생겼는지, 우울 증상은 좋아지는데 감정만 평평한지. 후자라면 조정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③ 오래 배운 억제. 울면 안 되는 환경에서 오래 지낸 사람은 울음이 올라오는 순간 몸이 먼저 그걸 눌러버립니다. 특히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분들, 어린 시절 울었을 때 혼나거나 무시당한 경험이 반복된 분들에게 흔합니다. 이건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과 표현 사이의 회로가 차단된 상태입니다.

④ 감정을 알아채기 어려운 성향. 몸은 반응하는데 그게 무슨 감정인지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경향이 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다, 목이 조인다, 소화가 안 된다고는 말할 수 있는데 슬프다는 말이 안 나옵니다. 이런 경우 눈물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감정에 도달하기 전에 신호가 몸에서 멈추기 때문입니다.

⑤ 눈물샘 쪽 신체 원인. 마지막은 심리 문제가 아닌 경우입니다. 안구건조증이 심하거나, 눈물 생성을 줄이는 약(일부 항히스타민제·항콜린 작용이 있는 약 등)을 쓰고 있으면 감정과 무관하게 눈물이 덜 납니다. 눈이 늘 뻑뻑하거나 이물감이 있다면 이쪽도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기까지 오면 실전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울음을 목표로 삼지 마세요. 오늘 울어야 한다는 과제를 만들면 몸은 더 굳습니다. 앞서 본 대로 울음 자체가 회복을 만드는 게 아니라, 울음이 놓인 상황이 만듭니다.

안전한 한 사람을 고르세요. 여러 사람 앞에서보다 가까운 한 사람 앞에서 울었을 때 기분 개선이 가장 잘 나타났습니다. 위로할 줄 아는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90분을 기억하세요. 울고 난 직후에 기분을 채점하지 마세요. 그때는 원래 최악입니다. 판단은 한두 시간 뒤로 미뤄두시면 됩니다.

되새김과 울음을 구분하세요. 그 장면을 머릿속으로 스무 번 돌리는 것은 우는 게 아니라 화와 슬픔을 다시 지피는 쪽입니다. 이건 분노를 다룬 연구들에서도 같은 방향으로 나옵니다.

눈물이 안 나는 게 오래됐다면 그것 자체를 말하세요. 감정이 평평하다는 건 진료에서 아주 중요한 정보입니다. 우울의 깊이를 재는 단서이기도 하고, 약을 조정할 근거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오히려 반갑습니다. 손댈 수 있는 지점이 하나 늘어난 거니까요.

남는 이야기

울음에 관해 제가 오래 품고 있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울음을 배수구처럼 여긴다는 것입니다. 안에 고인 걸 빼내는 구멍이요. 그러니 눈물이 안 나오면 배수구가 막힌 것 같고, 그래서 더 답답해집니다.

그런데 연구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다릅니다. 울음은 배수구가 아니라 문 두드리는 소리에 가깝습니다. 안에 사람이 있다고 알리는 소리요. 그 소리를 누가 듣고 문을 열어주면 편해지고, 아무도 없거나 문이 잠겨 있으면 오히려 더 지칩니다.

그렇게 보면 눈물이 안 나오는 상태도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고장 난 게 아니라, 오랫동안 두드려도 열리지 않아서 두드리기를 멈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대개 냉정한 사람이 아니라 지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눈물이 안 난다는 말을 들으면 이렇게 되묻습니다. 마지막으로 울었던 게 언제였는지, 그때 곁에 누가 있었는지. 그 두 질문에서 대화가 꽤 멀리까지 갑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감정이 평평한 상태가 2주 이상 이어지거나 일상이 힘들다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의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24시간)로 연락해 주세요.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울음 직후·20분·90분 뒤 기분 변화, Gračanin 등, Motiv Emot 2015: PubMed
  • 35개국 5천여 명의 울음 경험(사회적 지지가 갈랐다), Bylsma 등, J Soc Clin Psychol 2008: 원문
  • 울음 일기 1,004건(직후 변화 없음 60.8%), Bylsma 등, J Res Pers 2011: 원문
  • 울음의 자기위안 효과와 '눈물로 호르몬 배출' 가설 검토, Gračanin 등, Front Psychol 2014: PubMed
  • 우울에서의 감정 반응 둔감, Rottenberg 등, J Abnorm Psychol 2005: PubMed
  • 항우울제 치료 중 감정 둔화 조사(46%), Goodwin 등, J Affect Disord 2017: 원문
  • 함께 보면 좋은 마음뉴스 글: 화는 풀어야 한다는 말 · 고기능 우울 · 항우울제를 줄이고 끊는 일

참고문헌

  1. Gračanin 등, Motiv Emot 2015
  2. Bylsma 등, J Soc Clin Psychol 2008
  3. Gračanin 등, Front Psychol 2014
  4. Bylsma 등, J Res Pers 2011
  5. Rottenberg 등, J Abnorm Psychol 2005
  6. Goodwin 등, J Affect Disord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