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앓는 가족을 돌봐본 분들은 압니다. 기억이 흐려지는 것만큼, 때로는 그보다 더 힘든 것이 초조라는 증상입니다. 이유 없이 안절부절못하고, 같은 자리를 서성이고, 소리를 지르고, 밀치거나 때리기도 합니다. 온화하던 분이 딴사람처럼 변하는 걸 지켜보는 일은, 돌보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깊이 무너뜨리는 대목입니다.

이 초조 증상에, 2023년 미국 FDA가 처음으로 정식 치료제를 승인했습니다. 브렉스피프라졸(상품명 렉설티, Rexulti) 입니다. 정신과 신약 중에서도 의미가 큰 승인인데, 동시에 냉정하게 봐야 할 대목도 많습니다. 오늘은 그 반가움과 숙제를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치매 환자의 약물치료는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신경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왜 '최초'가 중요한가

치매 환자의 초조는 드문 문제가 아닙니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약 45%가 초조 증상을 겪고, 이 증상은 요양시설 입소를 앞당기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집에서 더는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결정적 순간이 대개 여기서 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흔하고 고통스러운 증상에 정식으로 허가받은 치료제가 그동안 하나도 없었습니다. 의사들은 어쩔 수 없이 조현병이나 조울증에 쓰는 항정신병약을 허가 범위 밖(오프라벨) 으로 빌려 써왔습니다. 근거가 부족한 채, 위험을 감수하면서요.

그래서 브렉스피프라졸의 승인은 상징적입니다. 알츠하이머의 어떤 신경정신 증상이든, 정식 치료제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허가 없이 눈치 보며 쓰던 것"에서 "근거를 갖춘 정식 치료"로 넘어가는 첫걸음이라는 뜻이지요.

이 약은 사실 낯선 약이 아닙니다. 우울증 부가치료 등에 쓰이던 약이고, 국내에 익숙한 아빌리파이(아리피프라졸)와 사촌 격인 도파민 부분작용제입니다. 도파민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고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는 방식이라, 기존 항정신병약보다 부담이 덜한 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얼마나 잘 듣나 — 여기서 냉정해야 합니다

기대를 조금 내려놓고 숫자를 봐야 합니다. JAMA Neurology에 실린 3상 임상 결과, 브렉스피프라졸은 12주간 초조 증상을 위약보다 약 31% 더 줄였습니다. 통계적으로 분명한 효과였고, 그래서 승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31% 더'라는 건 초조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위약을 먹은 그룹도 상당히 좋아졌고,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입니다. 치매 초조의 표준 평가도구(CMAI)로 잰 이 차이는, 임상적으로 의미는 있지만 극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핵심 — 브렉스피프라졸의 뉴스는 "치매 초조를 없애는 약이 나왔다"가 아니라 "이 영역에 처음으로 근거를 갖춘 정식 치료제가 생겼다" 입니다. 효과의 크기보다 '최초'라는 자리에 방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망위험 경고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이 대목은 반드시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브렉스피프라졸에는 여전히 블랙박스 경고(미국 의약품 경고 중 가장 무거운 등급)가 붙어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치매 노인에게 항정신병약 계열을 쓰면 사망 위험이 다소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심혈관 문제와 감염으로 인한 사망이 위약군보다 많았다는 오래된 관찰에서 나온 경고로, 이 약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계열 전체에 붙는 경고입니다. 최초 승인을 받았다고 해서 이 위험이 사라진 게 아니라는 뜻이지요.

다만 최근에는 조금 다른 각도의 데이터도 나왔습니다. 2025년 Neurology에 실린 실사용 연구에서는, 브렉스피프라졸을 쓴 치매 환자의 6개월 사망 위험이 아리피프라졸을 쓴 경우와 차이가 없었습니다. 즉 이 약이 다른 항정신병약보다 특별히 더 위험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경고를 지우는 정도는 아니지만, 지나친 공포는 덜어주는 결과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봐야 하나 — 약은 마지막 카드

치매 초조 치료의 대원칙은 분명합니다. 약이 먼저가 아닙니다.

  • 비약물적 접근이 1차입니다. 초조에는 대개 이유가 있습니다. 통증, 배고픔, 화장실 문제, 낯선 환경, 소음, 외로움. 이 방아쇠를 먼저 찾아 없애는 것이 순서입니다. 조명·소음 조절, 익숙한 물건, 규칙적인 일과, 부드러운 대화만으로 상당 부분이 완화됩니다.
  • 약은 이런 노력에도 초조가 심해 본인이나 주변이 위험할 때 신중하게 더합니다. 브렉스피프라졸의 승인은 이 '약이 필요한 순간'에 근거 있는 선택지를 하나 준 것이지, 초조에 무조건 약을 쓰라는 신호가 아닙니다.
  • 쓰더라도 최소 용량, 최단 기간이 원칙입니다. 반응과 부작용을 보며 조심스럽게 조절하고, 필요 없어지면 줄입니다.

이건 요양병원의 노인 항정신병약 사용 지침이 강조하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어떤가요

아쉬운 소식이 있습니다. 브렉스피프라졸(렉설티)은 아직 국내에 이 적응증으로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약은 오츠카제약의 국내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지만, 국내 판매용이 아니라 수출용으로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즉 '메이드 인 코리아'인데 정작 국내 환자는 쓰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치매 초조에 약이 필요한 경우, 지금도 여전히 다른 항정신병약을 상황에 맞게 오프라벨로 쓰는 것이 현실입니다. 향후 국내 허가 여부는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무엇을 쓰든, 앞서 말한 비약물 우선 · 최소 용량 · 위험과 이득의 저울질이라는 원칙은 똑같이 적용됩니다.

💬 짚고 넘어갈 점

이 소식을 저는 반가움 반, 신중함 반으로 받았습니다.

반가운 건, 그동안 의사들이 '허가 밖'이라는 찜찜함을 안고 쓰던 영역에 처음으로 근거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치매 어르신이 초조로 괴로워하고 그걸 지켜보는 가족이 무너질 때, 우리가 내밀 수 있는 검증된 카드가 하나 생긴 겁니다. 그건 분명 진전입니다.

신중한 건, 이 약이 만능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효과는 절제돼 있고, 사망위험 경고는 남아 있어요. 저는 치매 초조로 오신 보호자분께 약 이야기부터 꺼내지 않습니다. 먼저 묻습니다. "혹시 어디 아프신 건 아닐까요? 최근에 환경이 바뀌었나요?" 초조의 절반은 말로 표현 못 하는 불편의 신호이고, 그걸 찾아 풀어주는 것이 약보다 먼저입니다.

약이 필요한 순간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때 이 약은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순간은 '첫 번째'가 아니라 '충분히 노력한 다음'이어야 합니다.


치매 초조에 첫 치료제가 나온 것은, 오래 비어 있던 자리에 이정표 하나가 세워진 일입니다. 그러나 이정표는 목적지가 아닙니다. 효과는 더 좋아져야 하고, 안전은 더 확인돼야 하며, 국내에서 쓰이기까지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합니다 — 치매 환자의 마음의 고통을, 이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치료할 수 있는 것'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인식의 전환이, 어쩌면 약 한 알보다 더 중요한 뉴스일지도 모릅니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알츠하이머 치매 초조에 대한 브렉스피프라졸 3상 임상 (JAMA Neurology, 2023): 자료
  • FDA, 알츠하이머 치매 초조 첫 치료제 승인 (미국 FDA, 2023): 보도
  • 치매 환자에서 브렉스피프라졸과 6개월 사망·입원 실사용 비교 (Neurology, 2025):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