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가끔, 내가 처방하지도 않은 약 이야기를 듣습니다. 살을 빼려고 다른 데서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는 분이 진료 말미에 지나가듯 덧붙이는 겁니다. "선생님, 이상하게 요즘 술 생각이 별로 안 나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체중이 빠지면서 생활이 정돈된 덕이겠거니 했습니다. 술을 줄이려고 벼르던 분이 마침 운동을 시작했고, 저녁 약속을 줄였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잔이 줄었겠거니. 흔히 있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비슷한 말을 하는 분이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아예 안 드는 건 아닌데, 그 생각이 예전만큼 시끄럽지 않아요." 이 문장이 오래 남았습니다. 갈망이 사라졌다는 게 아니라 음량이 줄었다는 묘사였으니까요. 중독을 오래 본 사람이라면 이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압니다.

'살 빼는 주사'로 유명해진 세마글루타이드(상품명 오젬픽·위고비)를 맞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몇 년 전부터 같은 이야기가 돌고 있었습니다. "식욕만 준 게 아니라, 술 생각도 줄었다", "담배도 예전만큼 안 땡긴다"는 것이었죠. 인터넷 게시판의 일화쯤으로 취급되던 이 관찰이, 2025년 무작위 임상시험으로 검증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원래 당뇨·비만 치료제인 약이 왜 '중독'의 갈망까지 건드릴까요. 그리고 한동안 뉴스를 뜨겁게 달궜던 "이 약이 자살 위험을 높인다"는 우려는 결국 어떻게 정리됐을까요. 오늘은 이 두 갈래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위장약인 줄 알았는데, 뇌에도 문이 있었다

세마글루타이드는 우리 몸의 GLP-1 이라는 호르몬을 흉내 내는 약입니다. GLP-1의 본업은 "이제 배부르다"는 신호를 보내 식욕을 줄이는 일이고, 체중이 빠지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이야기죠.

이야기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그다음입니다. 이 GLP-1을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위장뿐 아니라 뇌의 '보상회로'에도 있다는 사실. 보상회로(도파민 시스템)는 음식·술·담배·도박이 주는 쾌감과 갈망이 만들어지는 바로 그 무대입니다. GLP-1이 이 회로를 살짝 눌러 주면, 음식의 쾌감만이 아니라 술·담배가 주는 '한 잔 더'의 유혹까지 함께 무뎌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금 더 풀어 보겠습니다. 우리 뇌에는 배쪽피개영역(VTA)에서 시작해 측좌핵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습니다. 술 한 잔, 담배 한 개비, 슬롯머신의 회전. 이런 자극이 들어오면 이 길에서 도파민이 튑니다. 그런데 도파민이 만드는 건 흔히 오해하듯 '쾌감' 그 자체라기보다, "저것을 향해 가라"는 추진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중독이 오래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예전만큼 즐겁지도 않은데 손은 계속 그쪽으로 갑니다. 즐거움은 닳고 추진력만 남는 겁니다.

GLP-1 계열 약이 건드리는 지점이 바로 이 추진력 쪽으로 보입니다. 전임상·초기 임상 연구들은 GLP-1 수용체 자극이 중뇌변연계 도파민 신호를 눌러 보상 추구 행동 자체를 낮춘다고 정리합니다1. 그러니까 "술이 맛없어졌다"가 아니라 "술 쪽으로 향하던 관성이 약해졌다" 는 표현이 실제 기전에 더 가깝습니다.

'갈망이 줄었다'는 게 무슨 뜻이냐면 — 연구에서 말하는 갈망(craving)은 "마시고 싶다는 충동이 지난 한 주간 얼마나 자주, 얼마나 강했는가"를 척도로 물어 숫자로 만든 것입니다. 술이 싫어지는 게 아닙니다. 마시고 싶은 마음이 떠오르는 빈도와 세기가 줄어드는 것, 그래서 "안 마셔야지"라는 결심에 쓰이는 의지력의 소모가 조금 덜한 상태. 제 환자분의 "덜 시끄럽다"는 말이 사실 교과서적 정의보다 정확했습니다.

GLP-1이 뇌 보상회로를 눌러 식욕뿐 아니라 술·담배 갈망까지 함께 낮춘다는 개념도. 그림: 마음뉴스 제작
GLP-1이 뇌 보상회로를 눌러 식욕뿐 아니라 술·담배 갈망까지 함께 낮춘다는 개념도. 그림: 마음뉴스 제작

핵심 — 이것은 도박중독에서 이야기한 바로 그 보상회로 위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여러 중독이 한 무대(도파민 보상회로)를 공유하기에, 그 무대를 누르는 약 하나가 여러 갈망을 함께 낮출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판을 바꾼 48명의 실험 (JAMA Psychiatry, 2025)

방아쇠를 당긴 건 2025년 2월, 정신의학 최고 권위지 중 하나인 JAMA Psychiatry에 실린 무작위 임상시험이었습니다.

참가자는 알코올 사용장애가 있는 성인 48명.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이들이 치료를 적극적으로 원하던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무작위로 절반은 세마글루타이드(가장 낮은 임상 용량), 절반은 위약을 9주간 주 1회 맞았고, 누가 어느 쪽인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중맹검이었죠.

결과는 이렇게 갈렸습니다. 실험실에서 직접 측정한 음주량이 유의하게 줄었고(효과 크기는 중간에서 큰 정도), 주간 음주 갈망도, 폭음(heavy drinking)한 날의 수도, 술 마신 날의 잔 수도 모두 유의하게 감소했습니다. 흡연자의 하루 담배 개비 수도 줄었고요. 반면 전체 '음주한 날'의 수에는 뚜렷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 마지막 항목이 사실 이 연구의 성격을 가장 잘 말해 줍니다. '마시는 날 자체'를 없애지는 못했지만, 마셨을 때의 양과 갈망, 폭음을 뚜렷이 줄인 겁니다. 연구진은 그 효과의 크기가 "기존 알코올 치료제에서 보던 것보다 오히려 더 커 보였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습니다.

잠깐, '실험실 음주'가 뭔가요

이 연구의 핵심 결과는 실험실에서 측정한 음주량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참가자를 바(bar)처럼 꾸민 방에 앉히고, 본인이 평소 마시는 술을 정해진 양만큼 앞에 놓아준 뒤, 정해진 시간 동안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게 두고 실제로 얼마나 마셨는지 재는 방식입니다. 자기보고보다 훨씬 정직한 숫자가 나옵니다.

문제는 이게 실제 생활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실험실에는 회식 자리의 압력이 없고, 집에 혼자 있는 밤의 적막도 없고, 헤어진 사람의 문자도 오지 않습니다. 즉 실험실 측정은 약이 뇌의 갈망 회로에 작용하는지를 깨끗하게 보여주는 데는 강하지만, 그 사람이 6개월 뒤 실제로 술을 줄이고 살지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게 적습니다. 진료실에서 재발을 부르는 건 대개 뇌의 회로가 아니라 삶의 사건이니까요.

그래서 이 연구가 나온 뒤에도 저는 판단을 유보했습니다. 더 크고, 더 길고, 실생활 음주를 본 시험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2026년에 나왔습니다.

더 크고 긴 시험이 나왔다 (Lancet, 2026)

2026년 5월, Lancet에 코펜하겐 정신건강센터와 미국 NIH가 함께 수행한 무작위 이중맹검 시험이 실렸습니다2. 앞선 연구보다 규모도 기간도, 용량도 한 단계 위였습니다.

항목JAMA Psychiatry (2025)Lancet (2026)
참가자알코올 사용장애 성인 48명알코올 사용장애 + 비만(BMI 30 이상) 성인 108명
기간9주26주
용량낮은 시작 용량세마글루타이드 2.4mg 주 1회(위고비 용량)
병행 치료없음양쪽 모두 인지행동치료 최대 10회
주요 지표실험실 음주량실생활 폭음일(heavy drinking day) 비율

결과는 이렇습니다. 폭음일 비율이 세마글루타이드군에서 41.1%p 줄었고 위약군에서 26.4%p 줄어, 양쪽 차이가 13.7%p(95% CI −22 ~ −5.4, p=0.0015)였습니다. 총 음주량은 30일당 467.5g만큼 더 줄었고, 마신 날의 잔 수도 1.5잔만큼 더 줄었습니다. 갈망 점수, WHO 음주 위험 수준도 세마글루타이드 쪽이 나았습니다.

제가 이 논문에서 가장 눈여겨본 건 다른 대목입니다. 혈액 지표가 같이 움직였다는 것. 음주량을 반영하는 포스파티딜에탄올(PEth), 감마-GTP, 평균적혈구용적(MCV)이 모두 세마글루타이드군에서 더 크게 떨어졌습니다. 자기보고는 좋게 말하기 쉽지만 혈액은 거짓말을 잘 못 합니다. 체중은 9%p, 허리둘레는 8.3cm 더 줄었고 HbA1c도 0.3%p 더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위 표를 다시 보시죠. 위약군도 26.4%p 줄었습니다. 양쪽 모두 인지행동치료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숫자가 저에게는 오히려 위안이었습니다. 약 없이도 치료와 관심만으로 그만큼 움직인다는 뜻이니까요. 세마글루타이드가 더한 몫은 그 위에 얹힌 13.7%p입니다. 작지 않지만, '술을 끊게 해주는 주사'라는 표현과는 거리가 멉니다.

한계도 분명합니다. 단일 기관 연구였고, 참가자는 모두 비만을 동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비만이 없는 알코올 사용장애 환자에게도 같은 결과가 나올지는 아직 모릅니다. 연구진 스스로 "더 길고, 더 다양한 참가자를 포함한 시험"이 필요하다고 못 박았고, 논문에 딸린 논평은 적정 용량, 그리고 약을 끊으면 효과가 유지되는지가 전혀 답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3. 부작용은 대체로 일시적인 위장장애였지만, 세마글루타이드군에서 더 흔했습니다.

담배는 어땠나, 절반의 결과

술 이야기만큼 자주 도는 소문이 담배였습니다. 이것도 2026년 5월 JAMA Network Open에 무작위 시험 결과가 나왔습니다4. 앞선 알코올 연구와 같은 연구팀입니다.

매일 담배를 피우는 성인 24명(세마글루타이드 12명·위약 12명)을 9주간 관찰했습니다. 결과를 정직하게 옮기면 이렇습니다.

  • 니코틴 갈망은 유의하게 줄었습니다(p=0.01).
  • 하루 흡연 개비 수에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양쪽 다 줄긴 했지만요.
  • 실험실 흡연 지표의 주요 분석은 유의하지 않았고, 변화량 분석에서만 차이가 보였습니다(p=0.02).
  • 체중은 세마글루타이드군이 약 5% 빠졌고, 위약군은 오히려 1.58% 늘었습니다.

24명입니다. 이 숫자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갈망은 줄었는데 실제 흡연량은 안 줄었다"는 패턴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갈망이 줄어드는 것과 행동이 바뀌는 것 사이에는 여전히 습관이라는 두꺼운 층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금연을 도우려는 목적이라면 지금으로선 부프로피온(웰부트린) 같은 허가된 선택지가 먼저입니다.

대규모 데이터는 뭐라고 하나

무작위 시험은 작고, 대신 수십만 명의 진료 기록을 훑은 관찰연구들이 여럿 나와 있습니다. 방향은 대체로 같지만, 숫자의 크기가 제각각입니다.

  • All of Us 코호트(2026): GLP-1 처방을 2회 이상 받은 15,447명을 분석했더니, 현재 복용 중인 사람의 AUDIT-C 음주 점수가 앞으로 처방받을 사람들보다 약간 낮았습니다(IRR 0.95). 차이는 주로 마시는 빈도에서 나왔고, 한 번에 마시는 양이나 폭음에서는 뚜렷하지 않았습니다5.
  • 카이저 퍼머넌티 실사용 연구(2025): 2,277명을 성향점수로 짝지어 비교했는데, 전체 집단에서 주당 음주량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습니다(−0.43잔/주, p=0.053). 저위험 음주자에서만 작은 차이가 보였습니다6.
  • 메타분석(2026): 관찰연구 5건을 모으니 GLP-1 사용자의 알코올 사용장애 진단 위험이 28% 낮았습니다(HR 0.72). 다만 알코올 관련 입원은 유의하지 않았고(HR 0.76, p=0.059), 저자들은 포함된 연구에 무작위 시험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한계로 명시했습니다1.
  • 중독 전반을 본 케이스-컨트롤(2026): 당뇨·비만 환자 14만여 명에서 GLP-1 사용자의 알코올·아편류·니코틴·코카인 사용장애 발생 오즈가 모두 크게 낮았습니다(OR 0.25~0.32). 다만 이 정도 크기는 관찰연구 특유의 과대추정을 의심해야 하는 범위입니다7.

이 목록을 나란히 놓으면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관찰연구는 크게 좋다고 하고, 무작위 시험은 조심스럽게 좋다고 합니다. 이 간극을 정면으로 다룬 논평이 2025년 Addiction Science & Clinical Practice에 실렸습니다. Bernstein과 Schacht는 무작위 시험 3건을 모은 메타분석에서 알코올 관련 결과가 유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관찰연구의 큰 효과는 측정되지 않은 교란, 이를테면 애초에 건강 관리에 적극적인 사람이 GLP-1을 처방받는다는 사실로 부풀려졌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결론 문장은 단호합니다. 현재로선 GLP-1이 알코올 사용장애에 효과적이라고 확정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8.

지금 진행 중인 시험들

그래서 답은 앞으로 나올 시험에 달려 있습니다. 규모가 다른 것들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 CRAVE 시험(NCT07218354): 미국 보훈부가 주관하는 3상 시험으로, 알코올 사용장애가 있는 재향군인 438명 무작위 배정(총 622명 등록 예정)을 목표로 합니다. 2026년 7월 시작, 1차 완료 예정은 2028년 4월입니다9.
  • 금연 후 체중증가 시험(NCT06173778): 금연을 원하는 과체중·비만 흡연자 177명에게 세마글루타이드 2.4mg 또는 위약을 28주간, 양쪽 모두 니코틴 패치와 상담을 병행합니다. 1차 지표가 금연율이 아니라 체중 변화라는 점을 눈여겨보시길10.

3상 결과가 2028년에나 나온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직 흥분하기엔 이릅니다

기대되는 결과지만, 냉정하게 봐야 할 점이 분명합니다.

첫 시험은 48명에 9주. 작고 짧은 초기 단계(2상) 연구였고, 용량도 낮았습니다. 참가자들이 '치료를 원하던'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조건도 그냥 넘길 수 없습니다. 실제 진료실에서 만나는, 끊어보려 애쓰다 지친 환자들과는 출발선이 다르니까요. 2026년 Lancet 시험은 확실히 한 단계 올라섰지만 108명, 단일 기관, 비만 동반자만이었습니다. 3상은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마글루타이드는 알코올 사용장애 치료제로 허가된 약이 아닙니다. 지금 이 결과들로 처방하는 건 명백히 시기상조이고, 더 큰 규모의 임상시험들이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비만이 없는 사람에게 이 약을 쓰면 체중이 원치 않게 빠지고, 위장장애·담낭 문제 같은 부작용은 그대로 받게 됩니다. 얻는 것과 치르는 것의 계산이 아직 안 끝났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알코올 갈망을 줄이는 기존 약들은 이미 있습니다. 날트렉손(레비아)아캄프로세이트가 대표적이죠. 이들은 수십 년의 데이터와 허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마글루타이드가 정말 이들을 능가하는지는, 애초에 직접 맞붙여 비교한 시험이 없습니다. 더 크고 엄격한 시험의 결과를 기다려야 합니다. 술과 약을 함께 쓸 때 조심할 것들은 술과 약, 같이 먹어도 될까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진료실에서는, 기대만큼이 아닌 경우도 봅니다

솔직한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겠습니다. 앞서 "술 생각이 덜 시끄럽다"고 했던 분과 비슷한 시기에, 정반대의 말을 한 분도 있었습니다. 위고비를 시작하고 반년, 체중은 꽤 빠졌는데 술은 그대로라고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술도 준다길래 은근히 기대했는데요." 그러고는 조금 웃으며 덧붙였습니다. "선생님, 저는 술이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니라 자려고 마시는 거잖아요."

이 말이 정확했습니다. 그분의 음주는 보상회로의 문제라기보다 불면과 불안을 덮으려는 자가치료에 가까웠고, 그렇다면 갈망 회로를 눌러도 이유가 남아 있는 겁니다. 술이 왜 필요한지가 사람마다 다르니, 같은 약이 어떤 사람에게는 크게 듣고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평균 13.7%p라는 숫자 뒤에는 이런 분산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분들께 GLP-1을 처방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럴 근거가 없습니다. 다만 이미 다른 이유로 맞고 계신 분들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할 뿐입니다.

'자살 위험' 논란은 어떻게 끝났나

이 약들에는 한동안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습니다. 2023년, 유럽 규제당국(EMA)이 "GLP-1 주사를 맞은 사람에게서 자살 사고·자해 보고가 있다"며 조사에 착수한 것입니다. 다이어트약이 오히려 마음을 위험하게 만드는 건 아니냐는 걱정이 빠르게 퍼졌습니다. 저도 그 무렵 문의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그러나 2026년 1월, 미국 FDA가 대규모 검토 결과를 내놓으며 사실상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 위약과 비교한 임상시험 91건, 총 107,910명(GLP-1 약 6만 명 · 위약 약 4.7만 명)을 분석한 결과, 자살 사고·행동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근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 여기에 실제 진료 데이터로 약 224만 명을 추적한 대규모 코호트 분석에서도 자해 위험 증가는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 FDA는 이 결과를 근거로, 위고비·젭바운드·삭센다 등의 설명서에서 '자살 사고·행동' 경고 문구를 빼도록 요청했습니다.

핵심 — 관찰연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엇갈리는 결과가 있지만, 가장 엄격한 임상시험 데이터는 "자살 위험을 높인다는 증거가 없다"는 쪽으로 모였습니다. 다만 우울증·자살 관련 병력이 있는 분이라면, 어떤 약이든 시작할 때 주치의의 모니터링 아래 쓰는 것이 안전합니다.

대사약이 정신과의 문을 두드리는 중

세마글루타이드 이야기를 단순한 '다이어트약 부작용' 뉴스로 읽으면 놓치는 게 있습니다. 이건 몸의 대사를 다루던 약이, 뇌의 보상·갈망 시스템으로 넘어오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알코올·니코틴을 넘어 아편류·자극제 사용장애까지 GLP-1의 역할을 들여다보는 연구가 빠르게 늘고 있고, 도파민 보상회로를 공유한다는 이유로 도박중독이나 폭식 쪽에도 같은 질문이 던져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쪽은 아직 가설의 단계이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시험은 사실상 없습니다.

그렇다고 '기적의 약'은 아닙니다. 이제 막 열린 가능성일 뿐입니다. 한국에서도 위고비가 출시되면서 관심이 뜨겁지만, 살을 빼려고 맞는 주사를 '술·담배 끊는 약'으로 여겨 임의로 쓰는 것은 아직 근거가 부족하고 위험합니다. 지금은 "흥미로운 최신 흐름"으로 지켜보되, 실제 사용은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해야 할 단계입니다.

2028년쯤 3상 결과가 나올 겁니다. 그때 이 약이 중독 치료의 목록에 이름을 올릴지, 아니면 흥미로웠던 가설로 남을지, 솔직히 저도 모릅니다. 다만 진료실에서 "요즘 술 생각이 안 나요"라는 말을 다시 듣게 되면, 이제는 조금 다른 귀로 듣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이 약 때문인지, 체중이 빠지며 달라진 생활 때문인지, 아니면 그 사람이 올여름 어떤 결심을 했기 때문인지, 먼저 물어보게 되겠죠.

참고문헌

  1. Nasrollahizadeh 등, Diabetology & Metabolic Syndrome, 2026
  2. Klausen 등, Lancet, 2026
  3. Healio 보도
  4. Hendershot 등, 2026
  5. Tyndall 등
  6. Palzes 등, Biol Psychiatry Glob Open Sci
  7. Abegaz 등, Frontiers in Psychiatry
  8. Bernstein & Schacht, 2025
  9. ClinicalTrials.gov
  10. 연구 프로토콜, PubMed
  11. 무작위 임상시험 — 세마글루타이드의 알코올 사용장애 무작위 임상시험 (Hendershot 등, JAMA Psychiatry, 2025): PubMed · JAMA
  12. 진행 중인 시험 — 금연 후 체중증가에 대한 세마글루타이드 시험 프로토콜 (NCT06173778): PubMed · ClinicalTrials.gov
  13. 안전성 — GLP-1 약과 자살 위험, FDA 검토 결과 및 경고문 삭제 요청 (2026.1): FDA 안전성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