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문제로 처음 진료실에 들어오는 사람은, 대개 당사자가 아닙니다. 어머니거나 아내거나, 형입니다. 당사자는 복도에 서 있거나 아예 오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고요. 그리고 보호자가 앉자마자 꺼내는 문장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독하게 마음만 먹으면 될 텐데, 왜 그걸 못 끊느냐".

그 말을 저는 반박하지 않습니다. 반박하기 전에 하나를 먼저 물어봅니다. "그분도 똑같은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계실 텐데요?" 대부분 잠깐 말이 끊깁니다. 실제로 그렇거든요. 당사자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수백 번 결심하고 수백 번 무너진 사람입니다. 의지가 없어서 안 했던 게 아니라, 의지를 다 써 봤는데도 안 됐던 겁니다.

바로 거기가 이 병의 출발점입니다. 도박중독은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성격 문제'가 아니라, 뇌의 보상회로가 실제로 바뀌는 '병' 입니다. 결심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이유고요. 이 글은 그 치료가 실제로 어떤 모양인지, 근거를 붙여 정리한 것입니다.

숫자로도 결코 변두리 문제가 아닙니다. 2024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조사에서 도박 문제가 있거나 그 문턱에 있는 성인은 5.1%, 사람 수로 약 223만 명이었습니다1.

그런데 저를 더 서늘하게 하는 건 아이들 쪽 숫자입니다.

무엇을 셌나2023년2024년
청소년 도박 문제 상담2,093명4,036명
불법 온라인 도박 감시 적발26,957건(2022년)50,439건

한 해 만에 청소년 상담이 두 배가 됐습니다. 처음 도박을 접하는 나이도 2018년 12.6세에서 2022년 11.3세로 내려왔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는 뜻입니다. 청소년 도박 문제로 우리 사회가 치르는 비용은 2024년 한 해 2조 1,739억 원으로 추산됐고, 불법 도박판 자체의 규모는 103조 원(2022년 기준)으로 잡힙니다.

2024년에는 청소년 도박을 전국 605개 학교, 학생 1만 3,368명에게 직접 물은 국가 통계도 처음 나왔습니다. 4.3%가 도박을 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그중 19.1%는 최근 6개월 동안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계속하고 있다고 답한 아이들 가운데 48.4%는 남의 이름으로, 24.4%는 누군가에게 대신 걸어 달라고 해서 도박을 했습니다2.

미성년자는 도박을 할 수 없게 돼 있는데, 아이들은 이미 그 벽을 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스마트폰이 곧 카지노인 시대에 당연한 흐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한 번만 더'가 멈춰지지 않을까

도박중독의 정식 이름은 도박장애입니다. 2013년 미국정신의학회 진단 기준이 개정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행위중독'으로 공식 분류됐죠. 술도 마약도 몸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행동 그 자체가 뇌에서 중독을 일으킨다는 걸 의학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건이었습니다.

열쇠는 보상회로, 그러니까 도파민 시스템입니다. 도박이 주는 보상은 '딸까 말까'입니다. 확실히 주는 게 아니라 줄 듯 말 듯 하죠. 그런데 뇌는 하필 이 예측 불가능한 보상에 가장 강하게 반응합니다. 확실한 보상보다 불확실한 보상에 더 크게 반응한다는 건, 슬롯머신이 왜 그런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이게 반복되면 몸에 남는 흔적이 있습니다. 먼저 내성. 같은 흥분을 느끼려면 판돈이 점점 커집니다. 만 원에 뛰던 심장이 십만 원에는 잠잠해집니다. 그다음 금단 비슷한 상태. 못 하면 안절부절, 짜증, 불면이 옵니다. 셋째가 가장 지독한 '본전 쫓기'입니다. 잃은 돈을 되찾으려 더 크게 걸고, 그래서 더 깊이 빠지는 나선. 히어로 그림의 그 하강선이 그겁니다.

그리고 인지 왜곡. "이번엔 느낌이 좋아", "거의 딸 뻔했으니 다음엔 된다", "내 실력으로 통제할 수 있다". 진료실에서 거의 토씨까지 똑같이 듣는 문장들입니다. 이건 변명이 아니라 증상입니다.

핵심 — 도박중독은 '돈 문제'이기 전에 '뇌 문제' 입니다.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만으로 낫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뇌가 학습해 버린 회로 자체를 다루지 않으면, 갚아준 자리에 새 빚이 들어섭니다.

치료의 첫걸음은, 혼자 끊기를 그만두는 것

제일 어려운 단계가 뭐냐고 물으면 저는 늘 첫 단계라고 답합니다. 혼자 끊으려는 걸 멈추는 일이요. 의지로 안 된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사람들은 그게 항복이라고 느낍니다. 실은 그 반대인데도요. 도움을 청한 시점부터 회복 확률은 확실히 올라갑니다.

국내에는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의 국번 없이 1336 상담 전화가 있습니다. 당사자든 가족이든, 이름을 밝히지 않고 걸 수 있습니다. 가족이 먼저 거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도 충분히 유효한 시작입니다.

본격적인 치료는 심리치료, 자조모임, 약물, 이렇게 세 축이고, 실제 임상에서는 이걸 따로 쓰지 않고 대개 함께 씁니다.

① 인지행동치료, 가장 먼저 권하는 치료

표준 심리치료는 인지행동치료입니다. 생각의 습관과 행동을 함께 바꾸는 치료인데, 하는 일을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왜곡된 생각을 교정합니다. 앞서 나온 "거의 딸 뻔했다", "본전은 찾아야 한다", "흐름을 내가 읽을 수 있다" 같은 도박 특유의 착각을 하나씩 꺼내 놓고 다룹니다. 둘째, 갈망을 넘기는 기술을 익힙니다. 방아쇠가 뭔지(월급날인지 술자리인지 특정 앱 알림인지)를 특정하고, 갈망이 밀려온 15분을 어떻게 통과할지 구체적으로 연습합니다. 셋째, 재발 방지 계획. 여기엔 돈과 시간과 접속 경로를 미리 잘라 두는 환경 설계까지 들어갑니다.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요. 무작위로 나눠 비교한 임상시험 29편(3천여 명)을 모아 계산했더니, 심리치료를 받은 쪽은 도박 문제의 심각도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치료 없이 기다린 쪽과 견줘 분명한 차이였습니다.

도박중독 치료법별 효과 비교 — 심리치료와 아편길항제(넬메펜·날트렉손)가 아무 치료도 받지 않은 쪽에 견줘 도박 심각도를 얼마나 줄였는지 나타낸 막대그래프. 넬메펜이 가장 크고, 심리치료가 그다음, 날트렉손이 가장 작다. 심리치료는 Eriksen 2023, 약물은 2024년 네트워크 메타분석 기준. 그래프: 마음뉴스 제작
도박중독 치료법별 효과 비교 — 심리치료와 아편길항제(넬메펜·날트렉손)가 아무 치료도 받지 않은 쪽에 견줘 도박 심각도를 얼마나 줄였는지 나타낸 막대그래프. 넬메펜이 가장 크고, 심리치료가 그다음, 날트렉손이 가장 작다. 심리치료는 Eriksen 2023, 약물은 2024년 네트워크 메타분석 기준. 그래프: 마음뉴스 제작

여기서 정직하게 덧붙일 게 하나 있습니다. 다른 정밀 분석에서는 치료 직후에는 효과가 뚜렷했지만, 몇 달 뒤 다시 확인했을 때는 그 차이가 남아 있다고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이런 연구들에는 결과가 잘 나온 쪽이 논문으로 더 많이 실리는 쏠림도 있었습니다. 요약하면 인지행동치료는 출발에 강한 치료지, 저절로 오래가는 치료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가 중요해집니다.

② 자조모임과 가족, 효과를 붙들어 두는 쪽

단도박모임(도박을 끊으려는 사람들의 익명 모임)은 같은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를 붙들어 주는 자조모임입니다.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고요. 진료실에서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저보다, 매주 같은 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더 큰 지분을 갖습니다. 치료 효과를 생활 쪽으로 끌고 나가는 건 결국 그쪽입니다.

가족의 역할도 치료의 일부입니다. 특히 회복 초기에는 두 가지가 실질적입니다.

  • 돈 관리를 분리합니다: 급여·계좌·카드를 당사자가 직접 쥐지 않도록 함께 조정합니다.
  • 접근을 차단합니다: 카지노·경마 등은 자기배제 제도(스스로 출입 금지를 신청하는 제도)로 스스로 출입을 막을 수 있고, 불법 온라인 도박은 앱·사이트 차단과 결제 수단 정리가 필요합니다.

이걸 두고 "그럼 저를 못 믿으시는 거네요"라고 서운해하는 분이 종종 있습니다. 못 믿는 게 아니라, 뇌가 회복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저는 설명합니다. 발목을 다치면 깁스를 하잖아요. 다리를 못 믿어서 하는 게 아니듯이요.

③ 약물치료: '승인된 약'은 없지만, 도움이 되는 약은 있습니다

먼저 선을 그어둡시다. 도박장애에 대해 공식 승인된 치료제는 아직 없습니다. 그래도 갈망을 줄이는 데 근거가 가장 탄탄한 계열은 아편길항제입니다. 위 그래프의 두 막대가 그 약들입니다.

  • 넬메펜: 가짜약과 견줘 차이가 가장 컸습니다.
  • 날트렉손: 차이는 있었지만 넬메펜의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원리는 단순합니다. 도박이 켜는 쾌감 스위치를 무디게 만들어 갈망을 낮추는 것. 갈망과 충동이 유독 세거나 알코올 문제가 얹혀 있는 경우에 특히 고려하게 됩니다. 국내에서 쓸 수 있는 건 날트렉손(레비아)인데, 원래 알코올·아편 의존에 허가된 약이라 도박에는 허가받은 범위 밖에서 쓰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 약들, 순한 편이 아닙니다. 메스꺼움 같은 부작용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이 가짜약을 먹은 쪽보다 뚜렷이 많습니다. 득과 실은 담당의와 저울에 올려놓고 따져야 합니다.

반대로 많은 분이 기대하는 항우울제나 기분을 안정시키는 약은, 도박 자체를 줄이는 데서는 가짜약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쓸모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이 약들은 도박을 겨냥하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있는 우울과 불안을 다루는 자리에 놓여야 맞습니다.

핵심 — 약은 도박을 끊게 하는 마법이 아닙니다. 갈망을 낮춰서, 심리치료를 받아낼 힘을 만들어 주는 보조에 가깝습니다. 실제로도 약은 심리치료와 함께 굴릴 때 가장 잘 작동합니다.

도박만 보면 놓치는 것들

도박중독은 혼자 오는 법이 드뭅니다. 우울·불안·알코올 문제·ADHD가 함께 있는 경우가 많고, 빚과 무너진 관계 때문에 자살 위험도 높습니다. 사실 제가 진료에서 가장 긴장하는 대목이 이 부분입니다. 도박 액수보다, 그 사람이 최근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더 급한 정보인 날이 있습니다.

이건 인상이 아니라 세어 본 숫자이기도 합니다. 도박 문제와 자살을 함께 다룬 연구 107편, 469만 명분을 모아 계산한 결과입니다3.

  • 도박 문제가 있는 사람 열 명 중 세 명이 살면서 한 번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여덟 명 중 한 명은 실제로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 도박 문제가 없는 사람과 견주면, 그런 생각은 2.2배, 시도는 2.8배 흔했습니다.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만 따로 보면 이 비율은 더 올라갑니다. 다만 연구자들은 한 가지를 분명히 해 둡니다 — 같은 사람을 오래 따라간 연구가 부족해서, 도박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원래 힘들던 사람이 도박으로 간 것인지는 이 자료로 가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릴 수 없어도 할 일은 분명합니다. 도박 이야기를 하러 온 자리에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함께 묻는 것. 저는 이 숫자를 알고 나서 그 질문을 빠뜨리지 않게 됐습니다.

그래서 잘 된 치료는 도박만 떼어내서 보지 않습니다. 밑에 깔린 문제와 지금의 위기까지 같이 봅니다. (동반된 음주 문제는 알코올과 약 편도 참고하세요.)

그래서, 오늘 할 수 있는 일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인지행동치료가 먼저이되 시작에 강한 치료라 유지가 관건이고, 그 유지를 실제로 해내는 건 단도박모임과 가족의 환경 설계(돈 관리·자기배제)입니다. 약물은 승인약이 없지만 아편길항제가 갈망을 낮추는 보조로 자리할 수 있고, 동반된 우울·불안·자살 위험은 반드시 같이 봐야 합니다.

다만 제가 이 글에서 정말 남기고 싶은 문장은 따로 있습니다. 이 병은 혼자 끊으려 애쓸수록 더 깊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 결심은 이미 충분히 하셨습니다. 수백 번요. 한 번 더 하는 대신 오늘 1336을 누르거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 문을 열어 보는 쪽이 회복에는 훨씬 가깝습니다.

가족분들께는 이 말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당사자가 아직 안 움직여도, 먼저 오신 분이 상담을 받는 것만으로 집안의 공기가 달라지는 걸 저는 여러 번 봤습니다. 순서가 꼭 당사자부터일 필요는 없습니다.

참고문헌

  1.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2025년 1월 발표
  2.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2024년 청소년 도박 실태조사
  3. Kristensen 등, Psychological Bulletin 2024
  4. 도박장애 약물치료 연구를 모아 견준 분석 (Comprehensive Psychiatry, 2024): PubMed
  5. 도박장애 심리치료 임상시험 29편을 모은 분석 (Eriksen 등, J Behav Addict, 2023): PubMed
  6. 인지행동치료의 효과가 몇 달 뒤에도 남는지 따진 분석 (Pfund 등, Addiction, 2023): PubMed
  7.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도움 요청·상담 1336): 공식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