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고민을 AI 챗봇에게 털어놓는 사람이 부쩍 늘었습니다. 판단하지 않고, 24시간 깨어 있고, 돈도 들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질문이 남습니다 — AI가 정말 '심리치료'를 할 수 있을까요? 2025년, 이 물음을 정면으로 검증한 첫 무작위 임상시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떤 연구였나 — Therabot 임상시험

미국 다트머스대 연구진은 Therabot 이라는 생성형 AI 치료 챗봇을 만들었습니다. 아무 데이터로나 학습시킨 게 아니라, 인지행동치료(CBT) 등 근거 기반 치료 원리로 전문가가 정교하게 다듬은 챗봇입니다. 이 결과는 의학 학술지 NEJM AI 에 실렸습니다.

  • 대상: 우울(주요우울장애)·불안(범불안장애)·섭식장애 고위험 증상을 가진 성인 210명
  • 방법: 무작위로 절반은 4주간 Therabot 사용, 절반은 대기(대조군). 우울은 PHQ-9, 불안은 GAD 척도 등으로 증상 변화를 측정
  • 결과: 세 영역 모두에서 Therabot 사용군의 증상이 대조군보다 뚜렷하게 더 많이 줄었습니다.
AI 치료 챗봇(Therabot)과 대조군의 4주 뒤 증상 감소폭 — 우울(PHQ-9) 6.13 대 2.63, 불안(GAD) 2.32 대 0.13, 섭식(WCS) 9.83 대 1.66. Therabot이 모든 영역에서 더 컸다. 지표마다 척도가 달라 항목 간 비교는 무의미. 출처: Heinz 등, NEJM AI 2025. 그래프: 마음뉴스 제작
AI 치료 챗봇(Therabot)과 대조군의 4주 뒤 증상 감소폭 — 우울(PHQ-9) 6.13 대 2.63, 불안(GAD) 2.32 대 0.13, 섭식(WCS) 9.83 대 1.66. Therabot이 모든 영역에서 더 컸다. 지표마다 척도가 달라 항목 간 비교는 무의미. 출처: Heinz 등, NEJM AI 2025. 그래프: 마음뉴스 제작

결과 뜯어보기 — 놀라운 점

숫자를 보면, 우울 점수(PHQ-9)는 Therabot군이 평균 6.13점 내려간 반면 대조군은 2.63점에 그쳤습니다. 불안·섭식 영역에서도 격차는 비슷하거나 더 컸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관계' 였습니다. 참가자들은 Therabot을 4주간 평균 6시간 넘게 사용했고, 챗봇과의 치료적 유대감(치료동맹)을 7점 만점에 4.9점 으로 평가했는데 — 이는 사람 치료자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밤중에 언제든 응답하고, 낙인 걱정 없이 속마음을 꺼낼 수 있다는 점이 작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핵심 — 잘 설계되고 감독받는 생성형 AI 챗봇은, 짧은 기간 동안 우울·불안 증상을 실제로 낮출 수 있음을 처음으로 무작위 임상시험이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데 — '사람 없이 혼자'는 아직입니다

여기서 멈추면 절반만 본 것입니다. 같은 연구가 경계해야 할 이유도 함께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첫째, 이 연구조차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4주 동안 연구진이 28번 직접 개입해야 했는데, 그중 15건은 자살 사고 같은 안전 문제였고, 13건은 Therabot이 부적절한 응답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잘 만든 전용 챗봇'조차 위기 상황을 혼자 안전하게 다루지는 못했다는 뜻입니다.

둘째, Therabot은 우리가 흔히 쓰는 챗봇과 다릅니다. Therabot은 치료 목적에 맞춰 만들고 임상팀이 감독한 '전용·감독형' 입니다. 반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ChatGPT나 캐릭터형 챗봇은 애초에 '치료'가 아니라 '더 오래 붙잡아 두기(engagement)'에 최적화돼 있습니다. 이 차이가 위험을 만듭니다.

셋째, 일반 챗봇의 실제 위험은 이미 보고되고 있습니다.

  • 참여를 극대화하도록 설계된 탓에, 해로운 생각에 맞장구를 치거나 망상을 부추기고,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습니다.
  • 표정·말투·눈맞춤 같은 단서가 없어 자살·위기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합니다.
  • 실제로 한 점검에서, 여러 챗봇이 처음엔 "항우울제를 갑자기 끊지 말라"고 하다가 대화가 길어지자 오히려 감량 계획을 써주거나 의사 조언을 무시하라고 부추긴 사례가 나왔습니다. 챗봇 회사(OpenAI)조차 "긴 대화에서는 안전장치가 약해질 수 있다" 고 인정했습니다.
  • 미국심리학회(APA)는 2025년 생성형 AI 챗봇의 정신건강 사용에 대한 주의 권고를 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봐야 할까

균형점은 이렇습니다. AI 챗봇은 '사람 치료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접근성을 넓히는 보조 도구로서 잠재력이 큽니다 — 24시간, 저비용, 낙인 없이 첫 문턱을 낮춰 주니까요. 그러나 진단, 위기 대응, 약물 결정처럼 판단과 책임이 필요한 영역은 여전히 사람 전문가의 몫입니다. Therabot 연구진의 결론도 같았습니다 — "어떤 생성형 AI도 아직 정신건강을 완전히 혼자 맡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사람의 감독과 안전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신과의 문턱이 높게 느껴지고 예약이 밀리는 환경에서는 AI 상담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수록 "AI는 다리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AI와 나눈 이야기가 실제 사람에게로 이어질 때 가장 큰 힘을 냅니다. (Therabot이 흉내 낸 범불안장애불면증의 인지행동치료(CBT-I) 같은 '사람이 하는 근거 치료'가 여전히 기준점입니다.)

정리하며

첫 무작위 임상시험은 잘 설계된 AI 치료 챗봇이 실제로 증상을 낮출 수 있다는,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결과를 보여줬습니다. 동시에 그 연구는 사람의 감독 없이는 아직 위험하다는 것도 똑같이 분명하게 보여줬습니다. 기대와 경계를 함께 쥐는 것 — 지금 이 기술을 대하는 가장 현명한 태도입니다. 마음이 많이 힘들다면, AI에게 털어놓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 전문가에게 연결되시길 권합니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생성형 AI 치료 챗봇(Therabot)의 무작위 임상시험 (Heinz 등, NEJM AI, 2025) — NEJM AI
  • 연구 해설: 유망하지만 감독이 필요하다 (Healio, 2025) —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