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진료실에서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선생님한테 오기 전에, 새벽에 챗봇한테 먼저 다 말했어요." 처음 들었을 땐 조금 당황했는데, 이제는 놀랍지도 않습니다. 판단하지 않고, 새벽 세 시에도 깨어 있고, 진료비도 안 드니까요. 어떤 환자는 스크롤을 한참 올려 대화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거기엔 저한테는 두 달 만에 겨우 꺼낸 이야기가 첫날부터 적혀 있었습니다.
반대 방향도 봅니다. 어떤 분은 챗봇이 "그건 번아웃 같네요"라고 해준 말을 두 달째 붙들고 있다가, 정작 갑상선 수치도 안 재보고 왔습니다. 또 어떤 분은 새벽 네 시에 죽고 싶다고 쳤더니 돌아온 긴 위로문을 보여주며 물었습니다. "이 정도면 병원 안 가도 되는 거 아니에요?" 그 대화창을 같이 읽으면서 저는 두 가지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잘 썼다. 그리고 이 사람은 지금 응급이다.
그러니 이 질문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AI가 정말 '심리치료'를 할 수 있을까요? 2025년, 이 물음을 정면으로 검증한 첫 무작위 임상시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떤 연구였나, Therabot 임상시험
미국 다트머스대 연구진이 만든 챗봇의 이름은 Therabot 입니다. 인터넷에서 긁어모은 아무 데이터로 학습시킨 물건이 아닙니다. 인지행동치료(CBT) 등 근거 기반 치료 원리로 전문가가 정교하게 다듬은 챗봇이고, 결과는 의학 학술지 NEJM AI에 실렸습니다.
설계는 단순합니다. 우울(주요우울장애)·불안(범불안장애)·섭식장애 고위험 증상을 가진 성인 210명을 모아 무작위로 갈랐습니다. 절반은 4주간 Therabot을 사용했고, 나머지 절반은 대기(대조군). 우울은 PHQ-9, 불안은 GAD 척도 등으로 증상 변화를 쟀습니다. 그리고 세 영역 모두에서 Therabot 사용군의 증상이 대조군보다 뚜렷하게 더 많이 줄었습니다.
잠깐, '무작위배정'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여기서 한 문단만 설명을 넣겠습니다. 이 글에서 제일 지루하지만, 제일 쓸모 있는 부분이라서요.
정신건강 영역에서 "써봤더니 좋아졌다"는 거의 언제나 참입니다. 우울과 불안은 심할 때 병원에 오고, 그다음엔 가만 둬도 어느 정도 내려옵니다(평균으로의 회귀). 여기에 기대감, 누군가 내 상태를 매주 물어봐 준다는 사실, 설문에 답하면서 스스로를 관찰하게 되는 효과까지 겹칩니다. 그래서 대조군 없이 앱 하나 쓰고 점수가 6점 떨어졌다는 데이터는, 안타깝지만 앱에 대해 알려주는 게 거의 없습니다.
무작위배정은 이 잡음을 걷어내려는 장치입니다. 동전을 던져 사람을 가르면, 증상 심각도·동기·성격 같은 것들이 두 군에 고르게 흩어집니다. 그러면 나중에 벌어진 차이를 개입 탓으로 돌릴 수 있게 되죠. Therabot 연구가 '첫'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생성형 AI 챗봇을 후기와 다운로드 수가 아니라 임상시험의 문법으로 검증한 거의 최초의 사례라서.
다만 이 연구의 대조군은 대기군, 즉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건 "AI가 사람 치료자보다 나은가"에는 답하지 않습니다. 오직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은가"에 답합니다. 두 질문의 거리는 아주 멉니다. 실제로 FDA 자문위원회에서도 이런 기기의 시험에서 비교군을 무엇으로 둘 것인가가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습니다.
숫자보다 놀라웠던 건 따로 있었다
우울 점수(PHQ-9)는 Therabot군이 평균 6.13점 내려갔습니다. 대조군은 2.63점. 불안·섭식 영역의 격차도 비슷하거나 더 컸습니다.
그런데 저를 멈춰 세운 건 점수가 아니라 '관계' 쪽 결과였습니다. 참가자들은 4주간 Therabot을 평균 6시간 넘게 썼고, 이 챗봇과의 치료적 유대감(치료동맹)을 7점 만점에 4.9점 으로 매겼습니다. 사람 치료자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소프트웨어를 상대로 말이죠.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새벽 두 시에 응답하고, "이런 생각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겠죠"라는 걱정 없이 말을 꺼낼 수 있다는 것 — 임상에서 그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매일 봅니다.
핵심 — 잘 설계되고 감독받는 생성형 AI 챗봇은, 짧은 기간 동안 우울·불안 증상을 실제로 낮출 수 있음을 처음으로 무작위 임상시험이 보여준 것입니다.
Therabot 하나만 보면 과장하게 됩니다, 다른 근거들
연구 한 편으로 시대를 판정하면 대개 틀립니다. 그래서 챗봇 전반의 근거가 어디쯤 와 있는지도 같이 봐야 합니다.
2026년 npj Digital Medicine에 실린 체계적 문헌고찰·메타분석(Sohn 등, PMID 41882250)은 2017년부터 2025년 10월까지의 무작위 대조시험 39편을 모았습니다. 우울은 38편(참가자 7,401명), 불안은 34편(7,621명). 결과는 우울 g=0.31(95% CI 0.17–0.46), 불안 g=0.28(0.05–0.51) 이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밋밋하지만, 해석은 이렇습니다. 통계적으로 분명히 0보다 크다. 그런데 효과 크기는 작은 편이고, 불안 쪽 신뢰구간은 0에 상당히 가깝습니다. 하위분석에서는 일반인보다 실제로 증상이 있는 임상·준임상 집단에서 효과가 더 컸습니다. 힘든 사람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뜻이니, 이건 반가운 방향입니다.
아시아권만 따로 본 메타분석도 나왔습니다. BMJ Health & Care Informatics(Leung 등, 2026, PMID 41534952)는 아시아 지역 무작위 대조시험 8편·921명을 묶어, 챗봇이 우울 증상을 유의하게 낮췄다고(SMD 0.46) 보고했습니다. 다만 불안·스트레스에서는 유의한 효과가 없었고, 보고된 이상반응은 없었습니다. 우리 진료 환경과 문화가 조금 더 가까운 자료라 눈여겨볼 만한데, 8편·921명이면 결론을 세게 말하기엔 아직 작습니다.
| 근거 | 규모 | 우울 | 불안 |
|---|---|---|---|
| Therabot 무작위시험 (NEJM AI, 2025) | 210명, 4주 | PHQ-9 −6.13 대 −2.63 | 대조군보다 큼 |
| 챗봇 전체 메타분석 (npj Digit Med, 2026) | RCT 39편, 7,401명 | g=0.31 | g=0.28 |
| 아시아권 메타분석 (BMJ HCI, 2026) | RCT 8편, 921명 | SMD 0.46 | 유의하지 않음 |
정리하면 방향은 일관됩니다. 챗봇은 우울 증상에 작지만 실재하는 효과가 있고, 불안에서는 근거가 더 흔들립니다. 그리고 이 표의 어느 칸도 "혼자 써도 안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절반만 읽은 겁니다
같은 논문이 경계해야 할 이유도 나란히 적어 놓았거든요.
첫째, 이 연구조차 사람이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4주 동안 연구진이 28번 직접 개입해야 했습니다. 그중 15건은 자살 사고 같은 안전 문제, 13건은 Therabot이 부적절한 응답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이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료용으로 특별히 만든 챗봇조차, 위기 상황을 혼자 안전하게 다루지는 못했다는 뜻이니까요.
둘째, Therabot은 여러분이 어젯밤 쓴 그 챗봇이 아닙니다. Therabot은 치료 목적에 맞춰 만들고 임상팀이 감독한 '전용·감독형'입니다. 반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ChatGPT나 캐릭터형 챗봇은 애초에 '치료'가 아니라 '더 오래 붙잡아 두기(engagement)'에 최적화돼 있습니다. 목적이 다르면 결과도 다릅니다. 이 차이에서 위험이 생깁니다.
이 둘의 차이를 조금 더 풀어 쓰면 이렇습니다.
| 구분 | 치료용 전용 챗봇 | 범용 LLM·캐릭터 챗봇 |
|---|---|---|
| 대화의 목표 | 정해진 치료 원리(CBT 등)를 따라가기 | 사용자를 만족시키고 대화를 잇기 |
| 잘못 말했을 때 | 임상팀이 로그를 보고 개입 | 대개 아무도 안 봄 |
| 위기 신호 | 미리 짜둔 절차로 사람에게 넘김 | 모델의 그때그때 판단에 의존 |
| 검증 | 무작위 임상시험·규제 심사 대상 | '건강기기'로 팔지 않으므로 심사 밖 |
여기서 규제의 역설이 생깁니다. 임상시험을 14건이나 쌓고 FDA 혁신의료기기 지정까지 받았던 대표적 치료용 챗봇 Woebot은 2025년 6월 30일 소비자용 앱을 닫았습니다. 창업자는 FDA 허가 요건을 맞추는 비용, 그리고 쓰고 싶은 대형언어모델을 규제 틀이 아직 감당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가장 엄격하게 검증받던 쪽이 먼저 문을 닫고, 검증을 아예 받지 않는 쪽이 수억 명에게 남은 것입니다.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입니다.
셋째, 일반 챗봇의 위험은 가정이 아니라 이미 보고된 일입니다. 참여를 극대화하도록 설계된 탓에 해로운 생각에 맞장구를 치거나 망상을 부추기고, 잘못된 정보를 주기도 합니다. 표정·말투·눈맞춤 같은 단서가 없으니 자살·위기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합니다. 실제로 한 점검에서는, 여러 챗봇이 처음엔 "항우울제를 갑자기 끊지 말라"고 해 놓고 대화가 길어지자 오히려 감량 계획을 써주거나 의사 조언을 무시하라고 부추긴 사례가 나왔습니다. 챗봇 회사(OpenAI)조차 "긴 대화에서는 안전장치가 약해질 수 있다" 고 인정했고요. 미국심리학회(APA)도 2025년 생성형 AI 챗봇의 정신건강 사용에 대한 주의 권고를 냈습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안전장치가 무너진다는 말 — 하필 가장 힘든 사람이 가장 길게 대화한다는 걸 생각하면, 그냥 넘길 문장이 아닙니다.
넷째, 최악의 경우가 이미 법정에 가 있습니다. 2025년 8월, 미국의 한 부부가 16세 아들의 죽음을 두고 OpenAI와 CEO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Raine v. OpenAI). 소장에 따르면 아이는 2024년 11월부터 챗봇에게 자살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이후 챗봇이 방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가족에게 말하지 못하도록 만류하고, 유서 작성을 도왔다고 주장합니다. 회사 측은 시스템이 위기 자원과 도움을 권한 것이 100회가 넘는다며 책임을 부인하고 있고, 재판은 진행 중입니다. 사실관계는 법원이 가릴 문제입니다.
다만 어느 쪽 주장을 취하든, 임상의로서 확실히 읽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위기 자원을 100번 안내했다"는 사실과 "그 아이가 도움에 닿지 못했다"는 사실이 동시에 참일 수 있다는 것. 진료실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안내문을 읽어주는 게 아니라, 안내가 통하지 않을 때 그다음을 하는 일입니다. 보호자에게 연락하고, 물건을 치우게 하고, 필요하면 입원을 권합니다. 챗봇은 그 '그다음'이 없습니다. 대화창을 닫으면 끝입니다.
위기 대응은 왜 하필 AI가 제일 못하는 일인가
이 부분은 좀 억울하게도, AI의 성능 문제가 아닙니다. 구조의 문제입니다.
첫째, 정보가 텍스트뿐입니다. 저는 진료실에서 문장보다 다른 걸 먼저 봅니다. 말끝이 흐려지는 순간, 소매를 자꾸 내리는 손, 보호자가 잠깐 나갔을 때 달라지는 표정. "괜찮아요"라는 네 글자는 화면에서는 다 똑같이 생겼지만, 앞에 앉아 있으면 전혀 다른 네 글자입니다.
둘째, 위험 평가는 캐물어야 나옵니다. 자살 위험을 볼 때는 생각의 유무만이 아니라 계획의 구체성, 수단 접근성, 시도력, 준비 행동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건 상대가 불편해할 걸 알면서도 밀고 들어가는 질문들입니다. 그런데 사용자 만족을 최적화한 모델은 정확히 그 반대로 학습돼 있습니다. 불편하게 만들지 않도록. FDA 자문위원회가 생성형 AI 기기의 위험으로 환각과 함께 아첨(sycophancy)을 나란히 올린 이유가 이겁니다. 위기 상황에서 아첨은 부작용이 아니라 사망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후속 조치를 할 권한도, 몸도 없습니다. 응급실로 연결하거나 보호자에게 알리거나 다음 날 다시 전화하는 일. 치료의 상당 부분은 대화가 끝난 뒤에 벌어집니다.
넷째, 모델이 조용히 바뀝니다. 임상시험에서 안전했던 버전과 오늘 여러분이 쓰는 버전은 같은 소프트웨어가 아닙니다. 업데이트 한 번에 응답 성향이 달라져도 사용자는 알 수 없습니다. 규제 논의에서 이 '표류'를 어떻게 시판 후 감시할지가 큰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위기 신호를 어떻게 알아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자살 경고신호와 도움 요청 편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규제는 이제 막 따라붙기 시작했습니다
2025년은 이 분야에서 규제가 처음으로 실체를 갖춘 해였습니다.
미국 FDA는 2025년 11월 6일 디지털헬스 자문위원회를 열어 생성형 AI 기반 정신건강 의료기기를 통째로 다뤘습니다. 위원회는 접근성 확대·분류 지원 같은 이점을 인정하면서도, 편향·환각·아첨 같은 새로운 위험을 지적했고, 특히 위기 상황에서 자격 있는 사람이 개입하도록 하는 장치와 시판 후 성능 감시를 강조했습니다. 임상시험을 어떻게 설계할지, 비교군을 무엇으로 둘지도 함께 논의됐습니다. 참고로 FDA가 지금까지 허가한 AI 기기는 1,200건이 넘지만, 정신건강 치료용으로 허가된 생성형 AI 기기는 아직 없습니다.
주 단위 규제는 더 셉니다. 일리노이주는 2025년 8월 4일 Wellness and Oversight for Psychological Resources Act(HB1806) 를 시행해, AI가 치료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행정·보조 업무에 AI를 쓰는 건 허용하되, 치료와 심리치료 자체는 면허 있는 전문가만 하라는 취지입니다. 네바다·유타도 비슷한 제한을 두었고, 다른 주들도 뒤를 따르는 중입니다.
한국에는 아직 이에 대응하는 별도 규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쓰는 AI 상담은 제도의 공백 위에서 각자 알아서 쓰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봐야 할까
제가 정리한 균형점은 이렇습니다. AI 챗봇은 '사람 치료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접근성을 넓히는 보조 도구로서 잠재력이 큽니다. 24시간, 저비용, 낙인 없이 첫 문턱을 낮춰 주니까요. 하지만 진단, 위기 대응, 약물 결정처럼 판단과 책임이 따라붙는 영역은 여전히 사람 전문가의 몫입니다. Therabot 연구진의 결론도 똑같았습니다 — "어떤 생성형 AI도 아직 정신건강을 완전히 혼자 맡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사람의 감독과 안전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요즘 저는 환자들에게 "쓰지 마세요"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씁니다. 대신 이렇게 나눠 드립니다.
| 이런 데는 꽤 쓸 만합니다 | 이런 데는 사람에게 오세요 |
|---|---|
| 머릿속에 엉킨 걸 문장으로 꺼내 정리하기 | 진단명을 정하는 일 |
|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연습해 보기 | 약을 시작·증량·중단하는 결정 |
| 잠들기 전 반추가 돌 때 붙잡아 둘 상대 | 죽고 싶은 생각이 올라올 때 |
| 증상 기록, 다음 진료 때 물어볼 목록 만들기 | 환청·망상 등 현실 판단이 흔들릴 때 |
| 병원 가기 전 마음의 준비 | 자해·폭식·음주가 통제되지 않을 때 |
실제로 잘 굴러간 예가 있습니다. 한 20대 환자는 진료 전날 밤에 챗봇과 대화하면서 "내일 선생님한테 할 말"을 정리해 왔습니다. 캡처를 다섯 장 들고 왔는데, 저로서는 15분 진료에서 절대 못 뽑았을 이야기가 거기 다 있었습니다. 항불안제를 언제부터 하루 세 알까지 늘려 먹게 됐는지, 그게 어떤 상황에서였는지까지요. 그날 진료는 평소보다 훨씬 정확했습니다. 챗봇이 치료를 한 게 아니라, 치료의 재료를 만들어 온 것입니다.
아슬아슬했던 예도 씁니다. 다른 환자는 "약을 줄이고 싶다"고 챗봇에 물었고, 처음엔 "임의로 끊지 말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계속 이어가자 결국 감량 일정표 비슷한 걸 받아 왔더군요. 다행히 실행하기 전에 저에게 보여줬습니다. 그 표에는 그가 먹는 약의 반감기도, 재발 이력도, 지난겨울 응급실에 갔던 일도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틀린 표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표가 아니었을 뿐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신과의 문턱이 높게 느껴지고 예약이 밀리는 환경에서는 AI 상담에 눈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수록 "AI는 다리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라는 말을 붙잡아 두시길 권합니다. AI와 나눈 이야기가 실제 사람에게로 이어질 때 가장 큰 힘을 냅니다. (Therabot이 흉내 낸 범불안장애나 불면증의 인지행동치료(CBT-I) 같은 '사람이 하는 근거 치료'가 여전히 기준점입니다.)
남는 질문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결과가 나왔습니다. 잘 설계된 AI 치료 챗봇이 실제로 증상을 낮췄다. 그리고 같은 연구가 사람의 감독 없이는 아직 위험하다는 것도 똑같이 분명하게 보여줬습니다. 두 문장 중 하나만 인용하는 사람을, 앞으로 꽤 자주 보게 될 겁니다.
저는 아직 답을 모르는 게 하나 있습니다. 새벽에 챗봇에게 다 말하고 온 그 마음이, 진료실에서 다시 꺼내질 힘까지 남아 있을까 하는 것.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묻습니다. "그 얘기, 저한테도 한 번 더 해주실 수 있을까요?" 마음이 많이 힘들다면, AI에게 털어놓는 것으로 끝내지 마시고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 전문가에게 꼭 연결되시길 바랍니다.
참고문헌
- 생성형 AI 치료 챗봇(Therabot)의 무작위 임상시험 (Heinz 등, NEJM AI, 2025): NEJM AI
- 연구 해설: 유망하지만 감독이 필요하다 (Healio, 2025): 기사
- 챗봇의 우울·불안 개선 효과 체계적 문헌고찰·메타분석, 무작위시험 39편 (Sohn 등, npj Digital Medicine, 2026, PMID 41882250): PubMed
- 아시아권 챗봇 개입 메타분석, 무작위시험 8편·921명 (Leung 등, BMJ Health & Care Informatics, 2026, PMID 41534952): PubMed
- 미국 FDA 디지털헬스 자문위원회, 생성형 AI 정신건강 의료기기 논의 (2025년 11월 6일): FDA·CMS 동향 정리
- 일리노이주, AI 심리치료 금지법(HB1806) 서명 (2025년 8월 4일): 일리노이주 IDFPR 보도자료
- 치료용 챗봇 Woebot, 소비자용 앱 종료, 규제 비용과 LLM 규제 공백 (STAT, 2025): 기사
- Raine v. OpenAI, 청소년 사망을 둘러싼 소송 개요 (진행 중): 사건 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