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냥 걱정이 많은 성격이에요."
이 문장을, 저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듣습니다. 대개 살짝 웃으면서, 미리 변명하듯 꺼내십니다. 그런데 그 뒤로 십 분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성격'이라는 단어로는 도무지 담기지 않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별히 나쁜 일이 벌어진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건강이 걱정되고, 통장이 걱정되고, 아이가 걱정되고, 내일 회의가 걱정됩니다. 하나가 해결되면 다음 걱정이 자리를 이어받습니다. 밤에 불을 끄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어깨는 늘 돌덩이 같고,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저녁이면 진이 빠집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 그 걱정을 스스로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 글은 그런 분들을 위해 씁니다. 먼저 결론 하나만 미리 놓고 시작하겠습니다. 이건 유난히 예민한 성격이 아니라, 이름이 있고 치료가 잘 되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범불안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 GAD) 입니다.
'걱정 많은 것'과는 뭐가 다른가
누구나 걱정합니다. 걱정 자체는 정상이고, 어떤 걱정은 우리를 살립니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걱정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걱정이 어떤 성질이냐"입니다.
보통의 걱정에는 주소가 있습니다. 다음 주 발표가 걱정되고, 그 발표가 끝나면 걱정도 같이 끝납니다. 하는 동안에도 잠깐 접어둘 수 있습니다. 범불안장애의 걱정은 주소가 없습니다. 뚜렷한 계기 없이 여러 가지 일에 떠다니듯 번지고, 진단 기준으로는 6개월 이상(없는 날보다 있는 날이 더 많게) 이어지며, 무엇보다 스스로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12.
앞서 다룬 공황장애와 헷갈리는 분들도 많습니다. 둘은 결이 꽤 다릅니다. 공황장애가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발작이라면, 범불안장애는 며칠씩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에 가깝습니다. 폭풍우와 장마. 어느 쪽이 더 힘든지를 겨루는 건 의미가 없고, 다만 대처법이 다릅니다.
진단 기준을 뜯어보면
의학적 정의는 이렇습니다1.
- 여러 일에 대한 과도한 불안·걱정이 6개월 이상, 없는 날보다 있는 날이 더 많이 지속되고,
- 그 걱정을 조절하기 어려우며,
- 아래 6가지 중 3가지 이상이 동반됩니다:
- 안절부절못하거나 긴장돼 있음
- 쉽게 피로함
- 집중이 안 되거나 머릿속이 하얘짐
- 과민해짐(짜증)
- 근육이 뭉치고 긴장됨
- 잠들기 어렵거나 자주 깸
- 그리고 이 때문에 일상·관계·일에 뚜렷한 지장이 생깁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임상에서 늘 걸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목록을 다시 보세요. 피로, 근육 긴장, 불면, 집중력. 증상의 절반이 마음이 아니라 몸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불안해서 왔습니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늘 피곤해요", "목이랑 어깨가 안 풀려요", "잠을 못 자요", "소화가 안 돼요"라고 말하며 내과, 정형외과, 한의원을 먼저 돕니다. 검사는 대체로 깨끗하게 나오고, 그러면 또 "그럼 대체 뭐지" 하는 걱정이 하나 늘어납니다. 범불안장애가 그토록 자주 놓쳐지는 이유입니다.
왜 생기나, 그리고 '걱정'의 정체
타고난 기질(불안에 예민한 성향), 물려받은 몫, 그리고 감정을 다루는 뇌 부위와 그것을 조절하는 부위가 지나치게 예민해진 상태. 교과서적인 답은 이쯤 됩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이걸로는 환자분들이 별로 납득하지 못합니다. 이 병을 정말로 이해하게 만드는 열쇠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걱정'이라는 행동 자체의 정체입니다.
심리학 연구가 밝혀낸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걱정은 일종의 회피라는 것입니다34. 걱정을 하고 있으면 우리는 "그래도 내가 뭔가 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걱정은 괴로우면서도 어딘가 안심을 주는 구석이 있습니다. 이렇게 걱정하고 있으니 최소한 방심하다 당하지는 않겠지, 하는.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걱정한다고 나쁜 일이 덜 일어나지 않습니다. 실제 대비가 되지도 않습니다. 걱정이 하는 일은 딱 하나, 불안을 잠깐 눌러주는 것입니다. 그 대가로 걱정하는 습관은 조금씩 더 단단해집니다. 그렇게 걱정이 걱정을 부르고, 불안은 만성이 됩니다. 여기에 '확실하지 않은 것을 못 견디는 성향'까지 겹치면 굴레가 완성됩니다. 확실해질 때까지 계속 걱정하는데, 세상에 확실해지는 일이란 거의 없으니까요5.
핵심 — 걱정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불안을 잠깐 달래는 습관입니다. "걱정하면 대비된다"는 감각은 착각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치료의 목표는 걱정을 억지로 없애는 게 아니라, 불확실함을 견디는 힘을 되찾는 것입니다.
얼마나 흔한가
드문 병이 아닙니다. 전 세계로 보면 평생에 한 번이라도 이 병을 겪는 사람이 100명 중 서너 명(잘사는 나라에서는 다섯 명)이고6, 국내에서는 100명 중 두 명 남짓, 최근 1년으로 좁히면 1,000명 중 4명입니다(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쯤 많습니다.
숫자보다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다른 병이 같이 오는 일이 매우 흔하다는 점입니다. 이 병이 있는 사람의 상당수가 살면서 우울증이나 다른 불안 문제를 함께 겪습니다6. 오래 방치할수록 우울증 쪽으로 번지기 쉽다는 뜻이고, 그래서 일찍 알아채는 게 그렇게 중요합니다.
7문항짜리 짧은 자, GAD-7
내가 겪는 게 성격인지 도움이 필요한 상태인지 가늠해보고 싶다면, 7문항짜리 짧은 자가검사(GAD-7)가 표준으로 쓰입니다7.
지난 2주간 불안과 걱정에 얼마나 자주 시달렸는지를 일곱 문항에 0~3점으로 답해 더합니다(0~21점). 대략 5점부터 가벼운 정도, 10점부터 중간 정도, 15점부터 심한 정도로 보고8, 10점이 넘으면 전문가와 상담해 볼 것을 권합니다. 직접 해보고 싶다면 자가검사 도구에 GAD-7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둘게요. 이 점수는 진단이 아니라 참고 신호입니다. 높게 나왔다고 곧 병인 것도 아니고, 낮게 나왔다고 괜찮다는 뜻도 아닙니다. 실제로 진료실에서는 점수보다 "그 걱정 때문에 무엇을 못 하고 있는지"가 훨씬 많은 걸 말해줍니다.
실제로 잘 듣는 치료
여기가 가장 희망적인 부분입니다. 범불안장애는 치료가 잘 되는 축에 듭니다. 축은 크게 둘입니다.
약, 가장 먼저 쓰는 것은 항우울제 계열
가장 먼저 쓰는 약은 우울증에 쓰는 것과 같은 계열의 약입니다910. 우울증이 없어도 씁니다. 이 약들이 불안 회로의 과민함 자체를 가라앉히기 때문입니다. 에스시탈로프람(렉사프로), 설트랄린(졸로푸트), 벤라팍신(이팩사), 둘록세틴(심발타) 등이 근거가 탄탄합니다11.
#### 어느 약이 얼마나 듣나 — 시험 89편을 줄 세우면
"1차 약"이라는 말만으로는 손에 잡히지 않으니, 실제로 줄을 세워 본 자료를 보겠습니다. 걱정이 끊이지 않는 불안장애에 쓰인 약 22종을 다룬 시험 89편·2만 5,441명을 한데 모아 견준 분석(Slee 등, 2019)입니다.
| 약 | 불안 점수를 얼마나 더 내렸나(가짜약 대비) | 견딜 만한가 |
|---|---|---|
| 쿠에티아핀 | 가장 많이(3.6점) | 나쁨 — 중도 포기 많음 |
| 둘록세틴(심발타) | 3.1점 | 괜찮음 |
| 프레가발린(리리카) | 2.8점 | 괜찮음 |
| 벤라팍신(이팩사) | 2.7점 | 괜찮음 |
| 에스시탈로프람(렉사프로) | 2.5점 | 괜찮음 |
핵심 — 이 표에서 읽어야 할 것은 1등이 아닙니다. 점수를 가장 많이 내린 약(쿠에티아핀)이 가장 견디기 힘든 약이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파록세틴과 벤조디아제핀도 같은 패턴이었고요. 그래서 실제 진료에서는 '가장 센 약'이 아니라 '효과와 견딜 만함이 함께 있는 약'에서 시작합니다. 위 표의 아래 네 줄이 그 자리입니다.
같은 분석의 결론 한 줄도 옮겨 둡니다. 미르타자핀·설트랄린·플루옥세틴·부스피론도 효과와 내약성이 괜찮았지만 연구 규모가 작아 확신은 덜하다는 것, 그리고 "첫 약이 듣지 않았다고 해서 약물치료 자체를 접을 이유는 아니다"라는 것. 첫 약에 실패한 뒤 "약은 나한테 안 맞나 보다"로 끝내는 분들이 많은데, 이 문장을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게 있습니다. 이 계열 약은 처음 며칠 오히려 불안이 살짝 심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낮은 용량에서 천천히 올립니다. 이 초기 반응을 "역시 나한테는 안 맞는구나"로 읽고 사흘 만에 약을 접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그건 대개 약이 안 맞는 게 아니라 아직 자리를 잡는 중입니다.
곁들이거나 대신 쓰는 약으로는 프레가발린(리리카)(유럽에서는 이 병에 정식 허가돼 있습니다)나 부스피론이 있습니다. 벤조디아제핀은 빠르게 듣습니다. 너무 빠르게 들어서 문제입니다. 의존 위험 때문에 짧게만 쓰고, 오래 가는 이 병의 주력으로는 권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다루는 상담 치료(인지행동치료)
약과 나란히 첫 번째로 꼽히는 것이 인지행동치료입니다10. 앞서 본 '걱정의 정체'를 정확히 겨냥한다는 점에서 이 병에는 특히 잘 맞습니다.
- 걱정에 대한 믿음 바로잡기: "걱정하면 대비된다"는 착각을 하나씩 점검합니다.
- 불확실함 견디기 연습: 모든 걸 확실히 해두려는 시도를 조금씩 내려놓습니다. 확인 문자를 한 번 덜 보내는 것부터 시작하기도 합니다.
- 걱정 미루기와 걱정 시간 정하기: 하루 중 걱정할 시간을 따로 정해두고, 그 밖의 시간에 올라온 걱정은 거기까지 미룹니다. 유치해 보이지만 의외로 잘 먹힙니다.
#### "오래간다"는 말도 숫자로
상담 치료의 장점으로 흔히 '효과가 오래간다'고들 하는데, 이 말이야말로 근거를 대야 하는 문장입니다. 마침 그걸 따진 분석(2023)이 있습니다. 걱정이 끊이지 않는 불안장애의 상담 치료를 다룬 시험 65편·5,048명을 모아, 여러 치료법을 한 줄로 세워 본 자료입니다.
- 치료가 끝난 시점에 평소 치료보다 뚜렷하게 나았던 것: 인지행동치료, 그리고 마음챙김을 얹은 계열의 상담 치료.
- 3개월에서 1년 뒤까지 차이가 남아 있던 것은 인지행동치료 하나뿐이었습니다.
- 이완 훈련도 끝난 직후에는 나아 보였지만, 질이 낮은 연구를 빼고 다시 계산하니 그 차이가 사라졌습니다.
이 마지막 줄이 중요합니다. 끝난 직후 좋아 보이는 것과, 반년 뒤에도 남아 있는 것은 다른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이 분석의 저자들도 인지행동치료를 이 병의 첫 번째 상담 치료로 꼽습니다. 약을 줄인 뒤에도 스스로 대처하는 힘이 남는다는 말의 실체가 여기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그냥 제가 예민하고 걱정 많은 성격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다만 걱정을 스스로 멈추기 어렵고, 6개월 넘게 이어지고, 피로·긴장·불면 같은 몸의 증상과 함께 일상에 지장을 준다면 성격을 넘어선 상태로 봅니다. 그리고 이건 꽤 중요한 구분입니다. 성격은 바꾸기 어렵지만, 범불안장애는 치료가 되니까요.
Q. 우울증도 아닌데 왜 항우울제를 주죠? 가장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이 약들은 우울증뿐 아니라 불안장애에도 가장 먼저 쓰는 약입니다. 이름이 '항우울제'로 붙었을 뿐, 예민해진 불안 회로를 가라앉히는 작용을 합니다. 처방이 바뀌었다고 해서 진단이 바뀐 게 아닙니다.
Q. 걱정을 안 하려고 애쓰는데 더 심해져요. 당연합니다. "걱정하지 말자"고 누르면 오히려 튀어 오릅니다. 그래서 치료는 걱정을 없애는 쪽이 아니라, 걱정과의 관계를 바꾸는 쪽으로 갑니다. 불확실함을 조금 견디고, 걱정이 와도 끌려다니지 않는 방향으로요.
Q. 평생 먹어야 하나요? 아닙니다. 상태가 안정되면 계획을 세워 줄여갑니다. 상담 치료를 함께 받은 분들은 약을 줄인 뒤에도 더 잘 버팁니다.
💬 전문의 한마디
범불안장애로 오시는 분들은 대개 "제가 유별난 거겠죠"라며, 미안해하듯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오래 "걱정 좀 그만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온 탓입니다. 고쳐야 할 성격 결함인 줄 알고 스스로를 오래 나무라 오신 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이 말부터 합니다. "그건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걱정을 멈추지 못하는 건 게을러서도, 유난스러워서도 아니라 뇌의 불안 회로가 과민해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다행히, 이건 치료가 아주 잘 되는 축에 듭니다.
진료실에서 제가 자주 하는 말이 하나 더 있습니다. "걱정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아요." 걱정하는 그 시간에 문제가 나아지는 게 아니라, 걱정하는 근육만 단련됩니다. 우리가 함께 연습할 건 걱정을 뿌리 뽑는 일이 아니라, '확실하지 않아도 괜찮다'를 조금씩 견디는 힘입니다. 그 힘이 붙으면 걱정은 여전히 찾아오지만, 예전만큼 당신을 흔들지는 못합니다.
늘 긴장한 채, 최악을 대비하며 살아오느라 얼마나 지치셨을지 압니다. 이제 그 짐은 조금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범불안장애는 걱정이 많은 성격이 아니라, 통제되지 않는 걱정이 온갖 것으로 번진 채 만성으로 이어지는 상태이고, 그 한복판에는 "걱정이 나를 대비시켜 준다"는 오래된 착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착각을 푸는 길은 이미 잘 닦여 있습니다. 약과 인지행동치료.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습니다. 걱정을 멈추지 못한 건 당신 탓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동안 아무도 대신 걱정해주지 않는 자리에서, 혼자 온 세상의 최악을 상상하며 버텨온 겁니다. 그 습관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겠지요. 다만 오늘 밤 침대에 누워 또 생각이 꼬리를 물거든, 딱 한 문장만 시험 삼아 떠올려 보셨으면 합니다. 이 걱정이, 정말로 내일을 바꿔줄까.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참고문헌
- StatPearls ↩
- Tyrer·Baldwin, Lancet 2006 ↩
- Behar 등, 2009 ↩
- Borkovec·Roemer ↩
- Dugas 등, 1998 ↩
- Ruscio 등, 2017 ↩
- Spitzer 등, 2006 ↩
- Kroenke 등, 2010 ↩
- 세계생물정신의학회 지침 2023 ↩
- 영국 국가 진료지침 ↩
- Slee 등, Lancet 2019 ↩
- 상담 치료를 줄 세운 분석(시험 65편·5,048명, 1년 뒤까지 남은 것은 인지행동치료뿐) (2023): PubM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