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회식이라, 그날은 약을 걸러야겠지." "술 마실 건데 약까지 먹으면 큰일 나는 거 아냐?"

정신과 약을 드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해본 생각일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주 많은 분이 술 마시는 날엔 조용히 약을 건너뜁니다. 걱정돼서, 혹은 "약이랑 술은 절대 안 된다"고 어디선가 들어서요.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로서 근거를 놓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약을 건너뛰는 것이 술과의 상호작용보다 더 위험합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근거로 차분히 풀어보겠습니다. "무조건 마셔도 된다"는 것도, "한 방울도 안 된다"는 것도 아닌, 정확한 선을 그어드리는 게 목표입니다.

⚠️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용입니다. 내가 먹는 약이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는 반드시 처방한 전문의·약사와 확인하세요.

가장 흔한 실수 — "술 마시니까 오늘 약은 패스"

먼저 짚을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 삼는 '약'은 대개 매일 꾸준히 먹어 효과를 유지하는 약 — 항우울제, 기분안정제, 항정신병약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약은 하루 이틀 걸러도 "그날 하루 쉬는" 개념이 아닙니다. 혈중 농도가 꾸준히 유지돼야 병을 누르는 약이라, 한 번의 거르기가 생각보다 큰 파장을 남깁니다.

그런데 많은 분이 술 약속을 이 약들의 '휴일'처럼 씁니다. 문제는, 술자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번 주 회식, 다음 주 모임, 그다음 주 친구 생일… "마시는 날은 거른다"가 반복되면, 그건 사실상 약을 띄엄띄엄 먹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정신과 약은 이 '띄엄띄엄'에 특히 약합니다.

약을 건너뛰면 정말 무슨 일이 생기나 — 이게 핵심입니다

막연히 "안 좋겠지"가 아니라,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근거로 보겠습니다.

첫째, 중단증후군(끊을 때 증상)이 옵니다. 항우울제, 특히 몸에서 빨리 빠져나가는 약(팍실/파록세틴, 이팩사/벤라팍신)은 한두 번만 걸러도 어지럼, 메스꺼움, 불안, 그리고 '뇌에 전기가 찌릿 흐르는 느낌(brain zap)'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급하게 끊은 사람의 약 20%에서 이런 증상이 보고되며, 대개 중단 2~4일 안에 시작됩니다1. 술 마신 다음 날 유난히 컨디션이 엉망이었다면, 숙취가 아니라 약을 거른 금단이 겹친 것일 수 있습니다.

둘째, 재발 위험이 올라갑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정신과 약의 복약 순응(꾸준히 먹는 것)은 생각보다 잘 안 지켜지는데,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약을 제대로 못 챙기는 비율이 우울증 50%, 양극성장애 44%, 조현병 56%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 '못 챙김'은 곧장 재발·재입원, 그리고 자살 위험 증가로 이어집니다2.

특히 기분안정제가 그렇습니다. 양극성장애 환자를 추적한 고전적 연구에서, 리튬갑자기 끊은 그룹은 서서히 줄인 그룹보다 재발까지 걸린 시간이 5배나 짧았습니다(중앙값 4개월 대 20개월)3. "딱 하루 걸렀을 뿐인데"가, 애써 잡아둔 안정을 흔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핵심 — 술 마시는 날에도 매일 먹는 유지약(항우울제·기분안정제·항정신병약)은 원칙적으로 그대로 드세요. 임의로 거르는 것이 대개 술과의 상호작용보다 더 큰 피해 — 중단증후군과 재발 — 를 부릅니다. 진짜 조심해야 할 조합은 따로 있으니, 그것만 정확히 구분하면 됩니다.

그럼 진짜 위험한 조합은? — 이것만 정확히

물론 "다 괜찮으니 마음껏 마셔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정말로 술과 겹치면 위험한 약들이 있습니다. 이건 소수지만,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약 계열별 술과의 위험도 — 수면제·신경안정제·디설피람은 위험, 진정성 약·리튬은 주의, 대부분의 SSRI는 소량 가능하나 비권장
약 계열별 술과의 위험도 — 수면제·신경안정제·디설피람은 위험, 진정성 약·리튬은 주의, 대부분의 SSRI는 소량 가능하나 비권장

🔴 같이 마시면 위험 — 피해야 하는 쪽

  • 수면제·신경안정제(벤조디아제핀·졸피뎀 계열) — 가장 위험합니다. 이 약들과 술은 똑같이 뇌의 호흡 중추를 누르기 때문에, 함께 쓰면 진정과 호흡 억제가 겹쳐 위험해집니다. 심하면 의식을 잃거나 호흡이 얕아지고, 실제로 알코올은 약물 과다복용 사망에 흔히 함께 관여합니다4. 알프라졸람·클로나제팜·로라제팜 같은 신경안정제나 졸피뎀 같은 수면제를 드신다면 — 술과 겹치지 마세요. 특히 "술 마시고 잠 안 와서 수면제까지" 는 가장 위험한 조합입니다. 여기서의 정답은 '약을 거르는 것'이 아니라 '그날 술을 피하거나 최소화하는 것'이고, 어떻게 조율할지는 주치의와 상의하세요.
  • 디설피람(안타부스) — 이건 아예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려고 쓰는 약입니다. 소량의 술에도 얼굴이 붉어지고 토하고 심장이 뛰는 강한 반응이 일부러 일어나도록 만든 것이라, 복용 중 음주는 절대 금기입니다5.
  • 부프로피온([웰부트린])부프로피온은 경련 역치를 낮추는데, 과음하거나 술을 끊는 금단 상태에서 쓰면 발작 위험이 올라갑니다6.
  • MAO 억제제 — 일부 주류(특히 생맥주)나 숙성 음식의 '티라민'과 만나면 혈압이 위험하게 치솟을 수 있습니다7. 다만 이 계열은 요즘 국내에서 거의 쓰이지 않으니 대부분 해당되지 않습니다.

🟡 주의 — 위험하진 않아도 불편·간접 위험

  • 진정 작용이 강한 약미르타자핀(레메론), 쿠에티아핀(쎄로켈), 트라조돈, 삼환계 항우울제 등은 그 자체로 졸린데, 술이 더해지면 과도하게 처지고 어지러워 넘어지거나 사고 위험이 커집니다.
  • 리튬 — 리튬은 직접 술과 반응하진 않지만, 술을 많이 마시면 탈수·소변 증가로 몸의 수분이 빠지면서 혈중 리튬 농도가 올라가 독성 위험이 생길 수 있습니다8. 리튬은 안전 범위가 좁은 약이라 과음은 특히 피하는 게 좋습니다.
  • 아고멜라틴아고멜라틴은 드물게 간 수치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음주가 잦은 분이라면 정기 간기능 검사를 챙기고 과음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겁낼 일은 아니고, 위험군에서 확인하면 되는 수준입니다).

🟢 소량은 대체로 괜찮지만, 권하진 않는 쪽

  • 대부분의 SSRI·SNRI(렉사프로 등) — 여기가 오해가 가장 많은 지점입니다. 이 약들은 앞의 수면제·신경안정제처럼 호흡을 눌러 급성으로 치명적인 사고를 내는 계열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끔 한두 잔의 소량 음주가 곧바로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1) 졸림·판단력 저하가 겹치고, (2) 술 자체가 우울·불안·수면을 악화시켜 약효를 깎아먹기 때문에 — 권장되지는 않습니다. '치명적이진 않다'와 '권장한다'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한 방울도 안 된다"는 말이 오히려 위험한 이유

여기서 이 글의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나옵니다.

많은 분이 "정신과 약 먹으면 술은 절대 금지"라고 알고 계십니다. 좋은 의도의 조언이지만, 이 지나친 단순화가 뜻밖의 부작용을 낳습니다. "어차피 한 잔도 안 되는 거면, 술 마시는 날엔 약을 빼자"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그리고 앞에서 봤듯, 바로 그 '약 빼기'가 대부분의 실제 피해를 만듭니다.

즉 대부분의 항우울제에서, 어쩌다 마신 한두 잔보다, 그걸 핑계로 약을 거른 것이 더 해롭습니다. "한 방울도 안 된다"는 과장이 오히려 사람을 더 위험한 선택(복약 중단)으로 몰고 가는 셈입니다. 그러니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 무엇이 진짜 위험한 소수(수면제·신경안정제·디설피람 등)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그리고 잊지 말 것 — 술 자체가 병을 악화시킵니다

상호작용을 떠나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술은 그 자체로 정신과 질환을 악화시킵니다. 상호작용이 없어도, 술이 병을 밀어 올립니다.

  • 우울 — 알코올은 기분을 띄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중추신경 억제제라 우울을 악화시킵니다. 알코올 문제와 우울증은 서로가 서로의 위험을 약 2배로 높이는 양방향 관계입니다9.
  • 수면 — "자기 전 한잔"은 잠드는 건 빠르게 하지만, 후반부 수면을 잘게 쪼개고 깨웁니다. 그래서 술 마신 날은 자도 잔 것 같지 않죠10. 불면으로 정신과 약을 드시는 분에겐 특히 역효과입니다.
  • 판단·충동 — 술은 충동을 풀어놓아 자해·자살 위험을 높입니다. 우울이 심할 때의 음주가 특히 위험한 이유입니다.

그러니 "약과 술" 문제는, 결국 가능하면 술을 줄이는 것이 답에 가깝습니다. 다만 그 방법이 '약을 거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실전 정리

복잡해 보이지만 원칙은 단순합니다.

정신과 약과 술 — 이렇게 하세요

  • 매일 먹는 유지약(항우울제·기분안정제·항정신병약)은 술 마시는 날에도 그대로 드세요. 거르는 게 대개 더 위험합니다.
  • 수면제·신경안정제·디설피람을 드신다면, 그날은 술을 피하세요. 이건 '약을 거르는 것'이 아니라 '술을 조절하는 것'으로 풀어야 합니다. 특히 술+수면제는 금물.
  • 마실 거라면 소량으로, 천천히. 그리고 운전·기계조작은 절대 금지.
  • 내 약이 어느 칸에 속하는지 모르겠다면, 창피해 말고 주치의·약사에게 물어보세요. "가끔 술을 마신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몰래 약을 거르는 것보다 백배 안전합니다.
  • 술을 끊기 힘들 만큼 자주·많이 마신다면, 그 자체가 상담이 필요한 신호입니다. 알코올 사용을 돕는 약(날트렉손·아캄프로세이트)과 치료도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A)

Q. 결국 정신과 약 먹으면 술은 절대 안 되는 건가요? 아닙니다. 약에 따라 다릅니다. 수면제·신경안정제·디설피람처럼 정말 피해야 하는 것이 있고, 대부분의 SSRI처럼 소량이 급성으로 위험하진 않은 것(그래도 권장은 안 함)이 있습니다. '한 방울도 안 된다'는 통념 때문에 약을 거르는 게 더 문제입니다.

Q. 술 마시기 전에 그날 약만 안 먹으면 안전하지 않나요? 그 '약 빼기'가 바로 이 글이 말리는 것입니다. 매일 먹는 유지약을 거르면 중단증후군·재발 위험이 생깁니다. 오히려 약은 그대로 드시고, 위험한 계열(수면제 등)이라면 그날 술을 줄이는 쪽이 맞습니다.

Q. 이미 술을 마셨는데, 그럼 오늘 약은 먹어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매일 먹는 항우울제·기분안정제라면 대개 평소대로 드시는 게 낫습니다. 다만 수면제·신경안정제라면 술 위에 겹쳐 먹는 건 위험하니 그날은 거르고, 다음부터 어떻게 할지 주치의와 상의하세요. 헷갈리면 약사에게 전화로 물어보셔도 됩니다.

Q. 소주 한두 잔 정도는요? 대부분의 항우울제에서 어쩌다의 소량이 급성으로 위험하진 않습니다. 다만 습관이 되면 술 자체가 우울·수면을 악화시키니, '가끔·소량'을 넘기지 않는 게 좋습니다. 수면제·신경안정제·디설피람 복용 중이라면 한두 잔도 피하세요.

💬 전문의 한마디

진료실에서 "선생님, 저 사실 지난주에 술자리 있어서 약 며칠 걸렀어요" 라는 고백을 정말 자주 듣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혼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솔직히 말해주는 게 고맙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가장 걱정하는 건, 말없이 혼자 판단해서 약을 띄엄띄엄 드시는 것이거든요. 많은 분이 "약이랑 술은 상극"이라고만 알고 계셔서, 술 마시는 날엔 죄책감에 약을 빼고, 그러다 다시 가라앉고, 그걸 "약이 안 듣네" 로 오해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 약을 드릴 때 꼭 말씀드립니다. "술 드실 일 있으면 미리 얘기해 주세요. 약을 몰래 빼지만 말아주세요." 정직하게 알려주시면, 저는 그 약이 술과 정말 위험한 쪽인지 아닌지 정확히 구분해 드릴 수 있고, 필요하면 복용 시간을 조정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술을 줄이면 제일 좋습니다. 하지만 술을 줄이는 방법이 '약을 줄이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예요.


정리하면, "정신과 약과 술"의 진짜 위험은 대개 상호작용이 아니라, 술 때문에 약을 건너뛰는 것에 있습니다. 매일 먹는 유지약은 술 마시는 날에도 그대로 드시고, 정말 위험한 소수의 조합(수면제·신경안정제·디설피람·부프로피온)만 정확히 구분해 피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술 자체를 줄이는 게 병에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 혼자 판단해 약을 빼기 전에, 한 번만 물어봐 주세요. 그 질문이 당신을 가장 안전하게 지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복용 중인 약과 음주에 관한 판단은 반드시 처방한 전문의·약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정신과 약 복약 비순응과 그 결과(재발·재입원·자살) — Semahegn 등, Systematic Reviews 2020 — PMC
  • 항우울제 중단증후군 — Gabriel & Sharma, CMAJ 2017 — PMC
  • 리튬을 갑자기 끊었을 때의 재발 — Baldessarini 등, J Clin Psychiatry 1996 — PubMed
  • 알코올과 우울증의 양방향 관계 — Boden & Fergusson, Addiction 2011 — PubMed
  • 진정제·알코올과 호흡 억제 — JAMA Network Open 2020 — PMC
  • 알코올이 수면에 미치는 영향 — 관련 리뷰 — PMC

참고문헌

  1. Gabriel & Sharma, CMAJ 2017
  2. Semahegn 등, Systematic Reviews 2020
  3. Baldessarini 등, J Clin Psychiatry 1996
  4. JAMA Network Open 2020
  5. 기전 설명
  6. 안전 정보
  7. 근거
  8. 리튬 독성
  9. Boden & Fergusson, Addiction 2011
  10. 수면과 알코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