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문제로 진료실에 오시는 분들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대개 이겁니다. "약으로 술이 끊어지나요?"
정직하게 답하면 이렇습니다. 네, 약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만큼 극적이지는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생각만큼'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를 숫자로 보여드리려 합니다. 알코올 의존 치료제 중 대표 격인 레비아(Revia), 성분명 날트렉손(Naltrexone)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약을 이야기하려면 아캄프로세이트(Acamprosate) 를 함께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에서 알코올 의존에 쓸 수 있는 사실상 양대 약인데, 둘 중 뭐가 더 좋은 약이냐는 질문은 사실 잘못된 질문입니다. 두 약은 애초에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약이기 때문입니다.
핵심 정보 한눈에
- 상품명: 레비아정(Revia, 제일약품) / 환인날트렉손정 등
- 성분명: 날트렉손(Naltrexone)
- 분류: 오피오이드 수용체 길항제 — 향정신성의약품이 아닙니다. 중독성도 없습니다
- 주 용도: 알코올 의존, 그리고 아편류(오피오이드) 효과 차단
- 흔한 용량: 하루 1회 50mg — 하루 한 알이면 끝입니다
- 가장 큰 특징: 술을 마셔도 예전만큼 좋지 않게 만들어 폭음을 줄입니다. 술을 끊은 뒤에 시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 절대 금기: 아편류(마약성 진통제) 복용 중인 사람 — 심한 금단이 즉시 유발됩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약의 시작·변경·중단은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두 약은 겨루는 사이가 아닙니다

이 그림은 이런 뜻입니다. 국내에서 알코올 의존에 쓸 수 있는 약은 사실상 이 두 가지인데, 하루 한 알이냐 하루 여섯 알이냐부터 폭음을 줄이는 약이냐 금주를 지키는 약이냐까지 전부 다릅니다. 아래에서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핵심 — 날트렉손과 아캄프로세이트는 더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목표의 문제입니다. 국내 리뷰(정영철, 대한신경정신의학회지 2019)의 정리가 가장 깔끔합니다 — 완전한 단주가 목표라면 아캄프로세이트, 음주량을 줄이고 과음을 막는 것이 목표라면 날트렉손.
작동 방식을 보면 왜 그런지 바로 이해됩니다.
날트렉손 — 술의 보상을 끊습니다. 술을 마시면 뇌에서 엔도르핀이 나오고, 그게 도파민 보상 회로를 자극해 "아, 좋다"는 느낌을 만듭니다. 날트렉손은 그 엔도르핀이 앉을 자리(오피오이드 수용체)를 미리 막아버립니다. 그래서 술을 마셔도 예전 같은 쾌감이 오지 않습니다. 한 잔이 두 잔을 부르던 고리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약의 특기는 '폭음 감소'와 '갈망 감소' 입니다.
아캄프로세이트 — 끊은 뒤의 괴로움을 달랩니다. 오래 술을 마신 뇌는 균형이 무너져 있습니다. 술을 끊으면 그 불균형 때문에 몇 주에서 몇 달씩 불안하고 잠 못 자고 안절부절못하는 상태(지연성 금단)가 이어집니다. 아캄프로세이트는 글루타메이트·GABA 균형을 원래대로 되돌려 이 시기를 견디게 해줍니다. 그래서 이 약의 특기는 '이미 끊은 상태를 지키는 것' 입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실무 차이가 나옵니다.
- 날트렉손은 아직 마시고 있는 중에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게 이 약의 설계에 맞습니다.
- 아캄프로세이트는 이미 술을 끊고 해독이 끝난 뒤에 시작합니다. 마시는 중에 시작하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즉 "일단 술부터 완전히 끊고 시작해야 한다"는 문턱이 없는 것이 날트렉손의 큰 장점입니다. 술을 끊을 자신은 없지만 줄이고는 싶은 분 — 현실의 대다수 — 에게 처음 내밀 수 있는 손이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얼마나 듣나요?
이 글의 핵심입니다. 여기서는 미화 없이 숫자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믿을 만한 근거는 2014년 《JAMA》에 실린 메타분석입니다. 임상시험 122건, 참가자 22,803명을 모아 계산한, 이 분야의 결정판이라 할 연구입니다. 여기서 나온 성적표가 이렇습니다.
이 그림은 이런 뜻입니다. 의학에서는 약의 효과를 NNT(치료필요수) 로 표현합니다. "결과가 1명에게서 달라지려면 몇 명이 그 약을 먹어야 하는가" 입니다.
- 날트렉손이 폭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는 효과: NNT 12 — 12명이 먹으면 그중 1명이 폭음을 면합니다.
- 아캄프로세이트가 다시 술을 입에 대는 것을 막는 효과: NNT 12 — 마찬가지로 12명 중 1명.
- 참고로 날트렉손이 '한 모금이라도 마시는 것' 자체를 막는 효과는 NNT 20 으로 더 약합니다. 이 약은 애초에 '완전 금주'를 지키는 쪽으로는 강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12명 중 1명.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솔직히 처음 들으면 실망스럽습니다. "11명한테는 소용없다는 거잖아요?" 맞습니다. 이 약들은 먹으면 술이 끊어지는 마법의 약이 아닙니다. 그렇게 광고하는 곳이 있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시야를 넓히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먹는 고혈압약·고지혈증약도 NNT로 따지면 수십 명당 1명 수준인 경우가 많습니다. NNT 12는 의학 전체에서 보면 결코 나쁜 숫자가 아닙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된 알코올 치료 연구인 COMBINE 연구(1,383명)에서도, 날트렉손은 다른 만성질환 치료에 견줘 손색없는 수준의 이득을 보였다고 평가됐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 약은 의지를 대신해주는 약이 아니라, 의지의 승률을 올려주는 약입니다. 혼자 버티면 1명이 성공할 자리에서, 약을 더하면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 '조금'이 12명 중 1명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1명이 인생 전체입니다.
COMBINE 연구의 반전 — 아캄프로세이트는 효과가 없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논쟁이 있습니다. 방금 말한 COMBINE 연구에서 아캄프로세이트는 위약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단독으로도, 날트렉손과 합쳐도, 상담을 더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럽 연구들에서는 잘 들었던 약이 미국 최대 연구에서 통째로 실패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해석은 "대상 환자가 달랐다" 는 것입니다. 아캄프로세이트가 성공한 유럽 연구들은 입원해서 완전히 해독을 마치고, 이미 술을 끊은 상태로 며칠~몇 주 지난 환자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반면 COMBINE은 비교적 최근까지 마시던 외래 환자가 많았습니다.
이 해석이 맞다면, 결론은 오히려 앞의 이야기를 강화합니다. 아캄프로세이트는 '끊은 상태를 지키는 약' 이고, 아직 끊지 못한 사람에게 주면 잘 듣지 않습니다. 약을 잘못 고른 것이지, 약이 나쁜 게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어느 쪽이 나에게 맞을까
정리하면 이렇게 갈립니다.
날트렉손이 유리한 경우:
- 아직 술을 마시고 있고, 우선 줄이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을 때 — 이게 가장 큰 자리입니다
- 폭음이 문제일 때 ("마시면 끝을 본다")
- 갈망이 심할 때
- 하루 한 알이 아니면 못 챙겨 먹을 때
- 간 기능이 심하게 나쁘지 않을 때
아캄프로세이트가 유리한 경우:
- 이미 술을 끊었고, 그 상태를 지키는 것이 목표일 때
- 완전한 단주 말고는 답이 없는 상황일 때
- 간이 나쁠 때 — 아캄프로세이트는 간이 아니라 콩팥으로 빠져나가므로 간질환에 안전합니다. 반대로 신장이 나쁘면 쓸 수 없습니다
- 아편류(마약성 진통제)를 쓰고 있어 날트렉손이 금기일 때
두 약을 함께 쓰면요? 이론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COMBINE 연구에서 병용의 뚜렷한 추가 이득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목표에 맞는 한 가지를 제대로 쓰는 편을 택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 — 어느 쪽이든 약만으로는 안 됩니다. 이 약들은 허가사항부터가 "적정 관리 프로그램과 병행", "심리적 상담과 병행"이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상담·자조모임과 함께일 때 비로소 이 숫자들이 나옵니다.
부작용 — 무엇을 조심해야 하나
- 메스꺼움 — 가장 흔합니다. 대개 초기 며칠이고, 식후 복용이 도움이 됩니다.
- 두통, 어지럼, 피로, 불면
- 간 수치 상승 — 예전에는 간독성 경고가 크게 붙어 있었지만, 통상 용량에서는 위험이 낮다는 근거가 쌓이며 미국에서는 2013년 그 최고 수준 경고가 삭제됐습니다. 다만 시작 전과 복용 중 간 기능 검사는 여전히 합니다. 간이 이미 많이 상한 분에게는 신중히 접근합니다 — 술 문제가 오래된 분에게 드물지 않은 상황입니다.
아캄프로세이트 쪽의 대표 부작용은 설사이고, 큰 위험은 적지만 하루 3번 두 알씩, 총 6알을 먹어야 한다는 현실적 부담이 있습니다. 솔직히 이 복용법이 이 약의 가장 큰 약점입니다. 참고로 장용정이라 씹거나 쪼개면 안 됩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금기 — 마약성 진통제
⚠️ 이 대목은 안전과 직결됩니다. 날트렉손은 아편류(오피오이드) 수용체를 막는 약입니다. 그래서 —
- 마약성 진통제(코데인·트라마돌·모르핀·옥시코돈 등)를 쓰고 있는 사람이 날트렉손을 먹으면, 급성 금단이 즉시 유발될 수 있습니다. 매우 괴롭고 위험합니다.
- 반대로 날트렉손을 먹는 동안에는 마약성 진통제가 듣지 않습니다. 수술이나 사고로 강한 진통이 필요할 때 문제가 됩니다. 수술 예정이라면 반드시 미리 알리세요.
- 이 약을 처방받았다면 다른 병원에 갈 때 "저는 날트렉손을 먹고 있습니다"라고 꼭 말씀하셔야 합니다.
술과 관련해선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날트렉손은 안타부스(디설피람)처럼 술을 마시면 괴롭게 만드는 약이 아닙니다. 술을 마셔도 토하거나 심장이 뛰지 않습니다. 그저 덜 즐거울 뿐입니다. 그래서 '벌'이 아니라 '김빠짐'에 가깝습니다.
임신·수유 중에는?
임신 중 사용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임신 계획이 있거나 임신·수유 중이라면 반드시 사전에 상의해 주세요. 다만 임신 중 음주는 그 자체로 태아에게 명백히 해롭습니다. 술을 끊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며, 그 방법을 함께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A)
Q. 이 약 먹으면 술이 끊어지나요?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약은 없습니다. 날트렉손은 술의 즐거움을 줄여 폭음을 덜하게 만드는 약이고, 12명이 먹으면 그중 1명에게서 결과가 달라지는 정도입니다. 상담·자조모임과 함께 써야 이 숫자가 나옵니다.
Q. 술을 끊고 나서 먹어야 하나요? 날트렉손은 아직 마시고 있어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게 이 약의 설계에 맞습니다. 반면 아캄프로세이트는 끊은 뒤에 시작하는 약입니다.
Q. 먹다가 술을 마시면 큰일 나나요? 아닙니다. 날트렉손은 안타부스와 달라서, 마셔도 몸이 뒤집히지 않습니다. 다만 예전만큼 좋지는 않을 겁니다 — 그게 이 약의 목적입니다.
Q. 중독되나요? 아닙니다. 날트렉손도 아캄프로세이트도 의존성이 없고, 향정신성의약품도 아닙니다.
Q. 진통제를 먹어도 되나요? 타이레놀이나 소염진통제는 괜찮습니다. 다만 마약성 진통제(트라마돌 등)는 위험합니다. 다른 병원에서 진통제를 받을 때 반드시 이 약을 복용 중이라고 알리세요.
Q. 아캄프로세이트는 하루 6알이라던데 꼭 그렇게 먹어야 하나요? 네, 나눠 먹어야 효과가 유지됩니다. 이 번거로움을 못 견디겠다면 하루 한 알인 날트렉손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Q. 얼마나 오래 먹나요? 보통 수개월 단위로 보고, 경과에 따라 정합니다. 좋아졌다고 일찍 끊으면 재발 위험이 올라갑니다.
💬 전문의 한마디
알코올 치료제 이야기를 할 때 제가 가장 경계하는 건 양쪽 극단입니다. "약으로 술이 끊어진다"는 과장도 틀렸고, "그런 약 먹어봐야 소용없다"는 냉소도 틀렸습니다. 진실은 그 사이 어딘가, 12명 중 1명이라는 담백한 자리에 있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환자분께 그대로 말씀드립니다. 숨기지 않아요. 그러면 오히려 신뢰가 생깁니다. "선생님, 그럼 별로네요?"라고 하시면 이렇게 답합니다. "혈압약도 그 정도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혈압약을 시시하다고 하지 않죠." 그리고 제가 날트렉손을 아끼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이 약은 '완전히 끊고 오세요'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술 문제로 병원에 오는 것 자체가 큰 결심인데, 문 앞에서 "일단 끊고 오라"고 하면 그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선 줄여봅시다, 여기 도와줄 약이 있습니다"라고 하면 치료가 시작됩니다. 문턱이 낮다는 것 — 이게 이 약의 숫자에는 잡히지 않는 가장 큰 미덕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꼭 부탁드립니다. 이 약은 상담 없이 약만 받아 가면 정말로 잘 듣지 않습니다. 약은 승률을 올려주는 도구일 뿐, 경기를 대신 뛰어주지는 않습니다. 같이 뛰어야 합니다.
날트렉손은 술을 끊게 하는 약이 아니라 술이 시시해지게 하는 약이고, 아캄프로세이트는 끊은 상태를 지켜주는 약입니다. 둘 중 무엇이 나은지는 당신의 목표가 무엇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12명 중 1명이라는 담백한 숫자를 안고 가지만, 그 숫자는 결코 초라하지 않습니다. 어떤 약이든 나에게 맞는 약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작·조절·중단은 반드시 전문의와 함께 정해야 합니다. 술 문제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의 문제이고, 치료에는 도구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