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에서 "약이 다 안 들으면 그다음은?"이라는 질문의 오랜 답은 전기경련요법(ECT) 이었습니다. 가장 강력하고, 근거도 가장 오래된 치료지요. 그런데 이 이름 앞에서 많은 사람이 멈칫합니다. 영화 속 낡은 이미지 탓에 '전기고문' 같은 무언가로 오해받아 온 치료이기도 하니까요.

최근 그 자리를 두고 흥미로운 비교가 이뤄졌습니다. 마취제이자 한때 파티 약물로도 쓰이던 케타민이, 난치성 우울증에서 ECT와 정면으로 맞붙은 겁니다. 결과는 정신의학계가 오래 기다려온 종류의 답이었습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치료 선택은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무슨 비교였나 — ELEKT-D 임상

2023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실린 ELEKT-D 시험입니다. 규모와 설계가 탄탄했습니다.

  • 정신병적 증상이 없는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 365명을 모았습니다. 여러 약물치료에 실패한, 정말 낫기 어려운 분들입니다.
  • 이들을 무작위로 절반씩 나눠, 한쪽은 케타민 정맥주사(주 2회), 다른 쪽은 ECT(주 3회)를 3주간 받게 했습니다.
  • 판정 기준은 우울 증상이 절반 이하로 줄었는지(치료 반응)였습니다.

핵심은 이 시험이 비열등성(noninferiority) 시험이라는 점입니다. "케타민이 ECT보다 더 낫다"를 증명하려는 게 아니라, "적어도 뒤지지 않는다"를 보려는 설계였습니다.

결과 — 케타민이 뒤지지 않았다

3주 후 치료에 반응한 비율은 이랬습니다.

치료치료 반응률
케타민 주사55%
전기경련요법(ECT)41%

케타민은 ECT에 비열등했습니다. 숫자만 보면 오히려 케타민이 높지만, 이 시험의 목적은 우열 가리기가 아니었으므로 "적어도 뒤지지 않았다"가 정확한 결론입니다. 약이 다 실패한 환자에게, 주사 한 종류가 우울증 치료의 최강 카드로 여겨지던 ECT를 따라잡았다는 것 — 이게 이 연구의 뉴스였습니다.

핵심 — ELEKT-D의 메시지는 "ECT가 밀렸다"가 아니라 "이제 난치성 우울증에 진지한 선택지가 둘이 됐다" 입니다. 하나뿐이던 길이 갈래를 갖게 된 셈입니다.

이 케타민과 사촌 격인 약이 코 스프레이로 나온 에스케타민(스프라바토)입니다. 국내에도 허가돼 있어, 케타민 계열 치료는 이제 완전히 실험 단계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그럼 이제 ECT는 필요 없나요 — 트레이드오프

성급한 결론은 금물입니다. 두 치료는 잘하는 일이 다릅니다. 하나로 다른 하나를 대체하는 관계가 아니라, 환자에 따라 골라 쓰는 관계에 가깝습니다.

케타민이 나은 점

  • 빠릅니다. 몇 시간~며칠 안에 기분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 인지 부작용이 적습니다. 뒤에서 설명할 ECT의 기억 문제가 거의 없습니다.
  • 외래로 받기 쉽습니다. 마취 없이, 주사와 관찰만으로 진행됩니다.

ECT가 나은 점

  • 더 강력하고, 효과가 오래갑니다. 케타민의 항우울 효과는 빠른 대신 짧게 끝나는 경향이 있어, 유지 전략이 더 필요합니다.
  • 가장 위중한 경우에 우선입니다. 망상이 동반된 우울(정신병적 우울),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심각한 상태, 강한 자살 위기, 고령 환자에서는 ECT가 여전히 첫 카드입니다. (ELEKT-D가 애초에 '정신병적 증상이 없는' 환자만 모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최근의 종합 분석들도 비슷한 그림을 그립니다 — 가장 심하고 급한 경우엔 ECT, 빠르고 부담 적은 치료가 필요한 외래 상황엔 케타민. 젊고 인지 기능을 지켜야 하는 환자에게는 케타민이, 고령이거나 정신병적 증상이 있는 환자에게는 ECT가 기웁니다.

'ECT는 야만적'이라는 오해

케타민 이야기를 하는 김에, ECT에 대한 오해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이 치료가 필요 이상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돼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심어놓은 이미지 — 결박된 환자에게 전기를 흘려 온몸이 튀어 오르는 장면 — 은 수십 년 전의 것입니다. 지금의 ECT는 완전히 다릅니다. 전신마취와 근이완제를 쓴 상태에서, 전담 마취과 전문의의 관리 아래 진행됩니다. 환자는 잠든 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몸의 경련도 근이완제로 최소화됩니다. 1초 남짓의 전기 자극으로 뇌를 '재부팅'하는, 정교하게 관리되는 의료 시술입니다.

가장 흔한 부작용은 일시적인 기억 문제입니다. 치료 전후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을 수 있는데, 대개 시간이 지나며 회복됩니다. 이 인지 부작용이 케타민보다 두드러진다는 점이, 두 치료를 가르는 실질적인 차이 중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ECT는 가장 위중한 우울증에서 생명을 구하는 치료로 남아 있습니다. 무서운 게 아니라, 무서운 병에 쓰는 강력한 치료입니다.

케타민도 만능은 아닙니다

반대편도 균형 있게 봐야 합니다. 케타민에는 케타민의 그늘이 있습니다.

  • 해리 증상 — 주사 중 자기 몸이나 주변이 낯설게 느껴지는 몽롱한 상태가 흔합니다. 대개 일시적이지만 불쾌할 수 있어, 관찰이 필요합니다.
  • 효과가 짧습니다 — 빠르게 듣는 대신 오래가지 않는 경향이 있어, 반복 투여나 유지 계획이 필수입니다.
  • 오남용 우려 — 케타민은 원래 규제 약물입니다. 반드시 의료기관에서, 관리된 용량으로만 써야 합니다. '우울증에 좋다'는 말만 듣고 사적 경로로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 장기 안전성 — 반복 사용의 장기 영향은 아직 데이터가 쌓이는 중입니다.

한국에서는 어떤가요

두 치료 모두 국내에서 시행됩니다. ECT는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오래 자리 잡은 치료이고, 케타민 계열에서는 코 스프레이 형태의 에스케타민(스프라바토)이 국내 허가를 받아 난치성 우울증에 쓰이고 있습니다. 정맥주사 케타민은 아직 적응증·비용·프로토콜 면에서 정리가 더 필요한 단계입니다.

무엇을 택할지는 결국 개인의 상태에 달렸습니다. 증상의 심각도, 정신병적 증상 유무, 나이, 인지 기능, 얼마나 빨리 효과가 필요한지, 유지 치료를 어떻게 이어갈지 — 이 모든 걸 저울에 올려 전문의와 함께 정할 문제입니다.

💬 짚고 넘어갈 점

저는 이 연구가 반가웠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난치성 우울증 앞에서 우리가 내밀 수 있는 카드가 하나 더 늘었으니까요. 약을 다섯 개, 여섯 개 바꿔도 그대로인 분들을 마주할 때, 선택지가 하나뿐인 것과 둘인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다만 저는 "케타민이 ECT를 이겼다"는 식의 표현은 조심합니다. 이 둘은 경쟁자가 아니라 서로 다른 도구입니다. 급하고 위중한 분께는 여전히 ECT가 생명줄이고, 인지 기능을 지키며 외래로 빠르게 반응을 봐야 하는 분께는 케타민이 반갑습니다. 좋은 진료는 둘 중 뭐가 더 세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이 사람에게 뭐가 맞느냐를 고르는 일이에요.

그리고 꼭 덧붙이고 싶은 말. ECT를 무서워하며 미루다 병을 키우는 분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지금의 ECT는 영화 속 그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순간에 이 치료를 두려움 때문에 놓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우울증 치료의 지형은 지금 빠르게 넓어지고 있습니다. 5일짜리 가속 뇌자극이 등장하고, 마취제였던 약이 항우울제가 되고, 반세기 된 치료가 새 경쟁자를 만나 다시 검증됩니다. 이 모든 변화의 수혜자는 결국, 하나뿐이던 길 앞에서 막막했던 환자들입니다. 길이 갈래를 가질 때마다, 누군가는 자기에게 맞는 길을 하나 더 얻습니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비정신병성 치료저항성 우울증에서 케타민과 ECT의 비교, ELEKT-D 시험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23): 원문
  • 주요우울삽화에서 케타민과 ECT의 효과·안전성 네트워크 메타분석 (Molecular Psychiatry, 2023):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