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기억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고 오시는 분들이 진료실에서 자주 꺼내는 말이 있습니다.
"아직 치매는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그래도 치매약을 미리 좀 드시면 안 될까요?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논리 자체는 이해가 됩니다. 나중에 후회하느니 지금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니까요. 그리고 이 질문에는 답할 자료가 있습니다. 누가 안 해봐서 모르는 게 아니라, 해봤습니다. 그것도 꽤 크게요.
769명에게 3년 동안 실제로 먹여봤습니다
2005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실린 연구입니다. 아직 치매는 아니지만 기억력이 또렷하게 떨어진 상태, 그러니까 경도인지장애가 있는 769명을 세 갈래로 나눴습니다. 치매약인 도네페질을 매일 10mg 먹는 쪽, 비타민 E를 먹는 쪽, 가짜약을 먹는 쪽. 그리고 3년을 따라갔습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
- 3년이 지난 시점에 치매로 진행한 비율은 세 집단 사이에 차이가 없었습니다. 비타민 E도, 도네페질도요.
- 다만 첫 12개월 동안은 도네페질 쪽이 진행이 적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이가 2년, 3년으로 가면서 사라졌습니다.
- 전체적으로는 해마다 16%씩 치매로 넘어갔습니다.
이 "첫 1년"을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합니다. 진행을 막은 게 아니라 잠깐 늦춘 것에 가깝습니다. 3년째에 두 집단이 같은 자리에 서 있었으니까요. 알츠하이머병은 20년에 걸쳐 진행하는 병입니다. 그 시간표에서 1년을 미뤘다가 도로 따라잡히는 것이, 3년 내내 매일 약을 먹을 이유가 되는지는 따로 따져야 합니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위험 유전자로 알려진 APOE ε4를 가진 사람들에서는 도네페질의 이점이 3년 내내 유지됐습니다. 다만 이건 미리 정해두고 본 게 아니라 여러 하위집단을 쪼개 본 결과 중 하나라, 그것만 떼어 결론으로 삼기는 어렵습니다.
한 연구가 아니라, 모아 봐도 그렇습니다
연구 하나로 판단할 일은 아니니 전부 모은 것을 보겠습니다.
코크란 연합이 경도인지장애에 치매약을 쓴 연구 9편, 5,149명을 모아 분석했습니다. 여기서 나온 답은 짧습니다.
치매로 진행하는 것을 막는다는 근거가 1년에도, 2년에도, 3년에도 없었습니다. 인지기능 검사 점수에도 사실상 아무 효과가 없었고요.
그런데 "밑져야 본전"이 아니었습니다
이 글에서 제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여기입니다. 효과가 없다는 것까지는 많이 알려져 있는데, 효과가 없는 것과 잃는 게 없는 것은 다릅니다.
같은 분석에서 부작용을 함께 봤습니다.
- 구토 4.42배(3.23~6.0)
- 메스꺼움 2.97배(2.57~3.42)
- 설사 2.10배(1.30~3.39)
- 부작용 전체로는 1.09배(1.02~1.16)
치매약이 속을 뒤집는 약이라는 건 원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다만 치매가 이미 온 분에게는 그 불편을 감수할 이유가 있습니다. 얻는 게 없는 상태에서 이 부작용만 남으면, 그건 본전이 아니라 손해입니다. 밥맛이 떨어지고 토하고 설사하는 몇 달이, 연세 있는 분에게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리고 더 무거운 신호가 하나 있었습니다
같은 계열의 다른 약인 갈란타민으로 경도인지장애에서 진행한 2년짜리 시험 두 건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갈란타민을 먹은 1,026명 중 13명이, 가짜약을 먹은 1,022명 중 1명이 사망했습니다. 사망 원인의 절반가량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혈관 쪽이었고요. 2005년 미국 식품의약국이 이 결과를 의료진에게 알리는 안전성 서한을 냈습니다.
이 신호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이후의 사후 분석에서는 위험 증가가 뚜렷하지 않다는 결과도 나왔고, 반대 방향의 종합 분석도 있습니다. 숫자 자체도 작아서 우연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요.
다만 이 글의 맥락에서는 이렇게 읽는 게 맞습니다. 효과가 확인되지 않은 약을 예방 삼아 쓸 때는, 이런 신호가 하나만 떠도 그걸 상쇄해 줄 이득이 없습니다. 치료할 때는 저울의 반대쪽에 얹을 것이 있지만, 예방으로 쓸 때는 그 접시가 비어 있으니까요.
왜 자꾸 이 생각이 드는가
'치매약'이라는 이름이 착시를 만듭니다. 이름만 보면 치매를 막거나 되돌리는 약처럼 들리니까요.
실제로 이 약들이 하는 일은 다릅니다. 병의 진행을 늦추는 게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신경전달물질을 조금 더 오래 쓰이게 붙잡아 두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미 손상이 진행된 뇌에서는 증상을 얼마간 완충해 주지만, 손상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먹는다고 손상을 막지는 못합니다. 젖은 옷을 더 오래 짜는 일이지, 비를 막는 일이 아닌 셈이죠. 이 부분은 치매약은 무엇을 하는 약인가에 자세히 적어 두었습니다.
여기서 짚어 둘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위 연구들의 대상은 아무 증상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기억력이 떨어진 경도인지장애 단계였습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건강한 사람에게 예방적으로 먹였다"는 시험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이야기를 더 분명하게 만듭니다. 효과가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에게 줬는데도 나오지 않았다면, 그보다 앞 단계에서 기대할 근거는 더 얇습니다.
그럼 예방 연구 자체가 없느냐면, 그건 아닙니다
지금도 예방을 목표로 한 대규모 임상시험이 돌고 있습니다. 다만 약이 다르고, 대상이 다릅니다.
- 최근 나온 항아밀로이드 항체(레켐비·키순라 계열)를 씁니다. 신경전달물질을 붙잡는 기존 치매약이 아니라, 뇌에 쌓인 단백질을 걷어내겠다는 약입니다.
- 대상은 증상은 아직 없지만 뇌에 아밀로이드가 쌓여 있는 사람입니다. 최근에는 혈액 검사로 후보를 미리 골라냅니다.
- 관찰 기간이 216주, 332주로 4년에서 6년이 넘습니다. 예방을 증명하려면 그만큼 오래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금 시점에서 "예방 목적으로 쓸 약"은 기존 치매약에도, 새 약에도 없습니다. 다만 질문 자체가 폐기된 것은 아니고, 제대로 된 방식으로 검증되는 중이라는 뜻입니다.
"그 새 약, 지금 미리 맞으면 안 되나요"
레켐비는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2024년 5월 식약처 허가를 받았고 처방도 시작됐습니다. 그러니 이 질문이 나오는 게 당연합니다.
답부터 드리면 지금은 안 됩니다. 이유가 네 가지입니다.
첫째, 허가된 자리가 예방이 아닙니다. 레켐비의 국내 적응증은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인지장애 또는 경증 알츠하이머병 치매입니다. 증상이 이미 시작된 사람이 대상이지, 아무 증상 없는 사람에게 미리 쓰라고 허가된 약이 아닙니다.
둘째, 이 약이 보여준 것은 예방이 아니라 감속입니다. 1,795명을 18개월간 본 시험에서, 증상이 나빠지는 정도가 위약보다 27% 적었습니다. 점수로는 0.45점 차이였고요. 병을 멈춘 게 아니라 기울기를 조금 눕힌 것입니다. 이 결과를 "발병을 막았다"로 옮겨 읽을 수는 없습니다.
셋째, 아무나 맞을 수 있는 약이 아닙니다. 투약 전에 인지기능 검사, 뇌 MRI, 아밀로이드가 실제로 쌓였는지 확인하는 검사(PET 또는 뇌척수액), 그리고 APOE 유전자형 검사를 거쳐 적합한지부터 판정합니다. 뇌에 아밀로이드가 없으면 애초에 대상이 아닙니다.
넷째, 부작용이 가볍지 않습니다. 같은 시험에서 뇌가 붓는 소견이 레켐비 쪽 12.5%, 위약 쪽 1.7%였습니다. 뇌 미세출혈은 17.0% 대 8.7%였고요. 그래서 투약 중에는 MRI를 정기적으로 찍습니다. 얻을 것이 분명한 사람에게는 감수할 만한 위험이지만, 얻을 것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냥 위험만 남습니다. 이 글 앞부분의 이야기가 여기서 그대로 반복됩니다.
여기에 비용도 있습니다. 국내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연간 수천만 원대로 보도되고 있고, 급여 여부는 아직 논의 중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조금은 예방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기대의 근거는 아직 시험 중이고, 지금 나와 있는 결과는 전부 '이미 증상이 시작된 사람'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은행잎과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어떤가
진료실에서 훨씬 자주 나오는 이름은 사실 이쪽입니다. 둘 다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은행잎 추출물 — 예방 시험을 두 번 하고 두 번 실패했습니다
은행잎은 이 글에서 특별한 자리에 있습니다. "미리 먹어서 치매를 막을 수 있는가"를 정면으로 물은 대규모 시험이 실제로 두 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진행한 시험은 75세 이상 3,069명을 모았습니다. 이 중 2,587명은 인지기능이 정상이었고 482명은 경도인지장애였습니다. 그리고 중앙값 6.1년을 따라갔습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
- 전체 치매 발생 위험비 1.12(0.94~1.33)
- 알츠하이머병 위험비 1.16(0.97~1.39)
- 경도인지장애가 있던 사람들에서 치매로 넘어가는 속도에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위험비가 1보다 크다는 점입니다.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는 아니어서 "해롭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로운 쪽으로 기울지도 않았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기억력이 떨어진 것 같다고 스스로 호소한 70세 이상을 모아 5년을 따라갔습니다. 여기서도 알츠하이머병으로 진행하는 위험이 줄지 않았습니다.
6년과 5년입니다. 이 정도로 길게, 이 정도 규모로 물어본 예방 시험은 치매 영역에서 흔치 않습니다. 은행잎은 검증이 안 된 게 아니라, 검증하고 통과하지 못한 쪽입니다.
콜린알포세레이트 — 지금도 판정 중입니다
국내에서 대단히 많이 처방되는 약이고, 그만큼 논쟁도 오래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0년, 보건복지부는 치매 외 적응증에 대해 이 약을 선별급여로 돌렸습니다. 임상적 유용성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이었고, 그만큼 환자 본인부담이 올라갔습니다. 식약처는 허가된 효능 전부에 대해 임상재평가를 지시했고, 그 결과는 아직 최종 판단이 나지 않았습니다.
2026년 7월에 보도된 중간 결과가 이 약의 위치를 잘 보여줍니다. 경도인지장애 환자를 48주간 본 시험에서 미리 정해 둔 1차 유효성 평가변수를 전체 분석군에서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약을 잘 지켜 먹은 사람만 따로 추린 분석에서는 유의한 차이가 나왔고 기억 영역에서 개선 신호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구조는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미리 정한 방식으로는 실패했고, 나중에 추려낸 집단에서 나온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약을 끝까지 잘 먹는 사람은 원래 여러모로 더 건강한 경향이 있어서, 이 차이가 약 때문인지 사람 때문인지 가리기 어렵습니다.
안전성 쪽에서도 신호가 하나 있었습니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국민건강보험 자료로 50세 이상 약 1,200만 명을 10년간 분석했더니, 이 약을 복용한 쪽에서 뇌졸중 위험이 43%, 뇌경색 34%, 뇌출혈 37% 높았습니다.
다만 이 결과는 인과관계로 읽으면 안 됩니다. 무작위로 나눈 시험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을 되짚은 관찰 연구라서요. 애초에 뇌혈관에 문제가 있거나 그 위험이 높은 분들에게 이 약이 더 많이 처방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약이 뇌졸중을 부른 게 아니라, 뇌졸중이 올 사람이 약을 먹고 있었던 것이 됩니다.
그래도 이 글의 맥락에서 남는 문장은 같습니다. 예방 효과가 확립되지 않은 약에 안전성 물음표까지 붙으면, 저울의 양쪽이 모두 비어 있거나 마이너스가 됩니다.
그 사이에 확실한 것
기다리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근거는 약보다 이쪽이 훨씬 두껍습니다. 랜싯 위원회는 치매 100건 중 40건 이상이 살면서 바꿀 수 있는 요인과 연결돼 있다고 정리했습니다. 난청, 고혈압, 흡연, 우울, 사회적 고립 같은 것들이요. 자세한 목록은 치매 100건 중 40건은 늦출 수 있습니다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약 없이 하는 이야기라 시시하게 들릴 수 있는데, 숫자로만 보면 지금 확인된 것 중 가장 큰 효과입니다.
💬 전문의 한마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은 잃을 게 없을 때만 성립합니다. 이 경우엔 잃을 게 있었습니다.
저는 이 질문을 하시는 분들을 나무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부모님 기억이 흐려지는 걸 지켜보는 자리에서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대개 "그건 안 됩니다"로 끝내지 않고, 그 마음을 어디에 쓸지를 같이 이야기합니다. 청력 검사를 받아보시는 것, 혈압을 재보시는 것, 일주일에 몇 번은 사람을 만나시게 만드는 것. 효과 없는 약을 미리 먹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크게 남습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기억이 걱정돼 오셨을 때 정말 중요한 건 약을 앞당기는 게 아니라 지금이 어느 단계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노화로 인한 건망증인지, 경도인지장애인지, 아니면 갑상선이나 우울증처럼 되돌릴 수 있는 다른 원인이 섞인 건지에 따라 할 일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미리 먹을 약을 찾기 전에 그 구분부터 받아보시는 편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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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경도인지장애에서 비타민 E와 도네페질 3년 무작위 시험(769명,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05): PubMed
- 경도인지장애에 대한 콜린에스터라제 억제제 코크란 리뷰(9편 5,149명, Cochrane Database of Systematic Reviews 2012): PubMed · Cochrane Library
- 경도인지장애에서 갈란타민의 안전성과 효과(Neurology 2008): PubMed
- 전임상 알츠하이머병 대상 도나네맙 예방 시험 기초 자료(Alzheimer's & Dementia 2025): PMC
- 초기 알츠하이머병에서 레카네맙 3상 시험 CLARITY-AD(1,795명,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23): PubMed
- 레켐비 국내 허가(2024년 5월,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인지장애 또는 경증 알츠하이머병): 식품의약품안전처
- 은행잎 추출물의 치매 예방 무작위 시험 GEM(3,069명, JAMA 2008): PubMed
- 은행잎 추출물의 알츠하이머병 예방 시험 GuidAge(Lancet Neurology 2012): Lancet Neurology
- 콜린알포세레이트와 뇌졸중 위험(국민건강보험 자료, 50세 이상 약 1,200만 명): 서울대학교병원
- 콜린알포세레이트 임상재평가 중간 결과 보도(2026년 7월): 한국경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