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이라는 숫자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세계적인 의학 학술지 란셋이 꾸린 치매 위원회는 여러 나라의 연구자들이 모여 방대한 문헌을 검토하는 프로젝트인데, 2020년 보고서의 결론이 바로 이 숫자였습니다. 전 세계 치매의 약 40%, 그러니까 100건 중 40건 정도가 조절 가능한 12가지 위험요인과 연결되어 있고, 이론적으로는 그만큼을 예방하거나 늦출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1.
치매만큼 무력감을 주는 병명이 드뭅니다. 진료실에서도 부모님 걱정으로 오신 분들이 "결국 운이잖아요"라고 말씀하시는 걸 자주 듣습니다. 절반은 맞는 말입니다. 나이와 유전은 바꿀 수 없고, 12가지를 다 지켜도 걸릴 사람은 걸립니다. 하지만 100건 중 40건이 걸린 판이라면, 이것은 운에만 맡길 게임이 아닙니다. 이 보고서가 특별한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12가지를 나이대별로, 그러니까 인생의 어느 구간에 어떤 항목을 관리해야 하는지 생애주기표로 정리했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그 표를 따라 걷겠습니다.
이 계산은 어떻게 나왔나
먼저 숫자의 성격을 밝혀 두겠습니다. 위원회는 각 위험요인이 치매 위험을 얼마나 올리는지에 대한 연구들과, 그 요인을 가진 사람이 인구 중 얼마나 되는지를 결합해, "이 요인이 없었다면 치매가 얼마나 줄었을까"를 요인별로 계산하고 합산했습니다. 요인들끼리 겹치는 부분(이를테면 운동 부족과 비만)은 통계적으로 덜어냈고요. 그렇게 나온 합이 약 40%입니다. 실험으로 증명된 값이 아니라 관찰 자료에 기반한 추정치라는 한계는 위원회 스스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계산이 힘을 갖는 이유는, 개별 요인과 치매의 연결 고리들이 여러 나라의 장기 추적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핵심 — 12가지는 이렇습니다. 초년(45세 이전)에는 교육. 중년(45~65세)에는 난청, 머리 외상, 고혈압, 과음, 비만. 노년(65세 이후)에는 흡연, 우울증, 사회적 고립, 운동 부족, 대기오염, 당뇨. 이 목록에서 가장 큰 단일 항목은 뜻밖에도 중년의 난청입니다.
이 목록이 처음부터 12개였던 것은 아닙니다. 같은 위원회의 2017년 첫 보고서는 9가지를 꼽았는데, 2020년 개정판에서 새 근거들을 반영해 머리 외상, 과음, 대기오염 세 가지가 추가됐습니다. 근거가 쌓이면 목록이 늘어나는 살아 있는 문서라는 뜻이고, 뒤집어 말하면 여기 적힌 것이 전부라는 보장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이제 나이대별로 보겠습니다.
초년: 배움은 뇌의 잔고입니다
첫 항목은 교육입니다. 학교를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치매 위험이 낮다는 것은 여러 나라에서 반복 확인된 결과인데, 보고서는 전 세계 치매의 7% 가량을 부족한 교육 기회와 연결했습니다. 공부가 뇌를 지키는 이유로 연구자들이 꼽는 것이 인지예비능이라는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뇌의 저축입니다. 병리적 변화가 같은 정도로 진행돼도, 잔고가 두둑한 뇌는 우회로를 만들어 증상 없이 더 오래 버팁니다.
여기서 오해 하나를 걷어내야 합니다. 이 항목은 학위 이야기가 아니라 뇌를 쓰는 습관 이야기이고, 창구는 평생 열려 있습니다. 새 언어, 새 악기, 새 일. 낯선 것을 배우는 행위 자체가 예금입니다. 초년에 기회가 적었던 분일수록 중년 이후의 배움이 더 귀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뒤늦게 한글을 배워 시를 쓰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방송에 나올 때, 저는 그것을 미담이 아니라 훌륭한 뇌 건강 실천 사례로 봅니다. 다만 정직하게 덧붙이면, 두뇌 게임 몇 판으로 예금이 쌓인다는 근거는 약합니다. 핵심은 난이도와 새로움입니다. 이미 잘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보다, 서툴러서 진땀이 나는 것을 배우는 쪽이 예금액이 큽니다.
중년: 귀와 혈관을 지키는 20년
45세부터 65세 사이는 목록이 가장 붐비는 구간입니다. 난청, 머리 외상, 고혈압, 과음, 비만. 공통점이 보이실 겁니다. 하나같이 "당장은 사는 데 지장 없는" 문제들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래서 20년씩 방치됩니다.
가장 큰 항목인 난청부터 보겠습니다. 미국 볼티모어에서 성인 639명의 청력을 검사해 두고 십수 년을 추적한 존스홉킨스대학교 연구에서, 치매 발생 위험은 경도 난청에서 약 2배, 중등도 난청에서 약 3배, 고도 난청에서 약 5배로 계단식으로 올라갔습니다2. 잘 안 들리는 뇌는 대화를 해독하는 데 자원을 소진하고, 알아듣기 힘든 자리를 피하다 보면 고립이 따라오고, 들어오는 자극 자체가 줄어듭니다. 그런데 이 항목이 반가운 이유가 있습니다. 개입 수단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란셋 위원회는 보청기 사용이 난청에 따르는 초과 위험을 줄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명시했습니다. 한국처럼 보청기를 "노인 티 나는 물건"으로 미루는 문화에서는 특히 뼈아픈 대목입니다. 안경은 30대에도 쓰면서, 보청기는 왜 자존심 문제가 되어야 할까요. TV 볼륨을 자꾸 올린다는 말을 가족에게 들었다면, 그것이 청력검사를 받을 신호입니다.
혈압도 중년에 승부가 갈립니다. 중년의 고혈압은 수십 년에 걸쳐 뇌혈관을 상하게 해 혈관성 치매뿐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위험도 끌어올립니다. 위원회는 수축기 혈압 130 이하 유지를 목표로 권고했습니다. 두통도 어지럼도 없는 혈압 140을 "그 정도야 뭐"로 넘기는 것이 한국 중년의 흔한 풍경인데, 치매 예방의 관점에서 혈압약은 가장 검증된 뇌 보호 수단 중 하나입니다.
술 항목은 한국 독자에게 특히 할 말이 많은 대목입니다. 위원회가 선을 그은 지점은 영국식 주당 21단위, 순수 알코올로 약 170그램인데, 국내에서 흔한 소주로 환산하면 대략 서너 병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주말마다 두 병씩이면 이미 그 선을 넘나든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치매 무섭다"는 말과 "오늘만 마시자"는 말이 같은 술자리에서 나오는 광경을 생각하면, 이 항목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머리 외상 항목도 마찬가지로 생활의 문제입니다. 권투선수 이야기가 아니라,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헬멧, 사다리 작업, 노년의 낙상 예방 같은 평범한 장면들의 이야기입니다. 과음, 비만, 머리 외상까지, 중년 항목의 관리 원칙은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혈관과 뇌에 누적되는 잔손상을 줄일 것.
노년: 계속 움직이고, 계속 만나기
65세 이후의 목록은 흡연, 우울증, 사회적 고립, 운동 부족, 대기오염, 당뇨입니다. 이 중 한국 사회가 가장 못 하고 있는 항목을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고립을 꼽겠습니다. 배우자와 사별하고, 은퇴로 직장 관계가 끊기고, 자녀는 멀리 살고. 이렇게 사람과의 접촉이 끊긴 뇌는 난청의 뇌와 같은 길을 갑니다. 자극이 마르는 길입니다. 사회 활동은 여흥이 아니라 인지 훈련입니다. 대화 한 번에 상대의 표정을 읽고, 기억을 꺼내고, 말을 고르는 작업이 동시에 돌아가니까요. 경로당이든 종교 모임이든 오랜 친구와의 전화든, 형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기적일 것, 그것만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항목은 앞의 난청과 한 몸입니다. 안 들리면 모임이 고역이 되고, 모임을 피하면 더 고립됩니다. 부모님이 모임에 뜸해지셨다면 "성격이 변하셨나"보다 "귀가 힘드신가"를 먼저 의심해 보세요. 보청기 하나가 사회생활을 통째로 돌려놓는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운동은 목록 전체를 관통하는 항목입니다. 위원회는 중년과 노년의 꾸준한 운동을 권고하는데, 운동이 비만·당뇨·고혈압을 함께 끌어내리기 때문에 사실상 여러 칸을 동시에 지우는 수입니다. 격렬할 필요도 없습니다. 숨이 약간 차는 빠른 걷기를 주 몇 회, 그것부터가 시작입니다. 흡연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고, 한 가지만 덧붙이면 끊는 나이에 상한이 없습니다. 노년의 금연도 위험을 낮춥니다.
당뇨와 대기오염은 개인의 손이 절반만 닿는 항목들입니다. 당뇨는 정기 검진과 관리로 상당 부분 대응할 수 있고, 그 관리가 혈관을 지키는 일과 겹칩니다. 대기오염은 개인이 통제하기 어렵지만, 미세먼지가 심한 날의 실외 활동 조정이나 실내 공기 관리처럼 손닿는 부분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위원회가 이 항목을 넣은 것은 개인에게 숙제를 주기 위해서라기보다 정책을 향한 요구에 가깝습니다. 예방이라는 것이 개인의 각오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짊어질 일이라는 관점은, 이 보고서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이기도 합니다.
노년의 우울증은 따로 짚을 가치가 있습니다. 우울증은 치매의 위험요인이면서 동시에 치매의 초기 신호일 수도 있어서, 연구자들도 이 둘의 선후를 조심스럽게 다룹니다. 실무적인 결론은 단순합니다. 노년의 우울을 "나이 들면 다 그렇지"로 뭉개지 말고 치료할 것. 우울증 치료는 그 자체로 삶의 질 문제이고, 뇌 건강 문제이기도 합니다. 진료실에서 노년의 우울은 유독 다른 이름표를 달고 옵니다. 여기저기 아프다, 입맛이 없다, 잠이 안 온다, 기운이 없다. "우울하다"는 말은 정작 맨 마지막에야 나오거나 끝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알아채야 하는 병이기도 합니다. 좋아하던 것에 시들해지고, 말수가 줄고, "살 만큼 살았다"는 말이 잦아진다면, 그것은 노화의 풍경이 아니라 진료가 필요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을 덧붙이면, 이 목록에는 은퇴 시점이 없습니다. 몇 살에 읽고 있든, 오늘 시작하는 관리가 내일의 위험보다 늦지 않습니다. 일흔에 시작한 걷기와 보청기가 무의미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고, 위원회의 표현대로 예방에는 너무 이른 때도, 너무 늦은 때도 없습니다. 참고로 잠은 이 12가지 목록에 들어 있지 않지만, 수면과 치매의 연결고리는 연구가 활발한 주제입니다. 자는 동안 뇌가 노폐물을 씻어낸다는 가설은 수면과 뇌 청소 이야기에서 다뤘습니다.
'예방할 수 있다'가 '걸린 사람 탓'이 되지 않으려면
여기까지 읽고 마음이 무거워진 분이 계실 겁니다. 특히 이미 치매 진단을 받은 가족이 있는 분들은요. 그래서 이 문단은 브레이크입니다.
40%는 집단의 산수이지, 개인의 성적표가 아닙니다. 저 숫자는 "12가지가 사라진 세상이라면 치매가 얼마나 줄었을까"를 인구 전체에 대해 계산한 이론값이지, "당신이 관리하면 당신의 위험이 40% 줄어든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12가지를 모범적으로 관리하고도 치매에 걸리는 사람이 있고, 담배를 평생 피우고도 정정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머지 60%의 자리, 그러니까 나이와 유전처럼 누구도 고를 수 없었던 몫이 여전히 더 크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확률은 마을 전체에 내리는 비 같은 것이어서, 누가 젖을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부모님의 치매 앞에서 "보청기를 진작 해 드렸더라면"으로 자신을 심문하는 일은 부디 멈추시길 바랍니다. 그 계산에는 답이 없고, 답이 없는 문제로 자신을 벌하는 것은 돌봄에도 해롭습니다. 예방 이야기는 앞으로 걸어갈 사람들을 위한 지도이지, 이미 병을 만난 사람을 재판하는 근거가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기억력 걱정을 하고 계신 분이라면, 걱정의 정체부터 가리는 것이 순서입니다. 나이 들며 생기는 건망증과 병적인 기억 저하는 결이 다릅니다. 그 구분법은 건망증과 치매를 가르는 법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마지막으로, 오늘부터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을 남깁니다. 전부 하려 들지 말고, 이번 달에 하나만 고르셔도 됩니다.
- [ ] 최근 1년 안에 혈압을 재 본 적이 있다 (130을 넘으면 진료 상담)
- [ ] TV 소리·전화 통화가 예전보다 힘들지 않은지 스스로와 가족에게 물었다 (해당되면 청력검사)
- [ ] 숨이 약간 차는 걷기를 주 3회 이상 하고 있다
- [ ]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다
- [ ] 술자리가 주 2회를 넘지 않는다
- [ ] 담배를 피우지 않거나, 금연 계획이 있다
- [ ] 당뇨·혈당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는다
- [ ] 자전거·오토바이를 탈 때 헬멧을 쓴다
- [ ] 최근에 새로 배우기 시작한 것이 하나 있다
- [ ] 2주 이상 가라앉은 기분이 계속된다면, 나이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진료를 받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