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 앉은 정신과 의사는 대개 차분해 보입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적당한 순간에 메모를 하고, "그러셨군요" 하고 말하죠. 그 모습을 보며 많은 분이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아, 이 사람은 답을 알고 있구나.'
고백하자면 — 자주, 아닙니다.
차분한 얼굴 뒤에서 벌어지는 일
한 분이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면, 제 머릿속에서는 사실 꽤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건 우울일까, 지쳐 있는 걸까. 약을 권해야 하나,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 지금 이 말을 하면 위로가 될까, 오히려 부담이 될까.' 겉으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지만, 속으로는 여러 갈래 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겁니다.
정신과에는 유명한 딜레마가 하나 있습니다. 한 정신과 의사가 블로그에 쓴 표현을 빌리면, 의사는 늘 두 가지 태도 사이에서 흔들린다고 합니다(Scott Alexander, *Two Attitudes in Psychiatry*). 하나는 "환자가 자기에게 뭐가 필요한지 제일 잘 안다"고 믿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존중하는 태도. 다른 하나는 "사람 마음은 복잡하니 그 말 뒤에 뭔가 더 있을지 모른다"며 한 겹 더 들여다보는 태도.
문제는, 어느 쪽이 정답인지 그 순간에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곧이곧대로 들으면 정작 중요한 걸 놓칠까 두렵고, 너무 깊이 파고들면 "당신은 당신을 몰라요"라고 말하는 오만이 될까 두렵습니다. 저는 매 진료마다 이 줄타기를 합니다. 그리고 자주 흔들립니다.
'확신에 찬 의사'라는 환상
환자분들이 원하는 건 대개 확신입니다. "이건 이런 병이고, 이 약을 먹으면 낫습니다." 딱 떨어지는 대답이요. 그 마음을 압니다. 저라도 그러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마음의 문제 앞에서 그런 깔끔한 확신은 대체로 연기이거나, 위험한 자만입니다. 사람은 혈액검사 수치처럼 딱 떨어지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언젠가부터, 잘 모르겠는 순간에 아는 척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저도 확실치 않아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해보고, 다음에 만나서 같이 살펴봐요"라고 말하기로요.
이 말을 처음 꺼낼 땐 겁이 났습니다. 신뢰를 잃을까 봐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많은 분이 오히려 그때 표정이 풀립니다. 완벽한 답보다, 함께 헤매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더라고요.
사실, 흔들리는 게 자격입니다
정신의학의 역사에는 흥미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울증을 앓으면서 그 병을 연구하고 환자를 도운 임상심리학자(케이 레드필드 재미슨), 스스로 극심한 우울을 통과한 뒤 그 경험으로 글을 쓴 사람들. 이들이 좋은 치료자가 된 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흔들려 봤기 때문입니다.
아픔의 한복판이 어떤 곳인지 아는 사람은, 진료실 건너편에 앉은 이를 "환자"라는 단어 하나로 정리해버리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저 담담한 얼굴 뒤에 얼마나 많은 밤이 있었는지를 상상하게 됩니다. 그 상상력은 확신에서 오지 않습니다. 내 안의 흔들림에서 옵니다.
제가 진짜로 드릴 수 있는 것
그래서 저는 진료실에서 이런 마음을 품습니다. 나는 당신의 병을 단번에 꿰뚫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 옆에서 같이 지도를 들여다보는 사람이라고요. 길을 다 아는 안내자가 아니라, 함께 걷다가 "이쪽인 것 같은데, 아니면 돌아오면 되죠" 하고 말해주는 동행에 가깝습니다.
거창한 해결책은 대개 없습니다. 제가 실제로 건네는 건 그보다 작은 것들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것.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이번에 이게 안 맞으면 다음에 다른 걸 같이 찾아보자고 약속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그 방 안에서 느끼게 해드리는 것.
그러니, 흔들리는 저를 믿어주세요
혹시 담당 선생님이 "음, 이건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 그건 무능해서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오히려 당신을 함부로 규정하지 않으려는 정직함일 수 있어요.
확신에 찬 얼굴로 앉아 있지만, 사실 저도 자주 흔들립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흔들림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건 제가 당신을, 하나의 병명이 아니라 끝까지 알아가야 할 한 사람으로 대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당신이 답을 몰라 헤매는 그 자리에, 저 역시 완전한 답 없이 함께 앉아 있겠습니다. 어쩌면 치료란, 그 함께 앉아 있는 시간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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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신과 의사가 진료실 밖에서 편하게 쓰는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특정한 진단이나 치료에 대한 조언이 아니며, 마음이 힘드시다면 혼자 견디지 마시고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나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24시간)의 문을 두드려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