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의 정신과 의사는 대체로 침착해 보입니다. 알맞은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이고, 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메모를 하고, "아, 그러셨군요" 하고 낮게 말하죠. 그 장면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이 사람은 지금 답을 알고 있구나.
미리 말씀드리자면, 자주 아닙니다. 꽤 자주요.
그 차분한 얼굴 뒤에서
누군가 맞은편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면, 겉의 정적과 달리 제 머릿속은 상당히 어수선해집니다. 이건 우울인가, 그냥 오래 지쳐 있는 건가. 오늘 약 이야기를 꺼낼까, 아니면 한 번 더 기다려볼까. 방금 떠오른 이 말을 하면 위로가 될까, 괜히 짐을 하나 더 얹는 걸까.
그러니까 저는 조용히 끄덕이는 동안, 속으로는 갈림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셈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건 저뿐이라 다행이지, 만약 머릿속이 자막으로 나온다면 진료는 그날로 끝날 겁니다.
정신과에는 오래된 딜레마가 하나 있습니다. 한 정신과 의사가 블로그에 남긴 표현을 빌리면, 의사는 늘 두 가지 태도 사이에서 흔들린다고 해요1. 하나는 환자가 자기에게 뭐가 필요한지 제일 잘 안다고 믿고, 그 말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 다른 하나는 사람 마음이란 원래 복잡한 것이니 그 말 뒤에 뭔가 더 있을지 모른다며 한 겹 더 들춰보는 태도.
곤란한 건 이겁니다.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그 순간에 알 수가 없습니다. 곧이곧대로 들으면 정작 중요한 걸 흘려보낼까 겁이 나고, 너무 파고들면 "당신은 당신을 모르시는군요"라고 말해버리는 오만이 될까 겁이 납니다.
이 줄타기를 저는 매 진료마다 합니다. 그리고 심심찮게 휘청거립니다.
'확신에 찬 의사'라는 환상
찾아오시는 분들이 원하는 건 대개 확신입니다. 이건 무슨 병이고, 이 약을 먹으면 낫습니다 — 딱 떨어지는 문장. 그 마음을 모를 리가요. 제가 환자였어도 똑같이 원했을 겁니다. 아니, 더 집요하게 물었겠죠.
다만 마음의 문제 앞에서 그렇게 깔끔한 확신은 대개 연기이거나, 위험한 자만입니다. 사람이 혈액검사 수치처럼 정리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잘 모르겠는 순간에 아는 척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저도 확실치 않아요. 그런데 우선 이렇게 한번 해보고, 다음에 만나서 같이 살펴봐요." 이렇게요.
처음 이 말을 입 밖에 낼 땐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신뢰가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웬걸, 그 대목에서 오히려 표정이 풀리는 분이 많았습니다. 완벽한 답이 아니라, 같이 헤매줄 사람이 필요했던 겁니다.
흔들려 봤다는 게 자격이 되기도 합니다
정신의학의 역사에는 흥미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울증을 앓으면서 그 병을 연구하고 환자를 도운 임상심리학자(케이 레드필드 재미슨). 극심한 우울을 제 몸으로 통과한 뒤 그 경험으로 글을 쓴 사람들. 이들이 좋은 치료자가 된 이유는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흔들려 봤기 때문입니다.
아픔의 한복판이 어떤 풍경인지 아는 사람은, 건너편에 앉은 이를 '환자'라는 두 글자로 정리해버리지 못합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용기가 얼마나 필요했을지, 저 담담해 보이는 얼굴 뒤에 몇 개의 밤이 쌓여 있는지를 자꾸 상상하게 되니까요.
그 상상력은 확신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제 안의 흔들림에서 나옵니다.
제가 실제로 드릴 수 있는 것
그래서 저는 진료실에서 이런 마음을 품고 앉아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병을 단번에 꿰뚫어보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 옆에서 같이 지도를 들여다보는 사람이라고요. 길을 다 외운 안내자보다는, 함께 걷다가 "이쪽인 것 같은데, 아니면 돌아오면 되죠" 하고 말해주는 동행 쪽에 훨씬 가깝습니다.
거창한 해결책은 대개 없습니다. 제가 진짜로 건네는 건 훨씬 소박한 것들이에요. 이야기를 중간에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듣는 것.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이번에 이 약이 안 맞으면 다음에 다른 걸 같이 찾아보자고 약속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방 안에 있는 동안만큼은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해드리는 것.
그러니 흔들리는 저를 믿어주세요
혹시 담당 선생님이 "음, 이건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무능해서일 가능성은 생각보다 낮습니다. 오히려 당신을 함부로 규정하지 않으려는 정직함일 수 있어요. 확신은 말하기 쉽고, 유보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확신에 찬 얼굴로 앉아 있지만 사실 저도 자주 흔들립니다. 다만 이제는 그게 부끄럽지 않습니다. 흔들린다는 건 제가 당신을 하나의 병명으로 접어두지 않고, 끝까지 알아가야 할 한 사람으로 대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당신이 답을 몰라 헤매는 그 자리에, 저 역시 답 없이 함께 앉아 있겠습니다. 어쩌면 치료라는 건 거기서부터 슬며시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정신과 의사가 진료실 밖에서 편하게 쓰는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특정한 진단이나 치료에 대한 조언이 아니며, 마음이 힘드시다면 혼자 견디지 마시고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나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24시간)의 문을 두드려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