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가 들은 이야기들을, 저는 아무에게도 하지 못합니다.

집에 가서 식탁에 앉으면 누가 묻습니다. "오늘 어땠어?" 저는 대개 "그냥 뭐, 늘 똑같지" 하고 반찬 그릇을 당깁니다. 거짓말은 아닙니다. 다만 참말도 아닙니다. 사실 오늘 제 안에는, 늘 똑같지 않은 것들이 한 트럭 들어와 있거든요. 처음 만난 사람이 이십 년 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문장을, 제 앞에서 처음으로 소리 내어 말한 그런 것들이요. 그런데 그걸 저는 저녁 식탁에서 꺼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삼킵니다. 밥과 함께요.

이게 이 직업의 가장 이상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먼저 하나 분명히 해두겠습니다. 이 글에는 어떤 비밀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종류조차 적지 않을 겁니다. "이를테면 이런 걸 듣는다"는 예시 한 줄이 특정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할 수 있다는 걸, 저는 압니다. 그래서 이 글은 비밀의 내용이 아니라, 비밀을 안고 사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글입니다. 재료는 다 빼고 그릇 이야기만 하는 셈이죠. 조금 이상한 요리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게 제가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자, 그럼 그릇 이야기부터.

진료실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 중에 제가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한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 온 분이 자리에 앉습니다. 서로 안 지 삼 분쯤 됐습니다. 이름과 나이, 오게 된 이유 정도를 물었을 뿐이에요. 그런데 그다음 순간, 그분이 숨을 한 번 고르더니, 태어나서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 없다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배우자도, 부모도, 십년지기 친구도 모르는 이야기를요.

저는 이 순간이 매번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보통 어떤 사람을 몇 년쯤 알아야, 술을 몇 번쯤 같이 마셔야, 그제야 마음 한구석을 조금 열까 말까 합니다. 그런데 이분은 저를 삼 분 전에 처음 봤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말이 무거운지 가벼운지, 믿을 만한지 하나도 모릅니다. 아는 거라곤 제 가운 왼쪽에 달린 명찰과, 이 방의 문이 닫혀 있다는 것뿐이에요. 그런데도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마 그 닫힌 문과, "여기서 한 말은 여기 두고 가셔도 됩니다"라는 무언의 약속. 그게 몇 년어치 신뢰를 대신하는 거겠죠.

저는 이걸 매번 영광이라고 느낍니다. 정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맡기기로 한 그 결정 앞에서, 어떻게 안 그럴 수 있겠어요.

그런데 영광에는 뒷면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진료가 끝났다고 해서 그분과 함께 문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상당 부분이 제 안에 남습니다. 저는 그걸 안고 다음 분을 맞고, 그다음 분을 맞고, 그렇게 하루치 이야기를 겹겹이 쌓은 채로 가운을 벗습니다. 가운은 옷걸이에 걸어두고 나오는데, 이야기들은 그렇게 걸어둘 데가 없더라고요. 그냥 저를 따라 나옵니다. 지하철에도, 저녁 식탁에도, 가끔은 잠자리에까지요.

비밀유지는 법이자 윤리입니다. 저는 이걸 배웠고, 지켜야 하고, 지킵니다. 여기엔 토를 달 게 없어요.

그런데 아무도 잘 말해주지 않는 게 하나 있습니다. 비밀을 지키는 데에는 감정적인 몫도 든다는 것. 법은 "말하지 마라"까지만 규정합니다. 그 말하지 않은 것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안고 살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이건 생각보다 무거운 짐입니다. 말한다는 건 원래 덜어내는 행위인데, 이 직업은 그 덜어냄의 통로 자체가 막혀 있는 셈이니까요. 저는 하루 종일 남들의 짐을 덜어주는 사람인데, 정작 그 과정에서 제게 옮겨온 무게는 어디에도 못 내려놓습니다.

이 대목에서 살짝 웃긴 장면 하나가 떠오릅니다.

동창회에 갔을 때 일입니다. 다들 오랜만에 만나 근황을 주고받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각자 조금씩 자기를 부풀리거나 감추고 있어요. 승진했다는 이야기는 크게, 힘든 이야기는 작게. 그게 동창회의 예의니까요. 다들 자기 패는 슬쩍 숨긴 채로 웃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탁에 저 혼자, 이 사람들 것도 아닌 남의 깊은 사정을 한 아름 안고 앉아 있는 겁니다. 정작 제 것은 하나도 못 꺼내면서, 세상의 무거운 이야기는 잔뜩 들고서요.

누가 "너는 요즘 별일 없냐" 물으면 저는 "어, 뭐 그냥 사람들 이야기 듣는 거지" 하고 맥주를 마십니다. 그 "그냥 사람들 이야기"라는 말이 얼마나 태연한 축소인지, 저만 압니다. 세상에서 제일 조용한 허풍쟁이가 된 기분이에요. 남의 비밀은 세상에서 제일 많이 아는데, 그 어느 것도 자랑할 수 없는 사람.

가끔은 이게 좀 외롭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요.

우리는 흔히 정신과 의사를 '들어주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들어준다는 건, 계속 무언가를 받아 담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릇은 계속 채워지는데 비우는 밸브가 없으면, 언젠가는 넘칩니다. 이걸 학문적으로는 이차 외상이니 공감 피로니 하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남의 이야기를 오래 받아내는 사람의 마음에도 자국이 남는다는 건, 이미 여러 연구가 조심스럽게 확인해 온 사실이기도 하고요1. 물론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덜 지치는 건 아니더군요. 진단명을 안다고 그 증상이 저를 봐주진 않으니까요. 이건 제가 반대편 의자에 앉아 봤던 이야기와도 이어지는 데가 있습니다. 남의 마음을 매일 만지는 손끝에는, 아무리 조심해도 그 물이 조금씩 뱁니다.

그렇다고 이 짐이 다 괴로움뿐이라고 말하면, 그건 또 거짓말입니다. 미화도 싫지만 엄살도 싫어서, 여기선 정확히 말하고 싶어요.

사실 저는 이 무게를, 어떤 날은 조용히 사랑합니다.

누군가 평생 처음으로 어떤 이야기를 소리 내어 말하고, 그러고 나서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가는 걸 볼 때가 있습니다. 몇십 년을 혼자 지고 온 것을, 방금 여기 반쯤 내려놓은 사람의 얼굴이요. 그럴 때 저는 압니다. 방금 저는 세상에서 가장 사적인 방에 초대받았고, 이 사람은 방금 조금 가벼워졌다는 걸. 그 순간을 위해서라면, 저는 그 이야기를 안고 집에 가는 저녁 몇 개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습니다. 이게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의 큰 부분입니다. 비밀을 맡긴다는 건, 결국 저를 믿어준다는 뜻이니까요. 그 신뢰는 아무 데서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제 안에 쌓이는 이 이야기들은, 짐이면서 동시에 훈장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다만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훈장이라는 게 좀 아이러니할 뿐이죠. 가슴 안쪽에만 달아두는 훈장이요.

여기서 딱 하나,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있습니다. 오해가 생기면 안 되는 부분이라서요.

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는 원칙에는, 아주 좁지만 분명한 예외가 있습니다. 앞에 앉은 분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칠 급박한 위험에 있을 때. 그때는 비밀보다 안전이 먼저입니다. 이건 제가 인정 없어서가 아니라, 살아 계셔야 다음 이야기도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밀은 다음에도 지킬 수 있지만, 생명은 지금 아니면 못 지키니까요. 이 예외의 정확한 경계가 궁금하시면 진료 기록과 비밀유지가 법적으로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따로 정리해 둔 글이 있습니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은 하나예요. 이 예외는 여러분을 감시하기 위한 게 아니라, 최악의 순간에 여러분 편에 서 있기 위한 장치라는 것.

혹시 지금 스스로를 해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부디 혼자 두지 마세요.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 ☎ 1577-0199(24시간)나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오면.

가끔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이야기를 매일 듣고 어떻게 멀쩡히 사느냐고. 솔직히 말하면, 항상 멀쩡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유난히 오래 남아서, 그날 밤 저를 뒤척이게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제가 배운 방법이 하나 있어요. 저에게도 이야기를 내려놓을 곳을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그 방의 규칙을 지킵니다. 신상은 다 지운 채로, 이름도 얼굴도 사연도 알아볼 수 없게 각색하고 일반화해서, 오직 '내 마음이 왜 이렇게 무거운가'라는 부분만 꺼내 놓습니다. 동료 의사들과의 사례 모임이 그렇고, 저를 봐주는 다른 선생님과의 시간이 그렇습니다. 남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저는 제 마음을 정직하게 돌봐야 하더라고요. 넘치는 그릇으로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으니까요.

이 대목이 조금 우습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혼자 견디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정작 자기 무게 앞에서는 그 말을 까맣게 잊고 혼자 버티려 하거든요. 저는 그 모순을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야 겨우 배웠습니다. 나에게도 밸브가 필요하다는 걸요.

그래서 이 글은 어떤 결론으로 예쁘게 묶이지 않습니다. 묶을 수가 없어요.

저는 내일도 출근할 거고, 내일도 누군가는 삼 분 만에 평생의 비밀을 제 앞에 내려놓을 겁니다. 저는 그걸 또 영광스럽게 받아 들 거고, 또 혼자 안고 퇴근할 거고, 또 저녁 식탁에서 "그냥 뭐, 늘 똑같지" 하고 반찬 그릇을 당길 겁니다. 이 반복은 아마 제가 이 일을 그만두는 날까지 이어지겠죠.

다만 오늘은, 그 "늘 똑같지"라는 말 뒤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딱 한 번 여기에 적어두고 싶었습니다. 내용은 하나도 없이, 무게만요.

혹시 언젠가 진료실에서 저를 만나 무언가를 어렵게 꺼내신다면, 그리고 문을 나서면서 '저 사람이 이걸 정말 안고 갈까' 잠시 의심이 드신다면. 네, 안고 갑니다. 어디에도 흘리지 않고, 식탁에서도 동창회에서도 꺼내지 않고, 저 혼자 그 무게로 안고 갑니다.

그게 제가 당신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약속입니다.


이 글은 정신과 의사가 진료실 밖에서 쓰는 개인적인 에세이이며, 특정한 진단·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글 안의 어떤 서술도 실제 환자의 사례가 아니며, 비밀유지를 위해 의도적으로 내용을 비운 채 감정과 상황만 일반화해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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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은근히 기댄 자료

  • 정신건강 종사자에게 이차외상(STS)은 드물지 않으며(연구에 따라 19~70%), 종사자 본인의 트라우마 경험과도 관련이 있다: Henderson 등, Journal of Psychiatric and Mental Health Nursing, 2025. PMC

참고문헌

  1. 정신건강 종사자의 이차외상 체계적 고찰,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