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면 꼭 한 번씩 듣는 말이 있습니다.

"의사 가족이라 든든하시겠어요."

저는 그때마다 웃으면서 "그럼요" 하고 넘깁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조금 켕깁니다. 왜냐하면 사실은, 정반대에 가깝거든요. 제 식구가 진짜로 아플 때, 저는 이 집에서 제일 침착한 사람이 아니라 제일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건 좀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남의 마음이 무너지는 자리에는 십수 년을 앉아 있었으면서, 정작 제 사람 앞에서는 그 훈련이 통째로 증발해 버리니까요.

먼저 사소한 것부터 실토하겠습니다. 저는 감기 진단도 잘 못 합니다.

정확히는, 남의 감기는 봅니다. 그런데 제 아이가 밤에 열이 오르면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져요. 진료실에서라면 3초면 끝날 판단이, 제 아이 이마에 손을 얹는 순간 열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그냥 감기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데도, 그 압도적인 확률이 제 눈에는 안 보입니다. 대신 아주 드물고 무서운 것들의 목록이 밤새 저를 찾아옵니다. 배운 게 죄라면 죄예요. 아는 게 많다는 건, 최악을 상상할 재료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집에는 웃픈 규칙이 하나 생겼습니다. 식구가 아프면, 저 말고 옆 동네 소아과에 간다는 것.

가족들은 이걸 두고 가끔 서운해합니다. "의사면서 그것도 안 봐줘?" 어릴 적 제 조카는 제가 청진기 한 번 안 대준다고 삐쳐서 한동안 저를 '가짜 의사'라고 불렀습니다. 억울하지만 반박을 못 했어요. 걔 입장에선 맞는 말이거든요. 저는 남의 아이는 보는데 제 조카는 안 보는, 이상한 의사니까요.

사실 아무도 아프지 않을 땐 정반대입니다. 평소의 저는 집안의 24시간 상담 창구예요. 친척 단톡방에는 시도 때도 없이 알약 사진이 올라옵니다. "이거 먹어도 되니?" "이 수치 큰일 난 거 아니야?" 명절 밥상에서는 옆자리 큰아버지가 슬그머니 팔을 걷어붙이시고, 건너편에서는 누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발진 사진을 코앞에 들이밉니다. 저는 그때마다 꽤 성심껏 답합니다. 웃긴 건, 그 순간의 저는 놀랄 만큼 침착하다는 거예요. 남의 감기, 남의 발진, 남의 걱정이니까요. 문제는 딱 하나입니다. 그 '남'이 제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순간, 그 침착함이 거짓말처럼 증발한다는 것.

이 이상한 규칙에는 사실 그럴듯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 혼자 정한 게 아니에요.

의료윤리에는 오래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의사는 원칙적으로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직접 진료하지 않는다는 것. 미국의사협회 윤리강령에도 "의사는 일반적으로 자신이나 자기 가족 구성원을 치료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혀 있습니다1. 응급이거나 아주 사소한 경우 정도만 예외로 두고요.

처음 이 조항을 배웠을 땐 좀 야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이 아픈데 의사가 손 놓고 있으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죠. 그런데 이 일을 오래 하고 나서 알았습니다. 이건 무책임을 허락하는 조항이 아니라, 오히려 책임이 뭔지 아는 사람이 만든 조항이라는 걸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는 제 가족 앞에서 객관적일 수가 없거든요.

진료실에서 저는 냉정합니다. 냉정하다는 건 차갑다는 뜻이 아니라, 감정과 판단 사이에 안전거리를 둔다는 뜻이에요. 환자분이 우셔도 저는 다음에 뭘 물어야 할지를 동시에 생각합니다. 그 거리가 있어야 헛다리를 안 짚고, 과잉으로도 과소로도 흐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안전거리가, 제 사람 앞에서는 0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저는 판단하는 뇌가 아니라 무서워하는 심장으로 그를 봅니다. 봐주고 싶은 마음과 최악을 대비하려는 마음이 한 사람 안에서 멱살을 잡으니, 거기서 멀쩡한 판단이 나올 리가요.

이 차이는 종이 한 장으로도 느껴집니다. 남의 검사 결과는 숫자로 읽혀요. 정상 범위 안이면 넘기고, 벗어나면 다음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제 사람의 결과지는 숫자로 안 읽힙니다. 똑같은 수치인데도 저는 그 뒤에 숨어 있을지 모를 만 가지 이야기를 먼저 상상해 버려요. 남의 결과는 판독하고, 제 사람의 결과는 앓습니다. 같은 종이, 같은 훈련, 같은 눈인데도 그렇습니다.

한번은 가까운 식구가 마음이 무너진 적이 있었습니다. 자세히는 못 적습니다. 각색해서 두루뭉술하게만 말하자면, 제가 매일 진료실에서 다루는 바로 그 종류의 어둠이었어요.

웃긴 건, 그 순간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아무것도 아닌 척'이었다는 겁니다. 남이 같은 이야기를 들고 왔으면 저는 곧장 진지해졌을 텐데, 제 식구 앞에서는 반대로 갔어요. "에이, 그 정도는 다들 그래." 진료실에서라면 절대 안 했을, 제가 제일 싫어하는 그 말을 제 입으로 하고 있더군요. 왜 그랬을까 한참 생각했습니다. 아마 무서웠던 것 같아요. 그게 진짜라고 인정하는 순간, 제가 감당해야 할 최악의 그림들이 밀려올 걸 아니까. 그래서 저는 의사로서 냉정해진 게 아니라, 가족으로서 눈을 질끈 감아버린 겁니다.

그날 제가 배운 게 있습니다. 나는 이 사람의 의사가 될 수 없다는 것. 되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

그래서 저는 제가 제일 잘한다고 믿었던 일을 내려놓았습니다. 직접 붙잡고 고쳐보려는 시도요. 대신 제가 한 건 좀 시시합니다. 좋은 동료를 찾아 연결해 주고, 저는 그냥 가족의 자리로 물러나 앉는 것.

그런데 그 시시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진단은 못 해도 밥은 차릴 수 있어요. 처방은 못 내려도, 약 먹을 시간에 슬쩍 물 한 컵을 떠다 놓을 수는 있습니다. 검사 결과를 대신 해석해 주는 대신, 결과를 기다리는 그 길고 지루한 오후를 그냥 옆에 앉아 같이 견뎌줄 수는 있어요. 의사로서 저는 그 사람에게 별 쓸모가 없었지만, 가족으로서 저는 제법 쓸모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청진기를 내려놓고 나서야 제가 정말로 해줄 수 있는 것이 보이더라고요.

이게 말처럼 쉽진 않았어요. 아는 게 많으니 참견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립니다. 그 동료가 어떤 약을 쓰는지, 왜 그 선택을 했는지, 제 방식과 어디가 다른지 다 보이거든요. 몇 번은 진짜로 전화를 걸어 훈수를 둘 뻔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를 붙잡은 건,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이 참견이 그 사람을 위한 건지 아니면 불안한 나를 달래려는 건지 물어보는 일이었어요. 대부분은 후자였습니다. 제 손을 묶는 게 그 사람을 돕는 길일 때가,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그 동료에게 제 사람을 들여보내던 날, 저는 처음으로 제 직업을 반대편에서 봤습니다. 저는 늘 누군가에게 '맡겨지는' 사람이었는데, 그날은 제가 '맡기는' 사람이었거든요. 낯선 진료실 문 앞에서 저는 속으로 빌었습니다. 부디 저 선생님이 좋은 분이기를. 부디 서두르지 않기를. 부디 제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기를. 매일 제가 받던 그 기도를, 그날은 제가 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그제야 알았습니다. 저를 믿고 문을 밀고 들어온 그 많은 보호자들이, 문 밖에서 정확히 이런 마음으로 서 있었겠구나.

그리고 저는, 제가 늘 앉던 의자의 반대편에 앉아봤습니다. 남의 진료실 보호자석에요.

그 자리는 정말이지 이상한 자리였습니다. 저는 그 방에서 오가는 말을 전부 알아들었어요. 용어도, 검사의 의미도, 다음 단계도 다 압니다. 그런데도 저는 거기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손에 든 진료의뢰서를 몇 번이나 접었다 폈는지 몰라요. 다 아는데도 무서웠습니다. 아니, 어쩌면 다 알아서 더 무서웠습니다. 그 방에서 저는 의사가 아니라, 그냥 자기 사람이 잘못될까 봐 겁에 질린 한 명의 보호자였어요. 제 환자의 보호자들이 늘 앉던 그 자리, 제가 매일 마주 보던 그 얼굴이 그날은 제 얼굴이었습니다.

그 경험이 저를 좀 바꿔놨습니다. 그 뒤로 저는 보호자분들께 "너무 걱정 마세요" 같은 말을 함부로 못 합니다. 그 걱정이 얼마나 안 꺼지는지 이제 몸으로 아니까요. 이건 곁에 있는 법에 대해 쓴 이야기와도 닿아 있고, 저도 반대편 의자에 앉아본다는 고백과도 이어집니다. 결국 다 같은 이야기예요. 흰 가운을 입었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까지 침착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여기서만큼은 원칙을 접습니다.

식구가 스스로를 해치려 하거나, 지금 당장 위험한 상황이라면 — 그때는 경계고 뭐고 없습니다. 객관성을 지키자고 손 놓고 있을 순 없어요. 그런 순간엔 저는 주저 없이 의사도 되고 보호자도 되고 뭐든 됩니다. 일단 안전이 먼저고, 판단의 우아함은 그다음입니다. 다행히 그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지만, 올 때는 확실히 오니까 이 한 줄은 꼭 적어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의사 가족이라 든든하시겠어요"라는 말에, 이제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든든하진 않습니다. 제 식구가 아플 때 저는 명의가 아니라 그냥 잠 못 드는 가족이에요. 다만 한 가지는 드릴 수 있습니다. 언제 제 손을 묶어야 하는지, 언제 좋은 동료의 손에 맡겨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냥 옆에 앉아 있어야 하는지. 그걸 아는 가족이라는 것. 어쩌면 그게, 직접 청진기를 대는 것보다 나은 든든함일지도 모르겠다고, 요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참견하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진 건 아닙니다. 지금도 식구가 콜록거리면 저는 속으로 감별진단을 돌립니다. 다만 입은 다물죠. 대체로는요. 어떤 밤은 그 '대체로'가 기어이 무너져서, 옆 동네 소아과 이름을 검색하는 대신 제 손이 먼저 아이 이마로 갑니다. 그러곤 또 후회하고요. 경계라는 건 한 번 그어두면 끝나는 선이 아니라, 매번 새로 긋는 일이더라고요. 저는 아직도 그 선 앞에서 자주 머뭇거립니다.


이 글은 정신과 의사가 진료실 밖에서 쓰는 개인적인 에세이입니다. 특정 진단·치료를 대신하지 않으며, 글 속 가족 이야기는 신상이 드러나지 않도록 각색·비특정화한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를 해치려는 마음을 비치거나 위급해 보인다면, 경계를 따질 때가 아닙니다.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 ☎ 1577-0199(24시간)나 가까운 응급실·정신건강의학과로 함께 가주세요.

참고문헌

  1. AMA Code of Medical Ethics, Opinion 1.2.1 "Treating Self or Fam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