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립니다. 의자를 조금 뒤로 뺐다가, 다시 당겨 앉습니다. 가방을 무릎에 올렸다 내렸다 합니다. 그리고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하기도 전에, 거의 모든 분이 똑같은 문장을 먼저 꺼냅니다.
"저… 이런 걸로 와도 되나요?"
10년 넘게 이 방에 앉아 있었으니 수천 번은 들었을 텐데도, 이상하게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이 말이 나올 때마다 저는 잠깐 볼펜을 놓습니다. 왜냐하면 저 문장은 증상에 대한 질문이 아니거든요.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제가 아파도 되는 사람인가요?"
진료실에서는 문밖에 다음 분이 기다리고 있어서, 저는 늘 "네, 됩니다" 정도로 짧게 대답하고 맙니다. 오늘은 그 뒤에 하고 싶었던 말을 전부 해보려고요.
우리는 왜 자기 아픔에 먼저 사과할까
생각해보면 좀 이상합니다. 발목이 부러진 사람이 정형외과 접수대에서 "이런 걸로 와도 되나요"라고 묻는 걸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목이 칼칼하면 그냥 이비인후과에 갑니다. 티켓 뽑고, 앉고, 이름 불리면 들어갑니다. 끝.
그런데 마음이 아플 때만, 우리는 병원 문 앞에서 스스로를 재판에 세웁니다. 검사도 나고 변호사도 나고 판사도 납니다. "이 정도면 견딜 만한 거 아닌가." "남들은 더 힘든데 나만 엄살인가." "여기 오면 뭔가… 지는 것 같은데."
그래서 첫 문장이 대개 이렇게 시작됩니다.
"별거 아닌데요…" "제가 좀 유난인 것 같긴 한데…" "다들 이 정도는 힘들잖아요, 그쵸?"
마지막의 "그쵸?"가 저는 늘 마음에 걸립니다. 동의를 구하는 게 아니라, 자기 고통을 취소해달라고 부탁하는 말처럼 들려서요.
그리고 그 "별거 아닌데요" 뒤에 이어진 이야기가 정말로 별거 아니었던 적은, 솔직히 거의 없었습니다. 넉 달째 새벽 세 시면 눈이 떠진다든가. 출근길 2호선에서 이유 없이 숨이 안 쉬어져 두 정거장 전에 내린다든가. 그렇게 좋아하던 게 언제부터 시들해졌는지 세어보니 반년이 넘었다든가. "별거 아니다"라고 스스로를 설득해온 기간이 길수록, 대체로 별거였습니다.
그렇게 미루는 사이,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흐릅니다
여기서 숫자를 하나만 보여드릴게요. 겁주려는 게 아니라 정반대입니다. "당신만 늦은 게 아니에요"라는 말을 하려고 꺼내는 겁니다.
대규모 연구에서, 마음의 병이 처음 시작된 시점부터 실제로 첫 치료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을 추적한 적이 있습니다. 기분 문제(우울·조울)는 중앙값 6~8년. 불안 문제는 9~23년1.
년입니다. 주가 아니라.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게 통계라기보다 어떤 사람의 이십 대 전체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움을 청해도 됐던 순간으로부터 몇 년을 더 혼자 버티다가, 결국 어느 날 문을 엽니다. 그러니 오늘 "이런 걸로 와도 되나" 고민하다 여기까지 스크롤을 내리신 분이 있다면, 늦으셨다는 뜻이 절대 아니고요, 평균보다 훨씬 빠르고 용감하십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 얘기로 오면 마음이 조금 더 복잡해집니다.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의 정신장애 평생 유병률은 27.8%입니다. 살면서 한 번은 겪는 사람이 넷 중 하나. 그런데 그중 정신건강 서비스를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본 사람은 12.1%였습니다2.
풀어 쓰면 이렇게 됩니다. 넷 중 하나가 아픈데, 그중 여덟은 병원에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자리를 오래 지키고 있습니다(2024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약 26명,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습니다. OECD Health at a Glance 2025).
이 두 숫자를 나란히 두고 볼 때마다 저는 늘 같은 데서 걸립니다. 우리가 아픈 게 문제가 아니라, 아프면서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 게 문제라는 것. 그렇게 보면 "이런 걸로 와도 되나요"라는 그 조심스럽고 예의 바른 사과가, 이 나라에서 꽤 위험한 문장일지도 모릅니다.
아픔은 대회가 아닙니다
그럼 대체 왜 우리는 자기 고통에 등급을 매기고, 스스로 자격 심사를 할까요.
많은 분이 마음속에 '고통 순위표'를 하나씩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전쟁을 겪은 사람, 큰 병을 앓는 사람, 나보다 훨씬 사정이 딱한 누군가. 그 표 어딘가에 자기를 억지로 끼워넣고는, 순위가 낮으니 입 다물라고 합니다. "이 정도로 힘들다고 하는 건 사치지."
그런데 이 방에서 제가 매일 확인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아픔은 대회가 아닙니다. 금메달 딴 사람만 시상대에 오르는 종목이 아니에요. 옆 침대 환자가 40도라고 해서 내 38도가 정상 체온이 되지는 않습니다. 체온계는 옆 사람을 보고 눈금을 읽지 않으니까요.
당신의 힘듦이 세상에서 제일 큰 힘듦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당신 것이면 충분합니다.
핵심 — 아파도 되는 '자격' 같은 건 없습니다. 더 힘든 누군가가 어딘가 있다는 사실은, 당신이 지금 힘들다는 사실을 조금도 지워주지 못합니다. 비교로 깎아낸 고통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냥 혼자 참는 고통이 될 뿐입니다.
진료실에서 차마 다 못 한 말
시간이 넉넉하다면, 저는 그 질문에 이렇게 길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네, 됩니다. 당연히 됩니다.
잠이 안 와서 와도 되고요. 이유를 모르겠는데 눈물이 나서 와도 되고요. 특별한 사건은 없는데 그냥 요즘 사는 게 좀 버거워서 와도 됩니다. 남 보기에 멀쩡한 삶이어도 됩니다. 피검사에서 아무것도 안 나와도 됩니다. "이게 병이 맞나요?"만 확인하러 오셔도 됩니다. 그거 확인해 드리는 게 제 일이거든요. 오늘은 별 이상 없으시다는 말을 듣고 홀가분하게 돌아가시는 진료도, 저는 잘된 진료라고 생각합니다. 헛걸음이 아니라 확인이니까요.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목이 좀 칼칼하면 편의점 들르듯 병원 들르는 것처럼, 마음이 조금 무거운 날 들러서 "요즘 좀 그래요" 한마디 하고 나오는 곳이 정신과였으면 좋겠다고요. 다 부서지고 나서야 실려 오는 응급실 말고, 그 한참 전에 슬리퍼 신고 들르는 동네 의원 쪽으로요. 앞의 숫자들이 그렇게 무거웠던 이유도 결국 같습니다. 우리가 너무 늦게, 너무 많이 부서진 다음에야 오거든요.
그러니, 만약 지금 망설이고 계신다면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혹시 지금 그 문 앞에 서 계신 건 아닐까 싶습니다. 검색창에 뭘 쳐볼까 하다가 지웠다가, 다시 쳤다가 하면서요.
그렇다면 이 말씀만 드리고 싶어요. 그 '이런 걸로'가, 사실은 당신이 꽤 오래 혼자 버텨왔다는 증거입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애초에 그런 질문을 떠올리지도 않습니다. 갈까 말까를 몇 번이나 저울질했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이미 오래전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는 뜻이에요.
그 신호를 "별거 아니야"로 덮어두지는 마세요. 별거인지 아닌지는 밤새 혼자 검색하는 대신 한 번 물어보러 오시면 판정이 납니다. 그게 저희가 여기 앉아 있는 이유거든요.
와도 됩니다. 진짜로요. 그리고 저는 문을 열고 들어오신 분들께, 아직도 매번 조금씩 고맙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와 위로를 위한 글이며, 특정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지금 많이 힘들거나 위급하다고 느껴진다면, 혼자 견디지 마세요.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 ☎ 1577-0199(24시간)나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에 꼭 연락해 주세요.
참고문헌
- Wang 등, 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 2005 ↩
- 보건복지부·국립정신건강센터, 2021 ↩
- 한국의 자살률과 정신건강 지표(OECD 비교): OECD Health at a Glance 2025. 관련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