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성공하면 손님이 사라지는 직업이 몇 개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가 그중 하나예요.
식당은 손님이 또 오면 좋은 일이고, 단골이 많을수록 잘되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좀 반대입니다. 제가 일을 정말 잘하면, 어느 날 제 앞에 앉은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이제 안 와도 될 것 같아요." 그러고는 문을 열고 나가시죠. 다시는 안 오실 수도 있고요.
그게 성공입니다. 이상하죠? 오늘은 그 이상한 성공에 대해, 진료실에선 차마 다 못 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좋아지는 건 대체로 조용히 옵니다
드라마에서는 회복이 극적입니다. 어느 순간 눈물을 쏟고, 깨달음을 얻고, 사람이 확 달라지죠. 실제로는 거의 그렇지 않습니다. 좋아지는 건 대개 지루할 만큼 조용히 옵니다.
몇 달째 오시던 분이 어느 날 이런 말을 툭 던집니다. "요즘은 아침에 그렇게 일어나기 싫지가 않아요." 별것 아닌 문장 같지만, 저는 이런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씁니다. 몇 달 전 이분은 눈뜨는 것 자체가 하루 중 가장 힘든 일이라고 하셨거든요. 그 지옥 같던 아침이, 본인도 모르는 새 그냥 평범한 아침이 된 겁니다.
재미있는 건, 정작 본인은 자기가 좋아진 걸 잘 모른다는 거예요. 우울은 회복까지 왜곡합니다. "저 하나도 안 나아졌어요"라고 말하는 분의 표정이, 두 달 전과 완전히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 일 중 하나는, 본인이 못 보는 그 변화를 대신 기억해뒀다가 슬쩍 비춰드리는 겁니다. "그때는 이 얘기 하시면서 우셨는데, 오늘은 웃으면서 하시네요"라고요.
"이제 안 와도 될까요"라는 질문
그러다 보면 그날이 옵니다.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묻는 날. "저… 이제 그만 와도 될까요?"
이 질문을 하실 때 많은 분이 미안해합니다. 마치 저를 두고 떠나는 것처럼요. 어떤 분은 "선생님이 서운해하실까 봐"라고 진짜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 마음이 참 고맙고, 또 조금 우습기도 합니다. 저를 걱정해주시다니.
그럴 때 저는 대개 이렇게 답합니다. "제가 제일 듣고 싶은 말이 그 말이에요." 진심입니다. 정신과 치료의 목표는 저에게 계속 오게 만드는 게 아니라, 저 없이도 괜찮은 사람이 되도록 돕는 거니까요. 그러니 "안 와도 되겠다"는 말은 제 일이 끝났다는 신호이고, 그건 실패가 아니라 완성입니다.
물론 저는 안전장치를 하나 걸어둡니다. "졸업은 하시되, 언제든 다시 오셔도 되는 졸업이에요." 감기가 나았다고 다시는 병원 갈 일 없는 게 아니듯, 마음도 살다 보면 또 흔들릴 수 있으니까요. 문을 닫는 게 아니라, 살짝 열어두는 겁니다.
그런데 솔직히, 조금 서운합니다
여기서부터가 차마 못 한 이야기입니다.
기쁩니다. 정말 기뻐요. 그런데 그 기쁨 옆에, 아주 작은 서운함이 같이 앉아 있습니다.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매주 같은 시간에 마주 앉아 온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가장 어두운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못 한 이야기를 저는 다 들었습니다. 그런 사이가 어느 날 "안녕히 계세요" 한마디로 끝납니다. 그것도 그게 좋은 결말이라서요.
이건 다른 관계에는 없는 이상한 구조입니다. 친구는 친해질수록 오래 곁에 남는데, 저는 가까워지고 깊어질 대로 깊어진 다음에, 바로 그 깊어짐 덕분에 헤어집니다. 잘 헤어지는 게 목표인 관계라니, 생각할수록 묘합니다.
한동안은 이 서운함이 프로답지 못한 감정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게 봅니다. 서운하다는 건 그만큼 진심으로 그 사람을 대했다는 뜻이더라고요. 아무 마음도 안 줬다면 서운할 것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그 작은 서운함을, 제가 일을 제대로 했다는 조용한 증거로 받아들입니다.
떠난 자리를 저는 기억합니다
떠나신 분들은 대개 저를 잊습니다. 그래야 정상이고, 그게 좋은 거예요. 힘들었던 시기의 사람은 빨리 잊고, 좋아진 지금을 사는 게 건강한 겁니다. 저를 자주 떠올린다면 오히려 아직 그 시기에 머물러 있다는 뜻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건 일방적인 기억입니다. 저는 기억하고, 그분은 잊는. 하지만 저는 그게 서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설계된 관계라는 게 좋습니다. 잊혀도 괜찮은, 잊혀야 마땅한 도움을 주는 일. 세상에 그런 일이 많지 않잖아요.
가끔 길에서 예전 환자분을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먼저 아는 척을 하지 않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만난 사이인지 아니까요. 그분이 반갑게 인사해오시면 그때 웃으며 받고, 그냥 지나가시면 그것도 좋습니다. 잘 지내시는 것 같으면, 저는 속으로만 인사합니다. 잘 지내고 계시네요, 다행입니다, 하고요.
문을 나서는 뒷모습에 대하여
진료실에는 문이 하나 있습니다. 들어올 때 그 문은 대개 무겁습니다. 처음 정신과 문을 여는 게 얼마나 큰 결심인지 저는 압니다. 그런데 나갈 때, 특히 좋아져서 나갈 때, 그 똑같은 문이 참 가벼워 보입니다.
좋아진 분이 그 문을 열고 나서는 뒷모습을 저는 좋아합니다. 어깨의 각도가 다르거든요. 처음 왔을 때 잔뜩 웅크렸던 등이, 조금 펴져 있습니다. 걸음도 다르고요. 그 뒷모습을 보면, 제가 이 일을 왜 하는지가 아주 잠깐 선명해집니다.
그러니 혹시 지금 어느 진료실을 다니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리고 언젠가 "이제 안 와도 되겠다" 싶은 날이 온다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담당 선생님은 분명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계실 거예요. 잘 가요, 그동안 애썼어요, 그리고 — 되도록 다시 안 만났으면 좋겠네요. 그게 저희가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인사거든요.
가장 반가운 이별. 저는 이 일을 그렇게 부릅니다. 매번 조금 서운하고 매번 기쁜, 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헤어짐이요.
오늘도 누군가는 제 앞의 그 가벼워진 문을 열고 나갈 겁니다. 저는 그 빈 의자를 잠깐 바라보다가, 조용히 다음 이름을 부르겠죠. 그리고 언젠가 그 사람도, 이 문을 가볍게 열고 나가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