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저를 당황하게 하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좋아지고 있는 분인데, 어느 순간부터 뒷걸음질을 치는 겁니다. 몇 달을 힘겹게 올라와 이제 겨우 숨통이 트이나 싶은데, 어느 날 이런 말을 툭 꺼내요. "선생님, 이상하죠. 좀 살 만해지니까 오히려 겁이 나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속으로 조금 답답했습니다. 그렇게 힘들어했으면서, 왜 나아지는 걸 무서워하지? 좋아지는 게 목표 아니었나?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저는 참 몰랐습니다. 회복이 마냥 반갑기만 한 게 아니라는 걸, 어떤 사람에게는 회복이 또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라는 걸요.

나으면, 뭐가 남죠

어떤 분이 이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다 나으면, 저는 뭐가 남죠?" 그 질문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병은 그 사람에게 여러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프다는 건 잠시 멈춰도 되는 이유였고, 주변이 나를 조심스럽게 대해주는 근거였고, 무리한 기대를 미뤄둘 수 있는 방패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 나았다'고 선언되는 순간, 그 모든 게 사라집니다. 다시 씩씩하게 일하고, 잘 지내는 척하고, 남들 몫을 해내야 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하죠. 회복은 그러니까, 보호막을 반납하고 다시 링 위로 올라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게 어떻게 안 무섭겠어요.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자꾸 환자를 다그치게 됩니다. "왜 자꾸 제자리로 가려 하세요." 하지만 그건 게으름이나 핑계가 아닙니다. 아주 오래되고 아주 인간적인 방어입니다.

좋은 기분이 무섭다는 것

더 깊은 층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좋은 기분 자체가 무서운 사람들이 있어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연구가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이 '행복에 대한 두려움'을 재는 척도를 만들었는데, 이 두려움이 우울과 대단히 강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상관계수가 0.70에 이르렀죠1. 우울을 겪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이 '행복에 대한 두려움'이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를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2.

왜 좋은 기분을 두려워할까요. 여러 번 데어본 사람에게 좋은 날은 안심이 아니라 경고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좀 편해지면 '이러다 또 크게 무너지겠지' 하는 예감이 먼저 옵니다. 특히 우리 정서에는 좋은 일 뒤에 나쁜 일이 온다는 오래된 믿음도 있죠.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행복은 덧없고 쉽게 불행으로 바뀐다고 믿는 '행복의 취약성' 신념이 확인됐습니다3. 그러니 어떤 분들에게 좋은 기분은 즐길 것이 아니라, 무너지기 전에 미리 긴장해야 할 신호인 겁니다.

차라리 안 좋아지는 게 덜 아프다는 계산

여기에 현실적인 두려움이 하나 더 얹힙니다. 재발에 대한 두려움이요.

우울은 안타깝게도 재발이 잦은 병입니다4. 한 번 깊은 바닥을 경험한 사람은 그 바닥의 감촉을 몸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이런 계산을 하게 돼요. 애써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질 바엔, 차라리 낮은 데 머무는 게 덜 아프지 않을까. 기대를 안 하면 실망도 없으니까. 좋아지길 포기하는 게, 역설적으로 자기를 지키는 방법이 되는 겁니다.

이 논리를 저는 이제 함부로 반박하지 않습니다. 틀린 논리가 아니거든요. 다만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그 계산에는 한 가지가 빠져 있다고. 낮은 데 머무는 것도 사실은 아픈 거라고. 안 떨어지려고 웅크리고 있는 그 자세 자체가, 이미 충분히 고단한 일이라고요.

그래서 저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을 알고 나서 제 진료가 좀 달라졌습니다. 좋아지는 걸 두려워하는 분에게 "빨리 좋아집시다"라고 밀어붙이는 게 얼마나 무신경한 일인지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합니다. 우선 그 두려움을 이상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좋아지는 게 무섭다니 이상하다"가 아니라 "그럴 만하죠, 여러 번 데셨으니까"라고요. 그다음엔 아주 작게 갑니다. 완치라는 거창한 목표 대신, 오늘 하루 조금 덜 힘든 것. 좋은 날이 와도 그걸 '경고'가 아니라 그냥 '좋은 날'로 며칠만 두고 보자고 권합니다. 방패를 한꺼번에 뺏지 않고, 본인이 준비될 때 한 겹씩 내려놓게 두는 거죠.

회복이 두려운 건, 사실 회복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무 기대도 없다면 두려울 것도 없을 테니까요. 그 두려움 안에는 '다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조용히 들어 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못 본 척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니 혹시 지금, 좀 나아지는 것 같은데 그게 도리어 겁이 나는 분이 있다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두려움은 당신이 이상해서가 아닙니다. 그동안 너무 여러 번 아팠기 때문이고, 그만큼 다시 아플까 봐 미리 자기를 지키려는 겁니다.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다만 한 가지만. 좋아지는 걸 꼭 한 번에 껴안지 않아도 됩니다. 새벽이 오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누가 갑자기 대낮의 햇빛 아래로 끌어내겠어요. 그냥 창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두는 것부터. 저는 그 곁에 서서, 당신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참고문헌

  1. Gilbert 등, 2012
  2. Gilbert 등, 2014
  3. Joshanloo, 2018
  4. Burcusa·Iacono, 2007
  5. 우울증의 재발에 관한 리뷰 (Burcusa·Iacono, Clin Psychol Rev 2007): PubM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