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좋아질까요?"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성의 없게 들릴 대답을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보통 이렇게 답하거든요. 사람마다 다르지만 몇 주는 보셔야 합니다.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이 대답을 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찜찜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대답은 훨씬 긴데, 진료 시간 안에 다 못 하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그 긴 대답을 여기에 적어 두려고 합니다. 언젠가 진료실에서 이 질문을 하실 분께, 미리 쓰는 답장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먼저 그 질문의 속을 잠깐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언제쯤 좋아질까요"는 겉으로는 날짜를 묻는 질문이지만, 진료실에서 이 질문은 대개 다른 것을 묻고 있습니다. 끝이 있긴 한가요. 이게 나아지는 게 맞긴 한가요. 제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요. 날짜를 묻는 질문에 날짜로만 답하면 이 속질문들이 전부 허공에 남습니다. 그래서 긴 대답이 필요한 겁니다. 날짜는 저도 모르지만, 지도는 드릴 수 있으니까요.

긴 대답의 핵심은 이겁니다. "언제 좋아지나요"는 사실 하나의 질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회복이 한 덩어리가 아니거든요.

우리는 회복을 스위치처럼 상상합니다. 어느 날 딸깍, 켜지는 것. 안 좋았다가, 좋아지는 것. 그런데 진료실에서 오래 지켜본 회복은 스위치보다는 이삿짐에 가깝습니다. 한 번에 오지 않고, 몇 차례에 나눠서 오고, 심지어 오는 순서가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대개는 몸이 먼저 옵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 글의 모든 문장 앞에는 "대체로"가 붙어 있다고 생각하고 읽어 주세요. 그걸 전제로 말씀드리면, 임상에서 흔히 보는 순서는 이렇습니다.

먼저 잠이 돌아옵니다. 새벽에 깨는 횟수가 줄고,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집니다. 그다음 밥이 돌아옵니다. 배가 고파지는 감각, 뭘 먹을지 잠깐이라도 고민하게 되는 것. 몸이 먼저 회복의 신호를 보내는 겁니다. 본인은 대개 이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넘깁니다. 기다리던 소식이 아니니까요.

기분은 그다음입니다. 몸보다 몇 주쯤 늦게, 그것도 극적으로가 아니라 슬그머니 옵니다. 하루 중 견딜 만한 시간이 조금 길어지는 식으로요.

그리고 의욕과 재미. 이게 제일 늦게 옵니다. 뭘 하고 싶다는 마음, 예전에 좋아하던 게 다시 좋아지는 감각. 이삿짐으로 치면 제일 마지막 트럭에 실려 오는 짐인데, 하필 사람들이 가장 기다리는 짐이기도 합니다.

왜 이런 순서일까요. 정직하게 말하면 딱 떨어지는 설명은 없습니다. 다만 진료실에서 체감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잠과 밥은 몸의 사정이라 비교적 단순하게 움직이는데, 기분은 여러 가지의 평균이라 늦게 움직입니다. 지난 몇 달의 기억, 오늘의 컨디션, 앞날에 대한 전망까지 다 섞여서 나오는 값이거든요. 평균은 원래 늦게 변합니다. 날씨로 치면 잠과 밥은 오늘의 기온이고, 기분은 계절입니다. 입춘이 지나도 한동안 추운 것처럼, 몸의 회복이 시작되고도 기분의 계절은 한참 겨울일 수 있습니다. 달력으로는 봄인데 체감으로는 아직인 그 시기를, 회복 중인 분들은 마음 안에서 지나갑니다.

물론 이 순서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불안이 주된 분들은 몸의 긴장이 제일 늦게 풀리기도 하고, 기분보다 집중력이 먼저 돌아오는 분들도 계십니다. 순서 자체보다 중요한 건 이겁니다. 회복은 여러 칸으로 나뉘어 있고, 칸마다 도착 시간이 다르다는 것. 어떤 칸이 아직 비어 있다고 해서, 다른 칸에 도착해 있는 짐이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

이 순서를 모르면 회복의 한가운데에서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잠은 자는데요, 그래도 사는 게 재미가 없어요. 약이 안 듣는 것 같아요."

이 문장을 진료실에서 정말 자주 듣습니다. 그리고 이 문장이야말로,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잠이 돌아왔다는 건 약이 안 듣는다는 증거가 아니라, 첫 번째 트럭이 도착했다는 증거거든요. 재미는 마지막 트럭입니다. 아직 안 왔다고 이사가 취소된 게 아닙니다.

본인만 모르는 구간

회복의 순서보다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 순서 때문에 생기는 이상한 구간입니다.

좋아지고 있는데, 본인만 그걸 모르는 구간이 있습니다.

주변이 먼저 알아차립니다. 요즘 얼굴이 좀 폈다, 목소리가 달라졌다. 차트의 숫자도 알아차립니다. 수면 시간이 늘었고, 식사가 규칙적이어졌고, 지난달에 못 하던 외출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고개를 젓습니다. 아니에요, 저 그대로예요.

거짓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그렇게 느껴집니다. 기분이라는 짐이 아직 안 왔으니까, 안에서 보면 여전히 어두운 게 맞습니다. 회복은 밖에서부터 안으로 들어오는데, 우리는 안에서 밖을 내다보며 살잖아요. 그래서 회복의 중간 구간에는 필연적으로 시차가 생깁니다. 남들 눈에는 보이는데 내 눈에만 안 보이는 시차.

덧붙이면, 이 순서는 직선으로 진행되지도 않습니다. 좋아지다가 며칠 나빠지고, 다시 좋아집니다. 회복의 그래프는 매끈한 오르막이 아니라 톱니 모양의 오르막입니다. 그런데 안에서 겪을 때는 내려가는 톱니 하나가 전체의 추락처럼 느껴집니다. 도로 원점이 됐다고 말씀하시는 분들과 지난 기록을 같이 보면, 원점이 아니라 지난달의 고점 근처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나쁜 날이 있다는 것과 나빠지고 있다는 것은 다른 말인데, 가라앉은 기분은 이 둘을 구분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록이 필요하고, 증인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 구간이 하필 가장 위험한 구간이라는 겁니다. 몸은 움직여지는데 기분은 그대로니, 이런 결론이 나오기 쉽습니다. 이만큼 먹었는데 그대로면 약이 소용없는 거다. 그만 먹자.

회복의 순서상 가장 아까운 지점에서 가장 그만두고 싶어지는 것. 저는 이걸 회복의 역설이라고 부릅니다. 이삿짐 트럭이 두 대 도착하고 세 번째가 오는 중인데, 세 번째가 안 보인다고 이사를 취소하는 셈이거든요. 그러면 와 있던 짐도 도로 실려 나갑니다. 이 구간에서 치료를 접는 일이 얼마나 흔한지, 그리고 얼마나 아까운지는 진료실에 앉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압니다. 처방하는 쪽 의자에 앉아 본 사람도요.

그래서 요즘 저는 치료를 시작하는 날 이 순서를 미리 말씀드립니다. 예고편을 보여 드리는 셈입니다. 몇 주 뒤에 잠은 오는데 기분은 그대로인 시기가 올 수 있다고, 그건 약이 안 듣는 게 아니라 순서대로 오고 있는 거라고. 미리 들은 분들은 그 구간에서 훨씬 덜 흔들립니다. 지도를 들고 걷는 사람은 긴 오르막에서도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이 구간에서 제가 하는 일이 있습니다. 증거를 대신 세어 드리는 일입니다.

지난달 차트를 열어서 같이 봅니다. 지난달의 기록과 오늘을 비교합니다. 그러다 이런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오늘 "사는 게 재미없다"라고 문장으로 말씀하셨는데, 지난달에는 그 말을 문장으로 못 하셨어요. 몇 마디 하시다 마셨거든요. 재미없다고 짜증을 낼 힘이 생긴 겁니다.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짜증은 무기력보다 나중에 오는 손님입니다. 화가 난다는 건 에너지가 좀 돌아왔다는 뜻이에요.

이 말을 들은 분들의 표정을 저는 좋아합니다. 못 미더워하는 표정과 어리둥절한 표정 사이 어딘가의 표정. 당연합니다. 자기 짜증이 회복의 증거라는 말을 누가 바로 믿겠습니까. 그런데 몇 주 뒤에, 그 말이 맞았다는 걸 본인의 기분이 직접 확인해 주는 순간이 옵니다. 세 번째 트럭이 도착하는 겁니다.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게 이 직업의 큰 낙 중 하나입니다.

곁에서 지켜보는 분들께도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얼굴 좋아졌네"라는 말을 조금 아껴 주세요. 좋은 뜻인 걸 압니다. 그런데 본인만 모르는 구간에 있는 사람에게 이 말은 가끔 이상하게 접힙니다. 남들 눈에는 좋아 보인다는데 나는 왜 아직 이런가, 하는 자책의 재료가 되기도 하거든요. 대신 구체적인 관찰이 낫습니다. 어제 일찍 잠들었더라. 오늘 반 그릇 더 먹었네. 평가가 아니라 목격이요. 회복 중인 사람에게 필요한 건 심사위원이 아니라 증인입니다. 증인은 판결하지 않습니다. 본 것을 말해 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담담한 목격담이, 회복 중인 사람에게는 어떤 응원보다 오래 남습니다.

그러니까 회복의 증거를 세는 건 의사의 부업이 아니라 본업입니다. 본인이 못 보는 구간에서 본 것을 대신 기억해 주는 사람, 지난달과 오늘 사이의 차이를 장부에 적어 두는 사람. 약을 고르는 것만큼이나 이 장부 일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안에서 안 보일 때 밖에서 세어 줄 사람이 있느냐가, 그 위험한 구간을 건너느냐 마느냐를 가를 때가 있으니까요.

덧붙여 두면, 회복이라는 말의 뜻 자체에 대해서는 완치와 회복은 다르다는 글에 따로 적었습니다. 그 글이 회복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에 대한 이야기라면, 오늘 이 글은 그 길을 "어떤 순서로" 걷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회복의 어느 구간에 계신 분께 부탁 하나만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밤부터 작은 것들을 세어 보세요. 잠이 어제보다 십오 분 길었는지. 오늘 한 끼라도 배가 고파서 먹었는지. 지난주에 못 한 일을 이번 주에 하나라도 했는지. 기분은 아직 세지 마세요. 그건 마지막 트럭이라 제일 늦습니다. 대신 먼저 도착하는 짐들을 세어 보세요. 셀 게 하나라도 있다면, 이사는 진행 중입니다.

적어 두면 더 좋습니다. 대단한 일기가 아니라 하루 한 줄이면 됩니다. 몇 시에 잤는지, 몇 끼를 먹었는지, 밖에 나갔는지. 기분이 바닥인 날에는 지난주의 그 한 줄들이 증거물이 됩니다. 기분은 기억을 편집하는 재주가 있어서, 가라앉은 날에는 좋았던 날까지 나빴던 걸로 다시 써 버리거든요. 종이에 적힌 기록은 그 편집을 안 당합니다. 그래서 저는 차트에 적고, 당신은 수첩에 적고, 나중에 둘을 맞춰 보는 겁니다.

그리고 셀 게 하나도 없어 보이는 날엔, 그 장부를 혼자 들고 있지 마시고 진료실로 가져오세요. 같이 세면 보이는 게 있습니다. 그러라고 저희가 거기 앉아 있습니다.

당신의 회복은, 당신이 느끼는 것보다 대개 한 발 앞서 걷고 있습니다. 그 한 발의 시차를 견디는 일만큼은 혼자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