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가 몇 달쯤 이어지면, 어느 날 문득 이 질문이 나옵니다. 대개는 자리에서 일어서기 직전, 문고리를 반쯤 잡은 자세로요.

"선생님, 저… 완치될 수 있나요?"

저는 그 순간을 좀 무서워합니다. 무섭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이 질문에는 아프기 전의 나로 말끔히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통째로 실려 있어서, 어설프게 대답하면 그 간절함을 다치게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늘 반 박자 늦게 입을 뗍니다. 정직하되 절망은 안 남기는 문장을 고르느라고요.

3분짜리 진료로는 끝내 못 하는 이야기라, 여기에 길게 적어봅니다.

'완치'라는 단어가 파놓은 함정

먼저 솔직해지겠습니다. 마음의 병에서 '완치'라는 말은 자주 어긋납니다. 감기처럼 딱 떨어지지가 않아요. 좋아졌다가 흔들리고, 다 지나간 줄 알았는데 흉터처럼 흔적이 남습니다.

이 대목에서 많은 분이 무너집니다. "완전히 낫는 게 아니면, 저는 평생 환자라는 뜻인가요?"

아니요. 제가 하려는 말은 정확히 그 반대예요. '완치'가 목표가 아닐 뿐, 회복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그 회복의 생김새가 우리가 머릿속에 그려둔 그림과 좀 다를 뿐입니다.

우울의 반대말은 '행복'이 아니라는 말

우울증을 오래 들여다본 어느 작가가 이런 문장을 남겼습니다. "우울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생명력(vitality)이다."1

이 문장을 저는 진료실에서 참 자주 꺼내 씁니다. 우리는 '다 나았다'를 '늘 행복하다'로 번역해 버리는 버릇이 있는데, 애초에 삶이 매일 행복하지가 않잖아요. 아무 병 없는 사람도 월요일 아침엔 짜증이 나고, 이유 없이 슬픈 저녁이 있습니다. '항상 행복한 상태'는 회복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건 인간의 기본값이 아니니까요.

진짜 신호는 훨씬 시시한 데 있습니다. 밥이 다시 맛있어지는 것. 예전에 좋아하던 노래가 다시 좋게 들리는 것. 아침에 몸을 일으킬 힘이 아주 조금 생기는 것. 누군가에게 실없는 농담을 건네고 싶어지는 것. 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기운, 그게 생명력이고 그게 회복입니다. 증상 칸이 0으로 채워져서가 아니라요.

병을 안고도 삶은 계속 굴러갑니다

심한 정신질환을 안고 살면서 아름다운 글을 쓰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는 방 벽에 이런 문장을 붙여두었다고 해요. "내 삶이 어떻게 펼쳐지든, 나는 그것을 견디도록 지어졌다."2

병이 사라져서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병을 안고도 사랑하고, 일하고, 문장을 짓는 것. 그게 가능하다는 걸 그 사람의 삶이 증명해 보입니다.

제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분들도 다르지 않아요. 증상이 얼마간 남아 있는 채로 다시 출근하고, 퇴근길에 아이를 안아 올리고, 주말에 친구랑 커피를 마십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병이 삶 전부를 삼키지 못하게 자기 자리를 조금씩 되찾아 오는 겁니다. 한 뼘씩이요.

되돌아가기가 아니라, 다시 살아나기

그래서 저는 "아프기 전의 나로 완벽히 돌아가기"를 목표로 세우지 마시라고 말립니다. 문턱이 너무 높아서요. 그 목표를 걸어두면 조금만 흔들려도 곧장 "역시 난 실패했어"로 넘어가 버립니다.

대신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요. 회복은 원래 자리로의 복구가 아니라, 지금의 나로 다시 살아나는 일이라고요. 흉터 남은 손으로도 우리는 밥을 짓고 글을 쓰고 누군가의 손을 잡습니다. 흉터가 없어서가 아니라, 흉터를 안은 채로도 삶이 이어지기 때문에.

재발하면 어떡하냐고요? 그때도 세상은 안 끝납니다. 한 번 길을 찾아본 사람은 두 번째 길도 압니다. 처음보다 덜 헤매고, 덜 놀랍니다. 회복은 한 번에 끝나는 완결이 아니라, 넘어지고 일어서길 반복하면서 조금씩 능숙해지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완치가 아니어도

"완치될 수 있나요?"라는 질문 앞에서, 요즘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완벽하게 예전으로 돌아가는 걸 완치라고 하신다면, 그건 제가 장담드리기 어려워요. 그런데요 — 다시 웃고, 다시 좋아하던 걸 좋아하고, 다시 내일을 기다리게 되는 것. 그건 충분히 가능합니다. 저는 그걸 회복이라고 불러요. 그 생명력이 돌아오는 작은 신호들, 우리 같이 찾아봐요."

그러면 대개는 잠깐 조용해집니다. 실망한 침묵인지 안도한 침묵인지, 저도 매번 헷갈립니다. 그래도 다음 진료에 그분이 다시 오시면, 저는 그게 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당신의 목표는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되는 게 아닙니다. 지금의 당신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


이 글은 정신과 의사가 진료실 밖에서 편하게 쓰는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특정한 진단이나 치료에 대한 조언이 아니며, 마음이 힘드시다면 혼자 견디지 마시고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나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24시간)의 문을 두드려 보세요.

참고문헌

  1. Andrew Solomon, The Noonday Demon
  2. Esmé Weijun Wang, The Collected Schizophreni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