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의 기묘한 경험 (전 6편)

그날 의대 동기들과 나눈 대화
그날 의대 동기들과 나눈 대화

그렇게 그냥 끝나고 말 일이었다면, 글이 이렇게 길어지지도, 혹은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 같다. 내 생애 환자로서의 응급실 첫날이었지만, 그때의 힘듦은 시작에 불과했다. 일단, 응급실에서 항구토제를 두 앰플이나 맞았음에도... 잠시 멎었던 구역감이 두 시간 만에 다시 시작되었다. 다시 말하면, 응급실에서 새벽 3시에 퇴원하고 2시간 밖에 못 잤다는 얘기다.

새벽 6시부터 구역감이 올라오면서, 마셨던 물을 전부 토해냈다. 체중계에 올라가 봤다. "64kg" 어제보다 7kg가 줄어있었다. 눈을 의심했다. 토혈과 탈수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엄습해 왔다. 여섯 시간 만에 다시 구토를 하면서, 목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토사물은 그저 물밖에 더 나올 게 없었다. 그 토사물에 새빨간 색상의 신선한 혈액이 섞여있음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였다. 음주를 한 지 30시간이 넘어가고 있었고 이제 진정될 만했는데,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계속 구토를 하고 식도가 점점 갈라지며 출혈되는 것을 기다리느니, 탈수에 대한 걱정이 있음에도 아무리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시지 않기로 결심했다.

침대에 계속 누워있었다. 하필, 당시 코로나19(당시엔 '우한폐렴'이라고 불렸다)가 막 퍼지던 무렵이어서, 계속해서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원체 큰 길가에 있는 아파트라서 이런 일이 잦기도 했지만, 코로나 초기라서 더욱 그랬었고, 절묘하게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사이렌 소리가 거의 10분마다 들리고, 그 소리를 계속 듣고 있노라니 청각이 무척 예민해짐을 느꼈다. 지금 이 사이렌 소리가 진짜인가, 내 상상인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사이렌 소리인가?'라고 생각만 하면 사이렌 소리가 귀에서 들렸다. 구토감 때문에 계속 기침도 하고, 더 게워낼 게 없음에도 구토를 위해 화장실과 침실을 몇 분마다 반복해서 오갔고, 너무 자주 침대에 누웠다 일어나길 반복하는 바람에 침대 시트에 쓸려서 무릎에 피가 심하게 맺힐 정도였다. 처음에는 무릎에 물티슈를 대서 쓸리는 고통을 줄여보려 했지만, 나중에는 너무 힘겨워서 아예 침대 시트를 물에 적셔버렸다.

위아래집에서 누군가 통화하는 층간소음, 옆 집 문이 여닫히는 소리, 어느 집인지 모르겠지만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 문을 두들기는 소리, 주변의 모든 소리들이 전부 세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응급실에서 코로나 검사를 안 하고 자의퇴원 해서, 기자들이 나를 찾고 있는 건가?"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판단했지만, 생각이 반복될수록 그게 정말 사실일 수 있다고 느껴졌다. 어떤 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가 코로나인 걸 숨기고 집에서 연락도 받지 않고 칩거해 있다고. 내가 그 사소한 실수로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것은 아닌가? 이러다 내 신상까지 공개되고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하며 욕하면 어떡하지? 윗집 아랫집 옆집 초인종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모두 내가 사는 집을 향하는 것으로 들리기 시작했고, 생각은 점차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냥 조용히, 집에 없는 듯이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하고 신경 쓰이지 않도록 방구석에 뒤집어서 던져두었다. 혹시 누군가 강제 진입을 위해 문을 따고 들어올까 봐 현관 전자자물쇠의 배터리를 모조리 뽑아버렸다. 그러면서도 계속 구역감에 화장실과 침실을 반복해서 오갔다. 신경을 써서 그런지, 소리들은 점점 더 크게, 쾅쾅 울리듯이 들렸고, 어떠한 도움이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오후 3시쯤,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느끼는 주관적인 판단 그대로, 내가 심각한 오해를 받고 있고 그래서 집에서 없는 척을 해야 한다고, 미친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냥 도와줄 생각은 하지 말고 그냥 내가 연락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사람 목소리를 들으니까 좀 안심이 되는 듯싶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에게 연락을 해 뒀으니 최소한의 할 일은 했다고 생각하면서, 순간적으로 극단적인 충동이 어마어마하게 몰려왔다.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때는, 그 새벽의 낙담, 우울과 더불어 너무 날카로워진 신경을 참을 수가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몰라서, 결코 해서는 안될 생각들이 무서운 충동으로 몰아닥쳤다. 친한 의대 동기들 대여섯 명이 있는 단톡방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후 네다섯 시. 다들 바쁠 시간이었다. 그중 한 친구가 내 글에 조금씩 응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에게 무턱대고 전화를 걸었다. '내가 이러저러한 상태이다, 어찌하면 좋을까'. 친구는 내 목소리도 평소와는 너무 다르게 빠르고, 불안해 보이고, 생각도 너무 극단적이라며 '공황장애'같다고 했다. 그런 걱정하지 말고 1339에 연락해 보라고 했다. 내과 전문의인 친구였다. '역시 내과가 이런 문제에 대해 뭘 알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공황장애 환자를 몇 명을 보는데. 정말 쓸데없는 소리다.'라고 생각은 했지만 굳이 말해봐야 무엇하랴, 그냥 '충고 고맙다'라고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때는 이미 정상적 사고과정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였다. 한 동안 체념하며 멍하니 누워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그 단톡방을 봤는데, 나와 통화했던 친구가 걱정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을 확인했다. 그 단톡방에는 원래 한 명의 의대 졸업동기 멤버가 더 있었다. 몇 년 전쯤 전에, 우리에게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해 버렸다. 그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녀석 때문에라도 친구가 혹시 내가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할까 봐 더 신경을 쓰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흐르면서, 문득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너무 뻔한 생각이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 그렇구나 ㅡ

이번의 시련에 내가 평소와는 다르게 대처했다고 생각이 들자, 해답을 알 수 없던 오늘 새벽의 그 우울과 절망에 뭔가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때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아니구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수년 전에도 나는 정신과 의사였고 지금도 정신과 의사지만, 그때는 혼자였고, 지금은 아니다, 그때와는 달리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해답'인 것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누군가와 함께 하면 되는구나. 지금 생각하면 너무 뻔한 생각의 흐름에 도취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배에서도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났다. 빈 유리병 세 개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였는데, 높낮이가 달라서, '미♪-도♪-(한 옥타브 위의)도♪' 같은 기묘한 소리. 이제 배의 어느 부분이 막힌 게 뚫려서 더 이상은 구역감은 없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이후로 구역감은 없었다. 그때가 저녁 6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글을 적당히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 정도 일 때문에 내가 한 달 동안이나 진료를 쉴 리는 없었으리라. 그게 끝이 아니었다. 너무너무 끔찍하게도.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저녁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하늘도 어두워졌고, 나는 거실 가죽소파 위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천천히 흘렀다. 화장실에 한번 갔다가, 침대에 누웠다가, 소파 위에서 앉았다가, 시계를 다시 쳐다보면 겨우 1분이 지나있었다. 시간만 조금 더 지나면 괜찮아질 텐데 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내게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내가 너무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겠지만,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너무 느렸다.

그러다가 이상한 느낌을 알아챘다. 그렇게 시끄럽던 사이렌 소리도, 층간 소음도, 옆집 소리도 어느 순간 들리지 않았다. '멍'할 정도로 고요했다. '어? 이게 뭐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가 들렸다. '뚝' '뚝' '뚝' 마치 나무를 손등으로 두드리는 듯한, 그런 소리. 그 소리가 내가 몸을 움직이면 '뚝' '뚝' '뚝' 하고 들리고, 뭔가 싶어서 가만히 있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움직이면 들리고.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그때, 이런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시계 초침소리구나. 내가 움직이면 초침이 한 번씩 움직이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시계가 멈추어있구나."

"내 몸의 움직임에 맞춰 시간이 흐르는구나."

"내가 움직이지만 않는다면,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생각들을 할 수가 있구나."

"시간이 나에게만 천천히 흐르고 있다."

아, 그렇게나 시간이 천천히 흘렀던 이유를 찾았던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시간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 순간, 기분이 몹시 들떴다. 가령, 다른 사람들이 60년 동안 이루어야 할 학문적 업적을 나는 1년 만에 이룰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능력'을 가졌다는 희열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무슨 미친 생각을 하고 있지?'라고 의문에 빠졌고, 조증인가? 조현병이 발병했나? 설마 이 나이에 치매에 걸렸나? 고민하다 다시 의대 친구들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친구들이 점점 걱정을 해주기 시작했다. 내과 의사였던 친구 중 한 명이 '작은 수준의 뇌출혈이나 뇌경색의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앗, 뇌경색/뇌출혈(뇌혈관이 막히거나, 뇌혈관이 터져 출혈이 발생하는 일)을 간과하고 있었다. 뇌출혈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다시 어마어마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다른 증상/질환들로 설명이 불가했기 때문이다. 뇌혈관의 문제라면, 현재 진행형인 일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도 자칫 잘못하면 더 막히거나, 더 터질 수 있고, 뇌에 영구장애를 남길 수 있다는 뜻. 갑자기, 몸의 움직임이 두려워졌다, 머리를 많이 움직이면 더 크게 터지거나 막힐까 봐.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정신이 이상한 것 같아.

나에게만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끼고 있어."

1년에 몇 번 전화도 안 하는 동생이 다짜고짜 이런 얘기를 늘어놓으니 적이 놀랐을 테다. "일단, 내가 너희 집에 가서 너를 좀 데리고 올게, 좀 쉬거나 하면 나을 거야. 주소를 알려줄 수 있겠어?" 억지로 애써 침착하게 대답하는 태도가 느껴졌다. 와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누나 집에서 대략 1시간 정도 걸릴 텐데, 그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생각한 많은 것들을 글로 옮기기는 너무 어렵고, 어쨌든 1시간 정도 후에 누나 차를 타고 B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이때는 이미 탈수가 심해서 입술이 말라서 터지고, 혀에 물기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입이 건조하니 당연한 일인데, 그것을 뇌출혈이나 뇌경색이 심해지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내 마음의 불안감은 절정에 달했다. 빨리 응급실에 가서 뇌 MRI를 찍어야지- 아, 정말 뇌경색이나 뇌출혈이면 어떡하지? 다시 회복할 수 없으면 어떡하지? 평생 '괴상한 생각'들을 하면서 살게 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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