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에 빨간 날이 줄지어 서 있는 걸 보면, 사람들은 보통 기분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여행 검색량이 늘고, 기차표가 매진되고, 고속도로 예상 정체 시간이 뉴스에 나옵니다.
그런데 그 무렵, 진료실 예약도 슬며시 찹니다.
이건 우연이 아닙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아주 조용한 계절 현상입니다. 긴 연휴가, 특히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다가오면, 진료실의 공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평소보다 미리 약을 챙기러 오시는 분들이 늘고, 몇 달 만에 다시 문을 두드리는 분들이 생기고, 진료 말미에 "그런데 선생님, 이번에 시댁에 가야 하는데요"라든가 "본가에 내려가면요"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부쩍 자주 나옵니다. 세상이 들뜰 준비를 하는 동안, 어떤 사람들은 견딜 준비를 하는 겁니다.
연휴 직전의 진료실에는 독특한 공기가 있습니다. 시험 전날의 교실 같은 공기입니다. 다이어리를 꺼내 날짜를 짚어 가며 일정을 말씀하시는 분, 벌써 몇 주 전부터 잠이 얕아졌다는 분, 생각만 해도 가슴이 갑갑하다며 가슴께에 손을 얹는 분. 저마다 시험 범위는 다르지만, 표정은 어딘가 닮아 있습니다. 그 표정을 알아보는 것도 이 직업의 기술이라면 기술입니다. 달력이 사람을 어떻게 흔드는지, 진료실만큼 잘 보이는 자리도 드물 겁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명절이 아픈 사람들 이야기요.
오해는 마시길 바랍니다. 저는 명절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일 년에 몇 번 모여 밥을 먹는다는 건, 따지고 보면 꽤 아름다운 발명품입니다. 문제는 그 발명품이 모든 집에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가족은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장소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상처가 보관된 장소입니다. 대개는 둘 다입니다. 위로와 상처가 같은 주소에 산다는 것. 이게 가족이라는 제도의 가장 고약한 점이고, 명절은 그 주소로 다 같이 모이라는 초대장입니다.
친구가 상처를 주면 안 만나면 됩니다. 직장이 상처를 주면 언젠가 옮길 수라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은 그 어느 쪽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사랑해서 아프고, 아픈데 사랑하고, 끊자니 죄책감이 들고, 견디자니 소모됩니다. 진료실에서 이 매듭 앞에 앉아 계신 분들을 저는 정말 많이 만납니다. 그리고 명절은, 일 년에 몇 번씩 이 매듭을 정기적으로 잡아당기는 날입니다.
안부의 탈을 쓴 채점표
명절 뒤의 진료실에서 유난히 자주 듣게 되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취업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하니. 애는 안 낳니. 둘째는. 살이 좀 쪘구나. 너희 회사는 괜찮은 거니. 옆집 아무개는 이번에 어디 됐다더라.
던지는 쪽에서는 이게 안부입니다. 정말입니다. 일 년에 두어 번 보는 조카에게 달리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관심의 표현이고, 어색함을 메우는 접속사이고, 그 세대가 배운 유일한 대화의 문법이기도 합니다. 악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걸, 저도 압니다.
그런데 받는 쪽에서는 이게 채점표로 도착합니다. 취업, 결혼, 출산, 체중, 연봉. 문항은 다섯 개쯤 되고, 채점은 공개적으로, 전 가족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일 년 내내 나름대로 열심히 산 사람도 이 채점표 앞에서는 미완성 항목부터 호명됩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런 말은 기름 냄새보다 오래 남습니다. 전 부치던 냄새는 사흘이면 빠지는데, "너는 언제쯤"으로 시작한 문장은 몇 달씩 남아서, 새벽에 문득문득 재생됩니다.
저는 진료실에서 그 재생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알게 됐습니다. 말은 던진 사람의 의도가 아니라, 받은 사람의 마음에 남은 모양으로 계량된다는 걸요. "안부였는데 왜 상처를 받아"라는 항변은, 발등에 돌을 떨어뜨려 놓고 "돌은 원래 단단한 건데 왜 아파하느냐"고 묻는 것과 비슷합니다.
명절이 힘든 이유가 말 때문만도 아닙니다. 노동의 문제도 있습니다. 몇십 명분의 음식을 준비하고 치우는 일이 해마다 같은 사람들에게만 떨어지는 집이 여전히 많습니다. 몸이 부서지는 것도 문제지만, 더 깊이 남는 건 내 수고가 여기서는 당연한 것이 되어 있다는 감각입니다. 당연해진 수고는 감사를 받지 못하고, 감사받지 못한 수고는 서운함으로 발효됩니다. 명절 연휴가 끝나고 찾아오는 가족 갈등의 상당수가, 사실 명절 당일이 아니라 그 발효 기간에 터집니다.
여담이지만, 명절이 피곤한 건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의사는 순식간에 무료 상담소가 됩니다. 무릎이 쑤신다, 이 약은 계속 먹어도 되냐, 건강검진에서 뭐가 나왔는데 큰일이냐. 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질문이 잠깐 멎었다가, 이내 목소리를 낮춘 진짜 상담이 시작됩니다. 사실 저는 그 낮춘 목소리들이 싫지 않습니다. 병원 문턱을 못 넘던 이야기가 전 부치는 냄새 옆에서라도 나온다면, 그게 어딘가 싶어서요. 다만 저도 연휴에는 쉬고 싶다는 말은, 여기 조그맣게 적어 둡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던지는 쪽에 서 보신 분이 있다면, 올 명절엔 문항을 하나 바꿔 보시길 권합니다. "언제 하니" 대신 "요즘 뭐가 재미있니"로요. 채점표가 아니라 진짜 안부로요.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막막하다면, 곁의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법에 대해 적어 둔 글도 있습니다.
연휴 처방전의 산수
의사에게 연휴는 산수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연휴가 끼면 저는 진료 때마다 손가락으로 날짜를 꼽습니다. 남은 약이 며칠 치인지, 연휴가 며칠인지, 다음 예약이 연휴의 앞인지 뒤인지. 약이 연휴 한가운데에서 떨어지는 사태를 막기 위한 계산입니다. 매일 먹는 약은 하루 이틀만 끊겨도 몸이 알아차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어지럽거나, 잠이 무너지거나, 애써 가라앉힌 마음이 출렁이거나요. 그래서 연휴 전 진료실에서는 "이번엔 며칠 치 더 드릴게요"라는 말이 자주 오갑니다. 여행 가방에 약을 챙겼는지, 고향 집에 가져갈 약을 따로 소분했는지 묻는 것도 이맘때의 단골 대화입니다. 연휴 중에 갑자기 힘들어지면 어디로 연락하면 되는지도 미리 이야기해 둡니다. 급한 날이 되어서야 갈 곳을 찾기 시작하는 건, 마음이 무너진 날에 하기에는 너무 벅찬 숙제니까요.
시시해 보이지만, 저는 이 산수를 좋아합니다. 마음을 돌보는 일이라는 게 대단한 통찰의 순간만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라서요. 명절 연휴를 무사히 건너는 일의 절반은, 사실 이런 시시한 준비입니다. 약 챙기기. 연휴에 문 여는 병원과 약국을 미리 확인해 두기. 잠자리가 바뀌어도 잘 수 있게 수면 리듬 미리 다듬어 두기. 그리고 가능하다면, 견디기 힘든 자리에서 빠져나올 계획을 미리 세워 두기.
네, 앞 문단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으셨다면 맞게 읽으신 겁니다. 빠져나올 계획. 저는 진료실에서 이 계획을 함께 세우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몇 시에 도착해서 몇 시에 일어설지. 잠은 어디서 잘지, 아예 자고 오지 않을지. 어떤 화제가 나오면 어떻게 대답하고 어떻게 자리를 뜰지. 명절을 시험처럼 준비하는 게 서글프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준비 없이 들어가서 만신창이가 되어 나오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이 계획에는 요령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일어설 명분은 미리, 구체적으로 준비합니다. "일이 좀 있어서"보다는 "내일 아침 근무라서"가 힘이 셉니다. 둘째, 자리 배치를 이용합니다. 채점표를 자주 꺼내는 어른과는 상 모퉁이 하나를 사이에 두는 것만으로도 문항 수가 줄어듭니다. 셋째, 설거지를 자원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손을 물에 담그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인생 계획을 묻지 않거든요. 우스개처럼 들리시겠지만, 진료실에서 실제로 오가는 작전들입니다. 견디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고, 기술을 쓰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 이야기를, 저는 가끔 합니다.
명절에 안 가도 됩니다.
이 문장을 처음 듣고 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안 가도 된다는 생각 자체를 한 번도 허락받아 본 적이 없어서요. 명절 귀향은 법이 아닙니다. 도리라는 이름의 관습이고, 관습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관습을 위해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이 무너지기 직전이라면, 그 자리에 가서 무너지는 것보다 올해는 건너뛰고 마음을 지키는 쪽이 도리에도 맞습니다. 회복하고 나서 찾아뵐 날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매년 가던 사람이 한 번 쉬어 간다고 무너지는 가족이라면, 무너지는 이유는 당신이 아닙니다.
물론 안 가는 데에도 대가가 있다는 걸 압니다. 전화가 올 거고, 서운하다는 말이 돌 거고, 죄책감이 며칠 당신을 물어뜯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안 가는 게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는 것과 안 가는 것, 어느 쪽에도 비용이 있으니, 어느 쪽 비용이 지금의 당신에게 더 감당할 만한지 함께 따져 보자고 말할 뿐입니다. 다만 선택지가 두 개라는 것만은 분명히 해 둡니다. 하나뿐인 줄 알았던 문이 두 개라는 걸 아는 순간, 사람의 어깨는 조금 내려갑니다.
그리고 명절이 힘든 이유 중에는, 말씀은 잘 안 하시지만 빈자리의 문제도 있습니다. 지난 명절엔 계셨던 분이 올 명절엔 안 계신 집. 상은 그대로인데 수저 한 벌이 줄어든 집. 명절은 모이는 날이라서, 빠진 사람이 가장 크게 보이는 날이기도 합니다. 연휴가 지나고 나면 그 빈자리 이야기를 안고 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남들 다 즐겁다는 날에 슬픈 게 이상한 일이 아니냐고 물으시는데, 이상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웃는 날은, 웃을 수 없는 사람에게 가장 외로운 날입니다. 그러니 그 슬픔은 고장이 아니라, 그리움이 달력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명절이 지나면 진료실은 또 한 번 조금 붐빕니다. 채점표를 받아 든 사람들, 오랜 매듭이 다시 당겨진 사람들이 하나둘 다녀갑니다. 저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해마다 같은 생각을 합니다. 이 명절이라는 발명품이 모두에게 안전해지려면 아직 멀었구나. 그래도 견디는 기술은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구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기술을 함께 다듬고, 연휴만큼의 약을 미리 챙겨 드리고, 연휴가 끝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것 정도입니다. 대단치 않지만, 그 정도라도 기댈 곳이 있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다행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다가오는 연휴에는, 덕담을 조금 바꿔 보고 싶습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대신에요.
무사한 명절 보내세요. 가시는 분도, 안 가시는 분도, 각자의 자리에서 부디 무사히. 그리고 연휴가 끝나면, 견뎌 낸 이야기든 견디다 만 이야기든 들고 오셔도 됩니다. 진료실은 연휴가 끝나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