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대형 마트를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카트를 밀고 있습니다. 가운도 없고, 명찰도 없고, 진료실의 그 차분한 표정도 없습니다. 그냥 두부와 계란을 사러 온, 주차장에서 이십 분을 헤맨 동네 사람 하나입니다. 장바구니 목록은 머릿속에 있고, 절반은 이미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시식 코너 근처에서, 낯익은 얼굴과 눈이 마주칩니다.

진료실에서 뵙던 분입니다. 서로를 알아봤다는 걸, 서로가 압니다. 눈이라는 게 참 정직해서, 알아본 순간의 그 미세한 정지는 숨겨지지가 않거든요. 시간이 아주 잠깐, 반 박자쯤 멈춥니다.

그리고 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카트를 밀고 지나갑니다.

이 글은 그 몇 초에 대한 글입니다.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그러나 진료실에서는 설명할 기회가 좀처럼 없는 장면. 미리 말씀드리자면, 여기 등장하는 마트와 시식 코너는 전부 지어낸 무대입니다. 특정한 누군가와 마주친 이야기가 아니라, 이 직업에 딸려 오는 일반적인 풍경을 그린 것이니 안심하고 읽으셔도 됩니다.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이 전국에 몇천 명이고 마트는 어디에나 있으니, 이런 장면은 오늘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겁니다.

먼저 오해부터 풀겠습니다. 제가 지나친 건, 당신을 못 알아봐서가 아닙니다. 반갑지 않아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알아봤고, 반가웠고, 그래서 지나갑니다.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순서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인사라는 건 관계의 선언입니다. 제가 마트 한복판에서 "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는 순간,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정보가 공개됩니다. 이 두 사람은 아는 사이라는 것. 그러면 질문이 따라옵니다. 옆에 있던 당신의 가족이, 친구가, 혹은 우연히 같이 있던 회사 동료가 아주 자연스럽게 묻습니다. "누구야?"

그 질문에 당신이 할 수 있는 대답이 뭐가 있을까요. 사실대로 말하는 것은 당신의 진료 사실을 공개하는 일이 됩니다. 둘러대자니 거짓말을 지어내야 합니다. 어느 쪽이든, 두부를 사러 나온 주말 오후에 감당할 일은 아닙니다. 제 인사 한 번이 당신에게 그 계산을 떠넘기는 겁니다.

직업이 드러나는 방식은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병원에서 뵀는데"라는 말은 그 자체로 정보이고, 어느 병원이냐는 후속 질문은 거의 자동으로 따라붙습니다. 정신과라는 세 글자가 세상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 저는 너무 잘 압니다. 예전보다 편견이 많이 옅어졌다고는 해도, 자신의 진료 사실을 언제 누구에게 알릴지는 여전히 각자가 신중하게 고르는 문제입니다. 그 고르는 권리를, 마트의 우연이 대신 행사하게 둘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직업에는 오래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진료실 밖에서 마주치면, 먼저 아는 척하지 않는다. 이건 냉정함의 규칙이 아니라 비밀보장의 연장입니다. 진료실 안에서 하신 말씀을 제가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않듯이, 당신이 진료실에 다녀간다는 사실 자체도 제가 지켜야 할 비밀입니다. 그 비밀은 차트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마트의 시식 코너 앞에도 있습니다. 비밀보장이 법적으로 어디까지 당신을 지켜 주는지는 따로 정리해 둔 글이 있지만, 법 이전에 이건 그냥 상식적인 예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당신이 공개 범위를 정합니다. 저는 아닙니다.

그러니 그 반 박자의 정지 뒤에 제가 시치미를 떼고 지나갈 때, 제 속에서는 사실 꽤 빠른 계산이 끝난 겁니다. 알아봤다, 반갑다, 그러나 내가 아는 척을 하면 이분의 주말에 설명해야 할 숙제가 생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부터 세상에서 제일 자연스러운 모르는 사람이 된다.

고백하자면, 이 '자연스러운 모르는 사람' 연기가 늘 성공적이지는 않습니다.

눈이 마주친 직후에 갑자기 라면 진열대에 심취한 척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라면이 좋을까, 하는 표정으로 봉지를 하나 들고 성분표를 아주 열심히 읽었습니다. 나트륨 함량을 세 번쯤 읽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날 라면을 살 계획이 전혀 없었다는 걸요. 결국 그 라면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카트를 밀며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천장을 보는 게 나았겠다고요. 의과대학은 많은 걸 가르쳐 주지만, 마트에서 자연스럽게 딴청 부리는 법은 커리큘럼에 없습니다.

장소를 바꿔 가며 이 장면은 변주됩니다. 미용실에서, 목욕탕에서, 아이 학교 행사장에서, 동네 식당에서. 특히 작은 동네일수록 확률이 올라갑니다. 대도시의 익명성 속에서는 드문 일이, 골목 상권이 좁은 동네에서는 계절 행사처럼 돌아옵니다. 그래서 지역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은 이 '자연스러운 모르는 사람' 기술이 거의 달인의 경지라고들 합니다. 단골 반찬가게의 세계와 병원 대기실의 세계가 겹치는 곳에서는, 침묵의 예절이 더 자주, 더 정교하게 필요해지니까요.

그래서 어떤 진료실에서는 이 문제를 아예 첫 만남에 미리 다룹니다. 밖에서 마주치면 제가 먼저 인사하지 않을 텐데, 그건 모르는 척이 아니라 지켜 드리는 것이라고요. 미리 약속된 침묵은 서운함이 될 일이 없습니다. 저도 이 안내를 미처 드리지 못한 분들이 계실 텐데, 오늘 이 글이 그 뒤늦은 안내문인 셈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저쪽에서 먼저 다가와 밝게 인사를 건네 주시는 경우요.

그럴 때 저는 정말 반갑게 인사를 받습니다. 당신이 먼저 인사했다는 건,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아는 척해도 괜찮다고 당신이 판단하고 결정했다는 뜻이니까요. 공개 여부의 열쇠는 당신에게 있고, 당신이 문을 열었으니 저는 기쁘게 들어갑니다. 물론 그 자리에서도 지킬 선은 지킵니다. "요즘 어떠세요"는 묻지 않습니다. 그 질문은 진료실의 질문이고, 마트에서는 마트의 대화를 합니다. 날씨 이야기, 사람 많다는 이야기, 이 집 계란이 싸다는 이야기. 시시하고, 그래서 좋은 이야기들이요.

거꾸로 된 상상도 가끔 해 봅니다. 저에게도 저를 봐주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만약 어느 주말, 제가 카트를 밀다가 그분과 눈이 마주친다면 저는 어떨까요. 아마 저도 반 박자 얼어붙을 겁니다. 옆에 있는 가족이 "아는 분이야?" 하고 물으면 뭐라고 답하지, 하는 계산이 저에게도 순식간에 돌아갈 겁니다. 그 상상을 하고 나면, 진료실 밖의 침묵이 왜 예의인지 몸으로 이해가 됩니다. 저라도 그 순간엔, 상대가 성분표를 열심히 읽어 주기를 바랄 테니까요.

한 가지 걱정도 고백하겠습니다. 혹시 동네에서 저와 마주친 일이 마음에 걸려서, 다음 진료를 미루게 되는 분이 계실까 하는 걱정입니다. 마주침이 어색해서 병원을 옮기거나 발길을 끊는 일은, 이 직업이 가장 바라지 않는 결말입니다. 그러니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마트에서의 저는 당신을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음 진료에서도 그 이야기는 제가 먼저 꺼내지 않습니다. 당신이 웃으며 "지난번에 마트에서 뵀죠" 하고 꺼내신다면 그때는 같이 웃겠지만, 꺼내지 않으신다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입니다. 진료실의 시간과 마트의 시간은 서로를 모릅니다.

이 칸막이는 당신을 위한 것이지만, 사실 저에게도 필요합니다. 진료실의 저와 장 보는 저를 분리해 두어야, 두 자리 모두에서 제 몫을 할 수 있거든요. 당신이 진료실에서 보여 주신 모습이 당신의 전부가 아니듯, 가운을 입은 제 모습도 제 전부는 아니니까요. 칸막이 너머로 서로의 일상을 침범하지 않는 것. 그게 이 관계가 오래 건강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속마음을 하나 적겠습니다.

진료실 밖에서 당신을 보는 일은, 사실 저에게 꽤 특별한 경험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당신의 아주 좁은 단면만을 아는 사람입니다. 진료실 의자에 앉은 당신, 힘든 시기의 당신, 가장 무거운 이야기를 하러 온 요일의 당신. 제가 아는 당신은 대부분 그 모습입니다. 그런데 마트의 당신은 다릅니다. 카트에 이것저것 담고, 뭘 고를까 들여다보고, 일행과 뭐라 뭐라 웃고 있는 당신.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당신. 그건 제가 진료실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당신의 평범한 하루입니다.

그 평범함이, 저는 참 좋습니다.

마음이 아플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게 그 평범한 하루거든요. 장 보러 갈 기운, 저녁 메뉴를 궁금해할 기운, 시식 코너 앞에서 줄 설 기운. 그게 다 사라지는 게 아픔의 풍경입니다. 진료실에서 회복을 확인하는 지표들은 대개 문진표와 수치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진짜 회복은 이런 데서 보입니다. 오늘 저녁에 뭘 먹을지가 다시 궁금해지는 것. 사소해서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것들이, 사실은 가장 정확한 차도입니다. 그러니 마트에서 카트를 밀고 있는 당신을 본다는 건, 저로서는 그 하루가 당신에게 돌아와 있는 장면을 보는 일입니다. 어떤 경과 기록보다 생생한 회복의 증거를, 우연히, 시식 코너 옆에서 목격하는 일이요. 그런 날 저는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지나가면서, 속으로는 꽤 오래 웃습니다. 장바구니에 담긴 저녁거리가 그렇게 반가운 물건인 줄, 이 직업을 하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물론 반대의 순간도 있습니다. 우연히 스친 얼굴이 유난히 지쳐 보이는 날이요. 그럴 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달려가서 안부를 물을 수도, 다음 예약을 당기시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다음 진료일에 그분이 오시기를, 평소보다 조금 더 바랄 뿐입니다. 진료실 밖의 저는 이렇게 무력합니다. 의사의 효력은 진료실 문 안쪽에서만 발생하고, 문밖에서 제가 가진 것은 기다림뿐입니다. 가운은 벗으면 그만인데, 마음은 벗어지지가 않아서요. 그 무력함도 이 직업의 일부라는 걸, 마트의 형광등 아래에서 종종 배웁니다.

그러니 정리하겠습니다. 언젠가 마트에서, 극장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저와 눈이 마주쳤는데 제가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가더라도, 서운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건 무시가 아니라 제가 아는 가장 조용한 방식의 인사입니다.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말과, 당신의 사생활은 여기서도 안전하다는 말을, 침묵 한 장에 접어서 건네는 겁니다.

인사하고 싶으시면 언제든 먼저 건네 주세요.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얼굴로 받겠습니다. 인사하고 싶지 않으시면 그냥 지나가 주세요. 저는 성분표를 읽고 있겠습니다. 그날 제 카트에 라면이 담겨 있다면, 그건 아마 당신 때문일 겁니다.

어느 쪽이든, 진료실 밖의 당신이 오늘의 저녁거리를 고르며 잘 지내고 계시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러니 우리, 마트에서는 서로 모르는 사람으로 만납시다. 아는 사이라서 하는, 세상에서 제일 이상하고 다정한 약속입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