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에서 쓸 수 있는 카드에도 끝이 있습니다. 항우울제를 여러 번 바꿔 쓰고, 증강요법을 얹고, 심리치료를 병행하고, 전기경련치료(ECT)까지 받았는데도 여전히 우울의 바닥에 있는 분들. 진료실에서 종이 위에 남은 선택지를 세다 보면, 정말 몇 칸 안 남는 순간이 옵니다.
바로 그 끝자락에 놓인 치료가 오늘 이야기할 뇌심부자극술(DBS, Deep Brain Stimulation) 입니다. 이름 그대로, 뇌 깊은 곳에 가느다란 전극을 심어 전기로 자극하는 치료죠. 처음 들으면 SF 같고, 조금 무섭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치료의 진짜 이야기는 그 서늘한 첫인상보다 훨씬 흥미롭고, 훨씬 정직합니다. '기적'으로 시작했다가 대규모 임상에서 무너지고, 다시 장기 데이터로 반전되는 롤러코스터거든요. 그 궤적을 논문의 숫자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핵심 정보 한눈에
- 무엇: 뇌 깊은 곳 목표 부위에 전극을 심고, 가슴에 삽입한 소형 배터리(자극발생기)로 지속적인 전기 자극을 주는 수술적 치료
- 대상: 약·심리치료·ECT 등 가능한 치료를 다 해봐도 낫지 않는 중증 난치성 우울증·강박증 (말 그대로 '마지막 선택지')
- 큰 장점: 자극 세기를 조절할 수 있고, 필요하면 끌 수도(되돌릴 수도) 있다. 뇌 일부를 영구히 없애는 옛 절제수술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
- 강박증: 미국 FDA가 2009년 인도적 사용 승인(HDE) — 일반 허가보다 낮은 등급 — 을 내줬습니다
- 우울증: 아직 연구 단계(정식 승인 아님). 초기 성공 → 대규모 임상 실패 → 장기 데이터는 다시 유망, 이라는 엇갈린 근거
- 주의: 뇌수술이라 출혈·감염 등 위험이 따르고, 매우 침습적이며 비쌉니다. 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고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DBS는 고도로 전문화된 시술로, 대상 여부는 반드시 전문 의료진의 종합 평가로만 결정됩니다.
뇌에 전극을 심는다는 것
먼저 이 치료가 물리적으로 무엇인지부터.
수술로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내고, 머리카락처럼 가는 전극을 뇌 속 정해진 지점까지 밀어 넣습니다. 이 전극은 피부 밑을 지나는 전선으로, 쇄골 아래 가슴에 심은 자극발생기(심장 박동조율기와 비슷한 소형 배터리 장치) 와 연결됩니다. 이 장치가 목표 부위에 끊임없이 미세한 전기 자극을 보냅니다.
핵심 — DBS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조절 가능하고 되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극의 세기·빈도를 밖에서 프로그래밍해 미세 조정하고,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생기면 꺼버릴 수 있습니다. 이건 예전에 난치성 정신질환에 쓰던 절제수술—뇌의 일부를 영구히 잘라내거나 손상시키는(대상회 절제술 등)—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되돌릴 수 없는 수술과, 스위치를 끌 수 있는 자극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죠.
사실 DBS는 정신과에서 먼저 나온 치료가 아닙니다. 원래 파킨슨병 같은 운동질환에서 손떨림·경직을 다스리려 자리 잡은 기술인데(전 세계에서 수만 명이 받았습니다), 그 경험이 쌓이며 정신질환으로 조심스럽게 넘어온 겁니다.
어디를 자극하나
뇌의 '어디'를 자극하느냐가 이 치료의 핵심이자 난제입니다. 병에 따라 겨냥하는 지점이 다릅니다.
- 우울증: 감정 회로의 교차로로 지목되는 무릎아래대상피질(subcallosal cingulate, 브로드만 25번 영역) 이 대표 표적입니다. 신경과학자 헬렌 메이버그가 이 부위를 겨냥하며 정신과 DBS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 밖에 배쪽 피막/배쪽 선조체(VC/VS) 등도 연구됐습니다.
- 강박증: 배쪽 피막/배쪽 선조체(VC/VS), 특히 내포 전각(ALIC), 측좌핵, 시상하핵 등이 표적입니다.
문제는, 이 지점을 밀리미터 단위로 정확히 맞히는 게 어렵고, 사람마다 최적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뒤에 나올 '엇갈린 성적표'의 상당 부분이 바로 여기서 갈립니다.
기적처럼 시작했다 (2005)
이야기의 출발은 화려했습니다. 2005년, 메이버그 연구팀은 다른 어떤 치료도 듣지 않던 중증 우울증 환자 6명의 무릎아래대상피질에 DBS를 시도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어요. 여섯 명 중 네 명에게서 극적이고 지속적인 우울증 관해가 나타났습니다1. 수년째 바닥에 있던 사람들이 스위치를 켜자 달라졌다는 이 보고는, 정신의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우울증의 회로를 직접 손볼 수 있다"는 희망이었죠.
이후 여러 개방연구(open-label, 위약군 없이 실제 자극만 주는 연구)에서도 비슷한 낙관적 결과가 이어졌습니다. 자연스레 다음 수순은 정식 검증, 즉 위약대조 임상시험이었습니다.
그런데 대규모 임상은 무너졌다
여기서 반전이 옵니다. 정신과 치료의 효과를 제대로 증명하려면, 가짜 자극(sham) 을 받은 대조군과 비교해야 합니다. 기대 효과(플라시보)를 걷어내기 위해서요. DBS도 이 관문에 섰고—넘지 못했습니다.
- BROADEN 임상 (2017): 무릎아래대상피질 DBS를 위약(가짜 자극)과 비교한 대규모 다기관 연구입니다. 결과는 냉정했습니다. 6개월째 반응률이 실제 자극군 20%, 가짜 자극군 17%. 통계적으로 차이가 없었고, 연구는 중간 분석에서 '더 해봐야 소용없다'는 판단(무용성)으로 조기 중단됐습니다2.
- VC/VS 임상 (2015): 다른 표적(배쪽 피막/선조체)을 겨냥한 위약대조 임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제 자극 20% 대 가짜 자극 14.3%로, 역시 갈리지 못했습니다3.
'기적'이라던 치료가 정작 가장 엄격한 시험에서 위약과 구별되지 않았다는 것. 이건 DBS 우울증 치료에 큰 타격이었고, 상업적 개발도 사실상 멈췄습니다.
그런데 장기 데이터가 다시 뒤집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DBS는 '실패한 희망'으로 정리됐을 겁니다. 그런데 한 겹이 더 있습니다.
연구팀이 초기 참가자들을 길게, 아주 길게 추적했습니다. 2019년 발표된 결과를 보면, 무릎아래대상피질 DBS를 받은 28명을 4~8년간 따라갔더니, 반응(우울점수 50% 이상 개선)과 관해 상태가 2년째부터 8년째까지 꾸준히 유지됐습니다. 참가자의 4분의 3이 관찰 기간의 절반 이상 동안 반응 상태였고, 자살은 한 건도 없었으며, 자극 자체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도 없었습니다4.
짧은 위약대조 임상은 실패했는데, 긴 추적은 성공적이라니. 이 모순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핵심 — 전문가들이 꼽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DBS 우울증 효과는 느리고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서, 6개월짜리 눈가림 기간으로는 잡아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둘째, 눈가림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가짜 자극군도 이미 전극이 심어져 있고, 자극이 켜지면 몸이 미묘하게 알아채기도 하니까요. 셋째, 표적을 얼마나 정확히 맞혔는지, 어떤 환자를 골랐는지에 결과가 크게 좌우됩니다(요즘은 뇌 신경다발을 영상으로 보며 표적을 정교화합니다). 넷째, 애초에 참가자 수가 너무 적어 통계적 힘이 약합니다. 요컨대 '초기의 기적'에도, '대규모 실패'에도 거품과 한계가 섞여 있었고, 진실은 "일부 환자에게는 분명히, 다만 느리게 듣는다" 쪽에 가까워 보입니다.
강박증에는 — FDA가 문을 열어둔 유일한 정신과 적응증
우울증과 달리, 강박증(OCD) 에서는 DBS가 규제의 문을 통과했습니다. 미국 FDA는 2009년, 중증 난치성 강박증(대개 SSRI 세 가지 이상 실패)에 대해 DBS를 인도적 사용 승인(HDE, Humanitarian Device Exemption) 으로 허용했습니다.
다만 이 'HDE'라는 딱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HDE는 일반적인 정식 허가보다 낮은 등급입니다. 연간 환자가 4,000명 이하인 희귀한 상황에 한해, 대규모 임상으로 효과를 완벽히 증명하는 요건을 면제해주는 제도거든요. 즉 '안전하고 이득이 있을 법하다'까지는 인정하지만 '효과가 확실히 입증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근거를 보면, 난치성 강박증 DBS 연구 31건(116명)을 묶은 메타분석에서 약 60%가 반응했고, 강박 증상 척도(Y-BOCS)가 평균 45%가량 감소했습니다5. 모든 다른 치료가 실패한 사람들에서 나온 숫자치고는 인상적입니다. 흥미롭게도, 그럼에도 강박증 DBS는 승인 이후 오히려 시술이 줄어, 큰 전문 센터에서도 드물게 시행되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그만큼 침습적이고 문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위험과 한계, 정직하게
뇌수술인 이상, 위험을 에두르지 않겠습니다.
- 수술 관련: 가장 우려되는 건 뇌출혈입니다. 보고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환자당 1~3% 수준이고, 증상을 남기는 출혈은 대략 2% 안팎입니다. 감염, 전극·기기 관련 문제(전선 이동·고장 등)도 생길 수 있습니다. DBS 전체에서 사망과 직접 연관되는 경우는 드물지만(약 0.4%), 0이 아닙니다.
- 자극 관련: 자극 위치·세기에 따라 경조증(기분이 붕 뜨고 들뜨는 상태), 불안, 기분 변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이런 반응은 대개 자극을 재조정하면 되돌릴 수 있습니다 — 앞서 말한 '되돌릴 수 있음'이라는 장점이 여기서 빛을 발합니다.
- 근거의 한계: 참가자 수가 워낙 적고, 눈가림이 어려우며, 비용이 매우 높고, 무엇보다 몸에 칼을 대는 치료입니다. 그래서 DBS는 결코 '한번 해볼 만한' 치료가 아니라, 정말로 다른 모든 길이 막혔을 때 신중히 저울질하는 마지막 카드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리고 어디까지 왔나
분명히 해두겠습니다. 우울증에 대한 DBS는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정식 치료가 아니라 연구 단계입니다. 강박증은 미국에서 위 HDE 경로로 제한적으로 시행되고요.
국내 사정은 어떨까요. 파킨슨병 같은 운동질환에 대한 DBS는 한국에서도 자리 잡은 치료입니다. 다만 정신과 질환(강박증·우울증)에 대한 DBS의 국내 시행·허가·급여 현황은 이 글에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관심이 있다면 신경외과·정신건강의학과가 함께 있는 상급 의료기관에 직접 확인하시는 게 정확합니다.
지금 이 치료의 위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DBS는 난치성 정신질환의 마지막 국면을 위한, 유망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도구다. 실로시빈이나 케타민 계열 같은 다른 '난치성 우울증의 최전선' 치료들과 나란히, 지도가 지금도 그려지는 중인 영역입니다.
남는 이야기
DBS의 이야기가 제게 인상적인 건, 결과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정직한 굴곡 때문입니다. 기적 같던 초기 보고, 냉정한 대규모 실패, 그리고 긴 시간이 밝혀준 조용한 유지. 의학의 진보는 대개 이렇게 매끄럽지 않게, 앞뒤로 흔들리며 나아갑니다. 헤드라인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숫자의 전체 궤적을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지금 여러 치료에도 낫지 않아 지쳐 계신 분이라면, 이 글이 '뇌수술'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권하는 것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그 마지막 칸까지 가기 전에, 아직 제대로 안 써본 카드—증강요법, ECT, TMS, 충분히 붙여본 적 없는 심리치료—가 남아 있진 않은지 주치의와 함께 다시 세어보시길 권합니다. 지금 당장 위태로운 상태라면 자살 경고신호와 도움받는 법을 꼭 먼저 확인해 주세요. 어떤 치료가 '나에게' 맞는지는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해 정하시길 바랍니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무릎아래대상피질 DBS의 첫 개방연구, 6명 중 4명 관해 (Mayberg 등, Neuron 2005): PubMed
- 위약과 갈리지 못하고 중단된 BROADEN 임상 (Holtzheimer 등, Lancet Psychiatry 2017): PubMed
- 배쪽 피막/선조체 DBS 위약대조 임상 (Dougherty 등, Biol Psychiatry 2015): PubMed
- 무릎아래대상피질 DBS 4~8년 장기 추적 (Crowell 등, Am J Psychiatry 2019): PubMed
- 난치성 강박증 DBS 메타분석, 반응률 60%·Y-BOCS 45% 감소 (Alonso 등, 2015): PubMed
- 함께 보면 좋은 마음뉴스 글: 전기경련치료(ECT) · TMS · 치료저항성 우울증 · 강박장애(O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