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에 이런 인물이 종종 나옵니다. 평소엔 얌전하다가 어느 순간 눈빛과 말투가 확 바뀌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인물. 그리고 어딘가에서 이렇게 설명되죠. "쟤, 조현병이래."
많은 사람이 조현병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한 몸 안에 여러 인격이 들어앉아 번갈아 튀어나오는 병이라고요. 그런데 이건 조현병이 아닙니다. 그렇게 인격이 여러 개로 갈아 끼워지는 건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는, 완전히 다른 병입니다.
두 병을 헷갈리는 게 그냥 개인이 무식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사실 100년 전 이 병에 이름을 붙이던 순간부터 오해의 씨앗이 심겨 있었거든요.
정신병과 해리, 방향이 반대인 두 증상
먼저 두 병이 얼마나 다른지부터 봅시다. 진단 분류체계인 DSM-5에서 조현병은 정신병적 장애, 해리성 정체성 장애는 해리성 장애로, 아예 다른 장(章)에 실려 있습니다. 같은 과 안의 사촌 격도 아니고, 출발점이 다른 별개의 병입니다.
핵심 차이는 증상이 향하는 방향입니다. 정신병(psychosis)은 현실에 없는 것을 더합니다. 남들에게 안 들리는 목소리가 들리고(환청), 사실이 아닌 믿음이 확신으로 자리 잡죠(망상). 반대로 해리(dissociation)는 자기 자신과 기억, 정체감으로부터 분리시킵니다. 한쪽은 덧셈, 다른 쪽은 끊어짐.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숫자로도 다릅니다. 조현병은 전 세계 어디서나 인구의 0.3~0.7%가 겪는, 생각보다 흔한 병입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는 그보다 훨씬 드물고, 뒤에서 이야기할 논쟁 때문에 추정치의 편차도 큽니다.
| 구분 | 조현병 | 다중인격(해리성 정체성 장애) |
|---|---|---|
| 진단 범주 | 정신병적 장애 | 해리성 장애 |
| 증상의 방향 | 없는 걸 더함 (환청·망상) | 자기·기억에서 분리됨 |
| '분열'의 뜻 | 한 인격 안, 기능들의 연결 이완 | 구별되는 여러 정체성 상태 |
| 대략의 유병률 | 인구의 0.3~0.7% | 훨씬 드묾 (추정 편차 큼) |
| 치료의 축 | 항정신병약물 중심 | 외상 중심 심리치료 중심 |
'분열'이라는 말이 놓은 덫
그럼 사람들은 왜 이 둘을 자꾸 겹쳐 볼까요. 이름 탓이 큽니다.
조현병의 원어 schizophrenia는 그리스어 schizein(쪼개다)과 phren(마음)을 합친 말입니다. 직역하면 '쪼개진 마음'이에요. 스위스 정신의학자 오이겐 블로일러가 1908년에 처음 만든 용어입니다(Fusar-Poli·Politi, 2008).
문제는 블로일러가 말한 '쪼개짐'의 의미입니다. 그는 인격이 여러 개로 갈라진다는 뜻으로 이 말을 쓴 적이 없습니다. 그가 가리킨 건 한 사람 안에서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서로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흩어지는 상태였어요. 그가 꼽은 이 병의 핵심 특징은 흔히 '4A'로 요약됩니다. 생각의 연결이 느슨해지는 연상 이완, 감정 표현이 밋밋해지는 정동 둔마, 상반된 마음이 동시에 드는 양가감정, 그리고 세계로부터 물러나는 자폐적 위축.
여기에 씁쓸한 역설이 있습니다. 블로일러는 오히려 낙인을 걷어내려고 이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전까지 쓰이던 '조발성 치매'라는 이름이 풍기는 '젊어서 못 낫고 황폐해지는 병'이라는 인상을 지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쪼개진 마음'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어감이, 이후 '인격이 쪼개진다, 그러니까 여러 인격이 있다'는 훨씬 더 끈질긴 오해로 굳어졌습니다.
핵심 — 조현병의 '분열'은 인격이 여러 개로 갈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각·감정·의지가 서로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름을 지은 사람이 말한 '분열'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이름을 바꿨다
이 오해가 워낙 뿌리 깊다 보니, 한국은 아예 병명을 갈아치웠습니다. 2011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오래 쓰던 '정신분열병'을 버리고 '조현병'을 새 이름으로 채택했습니다. '분열'이라는 단어가 인격분열이라는 오해와 낙인을 너무 강하게 불러온다는 판단이었죠. 환자와 가족 단체가 수천 명의 서명을 모아 개정을 청원한 것이 공식 논의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조현(調絃)은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입니다. 줄이 제멋대로 풀려 소리가 흐트러진 악기를, 다시 팽팽히 조율해 고른 소리를 낸다는 은유예요. 인격이 쪼개진다는 무서운 그림 대신, 흐트러진 걸 고르면 된다는 그림으로 바꾼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름을 바꾼 효과는 있었을까요. 여기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2023년 BMC Psychiatry에 실린 한 연구(Kim 등)는 개정 이후에도 대중의 인식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고, 조현병을 향한 시선은 여전히 부정적으로 기울어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저자들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이름만 바꿔서는 부족하고, 미디어가 조현병을 그려내는 방식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것.
그럼 진짜 '다중인격'은 무슨 병일까
오해의 반대편에 있는, 진짜 다중인격 이야기를 해봅시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는 대개 심한 외상, 특히 아동기에 반복된 외상에 대한 반응으로 설명됩니다. 한 사람 안에 구별되는 둘 이상의 정체성 상태가 자리 잡고, 그 사이에 일상 사건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기억의 공백이 생기는 병입니다.
그런데 이 병 자체가 정신의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진단 중 하나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크게 두 진영이 있어요.
한쪽은 외상 모델입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는 실제 외상에서 비롯된 실재하는 병이라고 봅니다(Dalenberg 등, 2012). 다른 한쪽은 사회인지 모델, 혹은 의인성 모델입니다. 여러 정체성이라는 현상이 치료자의 은근한 암시, 미디어가 제공한 각본, 그리고 개인의 높은 피암시성이 함께 빚어낸 구성물일 수 있다고 봅니다(Lilienfeld 등, 1999; Lynn 등, 2014).
주의할 점은, 어느 쪽도 "해리성 정체성 장애는 가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논쟁의 초점은 이 병이 실재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예요. 최근에는 두 모델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고 보는 절충 시각도 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병을 '관심 끌려는 연기'쯤으로 치부하는 것도, 조현병과 헷갈리는 것만큼이나 또 하나의 오해입니다.
전문가도 신중해지는 지점
여기까지 읽고 "그러니까 둘은 완전히 무관한, 절대 안 겹치는 별세계구나"라고 정리하면 그것도 조금 지나칩니다. 실제 임상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거든요.
2017년 Schizophrenia Bulletin에 실린 체계적 문헌고찰(Renard 등)은 이 애매함을 잘 보여줍니다. 저자들은 두 병이 "2 categorically distinct diagnostic categories(범주상 별개인 두 진단)"이면서도, 동시에 "high levels of co-occurrence(높은 수준의 동반 출현)"를 보인다고 정리했습니다. 조현병으로 진단된 사람 중 상당수가 해리 증상을 함께 겪고, 반대로 해리성 정체성 장애로 진단된 사람 중에는 과거에 조현병으로 진단받았던 이가 적지 않습니다. 오래도록 조현병의 표지처럼 여겨진 환청조차, 해리성 장애에서도 드물지 않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감별은 표면에 드러난 증상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대체로 조현병 쪽은 감정 둔마 같은 음성증상이 두드러지고, 해리 쪽은 해리 증상과 양성 증상이 앞선다는 결의 차이가 있지만, 전문가도 시간을 두고 조심스럽게 판단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대중이 둘을 '같은 병'으로 뭉뚱그리는 건 분명히 틀렸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안 닮은 병'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조심스럽습니다. 가장 정확한 표현은, 범주도 원인도 치료도 다른 별개의 병인데 표면이 닮은 데가 있어 전문가조차 감별에 공을 들인다는 것입니다.
이 구분이 왜 중요한가
이쯤에서 물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둘 다 마음의 병인데, 이름 좀 헷갈리는 게 그렇게 큰일인가. 큰일입니다. 이 오해가 사람을 다치게 하니까요.
'조현병은 여러 인격이 있다, 그러니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그러니 위험하다'는 연쇄가 특히 미디어에서 지치지도 않고 반복됩니다. 2012년 Psychiatric Services에 실린 영화 분석(Owen)을 보면, 1990년부터 2010년까지 등장한 조현병 캐릭터의 다수가 폭력적으로 그려졌고, 그중 3분의 1가량이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현실은 딴판입니다. 조현병 환자 대다수는 폭력과 아무 상관이 없고, 오히려 폭력의 피해자가 되기 쉽다는 연구가 있습니다(Brekke 등, 2001). 화면 속 이미지와 실제 삶이 이렇게까지 어긋나는 병도 흔치 않습니다.
물론 균형은 지켜야 합니다. 위험이 0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2009년 PLoS Medicine의 메타분석(Fazel 등)은 조현병이 폭력 위험을 어느 정도 높이긴 하되, 그 상승분의 상당 부분이 함께 있는 물질사용 문제로 설명되고 절대적인 위험 자체는 낮다고 정리했습니다. 요컨대 '조현병이라서 위험하다'가 아니라, 특정 조건이 겹쳤을 때 위험이 조금 올라갈 뿐입니다. '여러 인격이 튀어나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그림은 이 어떤 근거와도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바로 그 그림이, 정작 환자와 가족을 가장 먼저 움츠러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다시 고를 수 있는 현
말 한마디가 병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병을 어떻게 대할지는 정합니다. '분열'이라는 번역어 하나가 100년 동안 엉뚱한 그림을 그려온 걸 보면, 이름의 무게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제 누군가 "조현병이면 인격이 여러 개인 거 아니야?"라고 물으면, 이렇게 답할 수 있겠습니다. 그건 다른 병이고, 조현병의 '분열'은 사람이 갈라지는 게 아니라 한 사람 안의 연결이 잠시 흐트러지는 거라고요. 그리고 흐트러진 현은 다시 고를 수 있다고. 애초에 이 병의 한국어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참고 자료
- Renard 등. 조현병 스펙트럼과 해리성 장애의 증상 중첩에 관한 체계적 문헌고찰. Schizophrenia Bulletin, 2017. PMID 27209638
- Fusar-Poli·Politi. 오이겐 블로일러와 조현병의 탄생(1908).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2008. PMID 18981075
- Kim 등. 한국 조현병 병명 개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미디어 프레임 분석. BMC Psychiatry, 2023. PMID 38012639
- Owen. 영화 속 조현병 묘사에 대한 내용 분석. Psychiatric Services, 2012. PMID 22555313
- Fazel 등. 조현병과 폭력에 관한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 PLoS Medicine, 2009. PMID 19668362
- Lilienfeld 등. 해리성 정체성 장애와 사회인지 모델. Psychological Bulletin, 1999. PMID 10489540
- Lynn 등. 해리의 외상 모델에 대한 논평(Dalenberg 등 2012에 대한 반박). Psychological Bulletin, 2014. PMID 24773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