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에게 거의 정해진 순서로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환청이 심해요, 이상한 말을 해요"로 시작합니다. 치료가 진행되고 몇 달이 지나면 말이 바뀝니다. "이상한 말은 이제 안 하는데요, 하루 종일 방에만 있어요. 씻지도 않고, 말을 시켜도 대답이 한두 마디예요. 약 때문에 저렇게 처진 건가요, 아니면 게을러진 건가요?"

이 두 번째 질문이 이 글의 주제입니다. 답부터 말씀드리면, 그것은 약 탓만도 아니고 게으름은 더더욱 아닙니다. 많은 경우 그것 자체가 병의 증상입니다. 환청이나 망상처럼 무언가가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라, 있던 것이 사라지는 증상. 조현병에서 가장 덜 알려져 있지만, 삶을 가장 길게 깎아내리는 증상. 정신의학은 이를 음성 증상이라고 부릅니다.

더해지는 증상, 없어지는 증상

조현병의 증상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뉩니다.

양성 증상은 원래 없어야 할 것이 '더해지는' 증상입니다. 환청, 망상, 와해된 말과 행동. 겉으로 요란하고, 가족을 놀라게 하고, 병원에 오게 만드는 증상들입니다. 조현병이라는 병명에서 사람들이 떠올리는 모습이 대부분 여기에 속합니다. (환청이 실제로 어떻게 들리는지는 따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음성 증상은 반대로 원래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는' 증상입니다. 미국 노스웰헬스와 뉴욕주립대 연구진의 정리를 빌리면 다섯 갈래입니다1.

  • 의욕이 없어집니다. 하고 싶은 것, 해야겠다는 힘 자체가 줄어듭니다. 씻기, 옷 갈아입기 같은 일상도 산처럼 느껴집니다.
  • 감정 표현이 없어집니다. 얼굴에서 표정이 줄고, 목소리의 높낮이가 사라져 밋밋해집니다. 속으로 느끼는 것과 별개로, 겉으로 드러나는 양이 줄어듭니다.
  • 말이 없어집니다. 묻는 말에 짧게만 답하고, 스스로 말을 꺼내는 일이 드물어집니다.
  • 즐거움이 없어집니다. 좋아하던 게임, 음악, 음식이 시들해집니다. 흥미로운 것은, 막상 하고 있는 순간의 즐거움보다 '앞으로 올 즐거움을 미리 기대하는 힘'이 특히 약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시켜서 나간 나들이는 의외로 즐거워하면서, 스스로 나갈 계획은 세우지 못합니다.
  • 사람에게서 멀어집니다. 친구 연락에 답하지 않고, 가족 모임을 피하고, 방이 세상의 전부가 되어 갑니다.

이 다섯은 겉으로 조용합니다. 소리치지 않고, 사고를 일으키지 않고, 응급실에 실려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에 덜 띄지만, 위 연구진의 정리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 10명 중 6명까지가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뚜렷한 음성 증상을 겪고, 심지어 병의 첫 신호가 환청이 아니라 이 조용한 증상들인 경우가 가장 흔합니다. 발병 전 몇 년에 걸쳐 서서히 말수가 줄고 친구가 줄고 성적이 미끄러지는 시기가 먼저 오는 것입니다. (가족이 알아챌 수 있는 초기 신호들에 이 시기를 자세히 적어 두었습니다.)

경과에서도 두 증상은 다르게 움직입니다. 양성 증상은 파도처럼 옵니다. 급성기에 치솟았다가 치료와 함께 가라앉고, 재발하면 다시 치솟습니다. 음성 증상은 파도라기보다 수위에 가깝습니다. 급성기가 지나가고 환청이 잦아든 뒤에도 낮게, 길게 남아 일상의 바닥을 정합니다. 가족들이 "급한 불은 껐는데 사람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시기가 바로 이 국면입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보면, 직업을 유지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혼자 살아가는 능력을 결정하는 것은 요란한 양성 증상보다 이 조용한 증상들 쪽입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가 주도한 대규모 임상시험(CATIE)에 참여한 환자 1,447명의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 일상 기능과 가장 강하게 연결된 것은 환청도 망상도 우울도 아닌 음성 증상이었습니다2. 환청이 멎어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게으름도, 우울도 아닙니다

음성 증상이 가족을 가장 힘들게 하는 지점은 증상이 증상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환청은 병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누워 있는 모습은 게으름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가족의 말이 서서히 바뀝니다. "언제까지 이럴 거니." "의지를 좀 가져봐." "네가 노력을 안 하니까 그렇지."

이 말들이 나오는 심정을 저는 이해합니다. 몇 년을 간병해 온 가족일수록 이 말이 먼저 나옵니다. 환청이라는 큰 산을 함께 넘었는데, 그 뒤에 남은 것이 회복이 아니라 침묵과 무기력이라면, 서운함과 조바심이 안 생기는 게 이상합니다.

그런데 이 말들이 만드는 악순환이 있습니다. 다그침은 환자에게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는 증상을 악화시키고, 악화된 증상은 더 깊은 위축으로 나타나고, 그 모습은 가족의 눈에 더 심한 게으름으로 보입니다. 가족은 가족대로 지치고 서운해집니다. 온 가족이 성실하게 서로를 소모하는 구조입니다. 이 악순환의 출발점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의지'가 병에 깎여나갈 수 있는 기능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의욕은 마음가짐이 아니라 뇌의 기능이고, 조현병은 정확히 그 기능을 건드립니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달리기 의지를 요구하지 않듯, 의욕 회로가 앓고 있는 사람에게 의욕을 다그쳐서 꺼낼 수는 없습니다.

우울증과의 혼동도 흔합니다. 겉모습이 정말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누워 있고, 말이 없고, 재미를 못 느낍니다. 차이는 안쪽에 있습니다. 우울증은 괴로움이 가득 찬 상태에 가깝습니다. 슬픔, 죄책감, 자기 비난이 마음을 채우고 있습니다. 음성 증상은 채워져 있다기보다 비어 있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본인에게 물으면 괴롭다기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어요"라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조현병에 우울증이 겹칠 수도 있고, 이 감별은 치료 방향이 달라지는 문제라 전문의의 몫입니다. 가족이 기억해 둘 것은 하나입니다. 저 모습이 꾀병도 나태도 아닐 수 있다는 것.

한 가지 더 짚어야 공정합니다. 비슷한 모습이 병 자체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올 수도 있습니다. 약의 진정 작용 때문에 처져 보일 수 있고, 약이 유발한 몸의 둔함이 표정을 가릴 수 있고, 환청이 남아 있어 사람을 피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이차성' 음성 증상이라고 부르며, 원인을 조정하면 좋아질 여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더 처져 보인다"는 관찰은 잔소리의 재료가 아니라 진료실에 가져올 소중한 정보입니다.

치료가 어렵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여기서부터는 듣기 편한 이야기가 아닙니다만, 정확하게 아는 것이 가족에게 이롭다고 믿고 적습니다.

현재의 조현병 약물은 양성 증상에는 상당히 잘 듣습니다. 환청과 망상을 가라앉히고 재발을 막는 힘은 여러 연구에서 거듭 확인되어 있습니다. (약을 유지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는 따로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병 자체에서 나오는 일차성 음성 증상에 대해서는, 지금의 약들이 만족스럽게 듣지 않습니다. 위에 소개한 리뷰 논문의 결론도 같습니다. 이차성 음성 증상은 원인을 다루면 좋아질 수 있지만, 일차성 음성 증상은 현재의 항정신병약물에 대체로 반응이 제한적이며, 새로운 치료가 절실히 필요한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숨기지 않고 말씀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음성 증상이 약으로 시원하게 낫지 않는다는 걸 모르면, 가족은 두 가지 함정 중 하나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나는 "약을 먹는데도 저러니 약이 소용없다"며 치료 전체를 접어버리는 것. 양성 증상 재발이라는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오는 선택입니다. 다른 하나는 병원을 전전하며 기적의 약을 찾아다니다 지쳐버리는 것. 어느 쪽도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직한 그림은 이렇습니다. 약은 병의 한쪽(양성 증상과 재발)을 단단히 붙들고, 다른 쪽(음성 증상과 일상 기능)은 약 바깥의 노력이 함께 끌어올려야 합니다. 약이 붙드는 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의 노력도 함께 무너지기 때문에, 이 둘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한 팀입니다. 그리고 음성 증상을 겨냥한 새 약들이 세계적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영역이라는 점도 적어 둡니다. 지금 만족스러운 답이 없다는 것이지, 앞으로도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약 바깥에서 할 수 있는 것들

약 바깥의 노력이란 막연한 정성이 아니라 구조를 말합니다.

재활 프로그램. 사회기술훈련, 직업재활, 인지재활, 낮병원 프로그램 같은 것들입니다. 의욕이 안에서 솟지 않을 때, 정해진 시간에 갈 곳과 할 일과 만날 사람이 있다는 외부 구조가 그 자리를 대신 받쳐줍니다. 하루의 뼈대가 생기는 것 자체가 치료입니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다니는 병원의 정신건강사회복지사에게 묻거나 거주지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문의하는 것이 현실적인 첫걸음입니다. 지역마다 낮 시간 프로그램과 취업 연계 서비스가 생각보다 갖춰져 있는데, 존재 자체를 몰라서 못 쓰는 가정이 많습니다.

아주 낮은 계단. 재활이든 집안일이든, 목표는 잘게 쪼갤수록 좋습니다. "이력서를 내자"가 아니라 "오전에 일어나서 거실로 나오자"부터입니다. 의욕이 행동을 만드는 게 보통의 순서지만, 이 병에서는 순서를 뒤집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몸이 먼저 움직이면 의욕이 뒤늦게 따라오는 날이 있고, 그런 날이 쌓이는 것이 회복의 실제 모양입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 근거가 꽤 쌓여 있는 영역입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교 연구진이 29개 연구, 환자 1,109명의 자료를 모아 분석했더니, 운동을 치료에 더한 경우 전반적 증상과 삶의 질과 함께 음성 증상도 의미 있게 좋아졌습니다3. 운동이 만병통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약이 잘 닿지 않는 바로 그 영역을, 걷기와 같은 단순한 활동이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앞의 이야기가 다시 연결됩니다. 의욕이 없는 사람은 운동을 스스로 시작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처방의 실행 버튼은 대개 가족이나 프로그램이 쥐고 있습니다. 시작은 함께 하는 20분 산책이면 충분하고, "같이 가자"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치료의 절반입니다.

환경의 온도. 연구들이 오래전부터 보여준 것 중 하나는, 비난과 다그침이 많은 가정 분위기에서 재발이 잦아진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낮은 기대치를 두고 작은 성취를 알아봐 주는 환경에서 환자는 조금씩 반경을 넓힙니다. "오늘 샤워했네"가 유치한 칭찬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의욕 회로가 앓고 있는 사람에게 샤워는 실제로 하나의 성취입니다.

가족 자신을 돌보는 것. 이것도 치료의 일부로 적습니다. 음성 증상과의 동거는 마라톤입니다. 요란한 위기는 없지만 끝이 잘 보이지 않고, 주변에서는 "이제 다 나은 거 아니냐"는 말만 돌아옵니다. 간병하는 가족의 소진은 결국 집안의 온도를 바꾸고, 그 온도는 환자에게 되돌아갑니다. 가족 교육 프로그램이나 가족 모임에 연결되는 것, 간병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 치료 환경을 지키는 일입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마지막으로 가족분들께 권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다음 진료에 동행하게 되면, "요즘 방에만 있어요"라는 걱정을 꼭 진료실 안까지 가지고 들어오세요. 그 관찰이 게으름이 아니라 증상의 기록으로 다뤄지는 순간, 치료의 과녁이 하나 늘어납니다. 이차성 원인을 찾아 조정할 수도 있고, 재활 프로그램 연계를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오늘 저녁 "언제까지 이럴 거니" 대신 다른 문장을 한번 시도해 보세요. "산책 20분만 같이 갈래?" 대답이 없더라도, 그 문장은 다그침이 아니라 문을 두드리는 노크입니다. 이 병에서 가족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문이 열릴 때까지, 조급해하지 않고 계속 두드려 주는 것입니다.

참고문헌

  1. Correll & Schooler, 2020
  2. Rabinowitz 등, 2012
  3. Dauwan 등,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