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범죄 뉴스 아래 댓글창에서 흔히 보게 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조현병이라잖아. 그러니까 격리해야 돼." 뉴스에 병명이 한 번 등장할 때마다 공포는 한 겹씩 쌓이고, 그 공포는 어느새 상식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조현병 환자는 위험하다.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이 문장 앞에서 환자 가족들은 말문이 막히고, 환자 본인들은 자신의 병명을 평생 숨기기로 결심합니다.
이 글은 그 상식을 검증합니다. 방법은 하나입니다. 인상과 사례가 아니라, 수만 명을 수십 년 추적한 연구가 내놓은 숫자를 끝까지 읽는 것입니다. '끝까지'가 중요합니다. 이 주제의 숫자들은 첫 줄만 읽으면 공포를 확인해 주는 것처럼 보이고, 끝까지 읽으면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숫자는 "위험이 전혀 없다"고 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현병이라서 위험하다"고도 답하지 않습니다. 숫자의 답은 그보다 정교하고, 그 정교함 속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짜 문제가 있습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이 믿음은 어디서 왔나
먼저 믿음의 출처부터 봅니다. 조현병은 대략 100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은 겪는 병으로,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은 조현병 환자를 직접 만난 경험이 아니라 언론 보도를 통해 이 병을 접합니다. 앓는 사람은 많은데 아는 사람은 없는 병. 그렇다면 그 빈자리를 채우는 언론은 이 병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연구진이 20년 치(1995~2014년) 뉴스 중 정신질환을 다룬 기사 400건을 무작위로 뽑아 내용을 분석했습니다1. 가장 자주 등장한 주제는 폭력이었습니다. 기사 100건 중 55건꼴. 반면 치료에 성공했거나 회복한 이야기를 다룬 기사는 100건 중 14건에 그쳤습니다. 연구진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언론이 폭력에 할애하는 지면은 실제 정신질환자의 폭력 발생률에 비해 심하게 과대하며, 이 불균형이 낙인을 키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미국 이야기지만, 병명이 헤드라인에 오르는 방식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가해자가 정신질환 이력이 있으면 병명이 제목에 오르고, 없으면 그냥 '40대 남성'이 됩니다. 음주 운전자의 '음주'는 행위를 설명하는 말로 쓰이지만, 조현병은 존재 전체를 설명하는 말로 쓰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쪽으로만 표본을 수집하게 됩니다. 평온하게 치료받으며 지내는 대다수는 뉴스가 되지 않습니다. 뉴스가 되는 것은 언제나 가장 드물고 가장 참혹한 사례이고, 우리 머릿속의 '조현병'은 그 사례들로만 조립됩니다. 마치 비행기 사고 뉴스만 보고 비행기가 가장 위험한 교통수단이라고 믿게 되는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조현병을 둘러싼 또 다른 대표적 오해는 다중인격과 혼동하는 것인데, 따로 검증해 두었습니다.)
위험은 정말 높은가 — 숫자를 끝까지 읽으면
핵심 검증입니다. 조현병 환자의 폭력 위험은 실제로 얼마나 높을까요.
이 질문에 가장 단단하게 답한 연구 중 하나가 스웨덴에서 나왔습니다. 스웨덴은 전 국민의 입원 기록과 범죄 기록이 등록자료로 연결되어 있어, 인상이 아니라 전수 기록으로 셈할 수 있습니다. 옥스퍼드대학교와 카롤린스카연구소 연구진이 33년 치(1973~2006년) 자료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은 8,003명을 일반 인구 80,025명과 비교했습니다2.
겉면의 숫자는 이렇습니다. 33년이라는 긴 기간 전체를 통틀어, 조현병 집단에서는 100명 중 13명이 폭력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기록이 있었고, 일반 인구에서는 100명 중 5명이었습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멈추면 "역시 위험하군"이 됩니다.
그러나 같은 숫자를 뒤집어 읽으면 이렇게 됩니다. 조현병 환자 100명 중 87명은 33년 동안 단 한 건의 폭력범죄 기록도 없었습니다. 압도적 다수는 통계 안에서도 그냥 평범한 시민입니다. 그리고 연구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차이가 나는 13명 쪽을 더 파고들었습니다.
이 집단을 둘로 갈라보자 그림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알코올·약물 남용이 함께 있느냐가 갈림길이었습니다.
- 물질남용이 없는 조현병: 100명 중 8~9명. 나이·성별·소득 같은 조건을 맞춰 비교하면 일반 인구보다 아주 조금 높은 수준으로, 위험 증가는 1.2배 남짓이었습니다.
- 물질남용이 동반된 조현병: 100명 중 28명. 위험이 4배를 넘었습니다.
즉 '조현병의 위험'으로 보였던 것의 대부분은 조현병과 술·약물이 겹쳐진 소수 집단의 위험이었습니다. 병 하나만 있는 다수의 위험은 일반 인구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 연구에는 한 겹이 더 있습니다. 연구진은 환자의 병이 없는 형제자매 8,123명도 함께 추적했습니다. 그랬더니 물질남용이 겹친 환자들의 높은 위험조차, 같은 집에서 자란 형제자매와 비교하면 상당 부분 줄어들었습니다. 폭력의 뿌리에는 병만이 아니라 가정 환경과 타고난 기질처럼 병 이전부터 있던 요인들이 함께 얽혀 있다는 뜻입니다. '조현병 → 폭력'이라는 단순한 화살표는 자료를 들여다볼수록 점점 가늘어집니다.
한 나라의 특수성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석이 같은 해에 같은 연구진에게서 나왔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수행된 20개 연구, 정신병적 장애가 있는 18,423명의 자료를 합쳐서 본 결과입니다3. 물질남용이 없으면 폭력 위험은 일반 인구의 2배 수준, 물질남용이 겹치면 9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석의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따로 있습니다. 정신병 없이 물질남용만 있는 사람들의 폭력 위험이, 정신병과 물질남용이 겹친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는 것. 위험을 실제로 끌어올리는 엔진이 무엇인지를 가리키는 결과입니다. 연구진의 제언도 그래서 "정신질환자 격리"가 아니라 "물질남용의 예방과 치료"였습니다.
왜 하필 술과 약물이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까요. 몇 가지 이유가 겹칩니다. 술과 약물은 병이 있든 없든 충동 조절의 브레이크를 늦춥니다. 정신병적 증상 위에 얹히면 판단력의 흔들림이 더 커집니다. 그리고 물질남용은 치료 중단과 자주 붙어 다닙니다. 술에 기대는 시기는 대개 약을 거르는 시기이고, 약이 끊긴 시기는 증상이 되살아나는 시기입니다. 즉 물질남용은 그 자체로 위험 요인이면서, 치료라는 보호막이 벗겨졌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이 대목은 공정하게 읽어야 합니다. 위험 증가가 0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위로 조금 기울어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걸 지우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닙니다. 다만 그 기울기의 크기와 조건을 정확히 보자는 것입니다. 술 취한 상태의 폭력을 '술의 문제'로 부르면서, 같은 구조를 조현병에서는 '병의 본질'로 부르는 것. 그것이 통계가 교정하는 지점입니다.
그런데 정작 다치고 있는 쪽은 누구인가
이 논쟁에서 자주 빠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조현병을 포함한 중증 정신질환자는 가해자 자리보다 피해자 자리에 얼마나 자주 서는가.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연구진이 시카고의 지역사회에서 치료받는 중증 정신질환자 936명에게 국가 범죄피해조사와 같은 문항으로 지난 1년의 피해 경험을 물었습니다4. 결과는 이렇습니다. 4명 중 1명 이상이 지난 1년 사이 폭력범죄의 피해자였습니다. 나이·소득 같은 조건 차이를 감안하고도 일반 인구의 11배가 넘는 비율이었습니다. 1년 동안 벌어진 폭력 피해 사건 수로 세면 1,000명당 168건으로, 일반 인구(1,000명당 40건)의 4배가 넘었고, 강도·폭행 등 범죄 유형에 따라서는 6배에서 23배까지 높았습니다.
11배라는 숫자를 앞 절의 숫자 옆에 놓아 보십시오. 위험하다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실제 통계에서는 압도적으로 당하는 쪽에 서 있습니다.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현실 판단이 흔들리는 시기에는 위험한 상황을 알아채고 피하는 능력도 함께 흔들립니다. 고립되어 있으면 곁에서 말려줄 사람이 없습니다. 빈곤은 치안이 약한 동네로, 불안정한 주거로 사람을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 피해를 입어도 신고하지 않거나, 신고해도 "환자 말"이라며 무게가 깎이는 일이 흔합니다. 표적이 되기 쉽고, 표적이 되어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공포의 방향이 실제 피해의 방향과 정반대인 셈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무서워하는 동안, 통계 속에서 실제로 다치고 있던 쪽은 그들이었습니다.
판정, 그리고 공포가 만드는 역설
판정 — "조현병 환자는 위험하다"는 말은 통계적으로 대부분 과장이며, 절반의 사실을 전체로 부풀린 것입니다. 물질남용이 없는 대다수 환자의 폭력 위험은 일반 인구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 그치고, 위험 상승의 대부분은 술·약물 남용이 겹친 소수에서 나옵니다. 그 소수의 위험조차 정신병 없는 물질남용자와 비슷한 크기입니다. 한편 같은 환자들이 폭력의 피해자가 될 확률은 일반 인구의 11배가 넘습니다. 통계가 지지하는 문장은 "조현병이라서 위험하다"가 아니라 "치료와 지원이 끊긴 자리에서 위험도 피해도 함께 자란다"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과장된 공포가 실제로 무엇을 만드는지를 봐야 합니다.
진료실에서 초발 정신증 환자의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털어놓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병명 자체보다, 병명이 알려졌을 때 세상이 자기 가족을 어떻게 볼지가 더 무섭다는 것입니다. 회사에 알려지면 어떡하나, 결혼에 지장이 생기면 어떡하나, '그런 사람' 취급을 받으면 어떡하나. 그 두려움 때문에 병원 방문이 미뤄지고, 진단이 늦어지고, 약을 끊어도 아무도 모르게 됩니다. 뉴스 댓글창의 "격리하라"는 말은 환자를 병원으로 보내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로 작동합니다. 병원에 가면 자신도 저 낙인을 받게 된다는 신호가 되어, 치료가 가장 필요한 사람을 병원에서 가장 멀어지게 만듭니다. 낙인은 이렇게 치료의 문턱을 높입니다.
그런데 위의 연구들을 다시 보면, 위험이 커지는 조건은 정확히 '치료 바깥'에 있습니다. 치료가 끊긴 상태, 물질남용이 방치된 상태, 사회적 지원이 사라진 상태. 즉 공포가 키운 낙인이 치료를 밀어내고, 치료의 공백이 다시 위험을 키워 공포를 정당화하는 원환이 완성됩니다. 조현병 환자를 위험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위험하다고 낙인찍어 치료 밖으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안전을 바라는 마음이 안전을 깎아 먹는 정책을 지지하게 되는 것, 이것이 이 주제의 가장 쓴 역설입니다.
이 원환을 끊는 지점은 분명합니다. 조기에 진단받고, 꾸준히 치료받고, 술과 약물 문제를 함께 다루고, 지역사회에 머물 수 있게 하는 것. 치료받으며 지내는 조현병의 실제 모습은 뉴스에 나오지 않을 만큼 평범합니다. 약을 먹고, 학교와 일터에 다니고, 계절이 바뀌면 옷장을 정리하는 일상입니다. 진료실에서 오래 지켜보는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꾸준히 치료받는 조현병 환자들에게서 제가 목격하는 가장 흔한 사건은 폭력이 아니라 복학과 취업, 그리고 명절에 가족과 다투는 정도의 지극히 보통의 갈등입니다.
그리고 공포의 상당 부분은 이 병을 모르는 데서 옵니다. 환청이 들린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경험인지, 그 목소리가 당사자를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알고 나면, 두려움의 자리에 다른 감정이 들어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궁금하시다면 환청은 실제로 어떻게 들리는가를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낯선 것은 무섭고, 아는 것은 덜 무섭습니다. 낙인의 반대말은 관용이 아니라 이해입니다.
병이 위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병을 혼자 앓게 두는 사회가 위험을 만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