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떨림이나 걸음이 굼떠진 것 때문에 오시는 어르신을 볼 때, 제가 반드시 확인하는 목록이 있습니다. 그중 맨 위에 있는 게 소화제입니다.
의외라고 하실 겁니다. 그런데 국내 자료를 보면 의외가 아닙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약 때문에 몸의 움직임에 탈이 났다고 진단받은 환자 132명을 분석했더니, 그중 91명의 원인이 레보설피리드였습니다1. 세 명 중 두 명이 넘습니다.
이 약을 드시는 분들은 대부분 자신이 "소화가 잘 안 돼서 받은 약"을 먹고 있다고 알고 계십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국내 허가 효능이 정확히 그거니까요. 다만 그 약이 뇌에서 하는 일까지 아시는 분은 드뭅니다.
핵심 정보 한눈에
- 성분명: 레보설피리드(Levosulpiride). 설피리드에서 실제로 일을 하는 쪽만 뽑아낸 성분입니다
- 국내 상품명: 레보프라이드정이 대표적이고, 의약품안전나라에 100건이 넘는 제품이 등재돼 있습니다
- 국내 허가 효능: 기능성 소화불량으로 인한 복부팽만감·상복부불쾌감·속쓰림·트림·구역·구토
- 흔한 용량: 25mg을 1일 3회 식전 복용
- 복용 시간: 식전 하루 3회. 위의 움직임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라 식사 전에 먹습니다. 다만 오래 먹을수록 손 떨림·몸이 굳는 증상이 문제가 되는 약이라, 복용 시각보다 얼마나 오래 먹고 있는지를 먼저 따져야 합니다.
- 효과가 나기까지: 소화기 증상(더부룩함·구역)은 며칠 안에 달라지는 편입니다. 다만 오래 먹을수록 손떨림·굳음 같은 부작용 위험이 쌓이는 약이라, 효과가 있든 없든 기간을 정해 두고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 어떻게 듣나: 도파민이 붙는 자리를 막습니다. 위와 장에서는 이게 움직임을 살려 소화를 돕지만, 뇌에서는 조현병 약과 똑같은 일이 됩니다
- 가장 큰 함정: 손이 떨리고 몸이 굳는 증상, 그리고 약 때문에 생기는 파킨슨병 비슷한 상태. 특히 고령자와 오래 복용할 때 문제가 됩니다
- 미국·영국에는 허가조차 없는 약입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지금 드시고 계셔도 놀라서 갑자기 끊지 마시고, 아래를 읽어보신 뒤 처방한 의사와 상의하세요.
같은 성분이 한쪽에선 조현병 약입니다
이 약의 정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건 국내 허가사항 두 개를 나란히 놓아보는 것입니다.
설피리드는 국내에서 조현병과 우울증, 정신신경증 치료제로 허가돼 있습니다. 조현병에는 하루 300~600mg, 우울증에는 150~300mg을 씁니다. 명백한 정신과 약입니다.
레보설피리드는 그 설피리드에서 실제로 일을 하는 쪽만 골라 뽑아낸 것입니다. 그런데 국내 허가 효능은 기능성 소화불량입니다.
두 약은 한 뿌리에서 나왔고, 하는 일도 같습니다. 도파민이 붙는 자리를 막는 것. 위와 장에서는 이게 움직임을 살려 소화를 돕고, 뇌에서는 같은 작용이 조현병 약과 다를 바 없어집니다. 용량이 다르고 노리는 부위가 다를 뿐 약이 몸에서 하는 일 자체는 다르지 않습니다.
핵심 — 위장관에 듣게 하려고 도파민을 막으면, 그 약이 뇌로 안 들어가 주는 건 아닙니다. 소화제로 처방됐다는 사실이 이 약을 소화제로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약이 만든 파킨슨병 비슷한 상태
앞서 말한 아산병원 연구를 조금 더 보겠습니다. 레보설피리드 때문에 몸의 움직임에 탈이 난 91명 중 85명이 파킨슨병과 비슷한 상태(몸이 굳고 걸음이 굼떠지고 손이 떨림)였고, 입·혀·얼굴이 저절로 움직이는 경우가 9명, 떨림만 있는 경우가 3명이었습니다. 그리고 91명 중 78명이 60세를 넘긴 분들이었습니다.
증상도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중 100명 중 25명꼴은 혼자 걷는 것이 불안정한 단계까지 가 있었습니다.
가장 무거운 대목은 회복입니다. 약을 끊은 뒤에도 파킨슨병 비슷한 증상은 100명 중 48명, 저절로 움직이는 증상은 100명 중 67명에서 그대로 남았습니다. 연구진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증상이 흔히 심하고, 약을 끊어도 되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고령자에게 쓸 때 의사가 신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파킨슨병 약이 추가됩니다
여기서 더 씁쓸한 일이 벌어집니다. 약 때문에 생긴 떨림과 굼뜬 걸음을 파킨슨병으로 진단하고, 파킨슨병 약을 새로 처방하는 겁니다. 이걸 두고 약이 약을 부르는 처방 사슬이라고 합니다.
국민건강보험 노인 자료로 이걸 실제로 확인한 국내 연구가 있습니다2. 65세 이상에서 파킨슨병 약(레보도파)을 새로 처방받은 1,197명과, 나이·성별이 같으면서 그러지 않은 3,591명을 짝지어 비교한 연구입니다.
| 복용 기간 | 파킨슨병 약을 새로 받을 위험 |
|---|---|
| 1~19일 | 2.24배 |
| 20일 이상 | 10.24배 |
스무 날입니다. 소화가 안 된다고 한 달쯤 이어서 드시는 건 드문 일이 아니죠.
이 배수를 사람 수로 바꿔 읽으면 이렇습니다. 파킨슨병 약을 새로 시작한 노인 1,197명 중 127명(열 명 중 한 명 남짓)이 그 직전에 레보설피리드를 쓰고 있었습니다. 비교 대상인 3,591명에서는 126명, 그러니까 100명 중 서너 명에 그쳤고요. 이 차이가 '3.30배'라는 말의 실체입니다. 그중 20일 넘게 쓴 사람이 52명이었습니다.
숫자를 이렇게 뒤집어 놓는 이유가 있습니다. '몇 배'는 겁을 주지만 그림이 잘 안 그려집니다. 반면 "파킨슨병 약을 새로 받은 어르신 열 명을 세우면 그중 한 명은 얼마 전까지 소화제를 드시고 있었다"는 문장은, 진료실에서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를 곧장 알려줍니다.
젖 분비 호르몬이 올라갑니다
도파민은 젖 분비에 관여하는 호르몬을 억눌러 두는 브레이크 역할을 합니다. 그 브레이크를 풀면 이 호르몬이 올라가고, 젖이 돌거나 생리가 불규칙해지거나 성기능이 떨어지는 식으로 나타납니다. 이 호르몬을 만드는 곳은 뇌를 지키는 관문 바깥에 있어서, 뇌로 잘 안 들어가는 약이라도 이 부작용은 생깁니다.
인도의 호르몬 전문의들이 낸 보고가 인상적입니다. 레보설피리드를 쓰는 환자 중 상당수가 교과서대로라면 뇌 안의 혹을 먼저 의심할 만큼 높은 수치를 보인다는 겁니다3. 저자들의 당부는 단순합니다. 이 호르몬 수치가 높게 나오면 뇌 사진을 찍기 전에 먹고 있는 약부터 확인하라는 것.
맥페란과 돔페리돈은 어떤가
같은 계열의 위장약 셋을 비교하면 이 약의 위치가 분명해집니다.
| 뇌로 들어가나 | 몸이 굳고 떨릴 위험 | 젖 분비 호르몬 | 심장 | |
|---|---|---|---|---|
| 레보설피리드 | 들어감 | 국내 보고에서 가장 많음 | 오름 | 계열상 심장 박동 주의 |
| 메토클로프라미드(맥페란) | 들어감 | 높음 | 오름 | — |
| 돔페리돈 | 잘 안 들어감 | 낮음 | 오름 | 심장 박동 주의 |
여기서 짚고 싶은 게 있습니다. 메토클로프라미드에는 미국 FDA가 붙인 가장 높은 등급의 경고문이 있습니다. 입·혀·얼굴이 저절로 움직이는 증상을 일으킬 수 있고 대개 되돌릴 수 없으며, 드문 경우를 빼면 12주를 넘겨 쓰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위험은 사용 기간과 누적 용량에 비례해 커지고, 일단 생기면 알려진 치료법이 없다고도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 자료에서 원인 1위로 지목된 레보설피리드에는 그런 기간 제한이 없습니다. 허가사항에 젖이 도는 증상이나 파킨슨병 비슷한 증상이 부작용으로 적혀 있긴 하지만, "몇 주 이상 쓰지 말라"는 문장은 없습니다.
그래도 효과는 진짜입니다
균형을 잡아야 할 대목입니다. 이 약이 위장에 안 듣는 약이라면 애초에 이렇게 널리 쓰이지 않았겠죠.
기능성 소화불량 치료제를 다룬 시험 71편·1만 9,243명을 한데 모아 줄을 세운 분석에서 설피리드와 레보설피리드는 효과 순위 1위였습니다4. 시사프라이드와 직접 맞붙인 8주 시험에서도 증상이 좋아진 사람의 비율이 100명 중 80명 대 71명으로 밀리지 않았고요.
다만 그 1위에는 저자들이 직접 단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관련 시험들의 질이 낮았고 실제로 이 약을 받은 참가자가 86명뿐이었다는 것, 그리고 질 높은 시험만 따로 보면 순위가 바뀐다는 것. 그러니 "가장 잘 듣는 약"으로 읽기보다 "효과가 있는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한 가지 더 정직하게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앞의 무서운 숫자들은 대부분 신경과를 찾아온 환자를 모아 분석한 것이라, 이 약을 먹은 전체 인원 중 몇 퍼센트에게 문제가 생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모를 모르는 숫자라는 뜻입니다. 짧게 쓰는 경우의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도 앞의 표가 보여주고 있고요.
그럼 대신 뭘 쓰나 — 같은 분석의 나머지 순위
"위험하다"는 이야기만 하고 끝나면 읽는 분이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방금 그 분석의 나머지 줄을 마저 봤습니다.
- 질 높은 시험만 추려서 다시 세우면 1위는 저용량 삼환계 항우울제였습니다. 우울증에 쓰는 용량보다 훨씬 적게 써서 위장의 통증 신호를 무디게 하는 방식인데, 이 분석에서 근거의 질이 가장 단단했습니다. 다만 입마름·변비 같은 부작용이 가짜약보다 많았다는 단서도 함께 붙어 있습니다.
- 아코티아미드와 이토프리드도 효과가 확인된 축에 들었습니다. 특히 아코티아미드는 도파민을 막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약이 아닙니다.
무슨 약을 고를지는 증상이 어느 쪽에 치우쳐 있느냐(더부룩함인지, 명치 통증인지)에 따라 달라지니 여기서 정답을 적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약 말고는 방법이 없다"가 아니라는 것, 그러니 위험이 걱정된다면 바꿔볼 카드가 실제로 있다는 것은 알고 계셔도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나
갑자기 끊지 마세요. 이 글을 읽고 놀라서 오늘부터 중단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닙니다. 특히 다른 약과 함께 드시는 경우 처방한 의사와 정리하는 게 맞습니다.
대신 이런 상황이라면 한 번쯤 물어보시면 좋겠습니다.
- 이 약을 한 달 넘게 계속 드시고 있다
- 65세 이상이다
- 손이 떨리거나, 걸음이 굼떠졌거나, 표정이 줄었다는 말을 듣는다
- 입이나 혀가 저절로 움직인다
- 젖이 돌거나 생리가 불규칙해졌다
- 이미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약을 먹고 있다
마지막 항목이 특히 중요합니다. 국내 파킨슨병 환자 25만여 명의 청구자료를 분석한 최근 연구에서, 파킨슨병 환자에게 피해야 할 약이 여전히 처방되고 있고 그 목록에 레보설피리드가 올라 있었습니다5. 파킨슨병에 도파민을 보충하면서 동시에 도파민을 막는 약을 먹는 셈이 됩니다.
물어보실 때는 이렇게 말씀하시면 충분합니다. "이 약이 도파민을 막는 약이라고 들었는데, 제 나이와 복용 기간을 감안하면 계속 쓰는 게 맞을까요."
💬 전문의 한마디
저는 이 약을 나쁜 약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속이 늘 더부룩해 삶의 질이 떨어진 분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약이고, 그래서 오래 쓰여 왔습니다.
다만 제가 신경 쓰는 건 이 약이 정신과 약이라는 사실이 환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조현병 약을 처방할 때 저는 몸이 굳고 떨리는 증상을 미리 설명하고, 손이 떨리거나 몸이 뻣뻣해지면 바로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같은 계열 약을 소화제로 받은 분은 그런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떨림이 시작돼도 약과 연결 짓지 못하고, 심하면 파킨슨병 약을 하나 더 받게 됩니다.
진료실에서 가장 아까운 순간이 이겁니다. 몇 달 전에 소화제 목록만 한 번 확인했으면 되돌릴 수 있었을 증상이, 이제는 약을 끊어도 절반은 남는 상태가 되어 있는 것.
그러니 부탁드리고 싶은 건 하나입니다. 지금 드시는 약을 전부 한 곳에서 확인받으세요. 여러 과에서 따로 받은 약들이 모이면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도 전체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약국이든 주치의든 상관없습니다. 그 한 번의 정리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막습니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면, 손이 떨린다고 오신 분에게 제가 소화제를 묻는 건 별난 취향이 아닙니다. 국내 데이터가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어서입니다.
혹시 지금 부모님이 오래 드시는 소화제가 있다면, 다음에 병원 가실 때 그 약 이름 한 번만 확인해 봐주세요. 대개는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다만 확인해서 손해 볼 일도 없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약의 시작·변경·중단과 치료 방법의 선택은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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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Shin 등, Mov Disord 2009 ↩
- Huh 등, 2019 ↩
- Kuchay & Mithal, Indian J Endocrinol Metab 2017 ↩
- Ford 등, 2021 ↩
- J Clin Neurol 2025 ↩
- 도파민을 막는 위장약들의 부작용 비교, Tonini 등, 2004: PubM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