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약 중에 '기준점' 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약이 있습니다. 리스페달(Risperdal), 성분명 리스페리돈(Risperidone) 입니다.

1993년 얀센이 내놓은 이 약은 2세대(비정형) 항정신병약 시대를 사실상 연 약입니다. 그전까지 조현병 약이라 하면 몸이 굳고 손이 떨리는 부작용을 각오해야 했는데, 리스페리돈은 그 대가를 크게 줄이면서 효과는 지켰습니다. 이후 30년 동안 새로 나온 항정신병약들은 하나같이 같은 질문 앞에 섰습니다 — "그래서 리스페리돈보다 나은가?" 이 약이 기준점이라는 건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 표준적인 약에는, 다른 2세대 약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그늘이 하나 있습니다. 생리가 멎고, 유즙이 나오고, 성욕이 사라지는 일이 유독 이 약에서 잘 생깁니다. 환자분들이 가장 당황하고, 가장 말하기 어려워하고, 그래서 가장 자주 혼자 약을 끊어버리는 부작용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그 이야기입니다.

핵심 정보 한눈에

  • 상품명: 리스페달(Risperdal, 한국얀센) — 녹여 먹는 리스페달퀵렛, 2주에 한 번 맞는 주사 리스페달콘스타도 있습니다. 국산 제네릭도 다수입니다
  • 성분명: 리스페리돈(Risperidone)
  • 분류: 2세대(비정형) 항정신병약 — 향정신성의약품이 아닙니다
  • 주 용도: 조현병, 양극성 조증, 그리고 소아·청소년 자폐에서의 과민성·공격성
  • 흔한 용량: 조현병에 보통 2~6mg. 6mg을 넘으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집니다
  • 효과: 15개 항정신병약을 견준 대규모 메타분석에서 효과 4위 — 상위권입니다
  • 가장 큰 특징이자 약점: 프로락틴을 2세대 약 중 가장 많이 올립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약의 시작·변경·중단은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어떤 약인가 — 도파민을 확실히 누릅니다

조현병의 환청·망상에는 뇌의 도파민이 과하게 작용하는 것이 관여합니다. 항정신병약은 도파민 수용체(D2)를 막아 이 과열을 끕니다.

1세대 약(할로페리돌 등)은 D2를 무차별로 세게 막아 효과는 확실했지만, 몸이 굳고 손이 떨리고 가만히 못 앉아 있는 부작용(추체외로증상, EPS)이 심했습니다. 리스페리돈은 여기에 세로토닌 5-HT2A 차단을 더했습니다. 이 조합이 운동 부작용을 상당히 덜어주면서 효과는 유지하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설계였습니다.

효과는 지금 기준으로도 좋습니다. 2013년 《Lancet》에 실린 15개 항정신병약 메타분석(212개 임상시험·43,049명)에서 리스페리돈은 효과 4위(클로자핀 → 아미설프라이드 → 올란자핀 → 리스페리돈)를 차지했습니다. 30년 된 약이 여전히 상위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약의 D2 차단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리스페리돈은 D2에 단단히, 꽉 붙잡는 성질이 있습니다. 쎄로켈처럼 느슨하게 붙었다 떨어지는 약이나 아빌리파이처럼 스위치를 중간에 걸어두는 약과는 다릅니다. 이 '확실함'이 효과의 원천이자, 지금부터 이야기할 모든 문제의 원인입니다.

왜 생리가 멎고 유즙이 나올까 — 프로락틴

핵심 — 도파민은 프로락틴의 브레이크입니다. 우리 뇌는 도파민으로 프로락틴(젖 분비 호르몬)이 나오지 않게 눌러두고 있는데, 리스페리돈이 도파민을 확실히 막아버리면 그 브레이크가 풀립니다. 그러면 임신하지 않았는데도 프로락틴이 치솟아 생리가 멎고, 유즙이 나오고, 성욕이 떨어집니다. 부작용이 아니라, 이 약이 잘 듣는다는 사실의 다른 얼굴입니다.

문제는 그 정도가 다른 2세대 약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항정신병약별 프로락틴 상승폭 비교
항정신병약별 프로락틴 상승폭 비교

이 그림은 이런 뜻입니다. 2025년 《CNS Drugs》에 실린 용량-반응 메타분석(165개 연구·23,128명)이 계산한, 약별로 프로락틴을 얼마나 올리는지입니다. 리스페리돈은 +41.0 ng/mL로, 1세대 약인 할로페리돌(+22.2)의 거의 두 배를 올립니다. "2세대 약이라 부작용이 적다"는 통념이 이 항목에서만큼은 완전히 뒤집힙니다.

리스페리돈보다 높은 유일한 약은 팔리페리돈(인베가, +51.0) 인데 — 이건 리스페리돈이 몸에서 분해돼 만들어지는 물질입니다. 즉 1·2위가 사실상 한 집안입니다.

반대편 끝에는 아리피프라졸(아빌리파이)이 있습니다. 유일하게 프로락틴을 오히려 낮춥니다(−6.0). 이 대비가 뒤에서 이야기할 해결책의 열쇠가 됩니다.

얼마나 흔할까요? 2022년 《Frontiers in Psychiatry》 리뷰에 따르면 복용자의 30% 이상에서 프로락틴이 정상 범위를 넘고, 연구에 따라 70~91% 까지 보고됩니다. 경구약을 먹는 여성의 약 72%, 장기지속형 주사를 맞는 여성은 90%가 넘습니다. 드문 일이 전혀 아닙니다.

나타나는 증상은 이렇습니다.

  • 여성: 생리 불순·무월경, 유즙 분비, 유방 통증·팽창, 성욕 저하
  • 남성: 발기·사정 문제, 성욕 저하, 여성형 유방(가슴이 커짐)
  • 장기적으로: 성호르몬이 억눌린 상태가 오래가면 골밀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 참지 마세요

이 대목이 이 글에서 가장 실용적인 부분입니다. 이 부작용은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니라, 대처법이 분명히 있는 문제입니다.

  • ① 용량을 낮춥니다. 프로락틴은 용량에 비례합니다. 증상이 조절되는 최소 용량으로 줄이는 것만으로 좋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② 아리피프라졸을 더합니다. 앞의 그림에서 보셨듯 아리피프라졸은 프로락틴을 낮추는 약입니다. 리스페리돈에 이걸 얹으면 원래 약을 유지하면서 프로락틴만 끌어내리는 일이 가능합니다. 무작위 대조 연구로 검증된 방법입니다.
  • ③ 다른 약으로 바꿉니다. 아리피프라졸이나 쎄로켈 등 프로락틴을 덜 올리는 약으로 전환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하는 것'입니다. 생리가 멎었다거나 유즙이 나온다는 이야기, 성기능 이야기는 꺼내기 민망합니다. 그래서 말없이 약을 끊어버리는 분들이 많고, 그러면 재발합니다. 재발은 이 부작용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손해입니다. 부끄러워하실 일이 전혀 아니고, 이건 약을 바꾸면 되는 문제입니다. 꼭 말씀해 주세요.

6mg을 넘으면 '2세대 약'이기를 그만둡니다

이 약의 두 번째 중요한 특징입니다. 리스페리돈은 용량이 올라가면 1세대 약처럼 변합니다.

PET 연구로 측정한 D2 점유율을 보면 이렇습니다.

  • 2mg → 66%
  • 4mg → 73%
  • 6mg → 79%

여기서 중요한 숫자가 65%와 80% 입니다. 65% 아래로는 효과가 잘 안 나고, 80%를 넘으면 운동 부작용(EPS)이 거의 확실히 나타납니다.65~80% 사이가 이 약이 살아야 할 창(窓) 인데, 6mg이 이미 그 창의 끝(79%) 입니다.

그래서 6mg을 넘기면 5-HT2A와 D2의 균형이 깨지면서, 리스페리돈은 사실상 1세대 약처럼 EPS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2세대 약이라 안전하다"는 말은 적정 용량에서만 참입니다. 용량을 무작정 올려서 얻을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효과는 65%만 넘으면 대체로 나오고, 그 위로는 부작용만 늘어납니다.

부작용 — 무엇을 조심해야 하나

  • 추체외로증상(EPS) — 몸이 뻣뻣해지고, 손이 떨리고,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좌불안석(아카시지아 — 약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상태). 용량이 높을수록 흔합니다. 참지 말고 알리세요. 조절 방법이 있습니다.
  • 체중 증가 — 중간 정도입니다. 올란자핀보다는 덜하고, 아빌리파이나 라투다보다는 더합니다.
  • 진정·졸림
  • 기립성 저혈압 — 일어설 때 핑 도는 느낌. 특히 처음 올릴 때.
  • 지연성 운동이상증 — 오래 복용 시 입·혀가 저절로 움직이는 증상. 드물지만 중요합니다.

치매 어르신에게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치매에 동반된 행동 문제로 항정신병약을 쓸 때, 사망 위험이 다소 올라간다는 경고가 이 계열 전체에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경우에 최소 용량으로 짧게 쓰고, 정기적으로 계속 쓸지 다시 판단합니다.

조현병 말고 또 어디에 쓰나

  • 양극성 조증기분안정제와 함께, 혹은 단독으로 씁니다.
  • 소아·청소년 자폐의 과민성·공격성 — 자폐 자체를 치료하는 약은 아니지만, 자해나 극심한 짜증·공격성으로 일상이 무너질 때 쓰는 근거가 있는 몇 안 되는 약입니다. 다만 아이는 프로락틴이 더 잘 오르므로(연구에 따라 절반 이상) 성장·사춘기와 관련해 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합니다.
  • 리스페달콘스타(장기지속형 주사) — 2주에 한 번 맞는 주사입니다. 매일 약 먹는 것을 자꾸 잊거나, 약을 끊었다가 재발을 반복하는 경우 판을 바꿔주는 선택지입니다. 최초의 2세대 장기지속형 주사이기도 합니다.

임신·수유 중에는?

임신 중 항정신병약은 득실을 따져 결정합니다.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가 임신 중 재발하는 것은 산모와 아기 모두에게 큰 위험이라, 약을 무조건 끊는 것이 정답이 아닙니다. 자가 판단으로 중단하지 마시고 반드시 먼저 상의해 주세요.

한 가지 덧붙이면, 프로락틴이 오르면 배란이 억제돼 임신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약을 바꿔 프로락틴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갑자기 임신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임신 계획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꼭 함께 나누세요.

함께 조심해야 할 것 — 상호작용

  • CYP2D6 로 분해됩니다. 푸로작·팍실 같은 이 효소를 막는 항우울제와 함께 쓰면 리스페리돈 농도가 올라갈 수 있어 조절이 필요합니다.
  • 일부 항경련제(카바마제핀 등)와 쓰면 반대로 효과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 — 진정 작용이 겹칩니다. 권장되지 않습니다.
  • 혈압약과 겹치면 기립성 저혈압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끊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의존성이 있는 약은 아닙니다. 다만 좋아졌다고 임의로 끊는 것이 이 병에서 가장 큰 위험입니다. 조현병·양극성장애는 재발할수록 회복이 더뎌지는 경향이 있어, 증상이 사라진 뒤에도 상당 기간 유지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갑자기 끊으면 반동 증상이 올 수도 있어, 중단은 반드시 의사와 함께 설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A)

Q. 생리가 멎었어요. 임신인가요? 이 약을 드시는 중이라면 프로락틴 상승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임신 가능성도 확인해야 하니 꼭 알려주세요. 프로락틴 수치는 피검사로 간단히 확인됩니다.

Q. 유즙이 나옵니다. 심각한 건가요? 당황스럽지만 이 약에서는 흔한 일이고, 위험한 상태는 아닙니다. 용량 조절이나 약 변경으로 대개 해결됩니다. 혼자 끊지 마시고 말씀해 주세요.

Q. 남자인데 가슴이 커지는 것 같아요. 같은 원인(프로락틴)입니다. 남성에게도 드물지 않습니다. 역시 대처법이 있습니다.

Q. 용량을 올리면 더 좋아지나요? 꼭 그렇지 않습니다. 리스페리돈은 6mg 부근이 한계선이고, 그 위로는 효과보다 부작용이 빨리 늘어납니다. 안 듣는다면 용량을 더 올리기보다 약을 바꾸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Q. 살이 많이 찌나요? 중간 정도입니다. 올란자핀만큼은 아니지만 아빌리파이나 라투다보다는 찌는 편입니다.

Q. 평생 먹어야 하나요? 병과 경과에 따라 다릅니다. 다만 좋아졌다고 일찍 끊는 것이 재발의 가장 흔한 원인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Q. 2주에 한 번 맞는 주사가 있다던데요? 리스페달콘스타입니다. 매일 챙겨 먹기 어렵거나 중단·재발을 반복하는 경우 아주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상의해 보세요.

💬 전문의 한마디

리스페리돈은 제가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처방해온 항정신병약입니다. 3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잘 듣고, 예측이 되고, 값도 쌉니다. 새 약이 나올 때마다 "이제 리스페리돈은 밀리겠다" 싶지만, 결국 돌아오게 되는 약이에요. 그런데 제가 이 약을 쓸 때 반드시, 먼저 꺼내는 이야기가 프로락틴입니다. 특히 젊은 여성 환자분께는요. "생리가 멎거나 가슴에서 분비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꼭 말씀해 주세요. 큰일이 아니고, 바꾸면 되는 문제입니다." 이 말을 미리 해두느냐 아니냐가 정말 큰 차이를 만듭니다. 미리 듣지 못한 분은 그 증상이 나타나면 겁이 나서, 혹은 부끄러워서 조용히 약을 끊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재발해서 다시 오세요. 그 재발은 막을 수 있었던 재발입니다. 요즘은 아리피프라졸을 소량 얹어 프로락틴만 끌어내리는 방법도 잘 듣습니다. 선택지가 있어요.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지금 그런 증상으로 혼자 고민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다음 진료 때 딱 한마디만 해주세요. "선생님, 사실은요." 거기서부터 해결됩니다.

리스페달은 화려한 신약이 아니라 30년 동안 자리를 지킨 기준점입니다. 효과는 여전히 상위권이고, 값싸고, 예측 가능합니다. 다만 그 확실한 효과의 뒷면에 프로락틴이라는 그림자가 있고, 그 그림자는 말하기만 하면 대부분 걷어낼 수 있는 종류의 것입니다. 어떤 약이든 나에게 맞는 약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작·조절·중단은 반드시 전문의와 함께 정해야 합니다. 좋은 약을 오래 잘 쓰는 비결은, 부작용을 참는 것이 아니라 제때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