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약 중에는 한국에서 처방받으면서도 미국 교과서에서는 찾기 어려운 약이 있습니다. 로나센(Lonasen), 성분명 블로난세린(Blonanserin) 입니다.

이 약은 일본에서 태어났습니다. 대일본스미토모제약이 개발해 2008년 1월 일본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를 받았고, 이후 한국·중국·인도에서 쓰이게 됐습니다. 국내에는 부광약품이 들여와 2009년 허가를 받았습니다. 미국 FDA 승인은 지금도 없습니다. 그래서 서구 논문이나 지침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근거의 상당 부분이 일본·한국·중국 연구입니다.

그런데 이 약이 흥미로운 진짜 이유는 국적이 아닙니다. 작동 순서가 다른 2세대 약들과 정반대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뒤바뀐 순서 하나가 이 약의 장점과 단점을 통째로 설명합니다.

핵심 정보 한눈에

  • 상품명: 로나센(Lonasen, 부광약품) — 2mg / 4mg / 8mg
  • 성분명: 블로난세린(Blonanserin)
  • 분류: 2세대(비정형) 항정신병약 — 다만 DSA(도파민-세로토닌 길항제) 라는 독특한 자리
  • 주 용도: 조현병
  • 가장 큰 장점: 체중 증가·프로락틴 상승·졸림이 적습니다 — 일상을 지켜야 하는 젊은 환자에게 유리
  • 가장 큰 단점: 추체외로증상(몸이 뻣뻣해지고 떨리고 안절부절못함)이 더 흔합니다
  • 복용법: 반드시 식후에 — 빈속에 먹으면 흡수가 크게 떨어집니다
  • 주의: 자몽주스 금지(CYP3A4)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약의 시작·변경·중단은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순서가 거꾸로인 약

핵심 — 우리가 아는 2세대 항정신병약들은 대부분 SDA(세로토닌-도파민 길항제) 입니다. 이름 그대로 세로토닌을 더 세게, 도파민을 그다음으로 막습니다. 그런데 블로난세린은 도파민(D2·D3)에 대한 결합력이 세로토닌(5-HT2A)보다 오히려 강합니다. 그래서 DSA(도파민-세로토닌 길항제) 라는 반대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 순서 하나가 이 약의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보통의 2세대 약과 로나센의 수용체 성향 비교
보통의 2세대 약과 로나센의 수용체 성향 비교

이 그림은 이런 뜻입니다. 리스페달이나 쎄로켈 같은 약은 세로토닌 쪽에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세로토닌을 세게 막는 것이 운동 부작용을 덜어주는 완충재 역할을 하거든요. 그런데 로나센은 그 무게중심이 도파민 쪽으로 넘어가 있습니다. 완충재가 얇은 셈입니다.

그래서 이 약은 성격이 이렇게 정리됩니다.

  •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히스타민(졸림), 무스카린(입마름·변비), 알파(어지럼) 수용체는 거의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덜 졸리고, 덜 찌고, 덜 어지럽습니다.
  • 대신 도파민을 직접적으로 누릅니다. 완충재가 얇으니 몸이 뻣뻣해지는 부작용이 나오기 쉽습니다.

재미있는 지점은 이겁니다 — 약리학적으로만 보면 로나센은 1세대 약을 닮았습니다. 그런데 임상에서 보이는 성적표는 2세대 약의 것입니다. 1세대의 문법으로 2세대의 결과를 내는 독특한 약인 셈입니다.

리스페달과 직접 붙여보면 —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말로 하는 것보다 숫자가 빠릅니다. 이 약을 리스페달과 직접 맞붙인 이중맹검 임상시험이 있습니다.

로나센과 리스페달의 맞교환
로나센과 리스페달의 맞교환

이 그림은 이런 뜻입니다. 중국에서 진행된 다기관 이중맹검 연구(J Psychiatr Res 2015) 결과입니다.

  • 효과는 무승부입니다. 증상 점수(PANSS) 감소가 로나센 30.6점, 리스페달 33.6점으로 사실상 차이가 없었습니다.
  • 프로락틴은 로나센이 유리합니다. 프로락틴이 오른 사람이 로나센 52.3%, 리스페달 67.2%였습니다. 리스페달의 가장 큰 약점인 무월경·유즙분비 문제가 이 약에서는 덜하다는 뜻입니다.
  • 대신 몸이 뻣뻣해지는 부작용은 로나센이 불리합니다. 추체외로증상이 로나센 48.5%, 리스페달 29.1%로 오히려 더 흔했습니다.

이 결론은 한 연구의 우연이 아닙니다. 2023년 《BMC Psychiatry》에 실린 메타분석(8개 임상시험·1,386명)도 같은 방향이었습니다 — 효과는 차이 없고(PANSS 평균차 0.17점), 프로락틴과 체중은 로나센이 유리하고, 추체외로증상은 리스페달이 유리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로나센은 더 좋은 약이 아니라, 다른 대가를 치르는 약입니다. 효과가 같다면 선택의 기준은 하나로 좁혀집니다 — 당신이 무엇을 더 견디기 힘든가.

그래서 누구에게 좋은 약인가

이 맞교환을 알고 나면 이 약의 자리가 선명해집니다.

잘 맞는 경우:

  • 체중 증가를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분 — 특히 젊은 환자에게 체중은 약을 끊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 프로락틴 문제(무월경·유즙분비·성기능)를 겪었거나 피하고 싶은 분실제로 젊은 여성 환자에게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 졸리면 안 되는 상황 — 학교·직장을 유지해야 하는 분. 이 약은 진정 작용이 적습니다.
  • 대사 위험이 높은 분 — 당뇨·비만·고지혈증이 있는 경우.

조심해야 하는 경우:

  • 예전에 몸이 뻣뻣해지는 부작용으로 고생한 분
  • 좌불안석(아카시지아 — 약 때문에 가만히 못 있고 안절부절못하는 상태) 에 민감했던 분
  • 식사를 거르는 일이 잦은 분 —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약은 빈속에 먹으면 제 역할을 못 합니다.

부작용 — 무엇을 조심해야 하나

  • 추체외로증상(EPS) — 이 약의 대표 부작용입니다. 손 떨림, 몸의 뻣뻣함, 그리고 좌불안석. 특히 좌불안석은 "약이 안 맞는다"는 느낌으로 다가와 자가 중단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용량 조절이나 보조 약으로 대부분 다룰 수 있으니 참지 말고 알려주세요.
  • 불면·초조 — 진정 작용이 적은 만큼 나타날 수 있습니다.
  • 프로락틴 상승 — 리스페달보다 덜하다는 것이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 지연성 운동이상증 — 오래 복용 시 드물게. 항정신병약 공통입니다.

대신 '적은 것' 목록이 이 약의 자산입니다: 체중 증가, 졸림, 입마름·변비, 기립성 저혈압이 모두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반드시 식후에 드세요

이 약에는 라투다(루라시돈)와 비슷한 성질이 하나 있습니다. 음식과 함께 먹어야 제대로 흡수됩니다.

빈속에 먹으면 흡수가 크게 떨어져 약을 먹었는데도 안 먹은 것과 비슷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허가사항도 식후 복용을 지정하고 있습니다. "아침을 안 먹으니 약만 삼켰다"는 것이 이 약에서는 효과를 통째로 날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식사를 자주 거르는 분이라면 이 사실을 미리 이야기하고 약을 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함께 조심해야 할 것 — 자몽주스

  • 자몽주스는 피하세요. 블로난세린은 간의 CYP3A4 라는 효소로 분해되는데, 자몽주스가 이 효소를 막아 약 농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부작용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 같은 이유로 CYP3A4를 강하게 막는 약(일부 항진균제·항바이러스제 등)과 함께 쓸 때 조절이 필요합니다.
  • 반대로 일부 항경련제 등 이 효소를 활성화하는 약과 쓰면 효과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 — 권장되지 않습니다.

임신·수유 중에는?

임신 중 사용 자료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만 조현병이 임신 중 재발하는 것은 산모와 아기 모두에게 큰 위험이므로, 약을 무조건 끊는 것이 정답이 아닙니다. 자가 판단으로 중단하지 마시고 반드시 먼저 상의해 주세요.

자주 묻는 질문 (Q&A)

Q. 미국에서 안 쓰는 약이라던데 괜찮은 건가요? FDA 승인이 없는 건 사실입니다. 다만 그것이 "효과가 없다"거나 "위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약사가 어느 나라에 허가를 신청하느냐는 시장 전략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약은 일본에서 2008년부터, 국내에서도 10년 넘게 쓰이며 자료가 쌓였고, 리스페달과 맞붙은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동등했습니다. 다만 서구 지침에 없다 보니 근거의 폭이 좁은 것은 사실입니다.

Q. 살이 안 찌나요? 다른 항정신병약에 비해 적은 편입니다.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Q. 몸이 뻣뻣하고 안절부절못해요. 이 약에서 가장 흔한 부작용입니다. 참지 마시고 꼭 말씀해 주세요. 용량을 조절하거나 보조 약을 더하면 대개 좋아집니다. 이걸 참다가 약을 끊어버리는 것이 최악의 결말입니다.

Q. 밥을 안 먹었는데 약만 먹어도 되나요? 안 됩니다. 이 약은 식후 복용이 원칙이고, 빈속에는 흡수가 떨어져 효과를 잃을 수 있습니다. 식사 패턴이 불규칙하다면 상의하세요.

Q. 리스페달보다 좋은 약인가요? "더 좋다"가 아니라 "다른 대가를 치른다" 가 정확합니다. 효과는 비슷하고, 프로락틴·체중은 로나센이 유리하고, 뻣뻣함은 리스페달이 유리합니다.

Q. 자몽 먹어도 되나요? 자몽주스는 피하시는 게 안전합니다. 약 농도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 전문의 한마디

로나센은 제게 '젊은 환자를 위한 카드' 입니다. 조현병 치료에서 우리가 자주 놓치는 게 있어요. 환자분이 약을 끊는 이유는 대개 "환청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살이 20kg 쪄서, 하루 종일 멍해서, 생리가 멎어서입니다. 병이 아니라 부작용 때문에 치료가 무너집니다. 그런 지점에서 로나센은 꽤 매력적인 선택지예요. 덜 찌고, 덜 졸리고, 프로락틴 부담도 덜합니다. 다만 저는 이 약을 드릴 때 반드시 뻣뻣함 이야기를 먼저 합니다. "몸이 굳거나,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어지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그건 조절할 수 있는 겁니다." 특히 좌불안석은 환자분이 "불안이 심해졌다"고 오해하기 쉬워서, 미리 말해두지 않으면 병이 나빠진 줄 알고 오십니다. 약 때문인지 병 때문인지를 가려내는 게 진료의 절반인데, 그 절반을 미리 설명으로 벌어두는 겁니다. 그리고 식후 복용은 잔소리처럼 반복합니다. 아침 거르는 분이 정말 많거든요. 이 약은 그러면 그냥 안 먹은 셈이 됩니다.

로나센은 화려한 신약도, 세계 표준도 아닙니다. 동아시아에서만 쓰는, 순서가 거꾸로 된 약입니다. 그러나 조현병 치료가 결국 "어떤 부작용과 함께 오래 살아갈 것인가" 의 문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선택지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이득입니다. 어떤 약이든 나에게 맞는 약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작·조절·중단은 반드시 전문의와 함께 정해야 합니다. 좋은 약이란 가장 센 약이 아니라, 내가 계속 먹을 수 있는 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