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약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저는 정신과 약 먹어본 적 없어요. 그냥 어깨 뭉친 데 먹는 약이랑, 두통약 정도만 받아요." 그런데 그분이 몇 년째 드시고 있는 약의 이름을 확인해 보면, 데파스인 경우가 있습니다.

데파스(Depas), 성분명 에티졸람(Etizolam) — 이 약은 국내에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관리되는 신경안정제입니다. 자낙스·리보트릴과 사실상 한 가족입니다. 그런데 정신과가 아니라 정형외과, 통증클리닉, 내과, 신경과에서 '근육을 풀어주는 약', '뻐근한 두통에 먹는 약'으로 처방되는 일이 흔합니다.

이건 의사가 뭘 속인 게 아닙니다. 놀랍게도 그 용도는 이 약의 정식 허가사항에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이상한 이중생활에 대한 이야기이고, 무엇보다 "내가 지금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를 정확히 아셔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핵심 정보 한눈에

  • 상품명: 데파스(Depas, 종근당) — 국내 허가 1990년. 에티라·에티졸 등 제네릭도 있습니다
  • 성분명: 에티졸람(Etizolam)
  • 분류: 티에노디아제핀 — 엄밀히는 벤조디아제핀이 아니지만, 뇌에서는 똑같이 작동합니다. 국내에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 주 용도: 신경증의 불안·긴장·우울 / 경추증·요통의 근긴장 / 근수축성(긴장성) 두통
  • 흔한 용량: 0.25mg / 0.5mg / 1mg 정제, 보통 1일 1.5mg을 3회 분할
  • 가장 큰 특징: 항불안 + 근이완 + 수면을 한 알에 겸비 — 그래서 여러 진료과에서 사랑받습니다
  • 가장 큰 함정: 작용시간이 짧고 역가가 높아 의존이 잘 생기는데, 정작 환자는 이게 신경안정제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이미 드시고 계셔도 놀라서 갑자기 끊지 마세요 — 그게 더 위험합니다. 아래에 이유를 적었습니다.

데파스의 이중생활

먼저 이 그림부터 보시는 게 빠릅니다.

데파스 허가사항에 적힌 세 가지 용도
데파스 허가사항에 적힌 세 가지 용도

이 그림은 이런 뜻입니다. 데파스의 식약처 허가사항에는 세 가지 용도가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 ① 신경증에서의 불안·긴장·우울, ② 경추증·요통에서의 근긴장, ③ 근수축성 두통. 두 번째와 세 번째가 바로 정형외과·내과에서 이 약이 쓰이는 근거입니다. 어깨가 돌덩이 같고 뒷목이 뻐근한 환자에게, 근육을 풀어주면서 그 밑에 깔린 긴장까지 눌러주는 이 약은 대단히 잘 듣습니다.

그러니 처방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닙니다. 문제는 환자가 "이게 신경안정제"라는 사실을 모른 채 몇 달, 몇 년을 복용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신경안정제인 줄 알면 "언제까지 먹어야 하나", "끊을 때 괜찮나"를 묻게 됩니다. 근육 이완제인 줄 알면 그 질문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약은 반드시 그 질문을 해야 하는 약입니다.

데파스는 어떤 약인가요? — 벤조가 아닌데 벤조인 약

데파스는 1984년 일본에서 개발돼 데파스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약입니다. 지금도 일본·한국·이탈리아·인도 정도에서 처방약으로 쓰이고, 미국에는 의약품으로 승인된 적이 없습니다(이 대목은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화학적으로 이 약은 티에노디아제핀(thienodiazepine) 입니다. 벤조디아제핀이 벤젠 고리를 가진 구조라면, 에티졸람은 그 자리에 티오펜 고리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벤조디아제핀이 아니다" 라는 말이 성립합니다.

그런데 이건 사실상 말장난에 가깝습니다. 이 약은 벤조디아제핀과 똑같은 자리(GABA-A 수용체의 벤조디아제핀 결합 부위)에 강하게 달라붙어 일합니다. 뇌 입장에서는 벤조디아제핀이 들어온 것과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효과도, 부작용도, 의존도, 금단도 벤조디아제핀 그대로입니다.

핵심 — "데파스는 벤조디아제핀이 아니다"라는 말에 안심하지 마세요. 화학 구조만 다를 뿐, 뇌에서 하는 일은 자낙스와 같습니다. 의존과 금단도 똑같이 따라옵니다. 이 약을 '순한 근육약'으로 여기는 인식이 이 약의 가장 큰 위험입니다.

왜 이렇게 여러 과에서 쓸까 — 한 알에 세 가지

데파스가 유독 사랑받는 이유는 한 알에 세 가지 작용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 항불안 작용 — 상당히 강한 편입니다.
  • 근이완 작용 — 이게 핵심입니다. 뭉친 근육을 풀어줍니다.
  • 수면 작용 — 잠도 잘 오게 합니다.

어깨 결림·긴장성 두통으로 오는 환자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런 분들은 대개 스트레스로 온몸이 굳어 있고, 잠도 얕고, 불안이 깔려 있습니다. 데파스 한 알은 그 셋을 동시에 건드립니다. 효과 면에서는 그야말로 만능처럼 느껴집니다.

바로 그 만능이 함정입니다. 잘 들으니 계속 처방되고, 잘 들으니 환자도 계속 찾습니다. 그렇게 '가끔 먹는 약'이 '매일 먹는 약'이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이 약의 진짜 문제 — 짧고 강하다

데파스는 작용시간이 짧은 편입니다. 반감기는 자료마다 편차가 있어 3~7시간 정도로 보고되는데, 어느 쪽을 택하든 자낙스(8~15시간)보다 짧습니다. 다만 알파-하이드록시에티졸람이라는 활성대사체(분해되고도 약효를 내는 부산물)가 있어 — 이쪽 반감기가 8시간 안팎입니다 — 실제 작용은 반감기 숫자보다 조금 더 오래갑니다.

역가에 대해서는 자료가 엇갈립니다. 알프라졸람과 대체로 비슷한 수준으로 보는 자료가 많고, 진정 작용은 그보다 훨씬 세다고 보는 자료도 있습니다. 확실한 건 0.5mg짜리 작은 알약이 결코 가벼운 약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자낙스 글에서 말씀드린 공식이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짧게 작용하는 약 + 높은 역가 = 의존이 잘 생기는 조합. 빨리 올라와서 잘 듣고, 빨리 떨어져서 "약 기운이 다했다"는 느낌을 주고, 그래서 더 자주 찾게 됩니다. 실제로 의사 처방대로 복용하다가 고용량 의존과 인지 기능 저하에 이른 사례들이 보고돼 있습니다 — 불법으로 구한 사람들이 아니라, 처방받아 약국에서 받아 먹은 사람들입니다.

세계는 이 약을 어떻게 보고 있나

이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데파스에 대한 각국의 태도가 꽤 다릅니다.

여기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미국에서 스케줄 I이라는 사실이 "데파스는 마약이다"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이 약이 애초에 의약품이 아니어서 오직 불법 유통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등급이 붙은 것입니다. 국내에서 의사 처방으로 적절히 쓰는 데파스는 마약이 아니라 관리되는 치료약입니다. 다만 여러 나라가 하나같이 이 약의 남용 가능성을 심각하게 본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 약을 '순한 근육약'으로 취급하면 안 되는 이유로는 충분합니다.

부작용 — 무엇을 조심해야 하나

  • 졸림·나른함 — 가장 흔합니다. 근이완 작용 탓에 몸이 처지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 운전 위험 — 허가사항에도 명시돼 있습니다. "근육약이니까 괜찮겠지" 하고 운전하시면 안 됩니다.
  • 집중력·기억력 저하
  • 노인에서 낙상 — 근이완 작용까지 겹쳐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노인에게는 되도록 피하거나 최소 용량으로 씁니다.
  • 술과 함께 마시면 안 됩니다 — 둘 다 뇌를 가라앉히므로 겹치면 위험합니다.
  • 마약성 진통제와의 병용 — 벤조디아제핀 계열 공통의 위험입니다. 다른 병원에서 받은 진통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이미 오래 드시고 계신 분들께

이 글을 읽고 "나 몇 년째 이거 먹고 있는데!" 하고 놀라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단이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첫째, 자책하지 마세요. 허가된 용도로 처방된 약이고, 이 약이 신경안정제라는 설명을 충분히 듣지 못한 것은 환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둘째, 절대 오늘부터 갑자기 끊지 마세요.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벤조디아제핀 계열을 오래 복용하다 갑자기 끊으면 불안·불면·떨림을 넘어 드물게 경련(발작) 까지 갈 수 있습니다. 데파스는 작용시간이 짧아 마지막 약을 먹고 몇 시간 만에 금단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놀라서 끊는 것이 계속 먹는 것보다 위험합니다.

셋째, 대신 이렇게 하세요.

  • 지금 드시는 약의 이름과 용량, 얼마나 오래 드셨는지를 확인하세요.
  • 처방한 의사에게 물어보세요. "이 약이 향정신성의약품이라던데, 언제까지 먹는 게 좋을까요? 줄인다면 어떻게 줄여야 하나요?" — 이 한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 필요하다면 몇 주가 아니라 몇 달에 걸쳐 천천히 줄입니다. 자낙스처럼 짧은 약은 반감기가 긴 약으로 바꿔 감량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 근긴장·두통이 문제라면 의존을 만들지 않는 대안이 있습니다. 근본이 불안이라면 SSRI부스파 같은, 중독되지 않는 약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임신·수유 중에는?

벤조디아제핀 계열은 임신 중 신중하게 다룹니다. 특히 임신 후기까지 계속 쓰면 신생아에게 처짐·호흡 문제·금단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모유로도 넘어갑니다. 다만 임신을 알게 됐다고 스스로 끊는 것은 더 위험합니다. 끊지 마시고 먼저 상의해 주세요.

자주 묻는 질문 (Q&A)

Q. 정형외과에서 받은 약인데 정말 신경안정제인가요? 네. 데파스는 국내에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된 약입니다. 다만 근긴장·긴장성 두통은 이 약의 정식 허가 용도이므로, 처방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이 약이 무엇인지 알고 먹는 것"입니다.

Q. 데파스는 벤조디아제핀이 아니라던데요? 화학 구조상으로는 티에노디아제핀이라 벤조디아제핀이 아닌 게 맞습니다. 하지만 뇌에서 작용하는 자리와 방식은 벤조디아제핀과 같습니다. 의존·금단도 마찬가지로 생깁니다. 이 구분에 안심하실 이유는 없습니다.

Q. 0.25mg은 아주 약한 용량이죠? 숫자가 작다고 약한 약이 아닙니다. 데파스는 역가가 높은 편이라 작은 알약에도 상당한 힘이 들어 있습니다.

Q. 어깨가 뭉칠 때만 가끔 먹는데 괜찮을까요? 매일 규칙적으로 먹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합니다. 다만 '가끔'이 조금씩 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 보시고, 몇 달 이상 이어진다면 담당 의사와 기간을 상의하세요.

Q. 몇 년째 먹고 있어요. 이미 중독된 건가요? 오래 복용하면 몸이 약에 적응하는 신체적 의존은 생길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중독(통제 불능 상태) 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둘은 다릅니다. 천천히 줄이면 대부분 안전하게 정리할 수 있으니, 놀라서 끊지 마시고 상의해 주세요.

Q. 잠이 안 와서 데파스를 먹는데 괜찮나요? 수면 작용도 있어 실제로 잘 듣습니다. 다만 불면이 만성이라면, 의존을 만들지 않는 다른 접근(불면증 인지행동치료 등)이 장기적으로 낫습니다.

💬 전문의 한마디

진료실에서 제가 자주 겪는 장면이 있습니다. "복용 중인 약이 있으세요?"라고 물으면 "없어요"라고 하시는데, 알고 보면 몇 년째 데파스를 드시고 계신 겁니다. 환자분 잘못이 아닙니다. 어깨 결림 약으로 알고 계셨으니까요. 저는 데파스를 나쁜 약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잘 듣습니다. 몸이 굳고 머리가 조이고 잠도 얕은 분에게 한 알로 셋을 다 풀어주는 약이 흔치 않아요. 문제는 그 편리함 때문에 '왜 이 사람이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통째로 건너뛰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어깨가 뭉치는 진짜 이유가 불안이라면, 근육만 계속 풀어봐야 다음 주에 또 뭉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이 누구를 겁주기보다, 딱 한 가지 행동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다음 진료 때 "이 약이 어떤 약인지, 언제까지 먹는 게 좋은지" 한 번만 물어보시는 것. 그 질문 하나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미 오래 드셨더라도 절대 오늘부터 끊지 마세요. 놀라서 끊는 게 제일 위험합니다. 같이 천천히 내려오면 됩니다.

데파스는 잘 드는 약이고, 필요한 자리가 분명히 있는 약입니다. 다만 자신이 먹는 약이 신경안정제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는, 어떤 약에서도 좋은 상태가 아닙니다. 어떤 약이든 나에게 맞는 약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작·조절·중단은 반드시 전문의와 함께 정해야 합니다. 알고 먹는 약은 안전한 약이 될 수 있습니다 — 이 글이 그 '알고'의 첫 문장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