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이 어느새 듬성듬성해지고, 정수리 한쪽에 휑한 자리가 생깁니다. 본인은 모자를 눌러쓰거나 눈썹을 그려 넣어 감추고, 누가 알아챌까 늘 조마조마합니다. 머리카락이나 눈썹, 속눈썹을 자기도 모르게 자꾸 뽑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주위에서는 대개 이렇게 말합니다. "그 이상한 버릇 좀 그만둬."
하지만 이건 의지로 고치는 버릇이 아닙니다. 발모광, 정식으로는 털뽑기장애(trichotillomania)라고 부르는, 이름과 진단 기준이 있는 병입니다. 오늘은 수치심 속에 숨겨지기 쉬운 이 상태의 실제를, 그리고 의외로 희망적인 치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버릇이 아니라, 강박 관련 장애
발모광은 자신의 털을 반복적으로 뽑아 눈에 띄는 털 손실이 생기고, 뽑는 행동을 줄이거나 멈추려 거듭 시도하지만 잘 되지 않으며, 그로 인해 괴로움이나 일상의 지장을 겪는 상태를 말합니다. 정신과 진단체계에서 이 병은 강박장애, 저장강박증, 신체이형장애 등과 함께 '강박 및 관련 장애'로 묶입니다.
다만 강박증과는 결이 다릅니다. 강박증이 특정 생각(오염, 확인 등)에 쫓겨 행동한다면, 발모광은 그런 강박 사고 없이 '뽑는 행위' 그 자체가 중심입니다. 이런 유형을 신체를 향한 반복 행동, 즉 신체집중 반복행동이라고 부르는데, 손톱을 물어뜯거나 피부를 뜯는 것도 같은 무리에 속합니다.
뽑는 데에도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발모광을 이해하려면 뽑는 방식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대개 두 가지 양상이 섞여 있습니다.
| 유형 | 특징 |
|---|---|
| 자동형 | 책을 보거나 TV를 볼 때처럼,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뽑음 |
| 집중형 | 긴장·불안이 차오르면 의도적으로 뽑고, 뽑은 뒤 잠시 해소감을 느낌 |
특히 집중형에서는 뽑기 직전에 묘한 긴장이나 충동이 차오르고, 뽑고 나면 그것이 잠깐 풀리는 흐름이 나타납니다. 틱장애에서 이야기한 전조 충동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그래서 "왜 뽑느냐"고 물으면 본인도 명확히 답하기 어렵습니다. 좋아서가 아니라, 안 하면 견디기 힘든 충동에 이끌리는 것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흔하고, 대개 숨겨진다
발모광은 드문 병이 아닙니다. 평생 유병률이 대략 1~2% 정도로 추정되고, 여성에게서 더 흔하며, 주로 사춘기 무렵에 시작됩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서 잘 보이지 않는 건, 당사자들이 극심한 수치심 때문에 꼭꼭 감추기 때문입니다. 긴 머리로, 모자로, 화장으로 가리며 혼자 앓는 경우가 많습니다.
핵심. 발모광은 게으르거나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나쁜 버릇'이 아닙니다. 충동 조절과 관련된 신체집중 반복행동이며, 수치심 속에 숨기느라 도움을 늦게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추는 대신 이름을 아는 것에서 치료가 시작됩니다.
대개 혼자 오지 않는다
발모광은 좀처럼 혼자 오지 않습니다. 우선 비슷한 형태의 신체집중 반복행동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피부를 반복해서 뜯는 피부뜯기장애(excoriation)인데, 머리카락을 뽑는 사람과 피부를 뜯는 사람은 상당히 겹칩니다. 한 연구에서는 두 가지를 함께 가진 사람이 전체의 3분의 1에 달했고, 머리 뽑기가 심한 사람일수록 피부 뜯기도 심한 경향을 보였습니다1. 손톱 물어뜯기까지 포함하면, 이런 반복행동을 하나 이상 겹쳐 가진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동반되는 마음의 어려움도 흔합니다. 같은 연구에서 불안은 60~80%대, 우울은 30~50%대에서 함께 나타났고, 강박증과 ADHD도 적지 않은 비율에서 겹쳤습니다. 그래서 발모광을 볼 때는 빠진 머리카락만이 아니라, 그 뒤에 가려진 불안이나 우울, 다른 반복행동까지 함께 살펴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한 가지 증상이 빙산의 일각일 수 있으니까요.
약보다 행동치료가 먼저인, 드문 경우
치료 이야기에서 발모광은 흥미로운 특징이 있습니다. 많은 정신질환과 달리, 여기서는 약보다 행동치료가 더 확실한 첫 번째 선택지라는 점입니다.
11개 무작위 시험을 묶은 메타분석을 보면, 행동치료의 효과크기는 1.41로 큰 편이었던 반면, 세로토닌계 약물(SRI)의 효과크기는 0.41로 그보다 훨씬 작았습니다2. 강박증에서는 SSRI가 큰 힘을 발휘하지만, 발모광에서는 약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것이 반복해서 확인됩니다. 그 대신 빛을 발하는 것이 습관역전훈련이라 불리는 행동치료입니다. 뽑고 싶은 충동이 올라오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뽑는 것과 양립할 수 없는 다른 행동(예를 들어 주먹을 꼭 쥐기)으로 대응하도록 훈련하는 방식입니다.
그렇다고 약이 무의미한 건 아닙니다. 흥미로운 후보 중 하나가 N-아세틸시스테인(NAC)입니다. 사실 이 성분은 정신과에서 출발한 약이 아닙니다. 원래는 끈적한 가래를 묽게 만들어주는 거담제로, 또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을 과다복용했을 때 간이 상하는 것을 막는 해독제로 오래 쓰여 온 약이죠. 그런 NAC가 뇌의 글루타메이트를 조절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발모광에도 시험대에 오른 겁니다. 이 성분을 쓴 무작위 대조시험에서, 12주 뒤 크게 호전된 비율이 NAC군에서 56%로 위약군의 16%보다 뚜렷하게 높았고 부작용도 거의 없었습니다3. 다만 이후 연구들에서는 효과가 일관되게 재현되지는 않아, NAC는 유망하지만 아직 근거가 더 필요한 선택지로 남아 있습니다. 종합하면, 치료의 중심은 행동치료에 두고 필요에 따라 약물을 더하는 그림입니다.
약물 쪽에서는 더 최근의, 더 강한 근거도 나왔습니다. 2023년 무작위 대조시험에서, 원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쓰이던 메만틴을 발모광과 피부뜯기장애 환자 100명에게 8주간 투여하자, 증상이 크게 또는 매우 크게 호전된 비율이 메만틴군에서 60%로 위약군의 8%를 크게 앞섰습니다4. 메만틴 역시 뇌의 글루타메이트 신호를 조절하는 약인데, NAC에 이어 이 계열의 약이 나란히 효과를 보였다는 점은 글루타메이트계가 반복행동의 핵심을 건드린다는 가설에 힘을 싣습니다. 1차 치료인 행동치료를 대체할 정도는 아니지만, 곁들일 약물 카드가 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럼 진료실에선 실제로 뭘 처방할까
앞서 NAC나 메만틴 같은 이름이 나왔지만, 솔직히 이런 글루타메이트계 약은 관심에 비해 진료 현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정신과 의사들은 발모광에 실제로 어떤 약을 쓸까요. 먼저 전제 하나. 발모광에 공식 허가된 약은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쓰든 허가 범위 밖 사용(오프라벨)이고, 처방은 근거와 부작용, 동반질환을 함께 저울질한 판단이 됩니다.
현실에서 가장 흔히 손이 가는 건 SSRI 계열 항우울제입니다. 다루기 익숙하고, 앞서 본 것처럼 흔히 동반되는 불안·우울·강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다만 정작 '털을 뽑는 행동' 자체에 대한 근거는 약합니다. 플루옥세틴을 위약과 길게 비교한 시험에서 뽑기의 빈도에도 충동에도 차이가 없었을 정도니까요5. 즉 SSRI는 '가장 많이 쓰이지만 발모광 자체엔 근거가 약한' 약에 가깝고, 실제로는 동반된 기분·불안 문제를 겨냥해 처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거만 보면 오히려 오래된 약이 나은 편입니다. 삼환계 항우울제인 클로미프라민은 위약 격인 데시프라민보다 발모광 증상을 더 줄였던 무작위 시험이 있어6, SSRI보다 근거가 탄탄합니다. 다만 입마름·변비·심장 부담 같은 부작용 탓에 1차로 널리 쓰이지는 않습니다. 증상이 심하거나 잘 낫지 않을 때는 항정신병약을 더하기도 하는데, 올란자핀은 위약보다 나았던 소규모 시험이 있습니다7. 물론 체중 증가 같은 부담을 저울질해 신중히 씁니다.
정리하면 근거의 무게는 대략 이렇습니다.
| 치료(계열) | 근거 수준 | 진료실에서의 위치 |
|---|---|---|
| 습관역전 등 행동치료 | 높음(효과크기 큼) | 근거상 1차 선택 |
| 클로미프라민(삼환계) | 중간(양성 RCT) | 근거는 낫지만 부작용으로 1차는 아님 |
| 항정신병약(올란자핀) 병용 | 중간(소규모 RCT) | 심하거나 불응성일 때 신중히 추가 |
| NAC·메만틴(글루타메이트계) | 낮음~중간(재현 논쟁·최신) | 관심은 크나 아직 표준은 아님 |
| SSRI | 낮음(위약과 차이 없던 시험) | 가장 흔히 처방되나 주로 동반 증상을 겨냥 |
결국 '이 약이면 된다'는 특효약은 없습니다. 근거가 가장 탄탄한 건 여전히 행동치료이고, 약은 저마다 근거의 무게가 다릅니다. 좋은 처방은 유행하는 성분 이름이 아니라, 근거와 부작용과 그 사람의 동반 문제를 함께 저울에 올리는 데서 나옵니다.
감추던 손을 내려놓기
발모광을 가진 사람에게, 그리고 그 곁의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만 좀 뽑아"라는 다그침은 대개 효과가 없을뿐더러, 수치심을 더해 상황을 악화시키기 쉽습니다. 뽑는 행동은 게으름의 증거가 아니라 조절하기 힘든 충동의 결과이고, 무엇보다 검증된 치료가 있는 상태입니다.
혼자 감추며 '나만 이상한가' 싶어 괴로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건 이름이 있고,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인구의 백 명 중 한둘은 되며, 무엇보다 나아질 방법이 있는 병입니다. 감추던 손을 잠시 내려놓고 그 이야기를 처음 꺼내는 순간이, 대개 가장 어렵고 또 가장 중요한 한 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