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 프로그램에서 용량을 바꾸는 건 클릭 두 번입니다. 숫자를 지우고, 새 숫자를 넣고, 저장. 삼 초면 끝납니다.

그런데 그 삼 초 앞에, 밖에서는 잘 안 보이는 시간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모니터를 보다가 말을 고르는 시간. "용량을 조금 올려볼까 하는데요"라는 문장이 목 앞까지 올라왔다가, 한 번 멈추는 시간. 길어야 몇 초라서 아마 맞은편에서는 제가 화면을 확인하는 걸로 보일 겁니다. 오늘은 그 멈칫거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교과서 속의 증량은 산수처럼 생겼습니다. 효과가 충분하지 않다, 부작용은 견딜 만하다, 그러면 올린다. 순서도까지 그려져 있어요. 화살표를 따라가면 답이 나오게요. 저도 시험 볼 때는 그 화살표를 잘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진료실의 증량은 산수가 아니라 저울질입니다. 저울에 올라가는 게 생각보다 많거든요.

먼저 시간이 올라갑니다. 이 약이 아직 힘을 다 못 쓴 건지, 아니면 이 사람에게 애초에 안 맞는 건지. 약은 대개 몇 주를 기다려야 제 실력이 나오는데, 그 몇 주가 기다리는 쪽에게 얼마나 긴지 저는 압니다. 그래서 "조금만 더 지켜보시죠"라는 말은 의학적으로 옳을 때조차 마음에 걸립니다. 지켜보자는 말은 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에게 훨씬 무거운 말이니까요. 그래서 그 말을 해야 할 때는 언제까지 지켜볼지, 그다음에는 무엇을 할지를 같이 말하려고 애씁니다. 기한 없는 기다림과 기한 있는 기다림은 무게가 다르니까요.

다음으로 부작용이 올라갑니다. 지금 견딜 만한 졸림이 용량을 올리면 어떻게 될지. 아침마다 출근하는 사람인지, 운전을 하는 사람인지, 시험을 앞둔 사람인지. 같은 약이라도 어떤 생활 위에 얹히느냐에 따라 무게가 다릅니다. 처방은 약과 병의 만남이기 전에, 약과 생활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이 올라갑니다. 이게 제일 무겁습니다.

"약이 늘었네요."

진료실에서 이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목소리는 담담한데, 그 안에 접힌 문장이 하나 있다는 걸 저는 압니다. 제가 그만큼 더 나빠졌다는 뜻인가요. 용량을 성적표처럼 읽는 마음. 숫자가 커질수록 병도 커진 것 같고, 약이 늘어난 만큼 자신이 어딘가 실패한 것 같은 마음. 그 마음을 아는 채로 증량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몇 년을 해도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늘 하는 설명이 있습니다. 용량은 병의 크기가 아니라는 것. 같은 약이라도 몸에서 처리되는 속도가 사람마다 다르고,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절반 용량이 충분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두 배가 필요합니다. 커피 반 잔에 밤을 새우는 사람이 있고 석 잔을 마시고도 잘 자는 사람이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커피 석 잔이 필요한 사람이 반 잔인 사람보다 더 아픈 게 아니듯이, 증량은 "더 나빠졌다"가 아니라 당신 몸에 맞는 눈금을 찾는 중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이 설명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설명이 실망을 다 지우지 못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두 사실을 다 알고 있어서, 설명을 마친 뒤에도 잠깐 그 표정을 살핍니다. 납득의 표정인지, 납득해 드리려는 표정인지. 후자일 때는 다음 진료 때 한 번 더 묻습니다. 지난번에 약 올린 거, 마음에 어떠셨어요.

물론 반응이 다 같지는 않습니다. 증량 이야기에 오히려 안도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힘든 만큼의 대접을 이제야 받는다는 표정. 그동안 "이 정도로 힘들다고 해도 되나" 하며 자기 고통을 깎아 말해 온 분들에게, 늘어난 처방은 당신의 힘듦이 정식으로 접수되었다는 문서가 되기도 합니다. 같은 숫자가 어떤 분에게는 성적표로, 어떤 분에게는 접수증으로 읽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숫자를 바꾸기 전에, 이 숫자가 맞은편에서 어떤 문서로 읽힐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덧붙이면, 약은 무조건 적을수록 좋다는 생각도 저울을 기울게 합니다. 목표는 최소가 아니라 적정입니다. 병에 닿지 않는 용량은 부작용의 위험만 지고 효과는 못 받는, 말하자면 가장 손해 보는 자리입니다. 강을 절반만 건너는 다리는 다리가 아니잖아요. 절반 용량으로 온전한 병을 상대하는 건 그 다리 위에 서 있는 일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어떤 날의 증량은 약을 늘리는 게 아니라, 다리를 마저 놓는 일입니다.

반대 방향의 대화도 있습니다. 용량을 올려 달라고 먼저 청하는 목소리들. "이 약, 더 세게는 안 되나요. 빨리 낫고 싶어요." 이때의 저울질은 또 다릅니다. 마음이 급한 게 너무나 당연한 상황에서, 서두르면 잃는 것들을 설명해야 하니까요. 용량을 빨리 올리면 효과가 빨리 오는 게 아니라 부작용이 빨리 옵니다. 효과는 제 속도로 오고요. 그래서 저는 계단 비유를 자주 씁니다. 이 약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서, 두 칸씩 뛰어오르면 대개 무릎이 먼저 상합니다.

그런가 하면 몇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사실은… 반만 잘라 먹고 있었어요"라는 고백. 진료실에서 드물지 않게 듣는 말입니다. 약이 무서워서, 혹은 이 정도면 줄여도 될 것 같아서. 저는 이 고백을 반깁니다. 진심으로요. 야단칠 일이 아니라 저울을 다시 달 일이거든요. 제가 알고 있던 용량과 실제 드신 용량이 다르면, 그동안의 저울질이 전부 다른 눈금 위에서 이루어진 셈이니까요. 늦게라도 말해 주시면 그날부터 저울이 다시 정확해집니다. 그러니 혹시 지금 몰래 반으로 잘라 드시는 분이 계시다면, 다음 진료 때 꼭 말씀해 주세요. 표정 관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저울에는 진료실 밖의 목소리도 올라옵니다. 약 봉투를 본 가족의 한마디, 인터넷에서 읽은 글, 약은 독하다는 오래된 소문. 이 목소리들은 진료실에 직접 들어오지는 않지만, 다음 진료 때 표정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어떤 날의 처방 상담은 약과 병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람의 식탁에서 오간 대화에 대한 이야기가 됩니다. 저는 그 대화까지 듣고 나서야 숫자를 정합니다. 약은 입으로 들어가지만, 사실은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거니까요.

반대의 날도 있습니다. "이제 조금 줄여볼까요"라고 말하는 날.

솔직히 말하면 이 말을 꺼내는 날이 제 일의 몇 안 되는 명백한 기쁨입니다. 처방전의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볼 때, 칸에 있던 약이 하나 지워질 때. 그 순간 맞은편의 표정이 밝아지는 걸 보는 게 좋아서, 가끔은 필요 이상으로 뜸을 들여 발표하듯 말하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물론 참습니다. 저는 진지한 사람이니까요. 대체로는요.

그런데 고백하자면, 줄이자는 말을 꺼낼 때도 저울은 돌아갑니다. 어쩌면 올릴 때보다 더 조심스럽습니다. 지금의 좋아진 상태가 약이 만들어 준 안정 위에 서 있는 것이라면, 너무 빨리 계단을 빼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좋아 보여서 줄였다가 다시 가라앉으면, 그 실망은 처음 아플 때보다 무겁게 옵니다. 한 번 좋아졌던 기억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기쁜 날에도 저는 속으로 계산을 합니다. 지금이 맞나. 조금 더 안전해진 다음이 낫나. 이 계산을 하는 동안 겉으로는 웃고 있어서, 아마 그날 제 표정은 조금 이상했을 겁니다.

그리고 사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부터 생각합니다. 용량을 올리자고 말하는 날, 제 머릿속 한쪽에는 이미 내려올 계단이 그려져 있습니다. 언제쯤 안정되면 어느 눈금부터 줄여 볼지. 등산과 같아서, 올라가는 계획만 있는 산행은 좋은 산행이 아니거든요. 이 계획은 대개 먼저 말하지 않지만, 물어보시면 기쁘게 말씀드립니다. 내려올 길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약이 덜 무서워지는 분들이 많아서요.

고백하자면 이 저울질이 늘 맞는 것도 아닙니다. 올렸는데 효과보다 부작용이 먼저 도착하는 날이 있고, 기다리자고 해 놓고 몇 주를 그대로 보내게 되는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되돌리거나 방향을 바꿉니다. 처방이 한 번의 정답이 아니라 계속되는 교정이라는 걸, 저는 면허를 받고 한참 뒤에야 몸으로 배웠습니다. 그러니 약이 한 번에 안 맞았다고 해서 치료가 실패한 게 아닙니다. 그건 저울이 한 번 움직인 것뿐입니다.

약을 먹는 것 자체가 두려운 마음에 대해서는 따로 적어 둔 글이 있습니다. 오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 반대편, 그러니까 처방하는 쪽의 속사정입니다.

증량을 말한 날의 저녁에 대해서도 적어 두고 싶습니다. 그런 날 저는 가끔 그날의 진료 목록을 다시 봅니다. 그 결정이 잘 내려앉았을까. 첫 며칠의 몸은 어땠을까. 궁금하지만 확인할 방법은 다음 진료뿐입니다. 그래서 정신과의 처방에는 묘한 시차가 있습니다. 결정은 오늘 하는데, 채점은 몇 주 뒤에 되는 것. 그 사이의 시간을 처방한 쪽도 궁금해하며 보낸다는 걸, 약 봉투를 받아 가시는 분들은 아마 모르실 겁니다. 알려 드리고 싶어서 적습니다.

처방전에는 이렇게 인쇄됩니다. 하루 한 번, 아침 식후. 끝입니다. 제가 방금까지 돌린 저울은 한 글자도 안 나옵니다.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일이에요. 제가 쓰는 글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진지하게 읽는 글은 아마 처방전일 텐데, 정작 제일 공들인 부분은 인쇄가 안 됩니다. 언젠가는 처방전에 각주를 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실없는 생각도 합니다. 이 숫자는 오래 고민한 끝에 정해졌음. 다음 달쯤 내려갈 계획이 있음. 물론 그런 서식은 세상에 없으니, 각주는 이렇게 글로 대신 씁니다.

그래서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처방전을 받아 들었는데 숫자가 늘었거나 줄었거나 약이 바뀌었다면, 물어봐 주세요. 왜 올리는 거예요. 왜 줄여요. 이 약은 뭐가 달라요. 저는 이 질문들을 정말 좋아합니다. 귀찮아서 싫어할 거라고 짐작하는 분들이 많은데, 반대입니다. 그 질문 덕에 방금까지 제 머릿속에서 혼자 돌아가던 저울질이 두 사람의 일이 되거든요.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단 저울은, 혼자 단 저울보다 대체로 정확합니다. 그렇게 정해진 용량은, 어떤 숫자든 그 순간의 당신에게 맞는 치수입니다. 옷 치수에 자존심 상해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용량도 그렇게 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처방전을 받으시면 기억해 주세요. 거기 적힌 숫자는 성적표가 아니라 눈금이라는 것. 그리고 그 한 줄이 인쇄되기까지, 누군가 잠깐 멈칫했다는 것. 그 멈칫거림은 처방전 어디에도 안 적히지만, 사실은 처방의 가장 중요한 성분입니다. 부작용도 없고요.

처방은 클릭 두 번이면 됩니다. 다만 좋은 처방은, 늘 그보다 조금 느립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