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나르시시스트'라는 말이 부쩍 흔해졌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남을 이용하는 사람, 특히 나를 힘들게 했던 옛 연인을 가리키는 딱지로요. 유튜브와 SNS에는 '나르시시스트를 알아보는 법', '이런 사람은 무조건 손절하라' 같은 콘텐츠가 넘쳐납니다.
그런데 이렇게 널리 쓰이는 만큼, 정작 임상에서 말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NPD)의 실제 모습은 오히려 납작해지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 딱지 뒤에 가려진, 조금 더 복잡하고 의외인 진짜 그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잘난 척하는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나르시시스트'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체로 하나입니다. 거만하고, 자기가 특별하다고 믿고, 남을 깔보며, 끊임없이 칭찬과 인정을 요구하는 사람. 물론 이건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한 얼굴이 맞습니다. 이걸 과대형(grandiose) 혹은 겉으로 드러나는 유형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여기 반전이 있습니다. 자기애에는 정반대로 보이는 또 하나의 얼굴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오히려 여리고, 소심하고, 자신 없어 보이는 취약형(vulnerable)입니다. 이들은 비판에 극도로 예민하고, 쉽게 상처받고 수치심을 느끼며, 스스로 위축돼 있습니다. 실제로 연구들은 이 두 유형이 서로 꽤 독립적인 별개의 차원임을 보여줍니다1. 그래서 겉모습만으로는 취약형을 자기애라고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그냥 예민하고 자존감 낮은 사람처럼 보이니까요.
이 두 얼굴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핵심입니다. 바로 '자기'에 온통 몰두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밑에 깨지기 쉬운 자존감이 자리한다는 것입니다. 과대형의 거만함조차, 실은 그 취약함을 가리는 두꺼운 갑옷인 경우가 많습니다.
핵심. 자기애는 '잘난 척'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뽐내는 과대형도, 여리고 예민한 취약형도 있습니다. 그리고 요란한 자신감 아래에는 대개 부서지기 쉬운 자기가 숨어 있습니다.
드물지 않고, 진단은 까다롭다
얼마나 흔할까요. 미국의 3만 4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역학조사에서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평생 유병률은 6.2%로 추정됐습니다. 여성(4.8%)보다 남성(7.7%)에서 더 높았고요2. 결코 희귀한 상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만 여기서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자기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과, 진단 기준을 충족하는 '성격장애'는 다릅니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자기중심성은 갖고 있고, 자신감이나 자존감은 그 자체로 건강한 것이기도 합니다. 성격장애라고 부르려면, 그 패턴이 광범위하고 지속적이며 본인이나 주변의 삶에 실제로 심각한 손상을 일으켜야 합니다. 임상가들도 이 병의 진단을 까다로워하는데, 앞서 본 것처럼 모습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입니다3.
| 구분 | 과대형(겉으로 드러남) | 취약형(숨겨짐) |
|---|---|---|
| 겉모습 | 거만함, 자신감, 매력적 | 소심함, 예민함, 위축 |
| 비판에 대한 반응 | 무시하거나 분노 | 깊은 수치심과 상처 |
| 눈에 띄는 불안 | 거의 없어 보임 | 뚜렷함 |
| 공통점 | 자기몰두, 취약한 자존감 | 자기몰두, 취약한 자존감 |
그들은 왜 병원에 오지 않을까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가장 역설적인 지점이 이것입니다. 정작 당사자는 '내가 자기애가 심해서 문제'라며 병원을 찾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과대함이라는 갑옷이 잘 작동하는 동안에는, 본인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늘 남에게 있으니까요. 그러다 이들이 진료실에 오는 건 대개 그 갑옷에 금이 갔을 때입니다. 승진에서 밀리거나, 사업이 무너지거나, 관계가 파탄 나면서 떠받쳐주던 인정이 사라졌을 때. 그제야 갑옷 아래 감춰져 있던 공허함과 우울, 격렬한 분노가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애' 때문이 아니라 우울이나 대인관계 위기를 호소하며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은 왜 힘든가
사실 이 주제를 검색하는 대다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앓는 당사자가 아니라, 그 곁에서 지친 사람들입니다. 공감이 잘 닿지 않고, 자신을 특별하게 대우해주길 요구하며, 때로 상대를 이용하거나 깎아내리는 사람과의 관계는 실제로 사람을 소진시킵니다. 그 고통은 분명히 실재하고,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다만 두 가지는 구분해야 합니다. 하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이 항상 같지는 않다는 것. 다른 하나는 진단은 낙인이나 무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상 몇 개를 보고 옛 연인을 원격으로 '나르시시스트'라 확정 짓는 것은, 정확하지도 않고 그 말의 무게를 가볍게 만듭니다. 관계에서 내가 겪은 고통은 굳이 상대에게 진단명을 붙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타당합니다. 인격장애 전반에서 낙인이 얼마나 큰 짐이 되는지는 경계성 성격장애 이야기에서도 짚은 바 있습니다.
좋아질 수 있을까
치료는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우선 자기애성 성격장애 자체를 낫게 하는 약은 없습니다. 약물은 동반된 우울이나 불안을 다루는 보조적 역할에 그치고, 치료의 중심은 정신치료입니다.
가장 큰 장벽은 치료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것 자체입니다. 자신의 취약함을 들여다보는 일은 이들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지기 쉽고, 그래서 치료에서 쉽게 이탈합니다. 하지만 갑옷 아래의 취약한 자기를 안전하게 마주하도록 돕는 과정이 이어지면, 변화의 여지는 분명히 있습니다3. 다만 그 변화는 느리고, 무엇보다 당사자가 '바뀌고 싶다'는 지점에 스스로 도달해야 시작됩니다.
'나르시시스트'라는 말은 이제 너무 헐거워져서, 자기밖에 모르는 모든 사람을 담는 그릇이 돼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가리키려던 자리에는, 요란한 자신감 뒤에 깨지기 쉬운 자기를 숨긴 채 정작 스스로도 편치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딱지를 붙이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일이고, 대개는 뒤엣것이 더 어렵습니다.
참고 자료
-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유병률과 동반질환, NESARC (Stinson 등, J Clin Psychiatry 2008): PubMed
-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진단과 임상적 난제, 임상 리뷰 (Caligor 등, Am J Psychiatry 2015): PubMed
- 과대형과 취약형 자기애의 구분 (Miller 등, J Pers 2011): PubM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