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자폐는 아니고, 아스퍼거래요."
이 문장은 꽤 오랫동안 통용되던 말이었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와는 다른 것, 말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데 사회성만 서툰 것, 심지어 어딘가 천재적인 것. 드라마와 인터넷 밈이 그 이미지를 키웠고, 진료실에서도 이 구분을 전제로 한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 "자폐까지는 아니죠? 아스퍼거 정도인 거죠?"
그런데 지금 병원에서 발급되는 진단서를 보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없습니다. 2013년,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 기준인 DSM-5가 개정되면서 이 진단명은 공식 체계에서 사라졌고,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통합됐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진단 체계(ICD-11)도 같은 길을 따랐습니다.
이 진단명의 생애는 생각보다 짧았습니다. 1944년 오스트리아 빈의 소아과 의사 한스 아스퍼거가 독특한 특성을 지닌 아이들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지만, 독일어로 쓰인 이 연구는 오랫동안 영어권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초 영국의 정신과 의사 로나 윙이 그의 작업을 소개하고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제안하면서 비로소 국제 무대에 등장했고, 1994년 DSM 제4판에 공식 진단으로 올라갔다가 2013년에 내려왔으니, 공식 진단명으로 산 세월은 19년입니다. 그 짧은 기간에 이 이름은 놀라울 만큼 깊이 대중문화에 뿌리내렸고, 그래서 지워질 때의 파장도 컸습니다. 오늘은 이 이름이 왜, 어떻게 사라졌는지, 그리고 여전히 이 이름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사람들에게 그 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같은 아이가 병원에 따라 다른 진단을 받았습니다
통합의 가장 큰 이유는 이념이 아니라 데이터였습니다. 진단이라는 것이 제 역할을 하려면, 같은 상태의 사람이 어느 병원에 가든 같은 이름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폐 관련 진단은 그게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근거가 된 것이 미국의 대학 기반 자폐 전문기관 12곳이 참여한 다기관 연구입니다. 4세에서 18세 사이 아동·청소년 2,102명을 표준화된 검사 도구로 평가하고, 각 기관의 전문가들이 최종 임상 진단을 내리게 했습니다. 결과는 불편했습니다. 아이들의 검사 점수 분포는 기관들 사이에 비슷했는데, 최종적으로 붙는 진단명, 그러니까 자폐성 장애냐, 아스퍼거 증후군이냐, 달리 분류되지 않는 전반적 발달장애냐는 기관마다 크게 갈렸습니다. 연구진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숙련된 전문 기관들 사이에서조차 하위 진단명의 구분은 신뢰할 수 없었다1.
쉽게 말해, 아이가 어떤 특성을 가졌는가보다 어느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갔는가가 진단명을 더 크게 좌우했다는 뜻입니다. 진단명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교육 지원과 서비스가 달라지는 현실에서, 이건 학문적 흠결 정도가 아니라 실제 아이들의 삶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경계선이 이렇게 흔들린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의 핵심 정의는 "언어 발달의 지연이 없을 것"이었는데, 어린 시절 언어 발달을 몇 년이 지난 뒤 부모의 기억에 의존해 판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부정확합니다. 게다가 어릴 때 말이 늦었다가 따라잡은 아이와 처음부터 늦지 않았던 아이가 청소년기에는 거의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서로 다른 병이라면 경과와 치료 반응이 달라야 하는데, 그 차이도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았고요.
진료 현장의 사정도 있었습니다. 당시 임상가들 사이에서는 '자폐'라는 단어가 부모에게 주는 무게를 덜기 위해, 혹은 부모가 받아들이기 쉬운 쪽을 골라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관행이 공공연했습니다. 반대로 어떤 지역에서는 자폐성 장애 진단이 있어야 교육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그쪽으로 기우는 일도 있었고요. 진단명이 아이의 상태가 아니라 제도와 배려의 함수가 되어 버린 셈인데, 어떤 선의에서 나왔든 이것은 진단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2013년, 선 대신 스펙트럼
그래서 DSM-5는 칸막이를 걷어냈습니다. 자폐성 장애, 아스퍼거 증후군, 달리 분류되지 않는 전반적 발달장애를 각각의 방으로 나누는 대신, 하나의 연속선 위에 있는 같은 상태로 정리한 겁니다. 이름은 자폐스펙트럼장애가 되었고, 기존에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았던 사람은 새 체계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으로 이어지도록 명시됐습니다. 진단이 취소된 게 아니라 이름이 옮겨진 것에 가깝습니다.
칸막이가 사라진 자리에는 '지원 필요 수준'이라는 개념이 들어왔습니다. 흔히 '레벨'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사회적 의사소통과 반복적·제한적 행동 각각에 대해 지원이 필요한 수준(1단계), 상당한 지원이 필요한 수준(2단계), 매우 상당한 지원이 필요한 수준(3단계)으로 적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레벨은 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가 아니라 지금 얼마만큼의 도움이 필요한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 답은 시기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스퍼거형 인간'이라는 고정된 딱지 대신, 상황에 따라 다시 매길 수 있는 눈금을 택한 셈입니다.
개정 당시 걱정도 있었습니다. 새 기준이 더 엄격해져서, 기존에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달리 분류되지 않는 전반적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던 사람 일부가 새 기준의 그물에서 빠져나가 지원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였습니다. 그래서 DSM-5는 안전망 조항을 두었고("기존에 확립된 진단을 받은 사람은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부여한다"),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은 있지만 반복적·제한적 행동이 없는 경우를 위해 사회적 의사소통장애라는 새 진단도 마련했습니다. 완벽한 해법이라기보다는, 사람을 흘리지 않으면서 체계를 바꾸려던 고민의 흔적으로 읽는 편이 정확할 겁니다.
물론 이 개편이 만능은 아닙니다. 스펙트럼이라는 말이 워낙 넓어져서, 도움 없이 대학을 다니는 사람과 하루 종일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같은 진단명을 공유하는 것이 과연 서로에게 유익한가 하는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진료실에서도 이 넓이 때문에 혼란을 느끼는 가족들을 자주 만납니다. 다만 방향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합의가 비교적 굳건합니다. 불안정한 경계선 여러 개보다, 하나의 스펙트럼과 개인별 지원 수준 기술이 실제 임상에서 덜 틀린다는 것이죠.
이름을 잃는다는 것, 정체성 논쟁
진단 체계로서는 정리가 됐지만, 사람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이해해 온 사람들이 이미 전 세계에 수십만 명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아스피'라고 부르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었고, 그 이름 아래에서 처음으로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를 경험한 성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통합은 과학적 정리이기 이전에, 자신을 설명해 주던 단어가 공식 사전에서 지워지는 사건이었습니다.
실제로 어떤 이름을 쓸 것인가를 두고 당사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영국에서 자폐 당사자, 가족, 전문가 등 3,470명에게 선호하는 용어를 물은 조사가 있는데, 모두가 동의하는 단 하나의 용어는 없었습니다. '자폐인'이라는 표현을 당사자 성인들은 널리 지지했지만 전문가들은 덜 선호했고, '자폐가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정반대 양상을 보였습니다. 연구진은 일부 이견이 깊이 뿌리내려 있다고 썼습니다2. 이름 하나에 이 정도의 긴장이 실려 있는 겁니다.
한편 통합을 반긴 목소리도 당사자들 안에 분명히 있었습니다. 아스퍼거라는 이름이 은연중에 '우월한 자폐', '진짜 자폐와는 다른 것'처럼 쓰이면서, 말이 늦거나 지적장애를 동반한 다른 자폐인들을 깎아내리는 위계로 작동해 왔다는 반성입니다. "나는 자폐가 아니라 아스퍼거"라는 문장은 스스로를 지키는 방패였지만, 그 방패는 '자폐'라는 단어에 묻은 낙인을 인정하고 강화하는 방식으로만 작동했습니다. 같은 스펙트럼 위에 있다는 선언은 그 위계를 걷어내는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이 논쟁을 지켜보면서 저는 진단명이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의사에게 진단명은 치료 계획의 좌표지만, 당사자에게는 자기 서사의 제목이고, 가족에게는 설명의 도구이며, 행정에는 지원 자격의 기준입니다. 하나의 단어가 네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니, 단어를 바꾸면 네 방향에서 동시에 반응이 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통합이 과학적으로 타당했다는 것과, 그 과정에서 상실감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둘 다 사실이고, 서로를 지우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진단 기회를 놓치고 성인이 되어서야 "혹시 내가?"를 묻게 되는 분들이 요즘 늘고 있는데, 이 변화의 맥락을 알면 검색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옛날 글은 아스퍼거로, 요즘 글은 자폐스펙트럼으로 검색되기 때문입니다. 성인기의 진단 이야기는 성인 자폐 진단 이야기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한스 아스퍼거라는 이름의 무게
이름이 물러난 배경에는 또 하나의 층이 있습니다. 진단명의 주인공, 오스트리아 빈의 소아과 의사 한스 아스퍼거 본인의 역사입니다.
오랫동안 아스퍼거는 나치 치하에서 장애 아동들을 지켜내려 애쓴 의사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빈 의과대학의 의학사 연구자 헤르비히 체코가 아스퍼거의 인사 기록과 그가 직접 쓴 환자 평가서 등 방대한 문서고 자료를 검토해 2018년 학술지 몰레큘러 오티즘에 발표한 연구는 그 서사를 뒤집었습니다. 아스퍼거는 나치 정권에 순응하며 경력 기회를 얻었고, 강제 불임수술을 포함한 '인종 위생' 정책을 공개적으로 정당화했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아동 '안락사' 프로그램에 협조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3. 살릴 가치가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를 가르던 체제 안에서, 그는 저항자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 연구는 진단명 통합(2013년)보다 나중에 나왔으니, 통합의 원인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뒤로 많은 당사자와 단체들이 이 이름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이미 물러나던 이름이 돌아오지 않도록 문을 닫는 역할을 했습니다. 자신을 아스퍼거라고 불러 온 당사자들에게 이 소식이 얼마나 곤혹스러웠을지도 짐작이 갑니다. 정체성의 이름표가 하루아침에 가해의 역사와 연결되어 버렸으니까요. 사람의 이름을 병명에 붙이는 관행 자체를 재고하게 만든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덧붙여 두자면, 자폐를 둘러싼 잘못된 통념은 이름 문제 말고도 여럿입니다. 그중 가장 해로웠던 백신 이야기는 백신과 자폐 괴담의 전말에서 근거와 함께 정리해 두었습니다.
실무적인 질문도 정리해 두겠습니다. 예전에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았던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그 진단이 무효가 된 거냐"입니다.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새 체계는 기존 진단을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이어받도록 설계됐고, 과거의 평가 기록은 지금도 유효한 임상 자료입니다. 새 서류가 필요한 행정 절차에서 현재 기준으로 재평가를 요구받는 경우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이름이 바뀌어서라기보다 어떤 제도든 최신 평가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진단서를 다시 받으러 가는 길이 자신을 부정당하러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 그 점만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아스퍼거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틀린 걸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 이름으로 수십 년을 자신을 이해해 온 성인에게, 개정판 책이 나왔으니 당신의 언어를 반납하라고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진료실에서는 공식 진단명을 쓰되, 자신을 아스퍼거로 소개하는 분의 언어를 굳이 교정하지 않습니다. 이름은 결국 자신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이고, 도구의 주인은 쓰는 사람이니까요.
다만 새로 알아가는 분들께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이제 그 낡은 경계선은 지도에서 지워졌고, 지워진 데에는 그만한 근거가 있었다고요.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진단명은 지도에 적힌 이름일 뿐입니다. 지도가 다시 그려졌다고 해서, 당신이 걸어온 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