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처방전에 약 이름 대신 을 적어주는 시대가 왔습니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요. 불면증을 스마트폰 앱으로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디지털치료기기)' 가 국내에도 정식 허가를 받았습니다. 게임이나 건강관리 앱과는 다릅니다. 임상시험으로 효과를 증명하고 식약처 허가를 받은, 말 그대로 '소프트웨어로 된 의약품' 입니다.

솔깃한 이야기지만, 여기에도 빛과 그늘이 뚜렷합니다. 오늘은 이 새로운 치료가 무엇이고, 실제로 얼마나 듣는지, 그리고 왜 아직 우리 진료실에 흔하지 않은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불면증 치료는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하세요.

앱이 어떻게 약이 되나 — CBT-I

핵심을 먼저 짚어야 합니다. 이 앱들이 하는 건 마법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치료를 디지털로 옮긴 것입니다.

불면증의 표준 1차 치료는 사실 수면제가 아닙니다. 불면증 인지행동치료(CBT-I) 입니다. 잘못된 수면 습관과 "또 못 자면 어쩌지"라는 불안의 고리를 바로잡는 심리치료인데, 여러 지침이 수면제보다 먼저 권고하는 방법입니다. (CBT-I가 무엇인지는 따로 정리해두었습니다.)

문제는 접근성이었습니다. CBT-I를 제대로 훈련받은 치료자가 드물고, 매주 상담을 받으러 다니기도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근거는 최고인데 정작 받기는 어려운, 답답한 치료였지요.

디지털 치료제는 바로 이 간극을 겨냥합니다. 수면 습관 교육, 수면 일기, 실시간 피드백, 행동 개입을 6~9주짜리 앱 프로그램으로 구현해, CBT-I를 손안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핵심 —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는 '새로운 약'이 아니라 '받기 어렵던 표준 치료(CBT-I)를 앱으로 대중화한 것' 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수면제를 늘리는 게 아니라 줄이는 쪽에 있습니다.

국내 1호 '솜즈', 그리고 미국의 선례

한국에서도 이미 현실입니다. 2023년 2월, 에임메드의 '솜즈(Somzz)'가 국산 1호 디지털치료기기로 식약처 허가를 받았습니다. 불면증 환자가 6~9주간 앱의 수면 교육과 행동 개입을 따라가면 수면 효율이 개선되도록 설계됐고, 국내 3개 기관 임상에서 불면증 심각도 지수(ISI)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개선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이후 시야장애·이명 등으로 허가 품목이 늘어, 현재 국내에 대여섯 개의 디지털 치료제가 등재돼 있습니다.

미국은 더 먼저였습니다. Pear Therapeutics의 'Somryst'가 2020년 FDA 허가를 받은 만성 불면증용 CBT-I 앱인데, 두 건의 무작위 임상에서 환자의 절반 이상이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호전을 보였고 40% 이상이 관해에 도달했습니다.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밤중에 깨어 있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효과 자체는 분명히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반전됩니다. 효과가 증명됐는데도, 디지털 치료제는 아직 널리 쓰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시장은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상징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방금 언급한 Somryst를 만든 Pear Therapeutics는, 한때 디지털 치료제의 대명사로 4억 달러 넘게 투자받은 선두 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2023년 파산했습니다. 제품이 효과가 없어서가 아니라, 팔리지 않아서였습니다. 의사도 환자도 보험도, 이 새로운 형태의 '약'에 어떻게 값을 매기고 지불할지 몰랐던 겁니다.

국내 사정도 비슷합니다.

  • 보험이 미성숙합니다. 디지털치료기기 수가는 2026년 현재도 정식 등재가 아니라 임시등재 단계입니다. 솜즈의 임시등재 기준가는 2만 원대였지만, 기업들이 운영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비급여를 택하면서 실제 처방가는 20만 원대로 형성됐습니다. 환자 부담이 큽니다.
  • 처방 현장이 낯설어합니다. 의사에게도 "앱을 처방한다"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고, 진료 시간에 사용법을 안내할 여유도 마땅치 않습니다.
  • 순응도가 낮습니다. 앱을 처방받아도 6~9주를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혼자 화면을 마주하는 치료라, 중간에 그만두기 쉽습니다.

다만 순응도에는 역설적인 장점도 있습니다. 얼마나 썼는지 데이터가 고스란히 남는다는 점입니다. 종이 숙제와 달리, 의사가 "이번 주에 얼마나 하셨어요"를 정확히 확인하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봐야 하나

디지털 치료제는 과대평가와 과소평가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과대평가하면 안 되는 이유는 방금 봤습니다. 효과가 극적이지도 않고, 아직 값싸지도 편하지도 않습니다. "앱 하나로 불면증이 낫는다"는 기대는 이릅니다.

그럼에도 과소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방향이 옳기 때문입니다. 이 접근의 본질은 수면제 의존을 늘리는 게 아니라, 근거가 가장 탄탄한 치료(CBT-I)를 더 많은 사람이 받게 하려는 시도입니다. 수면제를 오래 쓰는 것의 부담을 아는 입장에서(수면제 총정리 참고), 약을 줄여주는 쪽을 향한 도구가 늘어나는 건 분명 반가운 일입니다.

정리하면, 디지털 치료제는 "곧 모든 걸 바꿀 혁명"도, "거품"도 아닙니다. 근거 있는 치료를 손안에 넣으려는, 아직 서툴지만 옳은 방향의 실험입니다. 제도와 가격, 사용 경험이 다듬어지면 진짜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 짚고 넘어갈 점

저는 이 흐름을 응원하는 쪽입니다. 이유는 하나예요. 불면증에 정말 필요한 치료(CBT-I)를, 그동안 너무 적은 사람만 받아왔거든요. 수면제는 손쉽게 처방되는데 정작 근본을 다루는 치료는 받기 어려운, 그 뒤바뀐 현실을 이 도구들이 조금이나마 바로잡아줄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환자분께는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앱을 깔았다고 저절로 잠이 오는 게 아니라, 6주 넘게 성실히 따라가야 효과가 온다고요. 그리고 아직 비용 부담이 있다고요. 그래서 저는 이걸 "약을 대신하는 마법"이 아니라 "CBT-I를 혼자 연습할 수 있는 도구"로 소개합니다.

기술이 정신과 치료를 대체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좋은 치료를 더 많은 사람에게 닿게 하는 일이라면, 저는 기꺼이 그 손을 잡겠습니다. 중요한 건 화면이 아니라, 그 화면 너머에서 잠 못 이루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는 것이니까요.


앱이 약이 되는 시대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다만 그 시작은 화려한 혁명이 아니라, 값과 제도와 습관이라는 현실의 벽을 하나씩 넘는 더딘 과정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이 실험이 의미 있는 건, 그 방향이 '더 많은 약'이 아니라 '더 나은 치료로의 접근'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이 벽들이 낮아지면, 잠 못 드는 밤에 우리가 집어 드는 것이 약봉지가 아니라 검증된 프로그램이 될지도 모릅니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만성 불면증 처방형 디지털 치료제 Somryst의 안전성·효능 프로파일 (Expert Review of Medical Devices, 2020): 원문
  • 국산 1호 디지털치료기기 '솜즈' 품목허가 (메디게이트뉴스, 2023): 보도
  • 디지털치료제 실사용과 제도의 간극 (더메디컬, 2025):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