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A형이라 좀 소심해요." "쟤 완전 B형이지 않아?"

한국에서 이런 말은 거의 날씨 이야기처럼 오갑니다. 갤럽 조사에서 한국인의 58%가 혈액형이 성격과 관련 있다고 답했고, 2004년의 한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75%까지 올라갔습니다. MBTI가 유행하기 한참 전부터, 우리에겐 혈액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A형은 정말 소심하고 B형은 정말 제멋대로일까요. 이건 다행히 아주 깔끔하게 검증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사람 수천 명의 혈액형과 성격 점수를 나란히 놓고 보면 되니까요. 그리고 그런 연구는 이미 여러 번 이뤄졌습니다.

먼저, 판정부터

흔히 듣는 말판정
혈액형으로 성격을 알 수 있다연관이 사실상 0이다
A형=소심, B형=제멋대로 같은 특징대규모 연구에서 재현 안 됨
"그래도 주변 보면 맞던데"바넘 효과와 확증 편향
성격은 유전이니 혈액형과도 관련성격 유전자와 혈액형 유전자는 별개
혈액형은 아무 데도 영향 안 준다혈전·감염 위험엔 실제로 영향

① 1만 명에게 물어봤더니

가장 규모가 큰 연구부터 보겠습니다. 일본과 미국에서 무작위로 뽑은 1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성격·태도 68개 문항과 혈액형을 대조한 연구입니다1.

결과는 이렇습니다. 68개 문항 중 65개에서 혈액형 간 차이가 통계적으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개조차 효과크기가 0.003 미만이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사람들의 성격 차이 중 혈액형으로 설명되는 부분이 0.3%도 안 된다는 겁니다. 99.7%는 혈액형과 무관하다는 뜻이죠. 연구자의 결론 문장은 짧고 단호합니다. "이 결과는 성격에 대한 혈액형의 무관함을 보여준다."

이게 유별난 연구 하나가 아닙니다. 호주에서 헌혈자 360명을 혈액형별로 균형 있게 뽑아 성격을 검사한 연구도 있는데, 여기서는 아예 통념대로 가설을 세웠습니다. B형은 신경증적이고, O형은 외향적이고, A형은 친화적이고, AB형은 성실하리라는 식으로요. 일곱 개 가설이 전부 기각됐습니다2. 연구진의 결론입니다.

"혈액형이 성격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은 이 연구에서 아무런 지지를 받지 못했다. (…) 정상적인 사람들의 성격 특성이 서로 다른 혈액형에 무작위로 분포하는 것 이상이라고 가정할 근거가 없다."

대만 고교생 2,681명을 본 연구, 캐나다 대학생을 본 연구도 결론이 같습니다. 혈액형과 성격은 관계가 없습니다.

핵심 — 정직하게 하나 덧붙이겠습니다. 일본인 1,427명을 본 한 연구에서는 A형이 '인내' 항목에서 아주 약간 높게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효과크기가 1% 수준이라, 저자들 스스로 "예비적 결과이며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표본이 크면 이렇게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우연히 튀어나오기도 하는데, 크기를 보면 실생활에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 대규모 연구를 통틀어, 성격을 가르는 힘으로서의 혈액형은 사실상 0입니다.

② 이 이야기는 1927년에 시작됐습니다

혈액형 성격설의 출발점은 생각보다 어둡습니다. 1927년 일본의 후루카와 다케지라는 사람이 혈액형으로 기질을 나눌 수 있다는 학설을 처음 내놨는데, 그 배경에 우생학과 식민 통치 논리가 얽혀 있었습니다. 그는 대만인과 아이누족의 혈액형 분포를 비교하면서, 대만인의 '반항성'이 혈액형에서 온 유전적 특성이라는 식의 주장을 폈습니다.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였던 셈입니다.

이 학설은 곧 반박됐습니다. 1936년에 이미 후루카와의 방법이 통계적으로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왔고, 혈액형과 지능·감정·성격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다는 보고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학계에서 죽은 이 학설을 1970년대에 대중적으로 되살린 사람이 있습니다. 노미 마사히코라는 저널리스트인데, 의학이나 심리학 배경이 없는 공학 전공자였습니다. 그의 책이 붐을 일으키면서 혈액형 성격설은 일본을 거쳐 한국·대만으로 퍼졌습니다. 비평가들은 그의 작업을 "대체로 통제되지 않은 일화 수준"이라고 평가합니다.

정리하면, 우리가 상식처럼 여기는 이 이야기는 학문적으로 검증된 적이 없는 채로, 식민지 시대의 편견에서 출발해 대중서로 퍼진 것입니다.

③ 그런데 왜 그렇게 잘 맞을까

여기가 이 글에서 제일 중요한 대목입니다. 근거가 이렇게 없는데, 왜 우리는 "주변을 보면 맞더라"고 느낄까요.

첫 번째 이유는 바넘 효과입니다. 1949년의 유명한 실험에서, 심리학자 포러는 학생들에게 성격검사를 시킨 뒤 결과라며 프로필을 나눠줬습니다. 학생들은 "내 얘기가 정확하다"며 5점 만점에 평균 4.3점을 줬죠. 그런데 사실 모든 학생이 똑같은 문장을 받았습니다. 신문 별점에서 뽑아낸, 누구에게나 들어맞는 두루뭉술한 문장들이었어요3.

"당신은 겉으로는 차분하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많은 편입니다" 같은 문장을 생각해 보세요. A형에 붙여도 맞는 것 같고, B형에 붙여도 맞는 것 같습니다. 혈액형별 성격 설명은 대부분 이런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확증 편향입니다. B형인 친구가 제멋대로 굴면 "역시 B형"이라고 기억하고, 얌전하게 굴면 그냥 넘어갑니다. 맞는 사례만 눈에 들어오고 어긋나는 사례는 세지 않는 거죠.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세 번째가 있습니다. 자기충족적 예언입니다. 혈액형 성격설을 믿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혈액형에 맞다고 알려진 성격대로 실제로 행동하게 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나는 A형이니까 소심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자라면, 정말로 조금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왜 반전이냐면 — 혈액형이 성격을 만드는 게 아니라, 혈액형에 대한 믿음이 성격 표현을 바꾼다는 뜻이거든요. 인과가 정반대입니다. 그러니 "봐, 역시 맞잖아"라고 느껴지는 그 순간이, 사실은 이 학설이 스스로를 부풀리는 방식입니다.

④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이유

이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혈액형 성격설은 한국·일본·대만에만 있습니다. 서구 사람에게 "너 무슨 형이야?"라고 물으면 대개 자기 혈액형을 모릅니다. 그들에게 혈액형은 수혈할 때나 쓰는 의료 정보일 뿐이거든요.

문제는 이게 단순한 재미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부라하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혈액형 차별이 사회 문제가 됐습니다. 채용 면접에서 혈액형을 묻고, 학교에서 혈액형별로 반을 나누고, 특정 혈액형 상사를 기피하는 식으로요. 국내에서도 연애에서 특정 혈액형을 피한다는 조사가 나오곤 합니다.

재미로 "너 몇 형이야?" 하는 것과, 그걸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습니다. 근거가 0인 기준으로 누군가를 걸러내고 있다면, 그건 재미가 아니라 편견입니다.

⑤ 그럼 혈액형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가 — 그건 또 아닙니다

균형을 위해 반드시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혈액형이 성격과 무관하다고 해서, 혈액형이 몸에 아무 영향도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혈액형은 혈전과 감염 위험에는 실제로 영향을 줍니다. 정맥혈전색전증을 보면 O형이 아닌 사람(A·B·AB형)의 위험이 O형보다 약 2배 높습니다4. O형은 혈액을 굳게 하는 인자의 농도가 낮아서 그렇습니다. 감염 쪽에서도 노로바이러스나 콜레라, 위궤양 위험이 혈액형에 따라 갈립니다. 혈액형 항원이 병원체가 달라붙는 자리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정확한 구분선은 이겁니다. 혈액형은 몸(혈전·감염)에는 영향을 주지만, 마음(성격)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한 가지 오해도 풀어야겠습니다. "성격도 유전이라던데, 그럼 혈액형과도 관련 있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요. 성격이 유전되는 건 맞습니다. 성격 변이의 약 40%가 유전으로 설명됩니다. 그런데 성격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혈액형을 정하는 유전자(9번 염색체)는 서로 다른 자리에 있습니다. 둘 다 유전이라고 해서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이 직관이 틀리는 지점입니다.

💬 전문의 한마디

저는 혈액형 이야기를 아이스브레이킹으로 쓰는 것까지 뭐라고 하고 싶진 않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트는 데 그만한 소재도 없으니까요. 문제는 그게 농담을 넘어 판단의 기준이 될 때입니다.

진료실에서 이따금 이런 분을 봅니다. "저는 A형이라 원래 예민하고 우울한 사람이에요"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분이요. 그럴 때 저는 조심스럽게 되묻습니다. 그건 혈액형이 정한 게 아니라, 당신이 지금 힘든 상태인 거라고요. A형이라서 우울한 게 아니라, 우울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거라고요. 이 구분이 왜 중요하냐면, 혈액형은 못 바꾸지만 우울은 치료할 수 있거든요.

사람을 네 칸으로 나누는 이야기는 편합니다. MBTI든 혈액형이든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편한 만큼 사람을 납작하게 만듭니다. 당신은 A형이기 이전에,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이 사람 앞에서와 저 사람 앞에서가 다른, 훨씬 입체적인 사람입니다. 그 입체성을 네 글자로 접어두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면, "A형이라 소심하다"는 말은 1만 명을 조사해도 근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성격을 가르는 힘으로서 혈액형은 사실상 0입니다.

그러니 혹시 "나는 무슨 형이라 이래"라는 문장으로 스스로를 설명해 오셨다면, 그 문장을 한 번쯤 의심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태어날 때 정해진 네 글자보다 훨씬 넓고 자주 바뀌니까요.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혈액형과 성격은 무관(일본·미국 1만여 명, 68문항 중 65문항 무의미), Nawata, 2014: 원문
  • 혈액형-성격 통념 7개 가설 전부 기각, Rogers & Glendon, 2003: 원문 PDF
  • 대만 고교생 2,681명 빅5-혈액형 무관, Wu·Lyons·Chamberlain, 2005 —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 바넘 효과 원 실험, Forer, J Abnorm Soc Psychol 1949: APA
  • non-O형과 정맥혈전 위험(약 2배), Dentali 등, Semin Thromb Hemost 2012: PubMed

관련 글: 5주 뒤 다시 검사하면 절반은 유형이 바뀝니다 — MBTI · 애착유형은 정말 4가지로 나뉘는 성격일까 · HSP는 인구의 15~20%라는 숫자는 원 논문에 없습니다

참고문헌

  1. Nawata, Jpn J Psychol 2014
  2. Rogers & Glendon, Pers Individ Dif 2003
  3. Forer, J Abnorm Soc Psychol 1949
  4. Dentali 등, Semin Thromb Hemost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