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회피형이라서 연애를 오래 못 해요."
요즘 진료실에서도 이런 문장을 자주 듣습니다. SNS에는 "회피형 남친 대처법", "불안형과 회피형은 최악의 조합" 같은 콘텐츠가 넘치고, 자기 연애사를 애착유형 하나로 설명하는 분이 많아졌습니다.
애착 이론 자체는 정신의학이 오래 기대 온 탄탄한 개념입니다. 그런데 그 이론이 SNS를 거치면서 원래 모습과 꽤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원 논문을 열어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애착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유형'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먼저, 판정부터
| 흔히 듣는 말 | 판정 |
|---|---|
| 애착은 안정·불안·회피·공포의 4가지 유형이다 | 연구자들은 유형으로 안 본다 |
| 애착유형은 타고나 평생 가는 성격이다 | 15년 지나면 안정성이 사라진다 |
| 온라인 애착 검사로 내 유형을 알 수 있다 | 검사는 유형이 아니라 눈금 점수를 잰다 |
| 불안형과 회피형은 반드시 파국이다 | 불만족스럽지만 오히려 안 헤어지기도 |
| 애착은 진단이다 | 진단 기준에 그런 항목은 없다 |
| 검사로 나온 내 유형은 임상에서도 같다 | 면접 결과와 거의 겹치지 않는다 |
| 한번 정해지면 못 바꾼다 | 치료 뒤 불안 쪽 눈금은 내려간다 |
하나씩 근거를 보겠습니다.
① 4개의 상자가 아니라 두 개의 눈금
애착 이론의 뿌리는 1970년대 영아 연구입니다. 아기를 낯선 상황에 두고 엄마와 분리·재회할 때의 반응으로 안정·회피·불안의 세 패턴을 나눈 것이죠. 이걸 어른의 연애에 처음 옮긴 게 1987년 하잔과 셰이버의 연구인데1, 방법이 지금 기준으로는 소박합니다. 세 문단짜리 자기 서술 중 하나를 고르게 한 삼지선다였거든요.
문제는 이 3유형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입니다. 후대 연구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성인 애착의 3유형은 영아 연구의 세 패턴에서 "사변적으로 추정" 해 옮긴 것이었습니다2. 근거가 있어서 넷으로 나눈 게 아니라, 아기 연구를 어른에게 빌려 쓰면서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1998년, 프레일리와 월러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던졌습니다. 애착은 정말 몇 개의 유형으로 나뉘는가, 아니면 연속적인 것인가. 이들은 '몇 개의 무리로 뚝 떨어져 있는지, 아니면 눈금처럼 이어져 있는지'를 실제로 가려낼 수 있는 통계 방법을 썼고, 결론은 분명했습니다. 몇 개의 유형으로 보는 쪽은 자료와 맞지 않고, 이어진 눈금으로 보는 쪽이 더 잘 맞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오래된 연구 하나의 주장이 아닙니다. 2015년, 같은 질문을 큰 표본 두 개로 다시 검증한 논문이 나왔습니다. 제목이 아예 "성인 애착유형은 몇 개의 유형인가, 이어진 눈금인가"입니다3. 결론은 이렇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몇 개의 유형으로 나누는 쪽보다 이어진 눈금으로 보는 쪽과 더 잘 맞았다. (…) 애착의 개인차를 이해하고 재는 데에는 눈금으로 보는 쪽이 더 적합할 수 있다."
핵심 — 지금 연구자들은 애착을 안정·불안·회피·공포라는 네 개의 상자로 보지 않습니다. 불안(버림받는 것에 대한 예민함)과 회피(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라는 두 개의 연속 눈금으로 봅니다. 우리가 아는 네 '유형'은 이 두 눈금 위의 사분면에 붙인 이름일 뿐이고, 실제 사람들은 그 평면 위에 흩어져 있습니다. 대부분은 어느 상자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중간 어디쯤에 있습니다.
이 대목이 MBTI 팩트체크와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연속적인 것을 억지로 몇 개의 유형으로 자르면, 경계 근처의 사람은 사소한 차이로 유형이 바뀝니다.
② 타고나 평생 가는 성격이 아닙니다
"어릴 때 형성돼 평생 간다"는 것도 애착 이야기의 단골입니다. 이건 같은 사람을 오래 따라가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기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애착이 얼마나 그대로인지를 추적한 연구 127편, 2만 1천여 건을 모아 계산한 자료가 있습니다4. 결론은 '절반쯤은 유지되고 절반쯤은 변한다' 정도였습니다. 타고나 평생 가는 성격이라기엔 약한 수치죠.
그리고 결정적인 대목이 있습니다. 두 시점 사이가 벌어질수록 그대로인 정도가 떨어지는데, 15년을 넘어가면 '그대로 남는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아예 사라졌습니다. 5년까지는 어느 정도 유지되다가, 15년을 넘기면 우연으로도 나올 수 있는 수준까지 내려갑니다.
연구진의 결론은 조심스럽지만 방향이 분명합니다. 애착이 어릴 때 굳어져 평생 간다는 관점보다, 겪는 일에 따라 바뀐다는 관점을 지지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릴 적 애착과 어른이 된 뒤의 연애 애착을 이어 본 연구에서 둘의 관련성은 아주 약했습니다. 사실상 별개라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좋은 소식입니다. 절반쯤 변한다는 건 바뀔 여지가 있다는 뜻이고, 실제로 관계 경험이나 치료를 통해 더 안정적인 쪽으로 옮겨가는 일이 보고됩니다. "나는 회피형이라 어쩔 수 없다"는 문장은 근거가 약합니다.
③ 온라인 검사는 무엇을 재나
인터넷에 도는 애착 검사의 원본은 대부분 연구용으로 만들어진 설문입니다. 그런데 이 검사들은 애초에 유형을 가려내려고 만든 게 아닙니다. 불안과 회피, 두 눈금 위의 점수를 매기는 도구입니다. 그 점수에 임의의 선을 그어 "당신은 회피형" 하고 상자에 넣는 건 검사 본래 설계와 어긋납니다. 두 개의 눈금 위 좌표를 억지로 네 칸 중 하나로 반올림하는 셈이죠.
그리고 더 큰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런 자기보고식 검사와, 연구·임상에서 쓰는 애착 면접(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 시간 남짓 들으며 평가하는 방식)의 결과가 서로 잘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얼마나 안 맞을까요. 이걸 따진 연구(Roisman 등, 2007)가 연구 10편·961명을 모아 계산했더니, 둘 사이의 관련성이 거의 없는 수준(상관 0.09) 이었습니다.
이 숫자를 이렇게 읽으시면 됩니다. 면접에서 '안정'으로 분류된 사람과 온라인 검사에서 '안정'이 나온 사람은, 상당 부분 서로 다른 사람들입니다. 두 방법이 같은 것을 재고 있지 않다는 뜻이거든요. 면접은 자기 과거를 얼마나 균형 있게 이야기하는지를 보고, 자기보고 검사는 지금 연애에서 스스로 느끼는 바를 묻습니다. 그러니 인터넷 검사 결과 한 장을 들고 "내 애착은 이것"이라고 못 박기에는, 그 결과가 딛고 선 땅이 생각보다 좁습니다.
④ "불안형+회피형은 최악"은 사실일까
가장 널리 퍼진 통설입니다. 여기엔 근거가 반쯤 있습니다.
신혼부부와 연인을 분석한 연구들을 보면, 한쪽이 불안하고 한쪽이 회피적인 조합은 실제로 두 사람 모두에게 특히 불만족스러운 조합으로 나옵니다5. 여기까지는 통설이 맞습니다.
그런데 같은 연구에 반전이 있습니다. 이 조합이 "불만족스럽지만 오히려 안정적", 즉 불만족스러운 채로 잘 안 헤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파국"이라는 극적인 결론과는 다르죠. 그리고 연구 5편·539쌍을 시간에 걸쳐 추적한 자료를 보면, 이별을 예측하는 조합은 불안+회피만이 아니었습니다. 둘 다 불안하거나 둘 다 회피적인 조합도 위험했고, 무엇보다 애착이 이별을 직접 결정하는 게 아니라 초기 만족도라는 경로를 거쳐 작동했습니다6.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애착이 관계 만족에 영향을 주는 건 맞지만, 그 영향은 크지 않고 어디까지나 확률입니다. 상대의 애착유형을 알아냈다고 해서 그 관계의 결말을 예언할 수는 없습니다.
⑤ 그럼 애착은 다 헛소리인가 — 아닙니다
여기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애착이라는 개념이 엉터리"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애착이 불안정한 것은 우울과 연관되고7, 우울·양극성장애·조현병에 이르기까지 병을 가리지 않고 걸쳐 있는 취약성으로 나타납니다8. 치료 장면에서도 쓸모가 있습니다. 애착 불안이 높은 사람은 치료 성과가 다소 낮았고, 애착이 안정적일수록 성과가 좋았습니다9.
바로 이 점이 애착유형을 진단처럼 다루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병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은 뒤집으면 어떤 특정 병을 지목하지는 못한다는 뜻이거든요. 그리고 지금 쓰는 어떤 진단 기준에도 '회피형'이라는 어른용 진단명은 없습니다. 애착은 사람을 이해하는 하나의 렌즈이지, 사람을 분류하는 상자가 아닙니다.
⑥ 그럼 정말 바뀌긴 하나 — 치료를 받으면
앞에서 "관계나 치료를 통해 더 안정적인 쪽으로 옮겨간다"고 적었는데, 그 말도 근거를 대야 공평하겠습니다.
심리치료를 받는 동안 애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다룬 연구들을 모아 정리한 리뷰(Taylor 등, 2015)가 있습니다. 면접으로 잰 연구와 설문으로 잰 연구를 모두 훑었는데, 결과는 이렇습니다.
| 치료 뒤 변화 | |
|---|---|
| 안정적인 쪽 | 늘어남 |
| 불안(버림받는 것에 대한 예민함) | 줄어듦 |
| 회피(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 | 결과가 엇갈려 아직 불분명 |
환자군도 치료법도 치료 장소도 제각각인 연구들에서 같은 방향이 나왔다는 점이 이 결과의 힘입니다. 다만 연구진 스스로 단서를 답니다 — 치료를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을 제대로 나눠 비교한 연구가 아직 부족해서, 시간이 지나며 저절로 달라진 몫과 치료가 만든 몫을 깔끔하게 가르기는 어렵다는 것.
그래도 방향은 분명합니다. 회피 쪽은 좀 더 두고 봐야 하지만, 적어도 '버림받을까 봐 조마조마한' 쪽은 치료로 눈금이 움직입니다. 타고나 평생 가는 성격이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
애착이라는 언어가 유행하는 것 자체는 저는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나는 왜 가까워지면 도망치고 싶을까"를 들여다볼 계기가 되니까요. 문제는 그 언어를 쓰는 방식입니다.
두 가지만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첫째, 그건 상자가 아니라 눈금입니다. "나는 회피형"보다 "나는 가까워지는 게 남들보다 좀 불편한 편"이 훨씬 정확한 표현이고, 정확한 만큼 덜 가둡니다. 둘째, 그건 판결문이 아니라 지금의 경향입니다. 15년 뒤에도 같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관계와 노력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늦게 답장하는 사람에게 "역시 회피형"이라고 이름표를 붙이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기를 멈추게 됩니다.
💬 전문의 한마디
애착유형을 알고 오시는 분들께 저는 그 언어를 빼앗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를 설명할 말을 찾았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요. 다만 한 가지는 꼭 바로잡습니다. "저는 회피형이에요"라고 하시면, "회피 쪽 점수가 높으신 거죠"라고 되돌려 드립니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이 차이가 큽니다. 상자에 들어간 사람은 벽을 보지만, 눈금 위의 사람은 방향을 봅니다. 조금 덜 회피적인 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감각이 거기서 생깁니다.
진료실에서 실제로 그런 이동을 자주 봅니다. 안정적인 사람과 오래 만나면서, 혹은 치료에서 안전한 관계를 경험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분들이요. 그럴 때 저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저게 타고난 성격이었다면 저렇게 못 바뀌었을 텐데. 그러니 지금의 애착 성향을 자기 한계로 못 박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건 당신이 지나온 관계들이 남긴 자국이지, 당신이라는 사람의 정의가 아닙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면, 애착유형은 4가지로 나뉘는 타고난 성격이 아닙니다. 두 개의 연속된 눈금 위 어딘가이고, 시간이 지나면 그 위치도 움직입니다.
그러니 "나는 회피형이라서"라는 문장으로 무언가를 체념하고 계셨다면, 그 문장의 근거가 생각보다 헐겁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상자에 갇힐 이유가, 애초에 없었거든요.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관련 글: 5주 뒤 다시 검사하면 절반은 유형이 바뀝니다 — MBTI · 혈액형 성격설, 1만 명한테 물어봤더니 · 사이코패스는 진단명이 아닙니다
참고문헌
- Hazan & Shaver, 1987 ↩
- Fraley & Shaver, 2000 ↩
- Fraley 등, 2015 ↩
- Pinquart 등, 2013 ↩
- Rodriguez 등, 2021 ↩
- Peters 등, 2024 ↩
- Dagan 등, 2018 ↩
- Herstell 등, 2021 ↩
- Levy 등, 2011 ↩
- 애착 면접과 자기보고 검사의 결과는 거의 겹치지 않는다(연구 10편·961명), Roisman 등, 2007: PubMed
- 심리치료 중 애착이 달라지는가(안정 증가·불안 감소), Taylor 등, 2015: PubM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