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잘 안 하는 이야기를 오늘 하나 하려고 합니다.

저는 틀린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이 아닙니다.

처음에 우울증이라고 판단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양극성장애, 그러니까 조울증의 우울 시기였음이 드러나는 경우. 불안장애라고 보고 접근했는데, 알고 보니 갑상선 기능의 문제가 마음의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던 경우. 이건 제 진료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분야 어디에나 있는, 아주 흔한 패턴들입니다. 특정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패턴들을 비껴가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고백이 불안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의사가 틀린다니, 그럼 지금 내가 받은 진단은 뭐란 말인가 싶으실 겁니다. 그런데 조금만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의사도 못 믿겠다"로 가는 글이 아니라, 정반대의 자리에 도착하는 글입니다. 의사의 틀림이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알면, 어떤 진료실을 믿어도 되는지도 함께 보이거든요. 진단이 원래 어떻게 작동하는 물건인지를 알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놓이실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증은 진료실에 오지 않습니다

우울증과 조울증 이야기부터 해 보겠습니다. 왜 이 둘은 그렇게 자주 헷갈릴까요.

조울증은 가라앉는 시기와 들뜨는 시기가 번갈아 오는 병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 병원에 올까요. 가라앉았을 때 옵니다. 잠이 무너지고, 입맛이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요. 들떠 있는 시기에는 병원에 올 이유를 느끼지 못합니다. 기분이 좋고, 아이디어가 넘치고, 잠을 줄여도 쌩쌩하니까요. 본인에게 그 시기는 병이 아니라 컨디션이 유난히 좋은 날들로 기억됩니다.

그러니 진료실에 앉은 의사가 보는 것은 우울의 얼굴뿐입니다. 들뜸의 얼굴은 진료실에 오지 않습니다. 환자분께 지난날의 들뜬 시기를 여쭤봐도, 그건 "좋았던 때"로 분류되어 있어서 증상으로 보고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그림만 보면 영락없는 우울증이고, 실제로 우울증 치료가 시작됩니다. 숨어 있던 다른 반쪽은, 시간이 꽤 지난 뒤에야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게 얼마나 흔한 일인지 보여주는 조사가 있습니다. 미국의 환자 단체가 조울증 당사자 600명에게 물었더니, 100명 중 69명이 처음에는 다른 진단을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가장 흔한 첫 진단은 우울증이었고, 잘못 진단받았던 분들은 올바른 진단에 이르기까지 평균 네 명의 의사를 거쳤으며, 셋 중 한 명 이상은 정확한 진단까지 1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1. 저는 이 숫자를 의사들의 무능의 증거로 읽지 않습니다. 이 병이 원래 첫 만남에서 자기 전체를 보여주지 않는 병이라는 증거로 읽습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첫 진단을 언제든 고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분이라면, 우울로 오해받는 조울증 이야기를 한 번쯤 읽어 두시는 것도 그래서 권합니다.

갑상선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갑상선 호르몬이 넘치면 가슴이 뛰고 초조하고 잠이 안 옵니다. 불안장애의 얼굴과 놀랄 만큼 닮았습니다. 모자라면 처지고 무기력하고 눈물이 납니다. 이번엔 우울증의 얼굴입니다. 그래서 정신과에서는 피검사를 곧잘 합니다. 마음의 병처럼 보이는 것 중에 몸의 병이 숨어 있지 않은지 거르는 절차입니다. 그물을 쳐 두어도, 처음 오신 시점의 수치가 마침 애매하거나 증상이 전형적이지 않으면, 답은 역시 시간이 지나서야 또렷해지기도 합니다.

갑상선만이 아닙니다. 빈혈이 무기력의 얼굴을 하고 오기도 하고, 수면무호흡이 우울과 집중력 저하의 얼굴을 하고 오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은 행정구역이 다를 뿐 같은 나라여서, 국경을 넘나드는 증상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진료의 첫 단계에는 늘 '마음이 아닌 원인 걸러내기'가 들어 있습니다. 정신과에 왔는데 웬 피검사인가 의아하셨던 분들께 드리는 뒤늦은 해설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거름망도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 그게 오늘 글의 정직한 전제입니다.

진단은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진단을 이렇게 설명하곤 합니다. 진단은 한 번 찍고 끝나는 증명사진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 찍는 동영상이라고요.

첫 진료에서 의사가 보는 건 당신 인생의 한 프레임입니다. 그 한 장으로 저희는 가장 가능성 높은 설명을 고르고, 거기서 치료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병은 시간 위에서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계절이 바뀌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잠과 기분이 어떤 궤적을 그리는지. 프레임이 쌓여 동영상이 되어 갈수록, 처음 한 장으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 그때 진단이 바뀐다면, 그건 첫 판단이 엉터리였다는 뜻이 아니라 동영상이 사진보다 정보가 많다는 뜻입니다.

머리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면, 마음은 좀 다릅니다.

제가 내린 진단을 제 손으로 고치는 날, 기분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지나간 프레임들을 되감아 보며 자문하게 됩니다. 그때 그 대답을 더 파고들었어야 했나. 그 질문을 한 번 더 했어야 했나. 의사에게도 자존심이 있고, 첫 판단을 접는 일은 그 자존심을 접는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자존심과 환자의 안전을 저울에 올리면 어느 쪽으로 기울어야 하는지 배운 사람입니다. 틀렸을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 틀렸으면 인정하고 경로를 바꾸는 것. 이건 진료의 예외 상황이 아니라 진료의 정규 과정입니다. 틀리지 않는 의사는 없습니다. 틀렸음을 늦게 인정하는 의사와 빨리 인정하는 의사가 있을 뿐입니다. 저는 후자가 되려고 애쓰고, 그러기 위해 제 첫 진단을 너무 사랑하지 않는 연습을 합니다. 첫 진단과 결혼하지 말라는 건, 이 바닥의 오래된 격언이기도 합니다.

진단이 바뀌는 날, 진료실 반대편의 마음도 간단치 않습니다. 두 가지 반응을 자주 봅니다. 하나는 상실감입니다. 몇 년을 우울증이라는 이름과 함께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다른 이름이라니. 지금까지의 치료는 뭐였나, 그 시간을 돌려받을 수 있나 싶어지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의외로 안도감입니다. 어쩐지 약이 잘 안 듣더라, 어쩐지 설명이 안 되는 시기가 있더라 했던 퍼즐 조각들이 새 이름 아래에서 맞춰지는 경험이요.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맞는 이름을 받는 일은 그 자체로 치료의 시작입니다.

상실감 쪽에 서 계신 분께는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시간은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의 기록이, 약에 대한 반응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한 궤적이 전부 새 진단의 근거가 됐습니다. 동영상의 앞부분이 없었다면 뒷부분의 해석도 없습니다. 잘못 산 세월이 아니라, 답을 찾는 데 쓰인 세월입니다. 그리고 그 세월을 견딘 것은 당신이니, 새 진단의 지분 절반은 당신 몫입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진단이라는 동영상을 찍는 카메라는 사실 두 대라는 것. 한 대는 제가 들고 있지만, 다른 한 대는 당신이 들고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그때 그 약은 안 맞았어요"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약 먹고 오히려 붕 뜨는 느낌이었어요"라든가, "지난번 선생님 말씀과는 좀 다르게 흘러갔어요"라든가. 그런 말이 의사를 불편하게 할까 봐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꺼내시는 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그 말들은 저를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니라 저를 고쳐 줍니다. 약에 대한 뜻밖의 반응은 진단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가장 값진 단서 중 하나입니다. 이를테면 우울증 약을 먹고 이상하게 들뜨더라는 이야기는, 숨어 있던 조울증 쪽을 가리키는 화살표일 수 있습니다. 가족들이 "쟤가 한동안 잠도 안 자고 이상하게 씩씩했어요"라고 보태 주는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카메라에는 안 찍힌 장면이 당신의 카메라에는 찍혀 있습니다. 그 필름을 보여주셔야 동영상이 완성됩니다.

그러니 혹시 진료실에서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계신 분이 있다면, 부디 삼키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전에 어떤 진단을 받았는지, 무슨 약이 어땠는지, 주변 사람들이 당신의 어떤 시기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사소해 보여도 다 가져와 주세요. 의사의 말과 다른 경험을 했다면 그것도요. 좋은 의사라면 그 말에 방어적이 되는 게 아니라 귀를 세울 겁니다. 만약 어떤 진료실에서 그런 말이 계속 묵살된다면, 다른 의견을 찾아보시는 것도 당신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요즘은 진료실에 오시기 전에 검색을 해 보고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가진단 테스트를 해 보셨다거나, 짧은 영상들을 보다가 "이거 내 얘기 같다" 싶으셨다거나요. 그런 이야기를 부끄러워하며 꺼내시는데, 저는 오히려 반깁니다. 그 검색은 당신이 자기 상태를 이해해 보려고 애쓴 흔적이고, 어떤 검색어를 골랐는지 자체가 저에게는 단서가 됩니다. 물론 검색 결과가 늘 맞지는 않습니다. 인터넷의 자가진단은 그물코가 넓어서, 걸리지 않아야 할 것까지 걸립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가져와 주시면 함께 걸러 보면 됩니다. 혼자 확신하는 것보다, 같이 의심하는 쪽이 언제나 낫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틀릴 겁니다. 이렇게 쓰면 무책임하게 들릴까 봐 조심스럽지만, 이게 정직한 문장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일에서 모든 첫 진단이 맞는다고 장담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쪽이 더 걱정스러운 겁니다. 제가 약속할 수 있는 건 무오류가 아니라 이것입니다. 틀렸을 가능성을 계속 열어 두겠다는 것. 당신의 이야기를 그 가능성의 증거로 진지하게 다루겠다는 것. 그리고 고쳐야 할 때가 오면, 제 자존심보다 당신을 앞에 두겠다는 것.

다행인 것은, 이 일에 관한 한 시간이 우리 편이라는 사실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영상은 길어지고, 길어진 동영상은 거짓말을 못 합니다. 처음엔 헷갈리던 그림도 프레임이 쌓이면 결국 자기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러니 지금 받은 진단이 미덥지 않아 불안한 분이 계시다면, 치료를 놓아 버리는 것만은 말리고 싶습니다. 다음 프레임이 찍혀야 답이 나오는데, 카메라를 꺼 버리면 답도 함께 사라지니까요. 궁금한 것, 미심쩍은 것은 진료실에서 물어봐 주세요. 왜 이 진단인지, 무엇이 달라지면 판단이 바뀔 수 있는지. 그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는 것까지가 제 일입니다.

진단서의 글자는 도장이 아니라 연필로 쓰여 있습니다. 필요하면 고쳐 쓰라고요. 그 연필을 쥔 손이 두 개라는 걸, 오늘 글로 남겨 둡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참고문헌

  1. Hirschfeld 등,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