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건이 터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꼭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사람 게임 중독이었다더라." 총기난사든 학교폭력이든, 범인의 방에서 폭력적인 게임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늘 헤드라인을 탑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아서, 한때 밤에 청소년의 게임 접속을 막는 셧다운제가 있었고, 게임을 질병으로 볼 것이냐를 두고 지금도 논쟁이 이어집니다.
그 밑바닥에는 하나의 단단한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것. 워낙 상식처럼 굳어져서 의심조차 잘 안 하는 명제죠. 그래서 오늘은 이 믿음을 원 논문으로 하나씩 뜯어보려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이야기는 지난 20년간 과학의 무게중심이 꽤 많이 이동한 주제입니다.
경고는 어디서 시작됐나
이 믿음에 과학의 외피를 입힌 대표적 연구가 2010년에 나온 대규모 메타분석입니다. 앤더슨(Anderson) 연구진은 동서양 140여 개 연구, 참가자 6만 8천여 명의 데이터를 묶어, 폭력적 게임 이용과 공격성 사이에 상관계수 약 0.19의 연관을 보고했습니다1. 공격적 행동뿐 아니라 공격적 생각, 분노 감정, 공감 저하까지 폭넓게 걸쳐 있었고요.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폭력적 게임이 공격성의 위험요인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이 결론에는 그럴듯한 이론적 뼈대도 있었습니다. 폭력 장면에 반복 노출되면 공격적 사고가 머릿속에서 점점 접근하기 쉬워지고,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일반 공격성 모델'입니다. 직관적으로 설득력이 있죠. 문제는, 이 0.19라는 숫자와 그 해석이 이후 거센 재검토를 받았다는 데 있습니다.
숫자 뒤의 두 가지 함정
첫 번째 함정은 '공격성을 무엇으로 쟀느냐'입니다. 실험실에서 공격성을 측정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소박합니다. 상대에게 매운 핫소스를 얼마나 많이 주는지, 시끄러운 소음을 얼마나 크게 틀어주는지 같은 것들이에요. 이런 지표가 과연 주먹을 휘두르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진짜 폭력'과 같은 것을 재고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게임을 한 직후 소음을 조금 더 크게 튼 것과, 사람을 해치는 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습니다.
두 번째 함정은 출판 편향입니다. '효과가 있다'는 연구는 학술지에 실리기 쉽고, '효과가 없다'는 연구는 서랍 속에 남기 쉽습니다. 이 때문에 메타분석의 숫자가 실제보다 부풀려질 수 있습니다. 이 지점을 파고든 대표 주자가 퍼거슨(Ferguson) 연구진인데, 이들은 방법론적 허점을 통제하면 효과가 0에 가깝게 줄어든다고 반박해 왔습니다. 실제로 2020년 미국심리학회의 2015년 태스크포스 보고서를 재분석한 연구에서, 이들은 그 근거가 결론이 주장한 만큼 견고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2.
핵심 구분. '공격성(aggression)'과 '폭력·범죄(violence)'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실험실에서 잰 미세한 공격성 지표에 작은 효과가 있다 해도, 그것을 총기난사 같은 실제 폭력으로 확대하는 것은 근거가 뒷받침하지 않는 비약입니다. 오해의 대부분이 이 둘을 뭉뚱그린 데서 생깁니다.
더 엄격한 설계가 내놓은 답
논쟁이 팽팽할 때, 과학이 택하는 방법은 더 엄격한 설계입니다. 그리고 최근의 엄격한 연구들은 대체로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가장 상징적인 것이 2019년의 사전등록 연구입니다. 영국 청소년 1,004명과 그 보호자를 짝지어, 분석 계획을 미리 공개(사전등록)해 놓고 검증했습니다. 결과를 보고 유리한 분석만 골라내는 '체리피킹'을 원천 차단한 설계죠. 게임의 폭력성은 공식 연령등급으로 코딩했고, 아이의 공격성은 보호자가 평가했습니다. 결론은 명료했습니다. 폭력적 게임에 쓴 시간은 청소년의 공격적 행동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3. 직선적 관계도, 어느 지점부터 급증하는 곡선적 관계도 나타나지 않았고요.
실험으로 인과를 본 연구도 있습니다. 독일 연구진은 성인들을 무작위로 나눠 한 집단은 두 달간 매일 폭력적 게임(GTA V)을, 다른 집단은 비폭력 게임(심즈)을, 세 번째 집단은 아무 게임도 하지 않게 했습니다. 두 달 뒤 여러 공격성·충동성 지표를 쟀지만, 폭력적 게임을 한 집단에서 의미 있는 악화는 관찰되지 않았습니다4. 짧게 게임을 시키고 직후에 재던 초기 실험들과 달리, 실제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는 방식에 가깝게 오래 관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 연구 | 설계 | 결과 |
|---|---|---|
| Anderson 2010 | 140개 연구 메타분석 | 공격성과 약한 연관(r≈0.19) |
| Kühn 2019 | 2개월 무작위 실험 | 폭력적 게임군에 유의한 악화 없음 |
| Przybylski 2019 | 청소년 1,004명 사전등록 | 게임 시간이 공격성 예측 못 함 |
학회가 스스로 입장을 물리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미국심리학회(APA) 자신에게서 나왔습니다. APA는 2015년만 해도 폭력적 게임과 공격성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결의문을 냈습니다. 그런데 2020년, 이 입장을 갱신하면서 결정적인 단서를 달았습니다. 게임과 공격성 사이의 작은 연관은 인정하되, 폭력에 게임을 원인으로 돌리는 것은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실제 위험요인에서 눈을 돌리게 한다고 못 박은 것입니다5.
여기서 APA가 짚은 '실제 위험요인'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폭력을 진짜로 예측하는 것은 게임이 아니라 과거의 폭력 이력, 가정 환경, 또래 관계, 정신건강 같은 요인들이라는 뜻이거든요. 큰 사건 뒤에 게임을 지목하는 손쉬운 서사가, 정작 들여다봐야 할 것들을 가려버린다는 우려입니다. 실제로 게임 이용이 폭발적으로 늘어온 지난 수십 년간, 청소년 폭력 범죄율은 오히려 감소해 온 나라가 많다는 점도 이 서사와는 어긋납니다.
그럼 게임은 마음껏 해도 되나
여기서 반대편으로 너무 멀리 가면 그것도 곤란합니다. "게임은 아무 문제 없다"는 결론은 이 근거들이 말하는 바가 아닙니다.
분명히 해둘 것은, 방금까지의 이야기는 '폭력적 콘텐츠가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특정 명제에 대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건 게임을 몇 시간이나 하느냐, 밤잠을 얼마나 축내느냐, 해야 할 일을 얼마나 미루느냐 같은 '과몰입'의 문제와는 다른 축입니다. 시간 관리가 무너지고 일상이 게임에 잠식되는 문제는 별도로 존재하며, 그건 게임이용장애라는 다른 주제로 다뤄야 합니다. 또 개인차도 있어서, 이미 공격성이나 충동 조절에 취약한 아이에게는 콘텐츠 선택과 환경이 더 세심해야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그러니까 화를 게임으로 분출하면 화가 줄어든다는 반대편 통념도 근거가 약합니다. 분노는 표출한다고 빠지는 물탱크가 아니라는 것이, 카타르시스 신화에서 이미 이야기한 대로입니다. 게임은 폭력의 방아쇠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분노의 배수구도 아닌 셈입니다.
그래서, 사실일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폭력적인 게임이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강한 주장은, 현재의 가장 엄격한 근거들이 지지하지 않습니다. 실험실에서 잰 미세한 공격성 지표에 작은 연관이 남아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현실의 폭력이나 범죄로 잇는 다리는 무너진 지 오래고, 그 다리를 놓았던 학회조차 스스로 발을 뺐습니다.
큰 사건 앞에서 게임을 지목하는 건 어쩌면 가장 마음 편한 설명일지 모릅니다. 원인을 하나로 좁히면 두려움이 줄어드니까요. 하지만 편한 설명과 맞는 설명은 자주 다른 것입니다. 아이가 걱정된다면, 무슨 게임을 하는지보다 잠은 자는지, 학교에서 어떤지, 곁에 기댈 사람이 있는지를 먼저 들여다보는 편이 아마 더 정확한 길일 겁니다.
참고 자료
- 폭력적 게임과 공격성 메타분석 (Anderson 등, Psychol Bull 2010): PubMed
- 청소년 1,004명 사전등록 연구 (Przybylski·Weinstein, R Soc Open Sci 2019): PubMed
- 두 달 무작위 실험 (Kühn 등, Mol Psychiatry 2019): PubMed
- APA 2015 태스크포스 보고서 재분석 (Ferguson 등, Perspect Psychol Sci 2020): 원문
- 폭력을 게임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한 경고, 입장 갱신 (APA, 2020): 보도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