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라서 책임감이 강하지." "막내라 애교가 많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아." "둘째는 눈치가 빨라서." 태어난 순서로 사람의 성격을 설명하는 말은 어찌나 흔한지, 가족 모임에서도 회사에서도 쉽게 튀어나옵니다.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첫째는 한동안 부모의 관심을 독차지하다 동생에게 자리를 내주고, 막내는 손위 형제들 틈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하니까요.
이 발상의 뿌리는 깊습니다. 오래전 심리학자들이 출생순서로 성격을 설명하려 했고, '첫째는 보수적이고 막내는 반항아이자 혁신가'라는 식의 이야기가 널리 퍼졌습니다. 그런데 이 매력적인 이론을 수만 명 규모로 검증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수만 명을 조사했더니, 흔적이 없었다
독일, 영국, 미국 세 나라의 국가 패널 자료에서 약 2만 명의 성격을 분석한 연구가 있습니다. 연구진은 성격의 다섯 가지 큰 축(외향성, 성실성, 개방성, 친화성, 정서적 안정성)을 출생순서와 견주어 봤습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이 다섯 가지 어디에서도 출생순서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1. 첫째가 더 성실하지도, 막내가 더 외향적이지도 않았다는 뜻입니다.
혹시 성격을 너무 큰 덩어리로만 봐서 놓친 건 아닐까요. 그래서 같은 연구진은 더 좁고 구체적인 특질들을 다시 파고들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 타인을 신뢰하는 정도, 삶의 만족, 인내심, 정치적 성향까지요. 정밀한 분석을 거쳤지만, 여기서도 출생순서의 효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2. '막내는 모험적이고 반항적'이라는 바로 그 스테레오타입이, 정작 데이터에서는 자취를 감춘 겁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
그렇다고 출생순서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건 아닙니다. 딱 하나, 반복해서 확인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지능입니다.
두 연구 모두에서, 첫째는 측정된 지능에서 동생들보다 아주 조금 높았습니다. 태어난 순서가 뒤로 갈수록 평균 지능 점수가 미세하게 내려가는 경향이죠. 부모의 자원과 손길이 첫째에게 먼저, 그리고 온전히 쏟아진다는 점 등이 후보 설명으로 거론됩니다. 다만 여기서 '아주 조금'을 강조해야 합니다. 이건 수만 명을 모아야 겨우 드러나는 집단 평균의 미세한 차이이지, "첫째가 더 똑똑하다"고 눈앞의 개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이 전혀 아닙니다.
핵심. 태어난 순서는 성격을 만들지 않습니다. 대규모 연구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흔적은 지능에서의 아주 작은 평균 차이뿐이고, 그마저 개인에게는 의미를 두기 어려운 정도입니다.
| 통념 | 실제 |
|---|---|
| 첫째는 책임감·성실함이 강하다 | 성실성에 출생순서 효과 없음 |
| 막내는 자유분방·모험적·반항적 | 위험감수·반항성에 효과 없음 |
| 둘째는 눈치가 빠르고 사교적 | 외향성 등에 효과 없음 |
| 첫째가 더 똑똑하다 | 평균 지능이 미세하게 높을 뿐, 개인엔 무의미 |
그런데 왜 이렇게 그럴듯할까
성격에 효과가 없다는데도, 우리는 왜 여전히 "역시 첫째답네" 하고 무릎을 칠까요.
첫째, 확증편향입니다. 첫째가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순간은 '역시'라며 기억에 남기고, 그렇지 않은 순간은 그냥 흘려보냅니다. 둘째, 가족 안에서 형제가 맡는 역할은 '태어난 순서' 자체보다 나이 차이나 상황이 만든 경우가 많습니다. 손위 아이가 동생을 돌보는 건 순서 때문이 아니라 그저 더 컸기 때문이죠. 셋째,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가족 안에서 서로를 다르게 지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감각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객관적으로 측정한 성격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가족이라는 무대 위의 배역과, 실제 성격은 다른 이야기인 셈입니다.
결국 형제 순서로 사람을 재단하는 것은, 혈액형이나 MBTI로 사람을 몇 가지 유형에 밀어 넣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깔끔한 분류는 언제나 매력적이지만, 사람은 태어난 순서표에 적힌 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첫째든 막내든, 그 사람의 성격은 순서가 아니라 그 사람 자신에게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참고 자료
- 출생순서와 성격, 3개국 2만 명 분석 (Rohrer 등, PNAS 2015): PubMed
- 좁은 특질에 대한 출생순서 효과 검증 (Rohrer 등, Psychol Sci 2017): PubM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