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개팅 자리나 인터넷에서 이런 말이 부쩍 늘었습니다.

"저는 에겐남이라 좀 여려요." "쟤는 완전 테토녀야, 추진력 갑."

테토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에겐은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에서 온 말입니다. 테스토스테론이 우세하면 자신감 넘치고 주도적인 '상남자·걸크러시', 에스트로겐이 우세하면 섬세하고 다정하고 감정에 민감한 사람 — 이런 식으로 사람을 넷으로 나누는 놀이입니다. MBTI가 시들해질 무렵 그 자리를 이어받듯 퍼졌죠.

재미로 하는 말이라는 건 압니다. 그런데 이 놀이는 MBTI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호르몬'이라는 생물학 용어를 달고 있다는 것. 그래서 마치 과학이 뒷받침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성격이 아니라 호르몬 문제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요.

그래서 확인해봤습니다. 정말 혈중 호르몬 수치가 성격을 가를까요? 유행어를 탓하려는 게 아니라, 그 밑에 깔린 전제를 원 논문으로 짚어보려는 것입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특정 검사나 유행을 조롱하려는 게 아니라 근거의 크기를 확인하려는 글입니다.

팩트체크 ① 호르몬 수치와 성격은 얼마나 연결돼 있나

가장 직접적인 질문부터 가겠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이 높은 사람은 정말 더 주도적이고 공격적일까요?

여러 연구가 이걸 들여다봤습니다. 성격을 다섯 가지 축으로 재는 표준 도구(빅파이브)와 호르몬 수치의 관계를 조사한 연구들의 결론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테스토스테론·코르티솔 같은 호르몬 수치와 성격 특성 사이의 상관은 없거나, 있어도 아주 약합니다. 여러 연구를 종합했을 때 성격이 '호르몬과 행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근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즉, "호르몬이 이러이러하니 성격이 이렇다"는 깔끔한 인과의 사슬은 데이터에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있다 해도 너무 약해서, 한 사람의 성격을 그 사람의 호르몬 수치로 예측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팩트체크 ② 그럼 호르몬을 직접 넣어주면 성격이 바뀌나

상관관계는 인과를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 강력한 실험이 있습니다. 아예 호르몬을 직접 투여하고 행동이 바뀌는지 보는 것.

2009년 PNAS에 실린 무작위 이중맹검 연구가 대표적입니다. 폐경기 여성 약 200명에게 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겐, 또는 위약을 무작위로 배정해 여러 주간 투여한 뒤, 이타심·신뢰·위험 감수 같은 행동을 경제 게임으로 측정했습니다. 이런 게임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얼마나 남을 믿는가, 얼마나 모험적인가'를 꽤 민감하게 잡아냅니다.

결과는 심심할 만큼 분명했습니다. 호르몬을 실제로 넣어준 쪽과 위약을 준 쪽의 행동에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을 넣었다고 더 공격적이거나 이기적으로 변하지 않았고, 에스트로겐을 넣었다고 더 이타적으로 변하지도 않았습니다.

핵심 — 상관 연구에서도 연결이 약했고, 호르몬을 직접 주입한 실험에서도 행동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호르몬 수치가 성격을 만든다"는 이야기의 뼈대가 근거 위에 서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팩트체크 ③ 애초에 '내 호르몬 수치'라는 게 고정된 값일까

이 대목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습니다. 사람들은 "나는 테스토스테론이 높은 편"이라고 말할 때, 그게 키나 혈액형처럼 자기에게 붙박인 값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테스토스테론은 하루 안에서도 크게 출렁입니다. 아침 5~8시경에 가장 높고, 저녁으로 갈수록 떨어져서 하루 중 50% 넘게 낮아지기도 합니다. 30~40대 남성은 오후 4시 수치가 오전 8시보다 20~25%가량 낮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테스토스테론을 잴 때는 아예 오전에만 재라고 권합니다. 오후에 재면 '저하'로 잘못 읽힐 수 있으니까요.

이걸 유행어에 대입하면 좀 우스워집니다. 아침의 나는 테토남이고 저녁의 나는 에겐남인 걸까요? 물론 농담이지만, 요점은 진지합니다 — 순간순간 변하는 값을 근거로 사람을 고정된 '유형'에 넣는 것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혈액 속 호르몬 농도가 뇌 안의 농도를 잘 반영하지도 않습니다. 혈중 수치와 뇌척수액 수치의 상관이 약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손끝에서 뽑은 피의 숫자가 곧 뇌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럼 완전히 근거 없는 소리일까 — 작은 진실의 씨앗

여기서 공정해지겠습니다. 호르몬이 사람에게 아무 영향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해를 만드는 지점은 대개 '있다'와 '없다' 사이가 아니라, '무엇에, 언제, 얼마나' 에 있습니다.

호르몬이 뇌에 확실히 영향을 주는 시기가 있긴 합니다. 태아기의 성호르몬은 뇌 발달의 방향을 잡는 데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건 '지금 내 혈액에 흐르는 테스토스테론 수치'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고, 그것이 훗날 '다정함'이나 '추진력' 같은 성격을 결정한다는 근거는 훨씬 더 빈약합니다.

또 하나. 호르몬이 특정 행동에 순간적으로 영향을 줄 수는 있습니다. 경쟁에서 이기면 테스토스테론이 잠깐 오르는 식으로요. 하지만 이건 '상황이 호르몬을 움직이는' 방향에 가깝습니다. 호르몬이 성격을 만드는 게 아니라, 성격과 상황이 호르몬을 움직이는 쪽이 실제에 더 가깝습니다. 화살표 방향이 유행어가 말하는 것과 반대인 셈이죠.

왜 이런 이야기는 잘 퍼질까

근거가 약한데도 이런 유형론이 반복해서 유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그리고 사람을 보면서 제가 느끼는 건 이렇습니다.

첫째, 이름표는 편합니다. "나는 원래 에겐남이라 여린 거야"라고 하면, 복잡한 내 감정과 행동에 깔끔한 설명이 붙습니다. 설명이 붙으면 불안이 줄어듭니다. MBTI가 그랬듯이요. (MBTI가 5주 뒤 절반이나 유형이 바뀌는 이유도 결국 같은 심리에서 출발합니다.)

둘째, '호르몬'이라는 단어가 면죄부처럼 쓰입니다. 성격은 노력으로 바꿔야 할 것 같지만, 호르몬은 타고난 것이라 어쩔 수 없어 보입니다. "내 탓이 아니라 호르몬 탓"이라는 위안이죠.

셋째, 사람을 둘로 가르는 이분법은 늘 잘 팔립니다. 남성적/여성적, 강함/부드러움. 단순할수록 퍼지기 쉽습니다. 다만 그 단순함이 대가를 치르게 할 때가 있습니다 — "테토녀는 세니까 배려 안 해도 돼", "에겐남은 남자답지 못해" 같은 식으로 사람을 미리 재단하는 순간요.

정리하며

재미로 하는 놀이까지 근엄하게 뜯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너 완전 테토녀네" 하는 농담이 오가는 자리를 굳이 얼어붙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이 하나는 기억해두면 좋겠습니다. '에겐남·테토녀'는 성격 유형이 아니라 별명입니다. 그 밑에 깔린 "호르몬 수치가 성격을 결정한다"는 전제는, 원 논문을 뒤져보면 생각보다 훨씬 빈약합니다. 상관은 약하고, 직접 주입해도 행동은 안 바뀌고, 애초에 그 수치는 하루 안에서도 절반씩 출렁입니다.

그러니 별명은 별명으로 즐기시되, 그게 당신이나 다른 사람을 가두는 상자가 되려 할 때는 한 번 멈춰주세요. 사람은 호르몬 수치 하나로 요약되기에는 훨씬 복잡하고, 다행히도 훨씬 자유롭습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문장은, 편할 때도 있지만 종종 우리를 필요 이상으로 좁은 방에 밀어 넣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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