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설명문이라기보다 편지에 가깝습니다. 자녀가 조현병 진단을 받고, 진료실 문을 나서면서부터 지금까지 한 가지 질문을 놓지 못하고 있는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그 질문이 무엇인지 저는 압니다. 진료실에서 부모님들을 만날 때, 병에 대한 설명이 다 끝나고 나면 거의 어김없이 나오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목소리를 낮추고, 자녀가 듣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묻습니다.

"선생님, 제가 잘못 키워서 이런 건가요?"

어릴 때 많이 혼냈던 일, 부부싸움을 보여줬던 일, 일하느라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시간, 이사와 전학을 반복했던 것까지. 부모님들은 지난 이십몇 년을 통째로 법정에 세워 놓고 스스로 검사가 되어 있습니다.

이 죄책감은 조용히 있지 않습니다. 어떤 부모님은 밤마다 오래된 앨범과 일기를 뒤지며 '그날'을 찾고, 어떤 부모님은 배우자를 향해 "당신이 그때 그러지만 않았어도"라며 서로를 겨눕니다. 어떤 분은 죄를 갚듯 자녀의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쪽으로, 어떤 분은 자녀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쪽으로 기웁니다. 죄책감은 부모를 갉아먹는 데서 멈추지 않고, 부부 사이와 부모 자식 사이까지 조용히 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감정의 문제이기 전에, 치료 환경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 재판을 닫아 드리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근거들

먼저 고백부터 해야겠습니다. 부모님이 스스로를 탓하게 된 데에는, 사실 정신의학의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도 더 전, 정신의학은 실제로 어머니를 탓했습니다. 자녀를 조현병에 걸리게 만드는 어머니가 따로 있다는 뜻의 '조현병 유발 어머니'라는 용어가 학술지에 실렸고, 차갑고 모순된 양육이 병을 만든다는 이론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시절 수많은 부모가 자녀의 병 앞에서 치료자에게조차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이론이 그렇게 오래 힘을 가졌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부모님의 죄책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보입니다. 자녀에게 병이 생기고 나면, 부모의 기억은 거꾸로 재편집됩니다. 평범했던 훈육이 '억압'으로, 흔한 부부싸움이 '불화한 가정'으로, 사춘기의 말수 적음이 '그때 이미 시작된 신호'로 다시 보입니다. 진단이라는 결말을 알고 나서 과거를 돌아보면 모든 장면이 복선처럼 보이는 법입니다. 그 시절의 학자들도 같은 함정에 빠졌습니다. 병이 생긴 가정을 사후에 들여다보며 원인을 찾으니, 어느 집에나 있는 갈등이 병의 원인처럼 보였던 겁니다.

이 이론은 폐기되었습니다. 검증을 거듭할수록 근거가 나오지 않았고, 이후 수십 년의 연구가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정신의학은 조현병을 양육의 결과가 아니라 뇌라는 장기에 생기는 병으로 이해합니다. 뇌 안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 특히 도파민이라는 물질의 조절이 흐트러지는 것이 환청이나 망상 같은 증상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오래 쌓인 연구의 결론이고, 치료 약물도 바로 이 지점에 작용합니다. 부모의 말투나 훈육 방식이 도파민 체계를 이렇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유전 연구는 더 분명하게 말합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연구진이 열두 개의 쌍둥이 연구를 한데 모아 분석했을 때, 조현병에 걸릴 위험의 약 80%가 타고나는 요인으로 설명되었습니다1. 덴마크에서 쌍둥이 3만 1천여 쌍을 전국 등록 자료로 추적한 더 최근 연구에서도 거의 같은 숫자, 약 79%가 나왔습니다2. 조현병은 그만큼 타고나는 바탕이 큰 병입니다. 키우는 방식의 문제였다면 나올 수 없는 숫자입니다.

여기서 오해 하나는 짚고 가야겠습니다. "그럼 내 유전자를 물려줘서 그런 거니까 역시 내 탓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건너가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수만 개의 유전자를 물려주고 물려받으며, 그 조합은 누구도 고르거나 예측할 수 없습니다. 조현병과 관련된 유전적 변이는 건강한 사람들도 조금씩 나눠 갖고 있고, 특정한 하나의 '조현병 유전자'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유전자를 물려준 것이 죄라면 세상 모든 부모가 죄인입니다. 유전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조현병과 유전에 대한 글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덴마크 연구에서 눈여겨볼 숫자가 하나 더 있습니다. 유전자가 완전히 같은 일란성 쌍둥이 중 한 명이 조현병이어도, 다른 한 명까지 병이 생긴 경우는 100쌍 중 33쌍 정도였습니다. 유전이 전부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만 그 나머지를 채우는 환경 요인으로 연구가 지목해 온 것은 임신과 출산 무렵의 문제, 도시 환경, 대마 사용 같은 것들이지, "부모가 엄하게 키워서"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어느 쪽을 보아도, 부모님이 밤마다 다시 여는 그 재판에는 유죄의 근거가 없습니다.

죄책감이 앉았던 자리에, 할 수 있는 일을

죄책감을 내려놓으시라는 말이 "부모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부모는 병의 원인이 아니지만, 회복의 조건에는 깊이 관여합니다. 과거를 향한 죄책감은 근거가 없지만, 앞으로를 향한 역할은 근거가 아주 많습니다.

가족이 환자를 대하는 정서적 태도를 연구자들은 '표현된 정서'라고 부릅니다. 비난과 적대감, 그리고 지나친 간섭과 과보호가 높은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을 비교하는 연구들이 수십 년간 쌓였는데, 27개 연구를 묶은 메타분석에서 이 표현된 정서가 높은 가정의 환자는 재발 위험이 뚜렷하게 더 높았습니다3. 병의 원인은 가족이 아니지만, 병의 경과에는 집안의 공기가 실제로 영향을 준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새로운 자책의 재료로 쓰지는 마셨으면 합니다. 오히려 반대로 읽어 주세요. 원인은 부모님 손 밖의 일이었지만, 집안의 공기는 지금부터 부모님이 바꿀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니까요. 그리고 여기서 '지나친 간섭'이 비난과 나란히 놓여 있다는 점도 기억해 주세요. 미안한 마음이 큰 부모일수록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고 확인하는 쪽으로 기울기 쉬운데, 그 과보호 역시 회복에는 짐이 됩니다. 죄책감을 덜어야 하는 실용적인 이유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죄책감은 대개 비난 아니면 과보호로 새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진료실에서 가족들에게 권해 드리는 문장들을 몇 개 적어 봅니다. 정답이라서가 아니라, 방향을 보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왜 약을 또 안 먹었어, 그러니까 재발하지" 대신 "약 챙기는 게 쉽지 않지. 어떻게 하면 좀 편해질까"라고 물어봐 주세요. "정신 차리고 이겨내야지" 대신 "네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병이 힘들게 하는 거야"라고 말해 주세요. 환청 이야기를 꺼낼 때 "그런 게 어디 있어, 헛소리하지 마" 대신 "나한테는 안 들리지만, 너한테는 정말 들리는 거지. 그게 얼마나 힘들까"라고 받아 주세요. 증상의 내용에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증상을 겪는 일이 괴롭다는 것만은 온전히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 지지의 핵심입니다.

하나 더 보태자면, 잘하고 있는 날을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병이 있는 자녀를 둔 집에서는 대화가 온통 증상 점검이 되기 쉽습니다. 약 먹었니, 잠은 잤니, 오늘은 괜찮았니. 필요한 질문들이지만, 그것만 남으면 자녀는 자신이 '환자'로만 보인다고 느낍니다. 산책을 다녀온 날, 스스로 병원에 다녀온 날, 식탁에서 농담을 한 날에 "오늘 좋아 보이네" 한마디를 건네는 것. 병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있다는 신호는 그런 작은 데서 전해집니다.

이런 태도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입니다. 실제로 가족이 병에 대해 배우고 대처를 훈련하는 가족 개입 프로그램의 효과를 검증한 코크란 리뷰를 보면, 53개의 무작위 대조 연구가 모였고 가족 개입은 재발과 재입원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4. 부모가 배우면 자녀의 재발이 줄어듭니다. 이것은 죄책감과 달리, 근거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병원의 가족 교육 프로그램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가족 교실이 있다면 꼭 참여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한 가지 더. 재발의 초기 신호를 가족이 알아 두는 것도 부모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준비입니다. 잠이 급격히 줄고, 혼잣말이 늘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날이 이어지는 식의 변화를 미리 알고 있으면, 완전한 재발 전에 진료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다른 자녀들, 그러니까 환자의 형제자매 이야기도 잠깐 하고 싶습니다. 부모의 시간과 마음이 아픈 자녀에게 쏠리는 동안, 다른 자녀는 걱정을 혼자 삼키며 '나까지 힘들다고 하면 안 되지'라는 자리로 밀려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되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을 품고도 부모에게 차마 묻지 못하는 형제자매도 흔합니다. 가족 전체가 이 병을 배우는 자리에 형제자매도 함께하게 해 주시고, 그 아이의 삶과 걱정에도 자리를 내어 주세요. 가족은 한 명의 환자와 여러 명의 간병인이 아니라, 함께 지치고 함께 회복하는 하나의 팀입니다.

그리고 부모님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자녀의 병을 오래 돌보는 부모들은 자신의 우울과 불안, 수면 문제를 진료실에 가져오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분이 "애가 아픈데 내가 무슨"이라며 자신의 치료를 미룹니다. 이 병은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입니다. 부모님이 먼저 무너지면 자녀의 회복도 함께 흔들립니다. 부모님 자신의 진료, 숨 돌릴 시간, 같은 처지의 부모들을 만나는 가족 모임은 사치가 아니라 치료 계획의 일부입니다.

끝으로, 앞날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진단을 받은 직후의 부모님들은 이 병의 가장 어두운 그림만을 상상하곤 합니다. 그러나 조현병의 경과는 한 갈래가 아닙니다. 꾸준한 치료 속에서 학업과 일을 이어 가는 분들,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자기만의 안정을 찾아가는 분들을 진료실은 계속 지켜봅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을 걷는 분들도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치료를 유지하고 가족이 좋은 환경이 되어 줄 때 좋은 경과의 확률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고, 부모님은 그 확률을 좋은 쪽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편지를 닫겠습니다.

부모님은 이 병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수십 년의 연구가 그렇게 말하고 있고, 저도 진료실에서 매번 그렇게 말씀드립니다. 지난 세월을 세워 두었던 그 법정은 이제 닫으셔도 됩니다.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재판이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오늘 저녁, 자녀에게 건넬 한 문장을 골라 보세요. 비난도 훈계도 아닌, "밥 먹자" 같은 평범하고 따뜻한 한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원인이 아니었던 당신은, 회복의 가장 든든한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긴 길에 이 글이 작은 배웅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1. Sullivan 등, 2003
  2. Hilker 등, 2018
  3. Butzlaff·Hooley, 1998
  4. Pharoah 등,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