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릅니다. 휴대폰을 열어 봅니다. 새벽 한 시에 친구에게 보낸 멀쩡한 카톡, 계좌에서 빠져나간 택시비, 심지어 편의점 결제 내역까지. 어젯밤의 나는 걷고, 말하고, 계산하고, 현관 비밀번호까지 눌렀습니다. 그런데 그 몇 시간이 머릿속에는 없습니다.

"선생님, 술 마시면 필름이 끊기는데요, 이거 뇌가 망가지고 있는 건가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그 밤에 실제로 일어난 일부터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흔히들 술이 기억을 "지웠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좀 다릅니다. 조금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겁니다.

지워진 게 아니라, 애초에 저장되지 않았다

우리 뇌에는 그날의 경험을 오래 남는 기억으로 옮겨 적는 부위가 있습니다. 해마라고 부르는, 관자놀이 안쪽의 작은 부위입니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빠르게 치솟으면 이 해마의 기록 기능이 일시적으로 꺼집니다. 술이 이미 적어둔 기억을 지우는 게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아예 받아 적지를 않는 겁니다1.

그래서 그 밤의 내가 멀쩡해 보였던 것도 설명이 됩니다. 걷기, 말하기, 계산하기, 비밀번호 누르기는 이미 몸에 익은 기능이라 해마 없이도 돌아갑니다. 겉보기엔 평소의 나인데, 기록 장치만 꺼진 채 움직이는 상태 — 이게 필름 끊김의 실체입니다. 다음 날 아무리 떠올리려 애써도 안 나오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없는 파일은 복구가 안 됩니다.

끊김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군데군데 조각나는 유형(누가 힌트를 주면 "아 맞다!" 하고 일부가 떠오름)과, 몇 시간이 통째로 비는 유형(힌트를 줘도 아무것도 없음). 통째로 비는 쪽이 더 높은 농도에서 일어나는, 더 무거운 신호입니다.

흔하다고 안전한 게 아닙니다

"다들 한 번씩 끊기잖아"라는 말도 진료실에서 자주 듣습니다. 흔하다는 건 사실입니다. 미국 대학생 772명에게 물었더니 술을 마셔본 학생의 절반(51%)이 필름 끊김을 경험했고, 최근 2주 사이 술을 마신 학생 열 명 중 한 명은 그 2주 안에도 겪었습니다2.

그런데 흔하다와 괜찮다는 다른 말입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요.

첫째, 끊긴 시간은 무방비의 시간입니다. 판단력은 이미 바닥인데 기록까지 없는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거나, 다치거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도 본인은 다음 날 알 수조차 없습니다. 실제로 블랙아웃을 자주 겪는 사람일수록 음주 관련 사고·부상이 많다는 게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둘째, 반복되는 끊김은 마시는 방식이 위험하다는 경고등입니다. 필름은 마신 총량보다 올라가는 속도에 끊깁니다. 빈속에 급하게, 도수 높은 술을 연달아 — 이 패턴이 해마를 끕니다. 같은 소주 한 병이라도 세 시간에 나눠 마신 사람은 멀쩡히 기억하고, 한 시간에 털어 넣은 사람은 끊기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자주 끊긴다는 건 뇌가 "지금 마시는 속도가 감당이 안 된다"고 보내는 신호로 읽는 게 맞습니다.

"혹시 저 알코올 중독인가요?"

필름 끊김 자체가 곧 알코올 사용장애 진단은 아닙니다. 다만 진료실에서 이 질문을 받으면 저는 끊김의 빈도와 맥락을 봅니다. 일 년에 한 번, 특별한 날의 사고였는지. 아니면 술자리마다 반복되는지. 끊길 걸 알면서도 마시는 방식을 못 바꾸는지. 끊긴 밤의 일 때문에 관계나 일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는지.

뒤쪽으로 갈수록, 이건 "술이 좀 셌던 밤"의 문제가 아니라 술과 나의 관계 전체를 점검할 때라는 뜻입니다. 그 점검의 기준선은 술, 어디까지가 습관이고 어디부터가 병일까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오늘 밤 술자리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실전 요령입니다. 필름 끊김은 확률을 낮추는 방법이 명확한 편입니다 — 전부 "속도"를 건드리는 것들입니다.

  • 빈속 금지. 같은 양도 빈속이면 농도가 훨씬 가파르게 오릅니다.
  • 첫 한 시간을 천천히. 끊김은 대개 초반 속주에서 결정됩니다. 원샷 문화가 해마의 주적입니다.
  • 술 사이에 물 한 잔. 속도를 늦추는 가장 단순한 장치입니다.
  • 도수 섞지 않기. 농도 계산이 안 되는 폭탄주는 속도 조절 자체를 무너뜨립니다.
  • 그리고 약을 복용 중이라면 — 수면제·신경안정제 계열은 소량의 술로도 끊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조합은 요령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야 하는 조합입니다.

어젯밤이 비어 있는 아침의 그 서늘함을 아는 분이라면, 그 감각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건 뇌가 보낸 가장 정직한 경고였고, 다행히 아직 듣고 바꿀 수 있는 단계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참고문헌

  1. White, 2003
  2. White 등,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