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 오는 사람을 겨냥한 광고에 '식물성 멜라토닌'이라는 문구가 부쩍 눈에 띕니다. 합성 성분이 아니라 식물에서 얻은 천연이라 몸에 순하고 안전하다는 것이죠. '천연'이라는 말은 늘 안심을 주니까요. 그런데 이 문구를 조금만 뜯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여럿 보입니다. 하나씩 따져보겠습니다.

멜라토닌은 출처와 상관없이 같은 분자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화학의 기본입니다. 멜라토닌은 하나의 분자입니다. 식물에서 추출했든 실험실에서 합성했든, 우리 몸에 들어오는 그 물질은 화학적으로 완전히 똑같습니다. 우리 몸은 이 멜라토닌이 체리에서 왔는지 공장에서 왔는지 구분할 방법이 없습니다.

'천연 대 합성'이라는 구분이 의미를 가지려면 둘이 서로 다른 물질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멜라토닌처럼 동일한 단일 분자라면, 출처는 효과에도 안전성에도 아무 차이를 만들지 않습니다. 즉 '식물성이라서 더 순하다'는 말은, 같은 소금을 두고 '바다에서 온 소금이라 몸에 더 좋다'고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핵심. 같은 분자에는 '천연'과 '합성'의 차이가 없습니다. 멜라토닌이 식물에서 왔다는 사실은 그것이 더 안전하거나 효과적이라는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식물에 '들어 있다'와 먹어서 '효과 본다'는 다르다

그렇다면 식물이나 음식에 든 멜라토닌으로 잠을 잘 수 있을까요. 멜라토닌은 실제로 체리, 견과, 포도 같은 여러 식물에 들어 있긴 합니다. 특히 신맛이 강한 타트체리가 자주 거론됩니다.

관련 연구도 있습니다. 건강한 성인 20명에게 타트체리 농축 주스를 7일간 마시게 했더니, 소변의 멜라토닌 농도가 올라가고 수면 시간이 평균 84분 늘었습니다1. 언뜻 '식물성 멜라토닌 효과'의 증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조건을 봐야 합니다. 이건 '농축 주스를 하루 두 번, 일주일간' 꾸준히 마신 스무 명 규모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평소 식탁에서 먹는 과일 몇 알에 든 멜라토닌은 극미량이라, 그 정도로 같은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식물에 들어 있다'는 사실과 '식물을 먹어서 잠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식물에서 어떻게 뽑아내나

여기서 자연스러운 궁금증이 생깁니다. 함량이 그렇게 적다면, '식물성 멜라토닌' 제품은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식물 속 멜라토닌 농도는 대개 그램당 수 나노그램에서 수십 나노그램 수준입니다. 타트체리가 그램당 13~15나노그램, 호두는 3.5나노그램 정도고, 피스타치오처럼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라야 200나노그램대입니다2. 흔히 쓰는 보충제 한 알이 0.5~5밀리그램, 그러니까 수십만에서 수백만 나노그램인 걸 떠올리면, 순수하게 식물에서만 그만큼을 모으려면 엄청난 양의 식물을 처리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식물체를 잘게 갈아 에탄올 같은 용매로 멜라토닌을 뽑아낸 뒤, 정제하고 농축하는 것이죠. 실제로 멜라토닌이 비교적 많은 허브들을 골라 특수 추출·농축 공정을 거쳐, 원료 식물 대비 약 1,000배까지 농축한 식물 유래 추출물(그램당 약 7밀리그램)을 만든 연구도 있습니다3. 다만 이런 추출에는 용매 잔류 문제, 식물마다 들쭉날쭉한 함량, 그리고 멜라토닌이 빛과 열에 쉽게 분해되는 성질 같은 까다로운 난점이 따릅니다.

그리고 여기에 자주 지적되는 반전이 있습니다. 이렇게 순수하게 식물에서 뽑아낸 멜라토닌을 넉넉히 담은 제품은 실제로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식물성', '피토멜라토닌'을 앞세운 제품 상당수가 실은 화학적으로 합성한 멜라토닌을 주성분으로 하고 거기에 식물 추출물을 소량 더한 형태라는 지적이 업계 안에서 나옵니다. 라벨이 그리는 '자연에서 갓 채취한 순수 성분'의 이미지와 실제 생산 방식 사이에는 이렇게 틈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어느 경로를 거치든, 병 안에 담기는 것은 똑같은 멜라토닌 한 분자입니다. '어떻게 얻었느냐'는 마케팅에서만 갈릴 뿐, 몸이 받아들이는 물질 자체는 다르지 않습니다.

'천연 건강기능식품'이라는 라벨의 함정

그럼 아예 식물성 멜라토닌을 농축한 보충제는 어떨까요. 여기서 오히려 조심할 대목이 나옵니다. 이런 제품 상당수는 의약품이 아니라 건강기능식품이나 해외직구로 유통되는데, 이 '천연/건기식'이라는 지위가 품질 관리에는 허점이 되기도 합니다.

멜라토닌 보충제 31종을 분석한 연구에서, 제품에 실제로 든 멜라토닌 양은 라벨 표기의 마이너스 83%에서 플러스 478%까지 제각각이었습니다. 71%는 표기치와 10% 넘게 어긋났고, 심지어 26%의 제품에서는 라벨에 없는 세로토닌까지 검출됐습니다4. '천연'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무엇이 얼마나 들었는지조차 믿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자연에서 왔다는 말이 안전이나 정확함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참고로 국내에서 멜라토닌 완제 의약품(서카딘 2mg 등)은 전문의약품이라 처방이 있어야 합니다. '식물성'을 앞세운 제품들은 이 규제의 바깥에서 팔리는 경우가 많고요. 멜라토닌이 왜 '얼마나'보다 '언제' 먹느냐가 중요한 호르몬인지는 멜라토닌 이야기에서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통념실제
식물성이라 더 순하고 안전하다멜라토닌은 출처와 무관하게 같은 분자
체리 같은 음식으로 잠들 수 있다식품 속 양은 극미량, 연구는 농축액 기준
천연이라 믿을 만하다함량 편차 심하고 이물질 검출 사례도

그래서, 무엇을 봐야 하나

한 걸음 물러서면 더 근본적인 물음이 남습니다. 멜라토닌 자체가 불면의 해결사일까요. 19개 연구를 묶은 메타분석에서 멜라토닌은 잠드는 시간을 줄이고 총수면을 늘리긴 했지만 그 폭은 크지 않았고, 주로 시차나 수면위상 같은 생체리듬 문제에서 쓸모가 있었습니다5. 즉 '식물성이냐 합성이냐'를 따지기 전에, 멜라토닌이라는 성분 자체가 만성 불면의 만능 열쇠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천연이냐'가 아니라 '무엇이, 얼마나, 언제, 검증된 품질로 들어 있느냐'입니다. '식물성'이라는 단어는 이 중 어느 것도 보장하지 않습니다. 잠이 정말 문제라면, 성분 마케팅을 좇기보다 불면증 인지행동치료처럼 근거가 탄탄한 방법을 먼저 살피는 편이 낫습니다.

라벨에 붙은 '천연'이라는 두 글자는 마음을 놓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잠을 맡기기 전에 물어야 할 것은 그 성분이 어디서 왔느냐가 아니라, 정말 그만큼 들어 있고 나에게 필요한 것이 맞느냐입니다.


참고 자료

  • 타트체리 농축액과 멜라토닌·수면 (Howatson 등, Eur J Nutr 2012): PubMed
  • 멜라토닌 보충제의 함량 편차와 세로토닌 검출 (Erland·Saxena, J Clin Sleep Med 2017): PubMed
  • 멜라토닌의 일차성 수면장애 치료 효과 메타분석 (Ferracioli-Oda 등, PLoS One 2013): PubMed
  • 식품·식물의 멜라토닌 함량 (Meng 등, Nutrients 2017): PubMed
  • 허브 유래 phytomelatonin 농축 추출물 개발 (Pérez-Llamas 등, Antioxidants 2020): PubMed

참고문헌

  1. Howatson 등, 2012
  2. Meng 등, 2017
  3. Pérez-Llamas 등, 2020
  4. Erland·Saxena, 2017
  5. Ferracioli-Oda 등,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