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잘 오지 않는 밤, 자기 전에 술을 한 잔 걸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면 스르르 잠이 오니까요. '나는 술을 마셔야 잘 잔다'는 말도 흔하게 듣습니다. 이 믿음이 이렇게 질긴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절반은 사실이거든요.
문제는 나머지 절반입니다. 술은 우리를 빨리 잠들게 하는 대신, 그 대가로 밤의 후반부를 망가뜨립니다. 오늘은 '자기 전 한 잔'이라는 이 오래된 습관을, 수면 연구들이 실제로 무엇을 보여주는지로 따져보겠습니다.
절반은 맞다, 빨리 잠든다
먼저 사실인 부분부터 인정하고 시작하죠. 술은 진정 효과가 있어서, 마시면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수면 연구들을 종합한 리뷰를 보면, 알코올은 용량과 무관하게 잠드는 시간(수면 잠복기)을 줄이고, 잠든 직후 전반부의 깊은 수면(서파수면)을 늘렸습니다1. 잔을 비우고 눕자마자 곯아떨어지는 그 경험, 그리고 초저녁에 깊이 자는 느낌은 착각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술이 잠에 좋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나머지 절반이 문제다
하지만 밤은 초반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진짜 이야기는 술이 몸에서 분해되기 시작하는 밤의 후반부에 벌어집니다.
같은 리뷰에서, 알코올은 밤 후반부의 수면을 뚜렷하게 흐트러뜨렸습니다. 잠이 얕아지고 자주 깨는 것이죠. 게다가 꿈을 꾸는 렘수면(REM)에도 손을 댑니다. 렘수면이 시작되는 시점이 모든 용량에서 지연됐고, 중간에서 높은 용량에서는 밤 전체의 렘수면 양 자체가 줄었습니다. 렘수면은 기억을 정리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데 관여하는 중요한 단계인데, 술이 바로 이걸 억누르는 겁니다. 정리하면, 술은 '앞잠'을 깊게 해주는 대신 '뒷잠'을 부수고 꿈잠을 빼앗아 갑니다.
핵심. 술은 수면제(잠을 돕는 약)가 아니라 진정제(의식을 꺼뜨리는 것)에 가깝습니다. 빨리 곯아떨어지게 만들 뿐, 밤 후반의 회복하는 잠을 오히려 앗아갑니다. '빨리 잠든다'와 '잘 잔다'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한 잔쯤이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럼 딱 한 잔, 가볍게는 괜찮지 않을까요. 최근의 대규모 실측 데이터가 여기에 답을 줍니다.
핀란드 직장인 4천여 명이 착용형 기기로 1만 2천 일이 넘는 밤을 측정한 연구를 보면, 알코올은 잠든 직후 몇 시간 동안 심장의 회복 상태를 용량에 비례해 떨어뜨렸습니다. 회복 지표는 가벼운 음주(대략 한 잔)에서도 평균 9.3%포인트 낮아졌고, 많이 마실수록 그 폭이 커졌습니다2. 더 뼈아픈 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젊다고 해서 이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나는 튼튼하니까 괜찮다'가 통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잠은 든 것 같아도, 몸은 밤새 쉬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코골이와 무호흡까지 부른다
술이 수면에 끼치는 해악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알코올은 목 주변 근육을 늘어지게 만들어 기도를 좁힙니다. 그 결과 코골이가 심해지고, 자는 동안 숨이 멎는 수면무호흡의 위험이 커집니다.
21개 연구를 묶은 메타분석에서, 알코올을 더 많이 마시는 사람은 폐쇄성 수면무호흡의 위험이 약 25% 높았습니다3. 원래 코를 좀 골던 사람이 술 마신 날 유독 심해지는 게 기분 탓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수면무호흡은 그 자체로 낮의 피로와 심혈관 위험을 키우니, 술이 잠의 질을 두 겹으로 갉아먹는 셈입니다.
잠들려고 마신 술이 불면을 키운다
가장 경계해야 할 건 악순환입니다. 술로 잠을 청하는 습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덫이 됩니다.
우리 몸은 알코올의 진정 효과에 빠르게 적응해서, 같은 효과를 보려면 점점 더 많은 양이 필요해집니다. 게다가 술에 기대 잠들면 정작 수면의 질이 나빠지니, 다음 날 더 피곤하고 그래서 또 술을 찾게 됩니다. 잠이 안 와서 마신 술이, 결국 더 깊은 불면과 알코올 문제로 이어지는 길을 여는 겁니다. 술을 수면제 삼는 자가 처방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악순환은 숫자로도 남아 있습니다. 알코올 의존으로 치료를 받으러 온 172명을 조사했더니 61%가 치료 직전 6개월 동안 불면 증상을 갖고 있었고, 불면이 있는 쪽은 잠들기 위해 술을 자주 마셨다고 답한 비율이 55%로 그렇지 않은 쪽(28%)의 두 배였습니다. 그리고 치료 후 평균 5개월을 추적했을 때, 처음에 불면이 있던 사람의 재발률은 60%, 없던 사람은 30%였습니다. 다른 요인을 보정해도 이 차이는 살아남았습니다4.
여기서 눈에 걸리는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정작 '술로 잠을 자가처방한 이력' 자체는 이후의 재발을 예측하지 못했고, 재발과 붙어 있던 건 불면 그 자체였습니다. 잠을 못 자는 상태가 방치되면, 그 사람이 술로 버텨왔든 아니든 다시 술로 돌아가기 쉬웠다는 뜻입니다.
그럼 잠을 고치면 술도 줄어들까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나옵니다. 불면이 재발의 위험 요인이라면, 잠을 제대로 치료하면 술도 줄어들까요. 이걸 정면으로 시험한 최근 연구들의 답은 절반쯤 시원하고 절반쯤 정직합니다.
알코올 사용 문제로 치료 중인 재향군인 67명을 인지행동치료(CBT-I)와 수면위생 교육으로 나눈 무작위 시험에서, 불면 심각도는 치료 직후와 추적 시점 모두 CBT-I 쪽이 뚜렷하게 좋아졌고(군×시간 차이 약 -3.7점, -3.3점), 실제로 침대에 누운 시간 중 잠든 비율인 수면 효율은 추적 시점에 18%포인트 가까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금주 일수나 폭음 빈도에서는 두 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추적 시점의 '음주로 인한 문제'는 CBT-I 쪽이 덜했고, 그 개선이 불면이 나아진 정도를 통해 설명됐습니다5.
2025년에 나온 메타분석도 결이 같습니다. 무작위 시험 8편, 참가자 426명을 묶어보니 CBT-I는 불면 심각도를 치료 직후 5.5점가량 낮추고 그 효과가 6개월까지 4.5점 정도 유지됐지만, 음주 관련 지표는 연구마다 재는 방식이 달랐고 유의한 차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6.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잠은 확실히 고쳐집니다. 다만 잠이 좋아지면 술이 자동으로 줄어드는 그림은 아직 데이터가 지지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걸 나쁜 소식으로 읽지 않습니다. 불면은 술 문제의 부산물로 미뤄둘 게 아니라 따로 치료해야 하는 표적이라는 뜻이고, 실제로 진료실에서 '술을 끊으면 잠은 저절로 좋아질 겁니다'라는 말은 잘 지켜지지 않는 약속에 가깝습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다뤄야 하는 셈입니다.
정말 잠이 문제라면, 답은 잔에 있지 않습니다. 만성적인 불면에는 약이나 술보다 불면증 인지행동치료가 가장 근거가 탄탄한 첫 번째 선택지로 꼽힙니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과 빛, 낮의 활동을 다루는 이 접근이, 술 한 잔보다 훨씬 오래가는 잠을 돌려줍니다.
그러니 '자기 전 한 잔이 숙면에 좋다'는 말은, 앞 문장은 맞고 뒤 문장은 틀린 절반의 진실입니다. 술은 우리를 잠재우는 데는 능하지만, 재우는 것과 쉬게 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오늘 밤 잔을 채우기 전에, 그 한 잔이 데려다주는 곳이 정말 숙면인지 한 번쯤 되물어볼 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