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를 해봤는데 PTSD는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선생님, 저는 왜 사는 게 통째로 힘들까요?"

진료실에서 드물지 않게 듣는 질문입니다. 큰 사고나 재난을 겪은 분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린 시절 내내 이어진 학대, 몇 년에 걸친 가정폭력, 벗어날 수 없었던 괴롭힘처럼 한 번이 아니라 오래, 반복해서 상처를 입은 분들이 주로 이렇게 묻습니다. 악몽이나 깜짝 놀라는 증상만이 아니라, 감정이 수시로 뒤집히고, 자기 자신이 싫고, 사람을 믿는 일이 안 되는 것까지 전부요.

오랫동안 이분들은 진단의 사각지대에 있었습니다. PTSD 기준에는 어딘가 안 맞고, 우울증이나 성격 문제로 불리기엔 상처의 역사가 너무 뚜렷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8년에 공개한 국제질병분류 11판(ICD-11)은 이 자리에 처음으로 정식 이름을 붙였습니다. 복합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줄여서 복합 PTSD(C-PTSD)입니다.

세 가지 증상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

먼저 기존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간단히 되짚겠습니다. ICD-11이 정의하는 PTSD의 핵심은 세 묶음입니다.

  • 재경험: 그 일이 지금 다시 벌어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덮쳐옵니다. 악몽, 플래시백.
  • 회피: 그 일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사람·대화를 피해 다닙니다.
  • 위협 감각: 늘 경계 태세입니다. 작은 소리에 튀어 오르고, 몸이 쉬지를 못합니다.

한 번의 교통사고, 한 번의 폭행 뒤에 오는 고통은 대체로 이 세 묶음 안에서 설명이 됩니다. 그런데 상처가 반복되고 길어지면, 증상이 이 울타리를 넘어갑니다. 무서운 기억이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상처에 맞춰 조립된 것처럼 보이는 상태가 됩니다.

왜 그렇게 될까요. 한 번의 사고는 '세상에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라는 충격을 남깁니다. 무섭지만, 사고 이전의 나와 세상에 대한 기본 그림은 남아 있습니다. 반면 어린 시절부터 반복된 학대는 비교할 '이전'이 없습니다. 위험이 일상이고, 집이 가장 무서운 곳이고, 감정을 드러내면 더 위험해지는 환경에서 자라면, 아이는 그 환경에 맞는 생존 방식을 기본값으로 배웁니다. 감정을 꺼버리는 것,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것(적어도 내 탓이면 내가 잘하면 달라질 거라는 희망이 남으니까요), 아무도 깊이 믿지 않는 것. 어른이 되어 환경이 바뀌어도 이 기본값은 저절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험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나도 삶이 계속 전시 상태인 것입니다.

ICD-11이 새로 그린 지도 — 세 가지가 더 얹힙니다

복합 PTSD는 위의 PTSD 세 증상을 그대로 가진 채, 거기에 세 가지가 더 얹힌 진단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세 가지를 '자기조직화의 장해'라고 부르는데,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1. 감정조절 곤란 — 감정의 온도 조절 장치가 고장 난 상태입니다. 사소한 일에 감정이 폭발하거나, 반대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게 마음이 꺼져버립니다. 2. 부정적 자기개념 — "나는 하찮다", "나는 더럽혀졌다", "이 모든 게 내 탓이다" 같은 믿음이 기분이 아니라 사실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3. 관계 곤란 — 사람과 가까워지는 일이 안 됩니다. 다가오면 밀어내고, 멀어지면 버림받은 것 같고, 그래서 관계를 아예 시작하지 않는 쪽을 택하기도 합니다.

이 구분이 학문적 상상이 아니라는 근거는 꽤 쌓여 있습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크리스 브루윈 연구진이 세계 여러 나라 학자들과 함께 그동안의 검증 연구를 모아 정리한 리뷰(2017년, Clinical Psychology Review)에 따르면, PTSD 증상은 세 묶음으로, 복합 PTSD 증상은 여섯 묶음으로 나뉘는 구조가 여러 표본에서 반복해서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복합 PTSD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여러 번의, 오래 지속된 외상을 겪은 경우가 더 많았고, 일상 기능의 손상도 더 컸습니다1.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PTSD가 "그 일이 자꾸 돌아온다"의 병이라면, 복합 PTSD는 거기에 더해 "그 일이 나라는 사람을 다시 만들어버렸다"의 병입니다.

두 진단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다릅니다.

PTSD복합 PTSD
전형적인 배경한 번의, 또는 짧은 기간의 외상반복되고 길게 이어진 외상, 특히 벗어나기 어려웠던 상황
증상의 중심그 사건에 관한 기억과 반응사건 기억에 더해, 감정·자기상·관계라는 삶의 바탕
괴로움이 켜지는 순간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 앞에서자극이 없어도, 일상과 관계 전반에서
본인의 흔한 표현"그 일만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아요""그 일 이후로 제가 다른 사람이 됐어요"

물론 실제 사람은 표처럼 깔끔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두 진단 사이 어딘가에 있는 분도 많고, 시간이 지나며 모습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표는 지도이지 영토가 아닙니다.

어떤 상처가 복합 PTSD로 이어지나

미국 성인 인구를 대표하도록 뽑은 표본을 조사한 연구가 있습니다(Cloitre 등, Journal of Traumatic Stress, 2019년). ICD-11 기준으로 봤을 때 성인 100명 중 7명꼴이 PTSD 또는 복합 PTSD에 해당했고, 그 안에서 PTSD가 100명 중 3~4명, 복합 PTSD가 100명 중 4명꼴로 오히려 복합 쪽이 조금 더 많았습니다2.

이 연구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어떤 상처가 어느 진단과 이어졌는가입니다.

  • 어른이 된 뒤 쌓인 외상은 두 진단 모두와 관련이 있었지만, 어린 시절에 쌓인 외상은 복합 PTSD와 훨씬 강하게 연결됐습니다.
  • 특히 돌봐주어야 할 사람(양육자)에 의한 성적·신체적 학대가 복합 PTSD의 위험과 이어진 반면, 낯선 사람에 의한 폭력은 PTSD 쪽과 이어졌습니다.
  • 복합 PTSD를 가진 사람들은 PTSD만 가진 사람들보다 정신적 부담이 더 크고 심리적 안녕감이 더 낮았습니다.

'나를 지켜줘야 할 사람이 나를 해쳤다'는 경험이, 도망칠 수 없는 나이에, 반복해서 일어났을 때. 이것이 복합 PTSD의 가장 전형적인 배경입니다. 감정조절이 안 되고 자기가 싫고 사람이 무서운 것은 이상한 반응이 아니라,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에 새겨진 적응이었던 셈입니다.

한 가지 알아둘 점이 있습니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진단 체계인 DSM-5에는 복합 PTSD가 별도 진단으로 실려 있지 않습니다. 어느 분류를 쓰느냐에 따라 진단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고, 그래서 병원에서 "복합 PTSD"라는 말을 못 들었다고 해서 그 고통이 가짜인 것은 아닙니다.

또 하나, 복합 PTSD는 다른 이름들과 자주 헷갈립니다. 감정이 크게 출렁이고 관계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경계선 성격장애로 불려온 분들 가운데 일부는, 상처의 역사를 자세히 들어보면 복합 PTSD의 그림에 더 가깝습니다. 반대로 두 문제를 함께 가진 분도 있습니다. 오래 가라앉은 기분 때문에 우울증으로만 치료받아 온 경우도 흔합니다. 우울증 약과 치료가 도움이 되긴 하는데 뭔가 뿌리가 안 건드려지는 느낌이라면, 그 뿌리에 외상의 역사가 있는지 한 번은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어떤 이름이 맞느냐는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의 과녁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열두 개의 문항, 국제외상질문지(ITQ)

새 진단이 생기면 그것을 잴 도구가 필요합니다. 복합 PTSD의 표준 선별 도구는 국제외상질문지(International Trauma Questionnaire, ITQ)입니다. 스탠퍼드대학과 얼스터대학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진이 영국의 지역사회 표본 1,051명과 치료 중인 임상 표본 247명의 자료로 문항을 추리고 다듬어 2018년에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3.

핵심 증상을 묻는 문항이 단 12개입니다. 재경험·회피·위협 감각에서 각 2문항, 감정조절·자기개념·관계에서 각 2문항. 이를테면 "마음이 상했을 때 가라앉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 자신이 실패자처럼 느껴진다",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어렵다" 같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입니다. 짧고 쉬운 말로 만들어 세계 어디서나 쓸 수 있게 하자는 것이 ICD-11의 철학이었고, 이 질문지는 무료로 공개되어 있어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선별 도구입니다. 점수가 높게 나왔다고 진단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고, 최종 판단은 훈련된 전문가의 면담으로 이루어집니다. 반대로 문항을 읽으며 '전부 내 얘기'라고 느꼈다면, 그 느낌을 진료실에 가져가는 것만으로 대화의 출발점이 달라집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치료는 어디서부터 시작하나

복합 PTSD의 치료는 PTSD 치료의 뼈대를 공유합니다. 외상에 초점을 맞춘 심리치료, 예컨대 인지처리치료나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EMDR) 같은 접근이 중심에 있습니다. 다만 임상 현장에서는 순서에 공을 더 들이는 편입니다. 감정의 온도 조절 장치가 고장 나 있는 상태에서 곧바로 가장 아픈 기억을 꺼내면 치료 자체가 감당이 안 될 수 있기 때문에, 안전을 확보하고 감정을 다루는 기술을 먼저 익힌 뒤 외상 기억 작업으로 들어가는 단계적 접근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순서가 누구에게 가장 좋은지는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라, 이 부분은 정직하게 '확립되어 가는 중'이라고 말씀드리는 게 맞겠습니다.

치료가 길어질 수 있다는 말이 절망의 근거는 아닙니다. 방향이 다를 뿐입니다. 한 번의 사고가 남긴 병이 '그 기억을 소화하는' 치료라면, 반복된 상처가 남긴 병은 '그 상처 위에 세워진 자기 자신을 다시 짓는' 치료에 가깝습니다. 더 근본적인 작업이고, 그만큼 삶이 달라지는 폭도 큽니다.

치료실 밖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잠자는 시간과 식사 시간을 일정하게 붙잡는 것, 술로 감정을 끄지 않는 것,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두는 것. 감정조절이 어려운 상태에서는 이런 기본기가 감정의 바닥을 받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관계를 지키는 것 자체가 치료적입니다. 복합 PTSD의 상처가 관계 안에서 생긴 만큼, 회복도 결국 관계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치료자와의 관계가 중요한 이유도 같습니다. 약속된 시간에 만나고, 화를 내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비밀이 지켜지는 경험이 반복되는 것 자체가 "사람은 위험하다"는 오래된 학습을 조금씩 고쳐 씁니다.

몸의 문제도 함께 봐야 합니다. 오래 경계 태세로 살아온 몸은 여기저기 아픕니다. 두통, 소화 문제, 만성 통증, 이유를 찾기 어려운 피로로 내과와 검사실을 오래 돌다가 정신건강의학과에 닿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는 말은 꾀병이라는 뜻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의 발신지가 다른 곳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진료실에서 제가 자주 확인하게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복합 PTSD에 해당하는 어려움을 가진 분들일수록 "이건 병이 아니라 제 성격이 이상한 거예요"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 문장 자체가, 앞서 말한 세 가지 추가 증상 중 하나인 '부정적 자기개념'의 목소리입니다. 병의 증상이 병원에 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셈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며 자꾸 자신의 이야기 같다고 느끼셨다면, 그 느낌을 성격 탓으로 접어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래 반복된 상처에는 이제 이름이 있고, 재는 도구가 있고, 걸어볼 수 있는 치료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의 첫걸음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진료실 의자에 한 번 앉아보는 일이면 충분합니다.

참고문헌

  1. Brewin 등, 2017
  2. Cloitre 등, 2019
  3. Cloitre 등, Acta Psychiatrica Scandinavica,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