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거실에 불이 켜져 있습니다. 식탁에는 노트가 펼쳐져 있고, 며칠 전부터 잠이 줄어든 그 사람이 등을 보인 채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습니다. 목소리는 들떠 있고, 계획은 나날이 커집니다. 당신은 문가에 서서 망설입니다. 좋아진 걸까, 시작된 걸까. 말을 꺼내자니 싸움이 될 것 같고, 모른 척하자니 지난번의 기억이 목을 조입니다.

어쩌면 반대의 장면일 수도 있겠지요. 몇 주째 방에서 나오지 않는 뒷모습, 차려둔 밥이 그대로인 식탁 앞에서의 망설임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은 그 문가에 서 본 적 있는 분들께, 편지처럼 쓰려고 합니다. 양극성장애(조울증)를 앓는 사람의 가족은 병의 두 번째 당사자입니다. 그런데 병원은 대개 환자만 진료하고, 가족은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궁금한 것을 묻지 못한 채 돌아갑니다. 진료실에서 보호자 상담을 하다 보면 질문은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재발하는 걸 미리 알 수는 없나요?" "낌새가 보이면 저는 뭘 해야 하나요?" 오늘은 그 두 질문에 답해보겠습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재발은 예고편을 먼저 보냅니다

먼저 알려드리고 싶은 사실은 이것입니다. 양극성장애의 재발은 대부분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모습으로 들이닥치지 않습니다. 본편에 앞서 예고편이 있습니다.

영국 글래스고대학 연구진이 기분장애의 재발 전 신호(전구 증상)를 다룬 연구 17편, 총 1,191명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검토했습니다1. 결과를 추리면 이렇습니다.

  • 기분장애를 가진 사람 10명 중 8명 이상이 자신의 재발 전 신호를 한 가지 이상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 조증의 가장 믿을 만한 조기 신호는 수면의 변화였습니다. 조증을 앞둔 시기에 수면 변화를 보인 비율이 연구들의 중간값으로 100명 중 77명. 잠이 줄었는데 피곤하지 않다는 것, 이것이 가장 이른 경보입니다.
  • 조증의 예고 기간은 평균 20일이 넘었습니다. 즉 신호가 켜진 뒤 본편이 시작되기까지, 손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대개 몇 주쯤 있다는 뜻입니다.
  • 우울의 예고편은 이보다 종잡기 어려웠습니다. 사람마다 신호가 제각각이고, 기간도 이틀에서 일 년까지 크게 벌어져 있었습니다.

수면이 왜 첫 신호가 될까요. 잠은 기분보다 먼저 움직이는 계기판이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들뜨기 시작하면 뇌는 잠을 덜 필요로 하게 되고, 줄어든 잠은 다시 들뜸을 부추깁니다. 그래서 가족이 지켜볼 가치가 가장 큰 것은 그날의 기분이 아니라 그 주의 잠입니다. 몇 시에 잠들고 몇 시에 일어나는지, 자고도 안 피곤하다고 말하는 날이 이어지는지. 기분은 숨길 수 있어도 잠은 숨기기 어렵습니다.

수면 다음으로 흔한 조증의 예고편들은 이렇습니다. 말이 빨라지고 많아진다. 계획이 갑자기 여러 개가 된다. 씀씀이가 커진다. 사소한 일에 날카로워진다. 밤늦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한다. 자신감이 근거보다 앞선다. 하나하나는 '컨디션이 좋은 것'과 구별이 어렵습니다. 열쇠는 그 사람의 평소와 다른가, 그리고 여러 신호가 같은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이는가입니다. 그래서 신호를 가장 잘 읽는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그 사람의 '평소'를 아는 가족입니다. 저는 진료실에서 이 말을 자주 합니다. 저는 그분을 한 달에 한 번, 그것도 가장 점잖은 모습으로 만나지만, 가족은 매일 밤 거실의 불빛을 봅니다.

그래서 권해드리는 것이 잠 일지입니다. 거창할 것 없이 달력 귀퉁이에 적으면 됩니다. 대략 몇 시에 잤고 몇 시에 일어났는지, 그리고 낮의 기운이 평소와 같았는지 정도만요. 이것이 도움이 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기억은 흐릿하지만 기록은 흐름을 보여줍니다. "요즘 좀 안 자는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최근 닷새간 매일 세네 시간"이라는 사실이 되면, 본인에게 말을 걸 때도, 병원에 전할 때도 힘이 완전히 다릅니다. 둘째,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가족의 불안을 다스립니다. 막연히 지켜보며 애태우는 대신, 오늘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들뜸이 조증까지 가지 않는 2형 양극성장애라면 신호는 더 미묘합니다. 경조증의 시작은 겉보기에 '일이 잘 풀리는 시기'와 거의 같아서, 본인도 가족도 반가워하다가 놓치기 쉽습니다. 이때도 기준은 같습니다. 잠이 줄었는데 지치지 않는가. 평소의 그 사람이라면 하지 않았을 속도로 결정들이 내려지고 있는가. '좋아 보인다'와 '평소와 다르다'가 겹치는 순간이 가장 살펴야 할 순간입니다.

우울의 예고편은 좀 더 조용합니다. 좋아하던 것에 시큰둥해진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무거워진다. 말수가 줄고 약속을 미룬다. 씻고 챙기는 일이 귀찮아진다. 휴대전화 답장이 늦어진다. 우울 쪽 신호는 사람마다 다르니, 지난 우울 삽화 때 그 사람에게는 무엇이 먼저 왔는지를 기억해두는 것이 표준 목록보다 낫습니다. 삽화가 지나간 뒤의 잔잔한 시기에, "그때 돌아보면 뭐가 제일 먼저 이상했던 것 같아?"라고 한번 물어보세요. 본인이 짚는 첫 신호가 다음번의 가장 정확한 경보기가 됩니다.

한 가지 조심스러운 부탁이 있습니다. 신호 목록을 알게 된 가족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웃음과 모든 한숨을 재발로 읽는 과잉 경보입니다. 병을 가진 사람에게도 그냥 기분 좋은 날과 그냥 피곤한 날이 있습니다. 하루의 변화가 아니라 며칠씩 이어지는 흐름을 보세요. 다른 하나는 반대로, 지난번에 크게 데였기에 이번에는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신호를 외면하는 소망적 무시입니다. 둘 다 자연스러운 마음이지만, 둘 다 시간을 잃게 합니다.

신호를 봤다면 — 말 거는 법, 그리고 가족이 배우면 달라진다는 근거

낌새를 알아챘다면, 이제 가장 어려운 순간입니다. 말을 거는 일이지요. 들뜸이 시작된 사람에게 "너 또 시작이야"라는 말은 거의 항상 실패합니다. 본인은 지금 인생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다고 느끼는 중이기 때문에, 그 말은 걱정이 아니라 공격으로 들립니다.

몇 가지 원칙이 도움이 됩니다.

  • 진단하지 말고 관찰을 말하세요. "너 조증 왔어"가 아니라 "이번 주에 세 시간밖에 못 자는 것 같아서 걱정돼"입니다. 상대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잠, 지출, 말의 속도)에 걱정을 얹는 것입니다. 같은 내용도 주어를 바꾸면 온도가 달라집니다. "너 요즘 이상해"는 상대를 겨누지만, "나는 요즘 네 잠이 걱정돼"는 내 마음을 열어 보이는 말입니다.
  • 기분이 아니라 잠을 화제로 삼으세요. "요즘 기분이 어때?"는 방어를 부르지만 "요즘 몇 시에 자?"는 대답하기 쉽습니다. 병 이야기가 아니라 잠 이야기로 진료 예약까지 가는 길이 대개 더 짧습니다.
  • 평온할 때 미리 약속해 두세요. 가장 좋은 방법은 삽화가 없는 시기에 함께 앉아 정하는 것입니다. "네가 이틀 연속 새벽까지 깨어 있으면 내가 말할게. 그때는 병원에 연락하자"처럼, 신호와 행동을 미리 계약해 두면 위기의 순간에 그 말은 잔소리가 아니라 약속의 이행이 됩니다. 재발 때 무엇을 할지(주치의 연락, 약 확인, 카드 한도)까지 적어두면 더 좋습니다.
  • 약 이야기는 비난과 분리하세요. 재발의 흔한 배경에 임의 중단이 있지만, "약 끊었지?"라는 추궁은 숨게 만들 뿐입니다. 약에 대한 대화는 기분조절제가 무엇을 하는 약인지를 가족도 함께 이해하고 있을 때 훨씬 부드러워집니다.
  • 응급 상황의 선은 분명히 하세요. 자신이나 타인을 해칠 위험이 보이거나 현실 판단이 무너진 것 같다면, 설득의 단계가 아닙니다. 주치의·응급실과 상의하고, 자살에 관한 말이 나온다면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가 하루 24시간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앞서, 가족이 이 병을 배우는 것 자체가 치료라는 근거를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가족의 대응이 병의 경과와 무관하지 않다는 관찰은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비판과 추궁이 잦은 집, 혹은 반대로 걱정이 지나쳐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대신 결정하려는 집에서 재발이 잦더라는 관찰입니다. 이것은 가족을 탓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병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반복해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날카로워지거나 과보호로 기울기 쉽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족에게도 기술과 지식이라는 장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고, 그 장비를 쥐여주는 치료가 실제로 만들어져 검증까지 마쳤다는 사실입니다.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데이비드 미클로위츠 연구진은 삽화를 겪은 양극성장애 환자 101명을 무작위로 나눠, 한쪽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심리교육 치료(가족중심치료 21회기: 병에 대한 교육, 대화 기술, 문제 해결 훈련)를, 다른 쪽에는 간단한 가족 교육 2회기와 위기 개입만을 약물치료에 더해 제공하고 2년을 지켜봤습니다2. 결과는 뚜렷했습니다. 가족중심치료를 받은 집단은 2년 동안 31명 중 11명(약 3분의 1)이 재발한 반면, 비교 집단은 70명 중 38명(절반 이상)이 재발했습니다. 재발까지 버틴 기간도 더 길었고,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정도도 더 좋았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안정기의 환자 120명을 대상으로 집단 심리교육 21회기를 검증했는데, 여기서도 교육을 받은 쪽의 재발이 유의하게 적었고 입원 횟수와 기간도 줄었습니다3. 병을 아는 것, 신호를 아는 것, 신호 앞에서 무엇을 할지 아는 것. 이 '앎'이 약물에 얹어졌을 때 재발 곡선이 실제로 꺾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병원과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가족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다니는 병원에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이나 상담이 있나요?"라고 물어보세요. 없다면 이 글에서 다룬 것들, 즉 신호 목록 만들기, 잠 일지, 미리 정한 약속만이라도 가정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완제품 치료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방향이 같으면 효과의 결도 같습니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시간도, 그 앎을 쌓는 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편지의 끝인사를 대신해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혹시 마음 한구석에 "내가 뭘 잘못 키워서, 내가 그때 그 말을 해서 이 병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다면,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양극성장애는 타고나는 생물학적 바탕이 큰 병입니다. 가족의 말 한마디가 삽화의 방아쇠 근처에 있을 수는 있어도, 병 자체를 만든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죄책감은 무겁기만 하고 아무것도 예방하지 못합니다. 죄책감 대신 잠 일지를 드리고 싶어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사람의 치료자가 아닙니다. 잠을 세고 신호를 살피는 일은 당신 몫이지만, 진단하고 약을 정하고 병의 경과를 책임지는 일은 병원의 몫입니다. 그 경계를 지키셔야 오래 곁에 있을 수 있습니다. 감시자가 된 가족은 지치고, 지친 가족은 결국 멀어지게 되니까요. 당신이 하루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살필 필요는 없습니다. 흐름을 보는 눈, 미리 해둔 약속, 그리고 병원이라는 든든한 뒷배. 이 세 가지면 충분합니다. 오래 곁에 있는 것이야말로, 연구들이 숫자로 보여준 것처럼, 가족이 이 병에 미칠 수 있는 가장 큰 영향력입니다.

문가에서 망설이던 그 새벽의 당신은, 아무것도 못 한 것이 아닙니다. 지켜보고 있었고, 걱정하고 있었고, 지금은 이렇게 배우고 있습니다. 그거면 이미 두 번째 당사자의 일을 하고 계신 겁니다. 부디 당신의 잠도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살피는 사람의 잠이 무너지면 살핌도 오래가지 못하니까요. 그리고 다음 진료에는 대기실이 아니라 진료실 안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기를, 그 자리에서 이 편지에 적힌 것들을 주치의와 다시 맞춰보시기를 권하며, 이만 줄입니다.

참고문헌

  1. Jackson 등,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2003
  2. Miklowitz 등, 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 2003
  3. Colom 등, 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