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조용히 벌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약을 먹고 몇 달 사이 체중이 늘어난 환자가,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채 어느 날부터 약을 끊어버리는 것.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이미 증상이 도진 뒤인 경우가 많습니다. 살이 찌는 게 싫어서 한 선택이, 결국 재발이라는 더 큰 대가로 돌아온 셈입니다.

체중 증가는 정신과 약을 중단하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건 단순한 외모 문제가 아니라, 치료를 계속할 수 있느냐, 그리고 대사 건강까지 걸린 진지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기엔 꼭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정신과 약이라고 다 살을 찌우는 건 아니라는 것. 약마다 그 정도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항정신병약: 편차가 가장 큰 그룹

체중과 관련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그룹이 항정신병약입니다. 동시에, 약에 따라 차이가 가장 큰 그룹이기도 하고요.

18개 항정신병약의 대사 영향을 비교한 대규모 네트워크 메타분석을 보면 이 편차가 뚜렷합니다1. 체중을 가장 많이 늘리는 쪽은 클로자핀과 올란자핀이었습니다. 반면 아리피프라졸, 루라시돈, 지프라시돈, 카리프라진처럼 위약과 비교해 유의미한 체중 증가가 확인되지 않은 약들도 있었습니다. 같은 '항정신병약'이라는 이름 아래, 어떤 약은 대사에 큰 부담을 주고 어떤 약은 거의 중립적이라는 뜻입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체중 증가가 걱정되는 상황에서 무작정 약을 끊는 대신 '더 중립적인 약으로 바꾸는' 선택지가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항우울제도 천차만별

항우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항우울제를 먹으면 살찐다'고 뭉뚱그리지만, 실제로는 약에 따라 방향이 반대이기도 합니다.

여러 항우울제의 체중 영향을 종합한 메타분석에서, 체중 증가 위험이 상대적으로 큰 약으로는 미르타자핀, 파록세틴, 아미트리프틸린이 꼽혔습니다2. 반대로 부프로피온은 오히려 약간의 체중 감소와 연관됐고, 플루옥세틴도 초기에는 체중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러니 같은 우울증 약이라도, 체중이 고민이라면 선택의 여지가 분명히 있는 셈입니다.

상대적으로 체중이 늘기 쉬운 약체중 중립~감소 경향
클로자핀, 올란자핀(항정신병약)아리피프라졸, 루라시돈, 지프라시돈
미르타자핀, 파록세틴, 아미트리프틸린부프로피온, 플루옥세틴(초기)

(위 분류는 평균적 경향이며, 개인차가 큽니다. 어떤 약이 나에게 맞는지는 효과·부작용을 함께 따져 정하는 문제입니다.)

왜 어떤 약은 살을 찌울까

원리를 알면 왜 약마다 다른지도 이해가 됩니다. 체중을 잘 늘리는 약들은 대체로 뇌에서 식욕과 포만감에 관여하는 특정 수용체(히스타민 H1, 세로토닌 5-HT2C 등)를 강하게 차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결과 식욕이 늘고 포만감이 둔해져, 자기도 모르게 더 먹게 되는 겁니다. 여기에 약이 대사 자체에 주는 영향까지 겹치면 체중이 붙습니다.

핵심. 살이 찌는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약이 식욕 스위치를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책할 일이 아니라, 약을 조정하거나 관리로 대응할 일입니다.

끊는 대신 할 수 있는 것

그래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살이 쪘다고 말없이 약을 끊지 마세요. 잘 듣던 약을 갑자기 끊으면 재발 위험이 커지고, 그 손실이 체중 문제보다 훨씬 클 수 있습니다. 대신 선택지가 있습니다.

  • 주치의에게 말하기. 체중 변화는 충분히 상의할 만한 부작용입니다. 숨기면 대응할 기회도 사라집니다.
  • 더 중립적인 약으로 조정. 위에서 봤듯 같은 계열에도 체중 부담이 적은 약이 있습니다. 효과를 유지하면서 바꿀 여지가 있는지 의논해볼 수 있습니다.
  • 처음부터 생활습관 관리. 약을 시작할 때부터 식사와 활동을 챙기고 체중을 주기적으로 재는 것이, 이미 찐 살을 빼는 것보다 훨씬 수월합니다.
  • 약물의 도움. 항정신병약으로 인한 체중 증가에는 메트포민을 함께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근거가 있습니다. 12개 무작위 시험을 묶은 메타분석에서 메트포민은 위약보다 평균 약 3.3kg의 체중 감소와 연관됐습니다3.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체중이 좀 늘더라도 그 약이 가장 잘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땐 약을 버리기보다 관리로 상쇄하는 편이 낫습니다. 반대로 조정 가능한 여지가 있다면 굳이 참고 견딜 이유도 없고요. 어느 쪽이든, 그 판단은 혼자 약을 끊는 것이 아니라 주치의와 함께 내리는 것이 안전합니다.

체중계 위의 숫자가 늘었다고 해서, 그동안 겨우 붙잡은 안정을 통째로 내려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살과 마음,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문제가 아니라 둘 다 챙길 방법을 찾는 문제니까요. 그 방법은 대개, 약을 끊는 자리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꺼내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참고 자료

  • 18개 항정신병약의 대사 영향 네트워크 메타분석 (Pillinger 등, Lancet Psychiatry 2020): PubMed
  • 항우울제와 체중 변화 메타분석 (Serretti·Mandelli, J Clin Psychiatry 2010): PubMed
  • 항정신병약 유발 체중 증가에 대한 메트포민 메타분석 (de Silva 등, BMC Psychiatry 2016): PubMed

참고문헌

  1. Pillinger 등, 2020
  2. Serretti·Mandelli, 2010
  3. de Silva 등, 2016